<고종석의 여자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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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이 대단한 글쟁이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에세이와 소설을 넘나들며 펼치는 그의 필력에 대한 입소문은 워낙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싸움닭' 진중권도 고종석에 대한 평가만큼은 후했다. '시칠리아의 암소'에서 였던가? "현대적 기준에 따라 ‘진정한 자유주의자’라 부를 수 있는 건 고종석씨뿐이다." 인터넷을 서핑하다 가끔 마주치는 고종석의 칼럼들은 그러한 세간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 책 '고종석의 여자들'은 내가 처음 만난 그의 책이다. 기대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며 세간의 평판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내 감상은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이것이 그 고종석의 글이 맞는가. 혹시 나의 읽기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원래 좋은 글이란 이렇게 난삽하고 정신없는 것인가. 이인화의 첫 소설에 대한 누군가의 평론으로 기억한다. '1급의 평론가라고 1급의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다.' 고종석이 1급의 글쟁이라고 해서 늘 1급의 글을 쓰는 건 아닌 모양이다. 하긴 어떤 소설가가 매번 이상문학상을 타겠는가. 알라딘 최고 글쟁이인 아치도 매번 10개 이상의 추천을 받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기복이 있다. 아마 이 책 '여자들'은 고종석의 슬럼프가 아닐까?

책이 산만해질수 밖에 없었던 건 구성의 잘못이 크다고 본다. 책은 저자가 관심있는 서른 네명의 여자들을 다루는데. 각각의 인물이 하나의 챕터의 주제가 되는 식이다. 그러니 불과 300페이지도 안 되는 전체 장 수에서 각 인물에 할애된 분량은 사진 빼고 그림빼면 네장 남짓. 에이포 용지로 두장이나 될까 말까한 길이다.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더라도 그 짧은 글에 한 인물의 특징을 우그러뜨려 넣는건 빠듯한 일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매번 호흡을 깔딱거린다. 

그래서 그의 격조있는 문장과 세련된 어휘는 흐릿한 주제의 언저리를 더듬거릴 뿐이다. 각각의 글들은 유기적으로 연관되지 못하고, 수준있는 담론을 담아내지 못한다. 서두에서 거창하게 말 한 역사 앞의 여성의 종속성이나 부차성에 대해서 접근하지도 못한다. 그는 그의 "이런저런 생각들이 독자들의 흥미를 끌었으면" 또 "생각의 깊이를 얻"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흥미도, 깊이도 얻지 못했다. 다만 얻은 것은 똑똑한 남자의 13000원 짜리 한담. 

이 남자, 실컷 벗겨 놓고 침만 잔뜩 묻혀놓은 꼴. 뒷 감당 어떻게 하시려고. 

그녀들,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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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12-27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가 야하다. ^^
고종석씨에게는 생각을 정갈하게 정리한 글이 어울려요. 얼핏 신문에서 이 책의 내용 중 한 꼭지를 읽은적이 있는데 고종석씨의 색이 드러나지 않았어요. 의도는 넘쳤고, 기획은 틈이 많이 났죠.
난 좀 행복한게, 다재다능이란게 있지만 저마다 자기가 제일 잘할 수 있는게 있잖아요. 글도 그런거니까, 주어 서술어 맥락 등등이 어설픈 글이라도 자꾸 쓰다보면 나도 좀 나아질거란 생각이 드는거죠. 아, 갑자기 서재 결혼시키기에서 아주 아주 오랫동안 소네트를 짓던 변호사던가? 그 분 이야기가 떠오르는데요.

뷰리풀말미잘 2009-12-27 17:20   좋아요 0 | URL
제가 멋지고 정리가 꼼꼼하고 그런 리뷰로 안되니까 본격에로리뷰로 경쟁력을 확보해 보려구요. ㅎㅎ

어쩐지. 이게 신문에 연재하던 글이었군요. 읽으면서 그럴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 이 책은 별로였지만 그렇다고 다른 책에 대해 기대감이 떨어지지는 않았어요.

아치 누가 글 못쓴다고 했어요? 확 전기톱으로 썰어버릴라.

Arch 2009-12-27 18:37   좋아요 0 | URL
니가 그랬잖아요. 본격무협전기톱스릴러가 될 듯 ^^

뷰리풀말미잘 2009-12-27 18:54   좋아요 0 | URL
기본기가 부족하다고 했지 못쓴다고는 안 했어요. ㅎㅎ 이러다 아치팬들한테 테러당하는거 아닌지 몰라요.

2009-12-27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12-27 20:06   좋아요 0 | URL
난 Arch팬이지만 뷰리풀말미잘님을 테러하진 않겠습니다. 불끈!

뷰리풀말미잘 2009-12-27 20:56   좋아요 0 | URL
오 다락방님 똘레랑스 장난 아니신데요.

Arch 2009-12-27 21:52   좋아요 0 | URL
다락레랑스가 별명이라죠. (똘락방이 더 낫나?)

다락방님, 비밀 댓글로 미잘이 잠자는 아치 콧털을 건드리는데 어쩌죠! 어흥~

뷰리풀말미잘 2009-12-27 22:35   좋아요 0 | URL
이 사람이 네이밍 센스가 없어. 달레랑스 어떤가요?

아치. 실력으로 승부하고 결과에 승복합시다. ㅎㅎ

다락방 2009-12-28 00:05   좋아요 0 | URL
나 완전 똘락방에 빵 터졌어요. 그게 저한테 더 잘어울려요. 슈퍼또라이로 동료들 사이에 불렸었던 걸 감안하면 똘락방이 낫겠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

미잘님과 Arch님은 원래 서로의 콧털을 건드리는 사이가 아니던가요? 건드리지 않을때, 그때 어떡하죠, 하고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뷰리풀말미잘 2009-12-28 01:52   좋아요 0 | URL
아치가 제 코털 다 뽑아갔대요.

Arch 2009-12-28 11:19   좋아요 0 | URL
미잘은 콧털 나오는 남자예요.

달레랑스는 너무 달콤해서(달콤한 남자 같으니) 이걸로 하면 제일 어울리긴 하지만 말예요. 다락방님의 이미지가 너무 좋으니까 좀 깨자는 의미에서 똘락방도 괜찮을 듯. 다락방님 뭘로 할래요. (선택하란다. 뭐 좋은거라고.^^)

다락방 2009-12-28 17:02   좋아요 0 | URL
말미잘님께 콧털 청소기 하나 사드려야겠어요.

당근 똘락방.
똘아이 다락방의 준말로. 히히

승주나무 2010-01-02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똑한 남자의 13000원 짜리 한담 따위를 듣기보다는 저와 함께 칼 폴라니의 세계로 빠져드심이 어떨까요 ㅋㅋㅋ 4개월만에 거대한 전환을 완독했는데 아직 리뷰는 손도 못 대고 있는 상황... 신년 인사 다니고 있어요. 아치 님이랑 좀 친하게 지내세요. 더 그랬단 연애할라 ㅎㅎㅎ 혹시 ing~~~ 올해는 장난끼 어린 표정으로 만납시다^^

뷰리풀말미잘 2010-01-02 18:22   좋아요 0 | URL
오, 승주나무님 반갑습니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아요. ^^ 바쁘신 중에도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완독하셨다니.. 저는 경제학이 특히 무식한 분야중 하나라 관심은 갖고 있었는데 아직 도전도 못 해보고 있습니다. 그걸 읽는거 자체가 제겐 사고의 거대한 전환을 요하는 일이라서요 ㅎㅎ 일단 보관함에 두겠습니다. 조만간 폴라니를 씹으면서 맥주한잔 하시죠.

요새 가쉽에 좀 어두우신듯. 아치님 연애 시작한지 꽤 됐어요. 지들끼리만 연애하는 더러운 세상! ㅎㅎ
 

#. 1

전쟁이었다. 

나는 군인이었다.

내가 속한 부대의 명칭과 편제는 잘 모르겠다. 나는 소대라기에는 좀 작았고 분대라기에는 많은 규모의 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우리 임무는 이동중인 요인을 사살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주 전장에서 조금 떨어진 그 곳은 올림픽공원처럼 아주 커다란 공원이었다. 우리는 뭔가 시간에 쫒기고 있었고, 그래서 서툴렀다. 그래서 아직 요인과 경호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여유있게 매복하지 못했다.

풀 숲에 숨은 내 앞으로 지나가는 건 소대 규모의 호위부대와 모녀로 보이는 두 여인. 나는 소총을 가만히 들고 발사준비를 했다. 그런데 내가 겨누고 있는 소총 가늠자 끝에 보이는 건, 예전 내 동료였던 Y. 말수 적고, 운동 잘 하고, 사람까지 좋은 그 Y였다. 나는 놀라서 조금 부스럭 거렸고 Y는 예리하게 소리를 간파했다. 자세를 낮추고 주위를 경계하는 그. 그리고 지척의 거리에서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얼어붙은 우리. 그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우리 쪽의 누군가가 성급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빵- 하는 총 소리.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한 적의 강력한 역습.

순식간에 우리 팀은 전멸했다. 살아남아 도망치는 건 나와 어떤 여성 동료. 우리는 정신없이 달렸고 추격자들은 인정사정없이 연사 모드로 소총을 갈겨댔다. 그녀가 표적이 된 이유는 아마 나보다 조금 느렸기 때문이었을거다. 어느 순간 돌아본 내 시야에 그녀는 없었고 개떼처럼 뒤를 쫒는 추격자들만 있었다. 그녀는 죽었을까? 아니면 부상당한 채로 포로가 되었을까.

이상한 건 나는 그 상황이 별로 슬프지는 않았다는 거. 그래서 그 싫어하는 총을 별 죄책감 없이 계속 쏴 댈 수 있었다는 거다. 어쨌거나 숨가쁘게 도망가던 나는 마침 포탄의 자국인듯 푹 패인 구덩이를 발겼했고 당연히 뛰어들었다. 피맛에 미친 추격자들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실수를 두 가지나 하고 있었으니까 1. 엄호 없이 맨 몸으로 개활지를 지나고 있었고. 2. 단 한명인 내가 매복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참호가 되어버린 웅덩이 벽면에 몸을 기대 흔들림을 없게 하고 점사 모드로 조준했다. 탄은 충분했다. 그리고 인형 사격장에서처럼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총 소리가 날 때마다 추격자들은 인형처럼 하나씩 쓰러지더니 곧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패배도, 승리도 하지 못한 나는 총을 어깨에 걸고 터덜터덜 전장을 빠져나왔다. 정말 이상하게 커다란 늑대 한 마리가 사람은 아랑곳 없이 시체 주변만 킁킁거리고 있었다.  


#. 2

나는 오래 걸었다. 그리고 뜬금없이 지하로 내려가는 철 계단을 발견했다. 시야가 미치는 사방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도대체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미지의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기로 했다. 그건 이제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벙커였다. 벙커는 지하 4층으로 되어있었는데 각 층마다 20명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찍했다. 어느 층은 통째로 문이 잠겨져 있었다. 나는 맨 아랫층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거기엔 넓찍한 침대도 있었고, 냉장고도 있었다. 나는 좀 머무르기로 했다.

며칠이 지난 것 같다.

나는 걸을 때 마다 쿵쿵 소리가 나는 철 계단을 올라 가서 주변을 탐색했다. 군인 몇 명이 벙커의 바로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 때가 아니다. 나는 거북이처럼 고개를 집어넣고 발 소리 안 나게 다시 지하로 내려간다. 그때 쿵- 하고 소리가 들렸다. 침입자다. 나는 총을 겨누고 어두운 곳에 숨었다. 놀랍게도 내 앞으로 지나간 건 얼굴 모르는 젊은 여자였다. 나는 여자의 뒷통수에 총을 겨눴다. 걸어.

겁에 질린 여자는 짐짓 그렇지 않은 척 하면서 내게 뭔가를 협상하려고 했다. 그녀가 열어 보인 것은 짧은 치마였고 요구 조건은 자신을 풀어 줄 것이었다.

정말 비겁한 대목이지만 나는 정말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가 그녀의 협상을 받아드리려고 했는지 아닌지. 하지만 최소한 나는 그녀를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것 자체가 엄청난 리스크가 될 수 있으니까. 나는 그녀를 총으로 위협해서 맨 아랫층으로 끌고 왔고 침대에 묶었다. 도대체 나는 어쩔 생각이었을까. 나는 그녀의 처분을 고민했던 것 같다. 

그때 벙커에는 또 다른 침입자가 발생했다. 발소리. 나는 다시 총을 들고 층계 옆 계단에 몸을 은닉했고,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그 늙은 남자의 가슴을 겨눴다. 그는 건장했는데 군복 바지에 녹색 군용 런닝을 입고 있었다. 빵- 그는 무력하게 허물어졌고 나는 뒤를 따라 내려오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총구를 겨눴다. 그는 검정색 해녀복 비슷한 것으로 온 몸을 감싸고 있는 남자였다. (이제 알겠는데 그건 UDT가 사용하는 잠수복이었다. 꿈에서는 전혀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 잠수복 사내는 반항 없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고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총을 발사했다.  그런데 웬걸. 아무런 충격을 느끼지도 않는 그. 그 남자는 예상했다는 듯 머리위로 들어올린 총을 천천히 내려서 유유히 내게 겨누기 시작한다. 나는 몸을 날려 소파의 뒤로 피했다. 남자의 이상한 옷에는 방탄 효과가 있는게 분명했다. 이후 나의 공격은 여러차례 실패했고 좁은 공간에서 나는 금새 궁지에 몰렸다. 그는 베테랑 사냥꾼 처럼 나를 몰아갔다. 

결국 나는 무력한 상태로 그와 대치했다. 죽겠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긴장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그 순간 내 시야에 보인 것은 내게 다가오는 그의 발. 그 발을 감싸고 있는 건 평범한 가죽 군화였다. 2차대전 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옥쇄를 각오한 일본군이 삶아 먹기도 했다는 가죽군화. 나는 총으로 방심한 그의 발등을 쐈다. 그리고 검은 잠수복 뒤에서 비명을 지르는 그의 작살총(웬?)을 가볍게 뺏어 던져버렸다.

그리고 잠수복의 허리를 노린 태클. 그때 잠수복 군인과 넘어져 뒤엉킨 내 시야에는 반라(왜?)의 상태로 도망가는 그 여자가 보였다. 어떻게 결박을 풀었을까. 잠깐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잠수복 군인은 나를 밀쳐내기 시작했다. 그는 나보다 체구가 컸고 힘도 셌다. 까다로운 상대였다. 나는 그의 팔을 제압하기로 했다. 팔 얽어비틀기. 작은 체구로 무골 그레이시 가문을 제압한 기무라의 절기. 그런데 내가 그렇게 기무라록을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알았던가. 어쨌거나 나는 그의 팔꿈치와 어깨를 작살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한 손의 손가락을 몽땅 부러뜨렸다. 그리고 거의 공격할 의지를 잃고 늘어진 쇄골과 턱 사이에 팔을 찔러 넣어 경동맥을 제압했다. 그의 목은 축축하고 뜨뜻했다. 배운대로라면 그가 의식을 잃는데는 7초, 뇌가 기능을 정지하는데는 몇 분 가량의 시간이 걸렸을거다.      

얼마 후 나는 아직 온기가 식지도 않은 그의 목에서 팔을 빼냈는데 이제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 3

자기 전에 내가 읽은 책은 스푸트니크의 연인이었다. 그 자아의 분열과 찾기 어쩌고 하는 맨 뒷 꼭지의 해설이 꿈에서 내 이드와 에고를 분열시키는 암시가 됐던 것 같다. 꿈에서 내가 에고와 분리된채 어둠의 말미잘이 된 건 아마 적 중에서 Y를 발견한 이후였을거다. 그때부터 나는 아무 죄책감 없이 방아쇠를 당겨대고, 꺼리낌없이 동료를 전장에 버려두고, 그 여자를 침대에 묶어 놓기까지 (뭐, 뭘 하려고?) 했다.

분석하기로는 아마 그 벙커는 내 심층 무의식의 단면이었을거다. 실제로 내 심리의 깊숙한 곳에는  깊고, 어둡고, 음침하고, 넓고, 스스로를 아늑하게 유폐하는 그런 공간이 존재할거다. 또 내 안에는 분명 그런 에로스와, 그런 폭력의 충동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벙커에 난입한 두 명의 군인은 악역이 아니라 선역에 가까운 역할이리라. 아마도 그들은 내 에고가 파견한 에이전트. 다행인것은 어둠의 말미잘은 그들을 제압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거의 죽음의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으니 내 에고의 수준은 무의식의 영역에서도 상당히 강력하다는 반증일거다. 그래, 나는 원래 양심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결국 어둠의 미잘은 그들의 가슴팍에 총알을 박아넣고, 뼈를 해체하고, 숨통을 끊어놨지만. 그래도 희망적인 부분은 내 또 다른 자아인 잠수복 그가 죽어가면서도 결국 그 여자를 무사히 탈출 시키는데 성공했다는거다.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나는 아직 밥도 안 먹고 

이러고 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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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25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놀드 슈바제네거+에밀리아넨코 효도르+돈주앙

뷰리풀말미잘 2009-12-26 00:2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놀드와는 좀 거리가 있는 외모에요. 효도르가 기무라를 사용하던가요? 돈쥬앙은 아직 안 본 영화네요. 한번 구해봐야겠어요. ㅎㅎ

다락방 2009-12-25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꿈은 제가 전문이에요. 예지몽두요. 정말로요.

이건 개꿈-
1. 며칠전에는 움직이는 전기톱 꿈을 꿨어요. 그 전기톱은 아무도 멈출수가 없지요. 땅속으로도 하늘로도 마구 날아다니고 움직이면서 사람들을 다 잘라버려요. 다들 그 톱에 베어지지 않기 위해 여기저기로 도망다녔어요. 사람들은 그 톱을 피해 다같이 떼를 지어 물가로 향했어요. 물을 헤치며 도망가면 톱이 쫓아오질 못하겠지, 하구요. 다들 한길로 무리지어 도망다니는데 저는 왜였는지 혼자 반대로 뛰면서 울었어요. 왜 아무도 나한테 피하라고는 하질 않는거지? 했어요. 그러면서 막 울었어요. 톱도 무섭고, 외롭고..


이건 예지몽인데요,
2. 어젯밤에는 떡집엘 갔어요. 5만원인지 50만원인지를 들고 떡을 사러 갔어요. 체인으로 운영되는 예쁜떡을 파는 떡집이었는데요,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떡이 별로 많이 남진 않았더라구요. 그래서 싹싹 긁어 모았어요. 뒤져보니 구석에 숨겨진 분홍색과 하얀색과 갈색떡들도 보였어요. 그래서 떡을 떡을 떡을 떡을 계속계속 샀어요. 이쯤되면 돈만큼 채웠을까 생각하면서요.


아침에 일어나서 크리스마스인데, 떡 꿈이라니, 혹시 말미잘님이 방명록에 인사를 남긴거 아닐까? 하고 들어왔는데 정말로 그랬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뷰리풀말미잘 2016-05-13 11:19   좋아요 0 | URL
오, 다락방님 스티븐 킹이 울고 가겠는데요. 제가 피터잭슨이었다면 그 전기톱 꿈 당장 판권 계약하겠습니다. 장담하건대 영화로 만들어지면 아카데미에서는 좀 어려울지 몰라도 칸이나 베를린에서는 알아 줄 겁니다.ㅎㅎ 근데 다락방님 요새 뭐 압박감 느끼고 그럴 일 있나요? 돈 꾸고 안 갚았다던가.

떡과 크리스마스와 먹음직한 홍게와 미잘과 방명록이 도대체 어떤 이유로 연상 작용을 일으키게 되는 건지 심히 궁금합니다.

성탄연휴 잘 보내고 계십니까? 저는 배가 빵빵해질때까지 먹고 코가 구십도로 삐뚤어질때까지 마셨습니다. 왠만하면 적게 먹는 편인데 왠지 성탄절엔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제가 오늘 받은 최고의 선물은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내일은 허리 아플때까지 누워있기를 시도해볼까 해요.


Arch 2009-12-27 01:45   좋아요 0 | URL
오바 미잘 같으니, 뼈가 노곤노곤 해졌으니 이제 들어와요^^

다락방님, 만약에 미친 톱이 나타나면 내가 제일 먼저 다락방한테 우리 같이 팔짱 끼고 물가로 가자고 말해줄게요. 나도 다락방님처럼 꼭 나만 어딘가에서 제외되는건 아닐까란 두려움이 있어요.

뷰리풀말미잘 2009-12-27 11:11   좋아요 0 | URL
흥. 아치 찜질방 갔다왔죠?

당신들이 팔짱끼고 물가로 가면 저는 이렇게 말 할 겁니다.

"빵꾸똥꾸들아, 강을 건너지 마라."

다락방 2009-12-27 16:35   좋아요 0 | URL
Arch님. 그것도 좋지만요, 우리 둘이 힘을 합쳐서 미친톱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건 어때요? 맞서 싸웁시다. 미친톱을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는거에요!! 뜨거운 용광로에 녹여버리든가 하는거죠. 물론, 우리 둘이 온 세상사람들을 구해도 우리가 구했다는걸 알아주진 않겠지만, 그런것쯤 필요 없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동떨어져 구해지지 않을거란 외로움에 울 수도 있는데, 우리가 톱을 없애 버리면 그 사람들은 울지 않아도 될테니 말예요. 내가 혼자라면 톱을 잡는걸로 끝나겠지만, Arch님과 함께라면 그 톱을 가지고 용광로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뷰리풀말미잘 2009-12-27 17:13   좋아요 0 | URL
061-790-0114 포스코 광양제철소 전화번호에요. 두분이 거기까지 가시기 힘들테니까 우체국 택배를 이용하세요. 요금은 제가 우표가 좀 있는데 지원해 드릴게요.

hanalei 2009-12-27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잘님 미스테리인데요..
첫째. 내용에 비해 극도로 추천이 없다. 이번거는 퍼펙트이군요. 그 취지를 살려 그대로 둡시다.
둘째. 댓글들은 본문과는 전혀 딴 이야기들로 일관들을 한다.

hanalei 2009-12-27 23:39   좋아요 0 | URL
가능한 답으로서는
첫째. 추천'따위'로 어떻게 이 훌륭함을 칭송할 수 있겠는가. 아에 하지를 말자.
둘째. 완벽한것에는 더 이상의 언급이 필요없다. 입다물고 있자.

뷰리풀말미잘 2009-12-28 01:48   좋아요 0 | URL
레이시즌님 이전에도 추천수 미스테리를 제기한 몇몇 분들이 계셨습니다. 하지만 모두 어느샌가 서재를 폐쇄했거나 실종되고 말았었지요. #우님을 하나의 사례로 들수 있겠습니다. 본문과 전혀 딴 이야기를 한다. 과연 그것이 딴 이야기일 뿐일까요? 혹시 단어를 획수 단위로 분해해서 패턴을 재정립한다면 비로소 의미가 열리는, 고도로 암호화된, 그런 알고리즘은 아닐까요?

Arch 2009-12-2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잘 나 완전 빵 터졌어요. 전 미잘이 무척 좋아요.
광양제철소는 뭐고 암호화는 또 뭔지. ㅋㅋ 그나저나 달레랑스는 아직 알라딘 출근 전인가봐요.

뷰리풀말미잘 2009-12-28 13:20   좋아요 0 | URL
달레랑스 열심히 점괘 뽑고 계시던데요. ㅎㅎ

다락방 2009-12-28 17:05   좋아요 0 | URL
아 미치겠다. 열심히 점괘 뽑고 있대요. 아 놔....... 오늘 진짜 엄청나게 집중모드 일하다가(그래도 점보는건 하고)지금 또 잠깐 들어왔어요. 아, 나 당신들이 너무 웃기네요. 어쩌죠?

뷰리풀말미잘 2009-12-28 23:08   좋아요 0 | URL
우리 달레랑스님 웃음에도 관용이 넘쳐요. 흐.. 즐거운 밤입니다. ^^
 

 

 

 

 

 

 

 

"너와 술마시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어린왕자가 물었습니다.

"참을성이 많이 필요하지." 여우가 대답했습니다. "우선 내게서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아. 난 곁눈질로 널 볼테니까, 아무 말도 하지마. 말은 오해의 원천이지. 그리고 한잔 마실때 마다 조금씩 나에게 더 가까이 앉으면 돼." 

다음 날 어린왕자는 댓글을 달았죠.

"술은 몇 시에 마시는게 좋을까."  

여우가 말했죠.

"예를 들면, 네가 오후 일곱시에 마시자고 하면, 난 여섯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나는 더 행복감을 느낄 거야. 여섯 시엔 난 벌써 숙취 걱정을 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될 거야. 내가 얼마나 마시고 싶은지를 보여줄 수 있지. 그런데 네가 그냥 아무 때나 오면, 내 위장은 몇 시에 술 먹을 준비를 해야 할지를 전혀 모르게 되지. 적절한 관례를 지켜야 해."

"관례가 뭐야?" 어린왕자가 물었죠.

"그것 역시 너무 자주 소홀히 다루어지는 행위야." 여우가 말했습니다.  "그건 술 먹는 날을 다른 날과 구별되게 하고, 술 먹는 시간을 다른 시간과 구별되게 만드는 거지. 예를 들면 사냥꾼이 술 먹는 날에도 관례가 있어. 그들은 매주 금요일이면 마을의 여자들과 술을 마시지. 그래서 금요일은 내게 멋진 날이야! 난 을지로 3가 까지 산책을 할 수 있지. 하지만 사냥꾼들이 그저 아무 때나 술을 마시면, 매일 매일 이 다른 날과 마찬가지가 되고, 난 결코 을지로에 갈 수 없게 되지."

어린왕자는 여우와 마셨습니다. 그리고 떠날 시간이 가까워 왔을 때,

"아아." 여우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답니다. "울고 싶어."

"그건 네 잘못이야." 어린 왕자가 말했죠. "난 너에게 적당히 따라주고 싶었어. 그런데 네가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우겼잖아."

"맞아. 그건 그래." 여우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넌 지금 울려고 하고 있어!"  

"맞아, 그건 그래." 여우가 말했죠. "그런데 너는 아직 취하지도 않았잖아!"

"나도 많이 취했어." 왕자가 말했죠. "맥주의 색깔 때문이지." 그리고는 덧붙여 말했죠. 

"가서 알라딘을 다시 살펴봐. 이제 넌 내 댓글이 세상에서 유일하다는 걸 이해할 거야. 그리고 돌아와서 나와 맥주 한잔 더 해줘. 그러면 선물로 망고 하나를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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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18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왕자와 술을 먹을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뷰리풀말미잘 2009-12-18 16:01   좋아요 0 | URL
간사이 오뎅탕에 도꾸리 한 병 사준다고 꼬십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18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글에 돼지 한마리도 들어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뷰리풀말미잘 2009-12-18 16:05   좋아요 0 | URL
그럼 패러디를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으로 바꾸면 되겠군요! ㅎㅎ

Forgettable. 2009-12-1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자는 맥주를 눈으로 마시는군요!!

뷰리풀말미잘 2009-12-18 16:06   좋아요 0 | URL
그 부분은 저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왜 그렇게 썼을까요. 흐음..

하날리 2009-12-19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세계명작 뻬빠에 추천이 고작 6이라니
인류의 존망이 심히 걱정되지만
시류 영합적 뻬빠를 거부하는 미잘님 탓에 그래도 미래가 있군요.

뷰리풀말미잘 2009-12-19 10:24   좋아요 0 | URL
아마 레이시즌1,2,3,4님이 각각 1개씩 하날리님의 포스추천이 2개 그래서 도합 6개의 추천이 나온 것 같네요 ㅎㅎ 그래도 세계명작을 이해하는 알라디너가 있다는 것이 제가 페이퍼를 그만 둘 수 없게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백아절현? ㅎㅎ 아아, 하날리님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웁니다.

2009-12-19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0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1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1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3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09-12-24 01:15   좋아요 0 | URL
놀라기는요. 쥬드님이신데요.
이런 서재 변방에까지 몸소 와 주시니 감읍할 따름이지요. ^^
게다가 댓글까지?
알라딘 바다에 사는 말미잘은 댓글 먹고 산답니다.

2009-12-23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24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송완료!
빨리 가주면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텐데~
좋은 하루 되세요 ^^

뷰리풀말미잘 2009-12-25 00:53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고마워요. 사실은 사연이 절절한 피오레님에게 양보하고 싶었는데 너무 늦게 알아서요. ^^ 잘 읽겠습니다.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12-28 13: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말미잘님 피오레님은 1권은 읽으셨어요~
재미난 책읽기 되세요~
 
<깐깐한 독서본능>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깐깐한 독서본능 - 책 읽기 고수 '파란여우'의 종횡무진 독서기
윤미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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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 세상이 죽은 듯 고요하고 이따금 종소리 들리는 흠내골 오두막. 그 곳에 염소 먹이고 호박 심는 은자가 산다. 당랑거철螳螂拒轍하던 도시의 삶 내던지고 매화향 아득한 초야에 묻혀 조지오웰과 마르케스, 장정일과 김훈, 이탁오와 박지원을 벗 삼아 술잔 기울이는 사람. 낮에는 깨 볶고 밤에는 가득히 쌓인 서책과 독야청청‘讀’也靑靑하는 사람. 그가 파란여우다.

40이 넘어 읽기 시작한 글이라지만 그의 책 읽기는 바다처럼 넓고 우물처럼 깊다. 각 국의 문학과 고전, 인문과 사회, 인물과 평전, 환경과 생태, 문화와 예술, 역사와 기행, 심지어 만화와 아동도서까지 넘나드는 그 방대한 지적 탐구. 나 같은 게으른 독자는 그저 목차를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겸손해질 뿐이다. 또 그런 망망한 인식과 관조의 바다 속에서 헤메이고 뒤채임이 일상이련만 치우침 없이, 국한됨 없이 가지런한 서평의 목록을 뽑아든 그녀가 또한 존경스럽다.  

이 책은 저자가 블로그에 지난 5년간 쓴 380편의 서평 중 86편을 엄선해 엮은 것이다. 원래도 좋은 글이었는데 추리고 다듬고 깔끔하게 편집까지 해 놓으니 구슬을 금실로 꿰어놓은 격. 책은 보기 좋고 문장은 향기롭다.

#. 2 

그의 문장에서 나는 이 냄새는 필시 시골의 냄새다. 책의 첫 챕터 첫 장부터 아찔한 라일락 냄새. 들여다보니 어쩐지, 그녀 독서인생의 ‘첫사랑’이었다는 장정일의 <독서일기> 서평이 아닌가.  

“나에게 장정일은 ‘독서인생’의 첫사랑이다.... 나는 이 독서일기 첫째 권을 시작으로 장정일이 대신 들려주는 책의 수다로 빨려 들어갔는데 그게 벌써 일곱 번째다. 첫 번째 독서일기로부터 14년이 흘렀고 그도 나도 마흔이 훌쩍 넘었다. 작가와 애독자가 함께 늙어간 세월이다. 이제 장정일은 대머리가 되어가고 나도 주름살이 늘기 시작했다.” 파란여우는 그가 독서인생에 불을 지폈으니 ‘첫사랑에 대한 보답은 충분하다.’며 쿨한 척 하지만 아직도 그의 신간을 궁금해 한다는 윗 단락의 태도로 미루어 보건대 그의 연모에 대한 장정일의 보답이 충분했던것 같지는 않다.  

저자는 서평에서 94년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첫 출간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글쓰기를 대관하며 늙어 부드러워지는 장정일의 글쓰기를 주목한다. 짧으나 긴 호흡으로 쓰인 글이다. 웬만한 정성과 애정 없이 쓰기 힘든 글이다. 하긴, 이 서평의 제목은 ‘당신과 함께 늙을 수 있어 기쁘네요.’ 오, 이런 달콤쌉싸름한 고백이라니.

박근혜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붙어있는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 대한 서평에서는 새파란 청양 고추처럼 매운 냄새가 난다. 저자는 사정없이 죽비를 휘두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박근혜의 첫 번째 자서전은 두터운 화장 냄새만 진동한다.... 박씨네 부녀가 한국 역사에서 한 축을 맡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어떤 역할이었는가를 독자는 물을 필요가 있다.” 이 서평에서 파란여우는 박근혜의 뻔뻔한 현실인식으로부터 출발해 그 정치가의 낡은 멘탈리티와 더불어 한국 근현대사가 품고 있는 정치, 경제의 어두운 측면을 추적한다. 그 치열한 논구에 끝에 내려진 그의 결론은 파격적이나 명쾌하다. “진실의 의도적인 은폐와 은닉과 봉합의 삼박자 리듬을 탄 박근혜의 자서전은 한마디로 역사의 날조를 기술한 것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여러 편의 곱씹어 볼 서평들이 있지만 꼭 이 한편의 서평을 소개하고 싶다. 촛불 시위의 현상을 긍정적으로 해석한 책 <어둠을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에 대한 서평 ‘촛불의 회계장부 왜 필요한가’. 여기에서 파란여우의 펜촉은 결 고운 참빗처럼 촛불의 환상을 훑어나간다.

저자는 우선 왜 촛불이 소멸했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이어서 촛불에 대해 비폭력 혁명 주장까지 하는 과도한 기대치를 지적하고, 그래서 결국 촛불의 실질적인 소득이 무엇이었는지 질책한다.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애써 외면했던 지점을 가차없이 들춰낸다. 촛불이 결집된 에너지를 목표에 겨냥하지 못하고 거꾸로 돌려 문화제와 놀이마당에서 허무하게 소진했다는 비판도 통렬하다. 그녀는 현상을 파악하는데 그치지 않고 조분조분 촛불의 과오를 따져 묻는다. 결론은 역시 명징하다. 촛불이 비록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의식화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이명박 정권의 역풍이 언론을 압박하여 촛불의 심지까지 강타했다는 것. 그래서 다시 촛불은 가능한 것일까? 촛불의 외연만을 신화화하고 찬양하기에 급했던 필자들에게 모골이 송연해질 지적이다. 

하지만 비판은 애정을 잃지 않고 명박 산성 언저리에서 흩어진 촛불들과 제 흥에 겨워 계통을 잃어버린 촛불들을 보듬는다. 그 어떤 촛불이 저희를 성장시키는 비판을 고깝게 들을 수 있을까. 만약 촛불에 관련해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독자가 읽는다면 새로운 담론의 거처를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갈피에서 풍기는 청청한 솔향을 맡는다. 세한도의 소나무가 툭 튀어나와 풍길것만 같은 청청한 내음이다. 누구도 메스를 들이대기 어려운 부위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파란여우에게서 겨울이 진해질수록 깊어지는 초록의 기개를 본다.     

#. 3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책은 쓰인 부분과 쓰이지 않은 부분으로 나뉜다. 홀로 완벽한 책이 어디에 있으랴. 완전한 독해는 책의 이면을 꿰뚫는 서평과 보족補足하는 것이다. 파란여우는 절름거리는 책들을 부추켜 걷게한다. 독자는 이 책 ‘깐깐한 독서본능’에서 파란여우와 함께 걸어오는 여든 여섯권의 책을 만날 것인데, 읽은 책이라면 미처 깨닫지 못한 새로운 시선을,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면 참신한 소개를 얻으리라. 풍요로운 독서 경험이었다.

책 맨 뒷장을 덮는데 문득, 하얗게 눈 내리는 날 산 봉긋하고 들판 너르다는 흠내골로 찾아가고 싶다. 파란여우와 눈에 파묻힌 배추를 걷고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생계의 고달픔과 더불어 탁주 한 잔 나누고 싶다. 오랜 친구처럼. 그녀가 그녀의 마르케스, 이탁오에게 그렇게 느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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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지난 2년이 남긴 부산물은 골판지 박스로 두 박스였다. 몇 개의 문서를 파쇄하고, 또 약간의 쓰레기를 정리하자 약간의 의류, 한 뭉텅이의 책, 이런저런 도구 같은 것들이 남았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다. 차 조수석에 몽땅 싵고 지하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표 받는 말 잘하고 인상 좋은 언니가 그런다.

“오랫만이에요. 환경 때문이었어요 기름 값 때문이었어요?”

그녀와는 가끔 뒷 차가 없으면 차 세워놓고 짧은 한담을 나누기도 했는데 그게 오래 되니까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늘 그렇듯이 그녀는 안부를 물어준다.

“둘 다요. 그런데 한 2:8쯤.”

그녀가 깔깔 웃는다.

“오늘은 옆에 뭘 잔뜩 실었네요?”

“짐 정리했어요. 오늘이 마지막이거든요.”

뭐 하러 그런 걸 얘기했을까.

“어머 섭섭해서 어떡해요.”

섭섭해 하지 않아도 될 걸 괜히 섭섭하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했다. 별 말 없이 그냥 지나 갔으면 자연스럽게 잊혀졌을 것을. 그 동안 음료수 하나 챙겨주지도 못한 것도 괜히 미안하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더듬거리는데 마침 뒷 차가 빵빵거린다. 반사적으로 엑셀을 밟았는데 허파에 들었던 숨이 확 쏠리면서 말이 아무렇게나 튀어나온다. “먼저 갈게요.” 다급해서 뱉어놓은 말이지만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그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먼저 가긴 뭘 먼저 가냐.

하던 일이 끝났다. 아마 거기에 남은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두세 번 더 들르면 평생 다시 갈 일은 없을 거다. 돌아보면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후회도 없다. 할 만큼 했고, 그만하면 됐다.  

그래서 1월 까지는 아무 일도 없다. 2월초까지도 거의 한가하지 않을까 싶다. 책 읽고, 가끔 운동하고,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술 마시고, 기회가 되면 여행도 가 볼란다. 아마 향후 5년간은 내 인생에서 다시 누리기 힘든 호사일테니까.

그런데 잘못 먹은 생선가시처럼 영 걸리는 건 내 어설펐던 그 마지막 인사. 아, 그것만은 뭔가 개운치가 않다.

#. 2

내 낡은 노트북 모니터가 자주 나간다. 그러면 재부팅을 해야 하는데 덕분에 하던 작업을 두어 번 날려먹었다. 빈도가 더 잦아진다면 조만간 새 놈을 들여야 할 것 같다.

이 노트북을 버리고 새 놈 들이는 것을 생각해본다. 새것은 헌 것을 대체하고도 남음이 있겠지만 왠지 약간은 쓸쓸한 마음이 들 것 같다. 그게 정일까? 하지만 무생물에 정을 줄 수 있나? 있다면 그건 생물에 주는 정이랑 뭐가 다른 걸까? 또 이건 갑자기 궁금해 진 것인데 소중한 생물을 잃어서 나는 눈물과 소중한 무생물을 잃어서 나는 눈물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문득 내가 잃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영원히 사랑할 것 같았던 그녀, 아직도 시골에 가면 주머니에 용돈을 쿡 찔러 줄 것 같은 죽은 할아버지, 내 손으로 묻었던 죽어서 딱딱해져 버린 토끼와, 아직도 체취를 기억하는 내 강아지 비비.

비비를 잃었을 때 나는 꼬박 열 두 시간을 울었다. 누구 말처럼 방 문짝을 청테이프로 발라놨다면 나는 내 슬픔에 익사했을지도 모른다. 어린 나는 그날 뭘 잃는다는 감정에 대해 배웠다. 내 배 위에 올라앉기를 좋아했던 토끼가 죽었을 때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모종삽을 잡았다. 토끼를 묻고 이틀은 말도 못하게 우울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이상하게 슬펐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고, 그녀를 보낼 때 나는 단지 차갑게 돌아섰다. 어쩌면 이별이란 숱하게 많은 것이고 눈물은 한정적인 것이라 사람에게 슬픔은 학습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로 유명한 가수 예민은 시골 분교를 돌며 아이들과 노래부르는 봉사활동을 하는데 TV에서 보니까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그가 학교를 떠날때가 되면 아이들은 '또 올거죠? 또 올거죠?' 하고 매달리는데 그는 꼭 그렇게 답한다. '아니 우리는 다시 만나기 힘들거야.' 왜 그러냐고 묻는 애들에게 그는 그랬다. '그게 인생이니까.' 그때는 피식 웃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말은 애들에게 노래보다 더 많은 걸 가르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는 만난 모두와 헤어졌고, 또 헤어질 예정이다. 이 곳에서도 숱한 서재가 문을 닿았고 또 다시 열지 않는다. 아마 나도 언젠가 어떤 이유에서건 더 글을 올리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알라딘도 예전 PC통신 업체들이 그랬듯 있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질 거다. 열반경의 그 유명한 구절대로 '모인 것은 흩어지기 마련'이니까. 

#. 1

얼마전에 루리가 키우던 사루비아 한 송이가 말라버렸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다시 살아나지 않으니까 표정이 영 어둡다. 쉽게 정 주지 못하던 애가 그러는 걸 보니까 어쩐지 나도 좀 마음이 안 좋았다.

“어차피 모이면 흩어지게 마련이야. 회자정리라고 들어는 봤냐 이 어리석은 놈아.”

내 말을 듣고 있던 루리가 한숨을 폭 쉬더니 별안간 내 복부를 가격한다. 기습에 배를 부여잡고 무너지는 나를 휙 지나치며 중얼거리는 루리.

“이런거?”

숨을 몰아쉬며 비척비척 일어나는데 어느새 사루비아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온 루리가 씩 웃는다.

“어라? ‘거자필반’이네?” 

다시 내 복부로 날아드는 치명적이고 담백한 호선.  

맞다. 회자정리의 다음 구절은 '거자필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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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15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리 만세..!!! =3=3=3=3

뷰리풀말미잘 2009-12-15 16:11   좋아요 0 | URL
메피님. -_-+

Forgettable. 2009-12-15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루비아 꿀빨아먹고 싶네요.

뷰리풀말미잘 2009-12-15 16:1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그래서 루리가 사루비아에 그렇게 집착했던 것이군요!

다락방 2009-12-15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 받는 말 잘하고 인상 좋은 언니는 정말로 섭섭해했을 것 같다...이런 나쁜 미잘님!! 떠나기 얼마전쯤에 미리 말씀좀 해주시지....

뷰리풀말미잘 2009-12-15 16:55   좋아요 0 | URL
그냥 아무 말도 없었으면 자연스럽게 잊혀졌을건데 그랬어요. 입이 방정이에요 입이.

토끼 2011-10-29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해용

말미잘 2011-11-04 03:1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뭐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