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바이킹을 타기엔 겁이 많았고, 공중 자전거는 시시했다. 나는 대관람차가 좋았다. 새 이빨이 잇몸의 빈틈을 차곡차곡 메워가던 무렵이었다. 문을 닫아 세계와 분리되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현실과 유리되는 작은 통. 왕이 다 무어냐.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오크통에 웅크린 디오게네스처럼 그 안에서 나는 단독자였고, 유일자였고, 객관자였다.

 

떠오른다. 레고 같은 세상의 조각들이 나의 자궁 밑으로 무한히 유출되고, 두근두근, 하늘에 오르사 전능한 존재가 된 듯 충만감이 허파에 가득 차오른다. 행복, 내가 자주 도달하지 못했던 단어를 떠올릴 때 쯤, 꼭 그때 쯤 관람차의 궤도는 바닥으로 폐곡선을 그린다. 속도는 1cm/s만큼의 에누리도 없이 차오를 때와 동일하다. 아아, 나는 다 가졌던 고도를 다 빼앗기며 초침처럼 차근차근 떨어지는 것이다. 세상으로, 떠나온 번잡함으로.

 

다시.

 

유년시절의 관람차가 오름의 덧없음과 소유의 무상함을 가르쳐줬다면, 음모가 다 자랐을 무렵 그곳은 비밀스런 음모의 온상이었다. 4분 혹은 5분. 관람차의 운행시간은 라면 하나 끓이기에 충분한 시간. 서로의 몸 냄새가 뒤섞이는 그 작은 공간에서 나는 설익은 나의 빨간 혓바닥을 그녀의 귀에 굴려 넣는다. 하악- 그리고 입술을 조물거려 만들어낸 농밀한 언어들을 그녀의 가장 섬세한 기관으로 불어넣는다. 관람차는 날아오르고, 그녀는 달아오른다.

 

오, 관람차는 보통 놀이기구가 아닌 것이다.


 

#. 2

 

지난 가을 고베항을 걷고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난 우산이 없었고, 막차 시간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부지런히 길을 질러가는데 별안간 관람차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뭐야. 나는 고개를 들어 관람차의 회전축을 노려봤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이였다. 와따시노 운메가. 너를 쓰러뜨리지 않고서는 오사카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관람차는 고고하게 빛을 뿜어내며 자, 타라.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지쳤고, 설상가상으로 왼쪽 무릎까지 앓고 있었다. 그냥 탈까. 잠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이미 너를 떠난지 오래. 언제까지 쳇바퀴만 돌 수는 없어. 이제 네가 내 안에서 허공을 맴 돌 차례다. 너를 소유하겠어!

 

관람차는 삐걱삐걱 웃었다. 그리고는 새를 노리는 타란튤라처럼 모든 관절을 굽히고 나를 노려봤다. 음, 이 새끼. 쉽게 물러설 생각이 아니구나. 나는 쪼물락쪼물락 미니 삼각대를 설치하고, 다이얼을 돌려 셔터스피드를 맞추고, ISO를 세팅했다. 조리개 개방! 내 여기서 한 줄기 마법진으로 너를 맞으리. 자하라독시드, 자하라독시드, 자하라독시드! 마나의 폭풍이 휘몰아쳤고, 관람차는 빛을 번뜩거리며 거세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거센 풍압이 코앞까지 밀려왔다. 우리는 서로를 갖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찰-칵. 찰-칵.

 

흔들리고,

 

 

 

 

노이즈가 끼고,

 

 

 

 

색이 들뜬다.

 

비가 머리칼을 적셔갈수록, 나는 조바심이 났다.

 

구도를 잡고, ISO값을 조절하고. 셔터스피드를 30초에 맞췄다. 나로서는 가능한 최대의 셔터스피드였다. 셔터가 떨어지는 내내 초침과 초침의 거리는 아득했다. 마나가 고갈되기 시작했고, 단전에서부터 빈 기운이 올라왔다. 쿨럭, 이대로라면 주화입마에 빠지고 말아. 도와줘 현승희! 나는 그 순간 얼핏, 나의 은인이신 도혜선사의 혜안을 뵈었던 것도 같다.    

 

저편 항구에서부터 파도 소리가 몇 번 들리고. 셔츠 두께를 너머 전해지던 그의 훈훈한 체온과 , 촉촉하고 오돌도돌했던 입천장의 촉감과, 오래 망설이다 기어코 타지 못했던 브리즈번의 빅밴과 그 모든 기억들이 수레바퀴처럼 마구 회전하며 카메라의 센서에에 빛의 구체를 맺어갔다. 주문의 영창이 빨라질수록, 어디서 나타났는지, 심지어 기독교도 아닌데, 어쨌거나 오오라가 짙푸른 녹색의 광휘로 온 몸을 휘감았다. 

 

황혼보다 찬란한 자여, 내 몸에 흐르는 피보다 선명한 자여. 영겁의 회절속에 구속된 위대한 그대의 이름을 걸고 나 여기서 딱히 별 의미는 없이 맹세하노니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어리석은 알라디너들에게 나와 그대가 힘을 합쳐 위대한 사진의 힘을 보여줄 것을. 도마키사라무, 자하라독시드, 지크가이프리즈. 돈 값 좀 해라 이 쪽바리 렌즈야.

 

나는 이를 악물어 최후의 진기를 짜 냈다. 진기는 단전으로부터 시작해 중부혈과 경문혈, 견정혈, 양계혈, 천주혈을 돌고는 늘씬한 검지손가락 끝에 눈부신 빛으로 맺혔다가 셔터의 머리로 쏟아져 내렸다. 찰-칵-

 

 

 

 

 

#. 4


그러니까, 언제부터였던가.

 

관람차를 타지 않게 된 것은.

 

세계와 분리될 용기를 잃어갈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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