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리와 의기투합하여 의형제를 맺기로 했다. 


..물론 형은 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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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5-04-26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인가요 누난가요?

뷰리풀말미잘 2015-04-27 08:47   좋아요 0 | URL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Mephistopheles 2015-04-27 18:57   좋아요 0 | URL
엥...?

뷰리풀말미잘 2015-04-27 20:16   좋아요 0 | URL
그래서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세뇨리따 2015-04-28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외일건 없어요. 관우도 유비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그릇을 보고 기꺼히 형이라 불렀죠. 말미잘님의 글의 행적을 따라서, ˝루리˝의 성별을 유추하자면 상남자쯤이에요. 밥샵 옆에선 사진은 귀엽지만, 그 옆에서면 안귀여운게 탈인간의 기준이니 논외죠.

호탕한 형님 하나쯤 둬서 나쁠게 없죠. 코에이가 정의한 의형제의 기준에 의거하면
아직 두자리가 남았을테니, 저는 셋째 쯤.. 괜찮을까요?

저처럼 막내자리에 미련이 있으시다면 공동 둘째정도로 타협해 드릴 여지는 있어요.

2015-05-03 02:4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댓글 쓰려고 컴퓨터를 몇번 재부팅 했는지 모를실거에요. 맛이 가 버려서. 그나마 코어가 I7이니 망정이지 부팅 한번 하는데 오분 씩 걸리는 옛날 아수스 노트북 같으면 그냥 부숴버리고 텔레파시로 대체했을겁니다. 믿으시나요, 텔레파시. 전 믿는 편입니다. 텔레파시는 외계인이나 프리메이슨 같은 거랑은 다르죠. 암요. 아, 왜 스마트폰으로 댓글 달 생각을 못했냐고요? 저는 모바일 세계에서는 아주 과묵한 편.. 이라기 보다는 엄지가 네모인지. 하도 오타가 나서 도저히 뭘 쓸 수가 없거든요. 요즘 양반들은 손가락에 모터들을 다셨는지. 뭐 아무튼 그렇습니다.

도원결의 하실래요? 좋습니다. 피 막 섞어서 청룡언월도로 막 휘휘 저어 마셔요. 그 왜 오렌지 쥬스랑 뭐랑 섞어서 드라이버로 저어 마시는 칵테일 있죠? 그것처럼. 히히. 하지만 전 한잔만 마실래요. 일단 술이 익덕이나 운장급이 아니에요. 소박한 주량입니다. 아, 그리고.. 음.. 싸움 잘 하세요? 제가 동생이 된 걸로 봐서 저희 의형제 순서는 아마 주먹 순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루리보다 동생이 될 일이 그것 말고는 많지는 않거든요..

딱히 막내자리에 욕심이 있는건 아닌데 그렇다고 첫째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음.. 저는 사실 평화주의자이고, 인류애에 근거해서 모두가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요. 하지만 루리를 포함해서 저보다 쎈 사람들은 그런 세상을 원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긴 합니다.

그건 그렇고, 왜 유비, 관우, 장비는 넷째를 맞지 않았을까 잠깐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전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이죠. 셋이라는 숫자는 사실 아주 안정적에요. 대체로 모든 지지대는 다리가 세개입니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기본 구도는 삼각구도죠. 셋이 넷이 되려면 훨씬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스토리가 필요하니깐요. 성부-성자-성령, 성춘향-이몽룡-변학도, 캔디-안소니-테리우스. 뭐 하나 더 추가되면 이상하죠. 넷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매우 드문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성춘향-이몽룡-변학도-향단이 이건 좀 아니잖아요. 심지어 좀 불순하고 낮뜨거운 막장으로 전개될 여지가 보이기도 하는군요. 흠. 향단이라.

이 빈약한 근거로 북도 치고 장구도 쳐 볼까요? 자, 왜 그들은 넷이 아닌가. 중요도도 높고 한솥밥도 오래 먹은 조운이나 공명을 끼워서 넷을 만들수도 있었을 텐데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넷부터는 형제가 아니게 되는 겁니다. 그건 조직에 가깝죠. 왤까요? 아무 목적 없이 넷을 뭉치게 만드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이 생긴다면 넷도 가능하지요. 목적을 가진 형제라. 그건 이상하잖아요. 목적을 가진 인간이 넷이나 모이기 시작하면 이상한게 막 생기지 않던가요. 위계나 강령같은 것들. 어떤 한심한 동아리 나부랭이도 강령이나 못해도 규정 몇 줄 정도는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전 넷 이상 모이면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나봐요. 그게 뭔 모임이든, 조직이든, 심지어 국가든. 조직 자체가 싫다기보다 결국 무리를 지으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하이어라키가, 얼비치는 권력의 실루엣이 짜증이 나는 겁니다. 막 두드리다가 생각나는건데 우리가 늘상 써대는 오빠, 언니, 형, 누나 이런 말들도 혈연-조직의 하이어라키를 나타내는 표현 아닌가요? 일단은 친근감의 표현이겠지만 예컨대, `언니, 여기 반찬좀 더 주세요` 이런 표현의 기저에는 `니가 언니고 나는 동생이니깐 네 사회적 서열을 훼손할 생각이 없어. 비록 내가 널 부려먹고는 있지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안심하고 반찬이나 더 갖고와. 이년아.` 이런 심리적 층위가 있는거잖아요.

그래서 어린 시절의 제가 주변의 닝겐들에게 나이건 뭐건 상관없이 저를 그냥 이름으로 부를 것을 강권했던 모양이군요. 사회에서 다만 단독자로 받아들여지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이름의 어감을 사랑하지만, 이름조차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라 온전히 제 것은 아닙니다. 세뇨리따님은 제 아바타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뷰리풀말미잘, 그/그녀에게는 성별도, 직업도, 가문도 없습니다. 제가 만든 것이고 그래서 더 오롯한 저니깐요.

이제 졸려요. 하루만에 목포까지 다녀왔거든요. 밥 한그릇 먹으러. 이 장황한 댓글은 그 피곤의 여파일 겁니다. 저는 대체로 두개의 댓글을 쓰고, 긴 녀석을 버리죠. 오늘은 짧은 걸 쓸 기력이 안 됩니다. 제가 주절거린 말은 잊어주세요. 잠투정이었으니깐.

4444번 택시를 발견하시면 타고 잠실로 오세요. 운명으로 받아드리고 결혼을.. 아니, 코에이 스타일로 술잔에 피를 섞어서 장팔사모로 휘휘 젓어 홀짝거리며(술 약하다니까요) 형제의 의를 논합시다. 첫째는 주먹으로 정했고, 셋째는 뭘로 정할까요. 섹시함으로 승부하는 게 어떨까 싶네요. 제가 자신 있는게 그거 하나 뿐이라서.

세뇨리따 2015-05-06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휴대폰으로 글 쓰는게 참 싫어요.
100 바이트를 넘어가면 손에 쥐가 나기 시작하다가, 기어이 스스로 빡쳐서 바닥에 쳐 박히는 것은 제 휴대폰들의 통과의례거든요.. 그래서 늘상 액정이 남아나질 않나봐요. 큼지막하고 강인해보이는 균열 한두개는 있어야 비로소 내 폰이구나 싶죠. 혹자는 제가 촌스러운 체질이라 신문물과 안맞는다고 하지만.. 하, 웃기지 말라죠. 터치감은 애플이 잘만든다지만 충분히 크지 않고, 타사 제품들은 영.. 그들이 개선할 필요가 있는거지, 제 크고 아름다운 손은 죄가 없죠.

도원결의 한 그 형제들의 서열 기준은 `도량` 이었죠. 우리에게도 적용한다면, 저는 반드시 막내가 되겠네요. 저는 좋지만, 조금 진부하다 하시면 당초 우리의 연줄이 돼버린 필력 은 어떨까요? 음, 이건 너무 노골이었네요 ㅋㅋ. ˝싸움˝ 이요? 간디 이래 최고의 평화주의자인 메이웨더도 제 평정심에 비하면 폭군입니다. 오죽 자다가도 물방울 소리에 놀라 깨는 새가슴이라, 운동은 하고 있지만 풋웍과 가드, 헤드웍 등 수비에 상당히 치중한 스타일이 돼 버렸죠. 아름다운 말미잘님 본인도 강력히 평화주의자라 자평하시고, 우리가 싸우면 팩맨vs머니의 싸움 이상의 세기의 졸전이 될 것이니, 화끈한걸 좋아하시는 루리의 심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좋은 선택은 아니겠네요. 다만 조심스럽게 추측하자면, 이것도 제가 막내일겁니다.
-행여 오해하실까 못을 박아 두자면, 저는 웨더의 엄청난 열혈팬입니다. 그리고 이번게임은 상당히 제취향이었고 아주 흥미롭게 봤죠. 그 디펜스 테크닉과 카운터는, 복싱만 놓고 보자면 제 이상형의 스킬이거든요. 하지만 그런걸 떠나서.. 전 언제나 악당의 열렬한 팬이니까요. 모든면에서 완벽한 팩맨은 영, 궁합이 안맞아요.-

하지만, 섹시함이요? 휴, 이것은 좀 곤란하네요. 전 모든면에서 자신있어도 뷰말님께는 도량과 필력 싸움 모든 면에서 패했지만, 섹시함만은 도저히 질거란 생각이 안들어요. 전 아름다운 것에 대한 추구가 강하고, 또 즐기는것을 좋아해서 뷰말님 서재를 페이보릿 해놓고, 거울을 끼고사는 남자죠.

제가 충분히 섹시하지 않았다면,
전 회의감에 소시오패스가 되고 말았을 겁니다,
`아름다운 말미잘.`
 

 #. 1

 

꿈을 꿨다.

 

나는 상단 간 무역을 보호하는 용병이었다. 어딘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라크의 티그리트나 팔루자쯤 되는 무역도시였다. 어느 날 상단의 상선이 아주 먼 곳으로부터 도착한 물건들을 받아 하역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구름처럼 먼지를 일으키며 지프차가 몇 대 다가왔다. 뭐냐,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 순간 탕! 하고 저 편으로부터 총알이 날아왔다. IS인지 뭔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우선 대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황급히 소총을 들고 저 편을 조준하는 찰나, 두두두두 소리가 들리며 등 뒤의 석조계단에서 돌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헉, 이건 5.56mm가 아니다. 최소한 7.62mm. 기관총이다.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 순식간에 수많은 상인과 민간인들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나는 대응을 포기하고 계단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기관총을 상대로 고작 머리를 가리다니. 스스로를 힐난했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때였다. 별안간 내 옆의 청년이 흐느꼈다. 그가 동료였는지, 상단의 선원이었는지,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곁눈질로 본 외모만은 또렷하다. 장발에 굽슬굽슬 탐스런 머리칼. 야, 임마 지금 울 때가 아니잖아. 고개라도 숙이라고. 난 한심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쟤가 무서워서 정신이 나갔나?

 

다시 총알세례가 주변을 훑고 지나갔고 난 더 납작 엎드렸다. 그 와중에도 그의 울음소리는 똑똑히 들려왔다. 가만, 그런데 그 소리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공포가 아니라 비탄의 농도가 아주 높았던 것이다. 북 밭치는 슬픔을 게워내는 그런 종류의 울음이었다. 뭐지?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봤다.

 

Jesus.

 

그는, 예수였다.

 

별 거룩한 개꿈을 다 꿨네.

 

 

#. 2

 

생각해보면, 예수는 종종 울었다.

 

나사로의 죽음을 대하여 울었고, 사랑을 주었으나 그 사랑이 외면당할 때 울었고, 인간으로서 삶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해서 울었다.

 

그는 내 꿈에서 또 울고 있었다. 하긴, 내 무의식의 세계에는 사랑이 없었고, 오로지 죽음과 위기만 가득했던 것이다.

 

예수의 최대 아이러니는 영원한 생명(비유든 상징이든 믿음이든 간에)을 소유했음에도 이 유한하고 볼품없는 삶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다는 것에 있다. 그는 신성을 가졌으나, 인간으로서의 구차한 삶을 끝내 버리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이었다.

 

사람다운 예수의 모습은 예수 사후에 근접한 문서일수록 더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반면 사후 오랜 시기 후에 형성된 문서일수록 가필되고 채색된 느낌이 강하다. 사후 90~100년에 편찬된 요한복음은 그야말로 요란하다. 태초에, 로고스에, 빛과 어둠까지 등장한다. 영지주의자들의 사상으로 편집된 예수의 모습이다. 예수 사후 60여년 경 작성된 누가복음은 로마 코스모폴리탄의 관점으로 쓰였다. 누가복음보다 20년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마태복음은 유대교의 지평에서, 거기서 또 20년쯤 더 이전으로 소급하는 마가복음에는 갈릴리 지평에서 예수를 조망한다. 요한복음에서 마가복음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드러나는 것은, 투박하지만 진솔한 예수의 모습이다.

 

마가복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예수 사후 40여년경 성립된 경전이다. 정보화 시대에 사는 우리도 한 세대 전의 일에 깜깜한데 그 시절은 오죽했을까. 그래서 학자들은 예수의 모습에 가까운 더 선대의 자료를 찾아 헤맸고 '마태'와 '누가'에 포함된 '마가자료'를 소거하고 남은 공통된 예수의 어록에 주목했다. 아마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편집자들이 참고한 예수의 어록 자료가 있지 않을까? 성서문헌학자들은 이 것을 Q자료라고 불렀다. (‘Q’는 Quelle, ‘자료’라는 말이다.)

 

그러다 지난 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다. 퇴비 찾던 농부가 발견한 이 꾸러미에는 ‘도마복음’이 포함되어 있었고 도마복음은 학자들이 추정했던 Q문서의 35%를 포함하고 있었다. 다소 이견이 있으나 도마복음의 성립연대는 마가복음의 성립연대인 예수 사후 40여년보다 10~2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전승이 아니라 진짜 예수를 만난 자가, 예수의 입에서 나온 진짜 얘기를 실제로 적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문서가 나타난 것이다.

 

도마복음의 예수는 말한다. “너희가 살아있을 동안에 살아있는 자를 주의 깊게 보라. 죽어서는 아무리 살아있는 자를 보려고 하여도 그를 볼 수 없을 터이니.” 소박한 그의 이야기에는 허망한 과거도 허황된 미래도 없다. ‘지금’, ‘여기’, ‘우리’가 있을 뿐이다. 이 ‘현실의 지평’에서 쓰인 몇 장의 문서는 철학적 거대담론도 가필된 종교적 독선도 침묵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너희가 빛 속에 거하게 되었을 때, 과연 너희는 무엇을 할 것이냐.” 담담하게 ‘구원’ 그 이후를 질문하는 사람의 아들에게 오늘날 교회는 어떤 역량으로 무엇을 대답할 수 있는가.

 

도마복음과 Q문서의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는 기적을 만들어 내는 마법사도 아니고, 신화적 영웅도 아니다. 갓 잡은 생선 살처럼 날 것 같은 얘기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싱싱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평온해지는 마음을 천국이라고 생각한다. 기성 교회의 기준에선 이단 심판 감이겠지만.

 

그러고 보면 빌어먹을, 이천년이 넘도록 인류는 예수를 착취하고만 있지 않은가. 권력투쟁으로 간추려 모은 성서 꾸러미들을 전가의 보도처럼 들이밀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해석을 강요해 왔다. 그들의 예수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이고, 영생의 아이콘이다. 혹은 문화적 우월감의 상징이며, 또 돈벌이의 수단이다. 그의 이름을 간판처럼 걸고 국경을 나누고, 교파를 나누고, 심지어 인종을 나눠 싸웠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다.

 

예수가 티그리트로 돌아왔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IS무리들의 학살 장면을 목도한다면,

 

물론, 울겠지.

 

 

#. 3

 

어제, 노인과 저녁을 먹으면서 꿈 얘기를 했다.

 

“글쎄 그 남자가 예수였지 뭐야?”

 

노인은 조금 심드렁했다.

 

“그랬구나.”

 

삶은 계란 세 개가 식탁에 올라왔길래 물었다.

 

“근데 웬 삶은 계란이야?”

 

약간 한숨 섞인 목소리.

 

“부활절이잖아.”

 

.. 오.

 

 

#. 4

 

오래, 그를 떠나 있었다.

 

앞으로도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다.
 

도마복음의 그는 말한다.  

 

방랑하는 자들이 되어라 (Juses said, "Be passersby")

 

이것이 나의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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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4-07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그를 떠나 있었다.
크- 시 같아요.

뷰리풀말미잘 2015-04-07 07:38   좋아요 0 | URL
락방님 앞에서 제가 시를 논한다면 문둥이 앞에서 고름짜는 격이겠죠.

아무개 2015-04-07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교인은 별로입니다만
신앙인은 참 멋찝니다!!

뷰리풀말미잘 2015-04-07 10:18   좋아요 0 | URL
아멘. : )

무해한모리군 2015-04-07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랑하는 자들이 되어라 아멘

뷰리풀말미잘 2015-04-08 22:37   좋아요 0 | URL
어떻게 변했을까. 뵌지 오래됐네요. 휘모리님은 아직 방랑자의 마음으로 살고 계시나요? 저는 점점 더 머물러 있기가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5-04-20 10:32   좋아요 0 | URL
늙었죠 뭐... 우리 약속 잡읍시다.. 정말정말 도망가고 싶은 나날이네요.

뷰리풀말미잘 2015-04-21 07:56   좋아요 0 | URL
좋아요!

2015-04-22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액트 오브 킬링
안와르 콩고 외 감독, 하지 아니프 외 출연 / 하은미디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 1

 

 

하이데거와 나의 견해가 일치하는 드문 부분. ‘한나 아렌트’. 담배피우는 모습이 섹시한 그녀는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다. 2차 세계대전, 나치즘의 광풍 속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한나 아렌트는 1960년 생포된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한다. 그리고 절대악이라 믿었던 자의 범상함에 충격을 받는다. 이럴 수가, 그는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노인이었고, 좋은 가장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우리의 삶과 행동에 침잠한 ‘일상의 악마성’과 마주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도 악이 될 수 있다.” 야무지기도 하지. 그녀의 결론이다.

 

여기 한 사내가 있다. ‘안와르 콩고’. 인도네시아 극우 테러단체 ‘판차실라 청년단’의 행동대장으로 천명의 공산주의자를 학살했고 중국계 상인들의 삥을 뜯었으며, 외국인 노조원들을 폭행했다. 단언컨대 영화사상 가장 화끈한 캐스팅. 그와 그의 옛 동료들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감독은 그를 만나 그들의 입장에서 당시를 재연한 영화를 찍겠다고 했다. 주먹이 날아왔을까? 천만에, 흔쾌한 승낙을 받았단다. 그들은 악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애국’을 한 것이었으므로.

 

영화는 영화를 찍는 콩고와 동료들을 다시 찍는다. 이른바, ‘메이킹 필름 다큐멘터리’다. 콩고, 험상궂은 사람 아니다. 호리호리한 체구로, 룸바 스텝을 사뿐거리는 노인이고, 영화를 평론할 정도로 지적이며, 손주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사려 깊음마저 느껴진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때로 가해자, 때론 피해자의 입장을 재연하는데 좋은 추억을 되새기듯 사뭇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다만, 그 내용이 때론 조금 극단적일 뿐. 철사로 목 졸라 죽이고, 책상 다리로 눌러 죽이고, 베어 죽이고, 빠뜨려 죽이고… 이 선혈이 낭자한 역사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천진난만하게 되풀이 된다. 그들도 알고는 있다. “사실 공산주의자들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어.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건 안 될 일이겠지.”

 

그들이 찍는 영화는 재연극이었다가 뮤지컬로 바뀌고, 리얼리즘을 닮았다가 때론 판타지가 된다. 그들이 가해자의 역할을 재연할 때 죽은 피해자들은 천국에서 말한다. “나를 살해해서 천국에 보내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의미는 때론 말보다 형식에 내재한다. 영상에 얼비치는 그들의 내면을 보라,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역할이 바뀌어 피해자를 연기할 때의 콩고의 모습이다. 고문당하는 연기가 끝나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콩고. “물 한잔 마실래요?” “아니, 마시고 싶지 않아.” 즐거움이 싹 가셔버린 그의 표정. 온 몸에 소름이 쫙 오른다. 세상에, 당신은 단 한 번도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흐르는 눈물에 당혹스러워하며 그는 묻는다. “내가 죄를 지은 건가요?” 누가 대답할 수 있으랴.

 

학살의 현장에서 진행된 마지막 인터뷰 씬에서 콩고는 헛구역질을 한다. 치미는 욕지기를 참아가며 과거의 입장을 강변하는 그의 몰골에서 처음에 없었던 어떤 당혹스러움이 묻어난다. 소설, ‘구토’에서 로캉탱이 압도적인 실존의 위기에 구토로 반응하듯, 그의 범상함도 자기 존재 자체에 깃든 어떤 부조리를 눈치 챈 것이리라. 그가 토하려 한 것은 화려한 형식으로 기만하려 했던 추악한 자신의 실존. 그러나 새까맣게 열린 콩고의 목구멍에서는 아무것도 쏟아지지 않는다. 소화된 음식이 넘어오지 않듯, 지나간 부조리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육신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와 같은 경우를 한 다스씩은 알고 있다.

 


#. 2

 

 

 

안와르 콩고와 Pancasila Youth

 

인도네시아의 판카실라 청년단은 오늘날에도 건재하다. 얼룩덜룩한 카모플라주 패턴의 군복을 입고, 집회를 열고, 소란을 벌인다. 악랄한 가해자들의 권력이 선한 피해자들을 압도하는 묵시록적 세계에서, 선한 주인공의 역할은 나쁜 놈이 맡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서북청년단’을 생각한다. 그들은 주로 북쪽의 탄압을 피해 남하한 지주들, 기독교계 인사들, 민족주의자나 일부 친일파들로 구성된 준군사조직이었다. 이 분노로 가득한 젊은이들은 이승만의 홍위병이 되어 반대파들에게 무자비한 테러를 가했다. 고은의 시 ‘오라리’를 읽어보자. 테러는 ‘백색’이었으나 그들이 지나간 거리마다 선홍빛 핏물이 잘박거렸다.


70년이 지나고, 그들을 흉내 내는 무리들이 등장했다. 정규군은 아니나 군복을 입고 무리를 짓는다. 어설픈 대오로 어깨를 맞대 걷는 그들은 얼룩덜룩한 군복을 입었다. 소란스러운 음악을 틀고, 악다구니를 쓰고, 모여 난동을 피우는데 심지어 별 제재도 받지 않는다. 철 지난 반공이념과, 어그러진 애국을 와글거리는 그들 중, 제법 머리가 굵은 녀석 하나가 나와 새까만 입을 벌리고 말 한다. “서북청년단 같은 단체는 10개가 더 나와도 괜찮다” 가만, 이 사회는 과연 어떤 자들이 승리해온 사회란 말인가.

 

태교에 안 좋을 수 있음

 

 

펼친 부분 접기 ▲


낡은 전투복까지 꿰어 입은 그 ‘청년’ 가라사대. “길게는 2년, 짧게는 6개월 만에 나는 크게 성장해서 진출하고 있다. 즉 ‘듣보잡’이라는 용어는 낡은 386세대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한 청년의 초고속 성장의 의미가 되어버렸다. 봐라, 조만간 용어의 개념이 바뀌게 될 것이다.” 헐, ‘초고속 성장’이라니 고추에 3차 성징이라도 나타났으려나. 어쨌거나 스스로를 ‘듣보잡’이라 일컬을 만큼 범상함의 아이콘이었던 그는 ‘크게 성장해’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까지 출마한단다. (최근엔 영화도 찍었다. 감독이 강의석이긴 하다.) 다만 해프닝인가. 아니면 묵시록적 사회의 전조인가. 진지하게 곱씹기엔 웃기고, 웃어넘기기엔 우리 역사가 지나온 골이 너무나 깊다.

 


#. 3


오, 듣보 범상함이여,


역사는 그대들의 심장 속에서 새카만 입을 벌리나니.


돌아보라, 반성에 게으른 범상함은 악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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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뇨리따 2015-11-24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신비하고 지루한 다큐멘터리. 이들의 폭력과 살인은 아류 느와르의 연출만큼도 세련되지 못했고, 이 영화에 대한 놀라운 찬사들에 대해 회의를 느끼던 감상은, 안와르 콩고의 목에 철사가 감길때 180 도 반전되었죠.

진짜 폭력과 살인은, 사실 그렇게 극적이지 못할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번 반복되어 가책이 사라질때 그들에게 그것은 일개 `막노동` 이었겠죠. 조르고, 자르고 ,누르고, 옮기고, 투닥거리하고의 반복..
수백번을 반복하는 살육중에, 그들은 영화속에서 발견한 미학을 추구해야 했을 정도니까요. 어쩌면 그 와중에 살인은 그의 내면에서 예술로 승화 되었던 것은 아닐까도 싶습니다만..

인간이 굶지 않기위해 싸우고, 살기위해 죽였을 때
그것은 야만스러울 지언정 잔인하지는 않았는데.. 미개하고도 순수했었는데..
사상이 생기고, 상대의 생각을 부정하고, 그것이 분쟁이 되었을 때, 잘 짜여진 이성에 지배받는 인간은 어디까지 잔혹해 질 수 있는지.. 어디까지 추악해 질 수 있는건지..
내가 그였다면, 나는 그와 달랐을지..
네, 그는 그저- 예민하고 흥이 많은 평범한 노친네 였으니까요.

왜 콩고 그 노친네가 가쁜 호흡으로 물한모금 넘기지 못했을때 연민하고, 눈물 흘릴때 저도 눈물을 훔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미련한 연기력 수준으로는 연출될 수 없는 토악질 속에서
그 평생을 다바쳐도 덜어내지 못할 `카르마`를 수십년간 모르고 살다가 한순간 그 노쇠한 어깨에 져야 했던 자의 중압감을 동정해서 였는지도요.

모순된 그들의 사회상과 뒤틀린 자부심은 희극적이었고,
안와르 콩고의 내면의 변화는 더 극단적일수 없는 비극이었죠.
우습고도 어설픈 3류 콩트에서 비극적인 휴먼 다큐멘터리까지-


그래서 그는 그 토악질을, 게워내도 게워내도 아무것도 게워지지 않는 그 업보를, 남은 평생 그의 정당한 살인처럼 반복하며 살아갈까요?
자유인이길 자처하던 그들이, 인간이 갖춰야할 최소한의 소양을 얻는 순간 `카르마` 라는 무거운 족쇠를 얻게된다니 이런 `웃픈` 역설, 아마 감독조차 생각하지 못한것은 아닐런지

뷰리풀말미잘 2015-11-25 17:42   좋아요 0 | URL
아니 이 싸라미, 리뷰를 댓글로 쓰면 어떡해요. 이 글은 내리지도 못하겠네. 이거, 정말이지 엄청난 영화 아닙니까. 엄청나요. 엄청나.

꿈 내용이 생각났어요. 세뇨리따님 나왔는데 cross dresser였음. 요즘 크로스 드레서 나오는 드라마를 봐서 그런가.. 닉네임은 세뇨리따인데 성별이 XY라서 그런가..

세뇨리따 2015-11-3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는 간신히 마초이스트에 미치지 못하죠. 마크 헌트에 버금가는 상남자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세뇨리따에 대해서 해명하자면, 스페인의 찐득한 억양으로 miss를 부르짖는 그 강렬한 염원을 담고싶었달까요. 특수문자의 사용이 가능했다면 세뇨뤼~따! 였을겁니다. 한결 남자적이어 보이죠? 정리하자면, 제 정체성에 대한게 아닙니다. 제 기호에 대한 것이죠.
 

#. 1

 

바이킹을 타기엔 겁이 많았고, 공중 자전거는 시시했다. 나는 대관람차가 좋았다. 새 이빨이 잇몸의 빈틈을 차곡차곡 메워가던 무렵이었다. 문을 닫아 세계와 분리되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현실과 유리되는 작은 통. 왕이 다 무어냐.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오크통에 웅크린 디오게네스처럼 그 안에서 나는 단독자였고, 유일자였고, 객관자였다.

 

떠오른다. 레고 같은 세상의 조각들이 나의 자궁 밑으로 무한히 유출되고, 두근두근, 하늘에 오르사 전능한 존재가 된 듯 충만감이 허파에 가득 차오른다. 행복, 내가 자주 도달하지 못했던 단어를 떠올릴 때 쯤, 꼭 그때 쯤 관람차의 궤도는 바닥으로 폐곡선을 그린다. 속도는 1cm/s만큼의 에누리도 없이 차오를 때와 동일하다. 아아, 나는 다 가졌던 고도를 다 빼앗기며 초침처럼 차근차근 떨어지는 것이다. 세상으로, 떠나온 번잡함으로.

 

다시.

 

유년시절의 관람차가 오름의 덧없음과 소유의 무상함을 가르쳐줬다면, 음모가 다 자랐을 무렵 그곳은 비밀스런 음모의 온상이었다. 4분 혹은 5분. 관람차의 운행시간은 라면 하나 끓이기에 충분한 시간. 서로의 몸 냄새가 뒤섞이는 그 작은 공간에서 나는 설익은 나의 빨간 혓바닥을 그녀의 귀에 굴려 넣는다. 하악- 그리고 입술을 조물거려 만들어낸 농밀한 언어들을 그녀의 가장 섬세한 기관으로 불어넣는다. 관람차는 날아오르고, 그녀는 달아오른다.

 

오, 관람차는 보통 놀이기구가 아닌 것이다.


 

#. 2

 

지난 가을 고베항을 걷고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난 우산이 없었고, 막차 시간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부지런히 길을 질러가는데 별안간 관람차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뭐야. 나는 고개를 들어 관람차의 회전축을 노려봤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이였다. 와따시노 운메가. 너를 쓰러뜨리지 않고서는 오사카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관람차는 고고하게 빛을 뿜어내며 자, 타라.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지쳤고, 설상가상으로 왼쪽 무릎까지 앓고 있었다. 그냥 탈까. 잠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이미 너를 떠난지 오래. 언제까지 쳇바퀴만 돌 수는 없어. 이제 네가 내 안에서 허공을 맴 돌 차례다. 너를 소유하겠어!

 

관람차는 삐걱삐걱 웃었다. 그리고는 새를 노리는 타란튤라처럼 모든 관절을 굽히고 나를 노려봤다. 음, 이 새끼. 쉽게 물러설 생각이 아니구나. 나는 쪼물락쪼물락 미니 삼각대를 설치하고, 다이얼을 돌려 셔터스피드를 맞추고, ISO를 세팅했다. 조리개 개방! 내 여기서 한 줄기 마법진으로 너를 맞으리. 자하라독시드, 자하라독시드, 자하라독시드! 마나의 폭풍이 휘몰아쳤고, 관람차는 빛을 번뜩거리며 거세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거센 풍압이 코앞까지 밀려왔다. 우리는 서로를 갖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찰-칵. 찰-칵.

 

흔들리고,

 

 

 

 

노이즈가 끼고,

 

 

 

 

색이 들뜬다.

 

비가 머리칼을 적셔갈수록, 나는 조바심이 났다.

 

구도를 잡고, ISO값을 조절하고. 셔터스피드를 30초에 맞췄다. 나로서는 가능한 최대의 셔터스피드였다. 셔터가 떨어지는 내내 초침과 초침의 거리는 아득했다. 마나가 고갈되기 시작했고, 단전에서부터 빈 기운이 올라왔다. 쿨럭, 이대로라면 주화입마에 빠지고 말아. 도와줘 현승희! 나는 그 순간 얼핏, 나의 은인이신 도혜선사의 혜안을 뵈었던 것도 같다.    

 

저편 항구에서부터 파도 소리가 몇 번 들리고. 셔츠 두께를 너머 전해지던 그의 훈훈한 체온과 , 촉촉하고 오돌도돌했던 입천장의 촉감과, 오래 망설이다 기어코 타지 못했던 브리즈번의 빅밴과 그 모든 기억들이 수레바퀴처럼 마구 회전하며 카메라의 센서에에 빛의 구체를 맺어갔다. 주문의 영창이 빨라질수록, 어디서 나타났는지, 심지어 기독교도 아닌데, 어쨌거나 오오라가 짙푸른 녹색의 광휘로 온 몸을 휘감았다. 

 

황혼보다 찬란한 자여, 내 몸에 흐르는 피보다 선명한 자여. 영겁의 회절속에 구속된 위대한 그대의 이름을 걸고 나 여기서 딱히 별 의미는 없이 맹세하노니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어리석은 알라디너들에게 나와 그대가 힘을 합쳐 위대한 사진의 힘을 보여줄 것을. 도마키사라무, 자하라독시드, 지크가이프리즈. 돈 값 좀 해라 이 쪽바리 렌즈야.

 

나는 이를 악물어 최후의 진기를 짜 냈다. 진기는 단전으로부터 시작해 중부혈과 경문혈, 견정혈, 양계혈, 천주혈을 돌고는 늘씬한 검지손가락 끝에 눈부신 빛으로 맺혔다가 셔터의 머리로 쏟아져 내렸다. 찰-칵-

 

 

 

 

 

#. 4


그러니까, 언제부터였던가.

 

관람차를 타지 않게 된 것은.

 

세계와 분리될 용기를 잃어갈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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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면 날마다 오는 그 ‘맨’이 아니다. 바로 그 ‘맨’이었던 배우, 다시 그 ‘맨’이 되길 바라는 배우, ‘리건 톰슨’의 얘기다. 톰슨은 수퍼 히어로 ‘버드맨’으로 헐리우드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으나 후속편을 고사하고 브로드웨이의 자발적 연극 제작자이자 비자발적 ‘추억의 배우’가 됐다. 그의 머릿속에는 영화판으로 돌아가 예전의 인기를 되찾고 싶다는 속물적인 생각과, 연극무대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두 가지 생각이 대립하고 있다. 전자의 생각은 ‘버드맨’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자아가 되어 그의 미련을 부추기고, 후자의 생각은 지난한 현실과 악다구니하며 싸워나간다.

 

성공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자금은 딸리고, 가까스로 섭외한 인기배우는 통제가 안 된다. 대마초를 피우며 그의 허세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의 딸도, 그의 연극에 악평예고를 한 평론가도, 심지어 자신을 팬티바람으로 거리를 활보하게 만든 악운과 그걸 SNS로 전송하는 대중들까지 아뿔싸, 사방이 적이다. 어쩌지? 연극, 영화, 현실의 무대를 넘나들지만 어딜 가도 시각적으로돈 심리적으로든 좌우가 꽉 막힌 골목 뿐. 게다가 그를 쫓는 화면은 놀랍게도 초지일관 롱테이크다.  올드보이의 ‘장도리 씬’, 그 좁은 복도에서 오달수는 얼마나 외로웠나. 이 영화는 그보다 훨씬 가혹한 외길로 리건 톰슨을 내몬다.

 

그는 쌉쌀한 현실과, 달콤한 환상 사이에서 어떤 길을 택할까? 영화는 열린 결말을 취하고 있으나, 열연(?)의 결과로 부상당해 붕대로 온 얼굴을 감은 그의 모습은 어쩐지 버드맨과 판박이다. 결국 현실을 극복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현실과 뒤섞이지도 못한 남자는 차라리 수퍼히어로를 닮고 싶어지는 법. 그렇지 않은가?

 

상 복 많은 영화가 그렇듯, 영화는 갈피갈피마다 난해한 상징으로 가득하다. 눈짓으로도 상대를 속이는 농구선수처럼 음악, 구도, 대사, 분위기 하나하나에 의미가 녹아있다. 예술과 평론, 키치와 아방가르드, 현실과 이상, 무의식과 의식의 영역까지 짧은 러닝타임에 많이도 꾹꾹 눌러 담았다. 그 흘러넘치는 의미론적 허세에 대해서도 영화는 스스로를 풍자하는 안전장치를 달아놔 평론가들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든다. 거리의 배우가 맥베스를 독백하는 바로 그 장면, “꺼져라, 꺼져라 갸냘픈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가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제 시간이 오면 무대 위에서 장한 듯 떠들어대지만 지나면 알아주는 이 없는 가련한 배우일 뿐. 그것은 백치가 떠드는 한바탕 이야기, 소란으로 가득하여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헐. 그래, 너 잘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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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11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그렇게 좋다고 해서 저도 볼 생각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5-03-11 11:09   좋아요 0 | URL
상당히 난해하고 복잡한 영화인데 락방님은 어떻게 정리하실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