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이 대단한 글쟁이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에세이와 소설을 넘나들며 펼치는 그의 필력에 대한 입소문은 워낙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싸움닭' 진중권도 고종석에 대한 평가만큼은 후했다. '시칠리아의 암소'에서 였던가? "현대적 기준에 따라 ‘진정한 자유주의자’라 부를 수 있는 건 고종석씨뿐이다." 인터넷을 서핑하다 가끔 마주치는 고종석의 칼럼들은 그러한 세간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 책 '고종석의 여자들'은 내가 처음 만난 그의 책이다. 기대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며 세간의 평판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내 감상은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이것이 그 고종석의 글이 맞는가. 혹시 나의 읽기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원래 좋은 글이란 이렇게 난삽하고 정신없는 것인가. 이인화의 첫 소설에 대한 누군가의 평론으로 기억한다. '1급의 평론가라고 1급의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다.' 고종석이 1급의 글쟁이라고 해서 늘 1급의 글을 쓰는 건 아닌 모양이다. 하긴 어떤 소설가가 매번 이상문학상을 타겠는가. 알라딘 최고 글쟁이인 아치도 매번 10개 이상의 추천을 받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기복이 있다. 아마 이 책 '여자들'은 고종석의 슬럼프가 아닐까? 책이 산만해질수 밖에 없었던 건 구성의 잘못이 크다고 본다. 책은 저자가 관심있는 서른 네명의 여자들을 다루는데. 각각의 인물이 하나의 챕터의 주제가 되는 식이다. 그러니 불과 300페이지도 안 되는 전체 장 수에서 각 인물에 할애된 분량은 사진 빼고 그림빼면 네장 남짓. 에이포 용지로 두장이나 될까 말까한 길이다.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더라도 그 짧은 글에 한 인물의 특징을 우그러뜨려 넣는건 빠듯한 일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매번 호흡을 깔딱거린다. 그래서 그의 격조있는 문장과 세련된 어휘는 흐릿한 주제의 언저리를 더듬거릴 뿐이다. 각각의 글들은 유기적으로 연관되지 못하고, 수준있는 담론을 담아내지 못한다. 서두에서 거창하게 말 한 역사 앞의 여성의 종속성이나 부차성에 대해서 접근하지도 못한다. 그는 그의 "이런저런 생각들이 독자들의 흥미를 끌었으면" 또 "생각의 깊이를 얻"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흥미도, 깊이도 얻지 못했다. 다만 얻은 것은 똑똑한 남자의 13000원 짜리 한담. 이 남자, 실컷 벗겨 놓고 침만 잔뜩 묻혀놓은 꼴. 뒷 감당 어떻게 하시려고. 그녀들, 뿔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