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면 날마다 오는 그 ‘맨’이 아니다. 바로 그 ‘맨’이었던 배우, 다시 그 ‘맨’이 되길 바라는 배우, ‘리건 톰슨’의 얘기다. 톰슨은 수퍼 히어로 ‘버드맨’으로 헐리우드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으나 후속편을 고사하고 브로드웨이의 자발적 연극 제작자이자 비자발적 ‘추억의 배우’가 됐다. 그의 머릿속에는 영화판으로 돌아가 예전의 인기를 되찾고 싶다는 속물적인 생각과, 연극무대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두 가지 생각이 대립하고 있다. 전자의 생각은 ‘버드맨’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자아가 되어 그의 미련을 부추기고, 후자의 생각은 지난한 현실과 악다구니하며 싸워나간다.

 

성공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자금은 딸리고, 가까스로 섭외한 인기배우는 통제가 안 된다. 대마초를 피우며 그의 허세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의 딸도, 그의 연극에 악평예고를 한 평론가도, 심지어 자신을 팬티바람으로 거리를 활보하게 만든 악운과 그걸 SNS로 전송하는 대중들까지 아뿔싸, 사방이 적이다. 어쩌지? 연극, 영화, 현실의 무대를 넘나들지만 어딜 가도 시각적으로돈 심리적으로든 좌우가 꽉 막힌 골목 뿐. 게다가 그를 쫓는 화면은 놀랍게도 초지일관 롱테이크다.  올드보이의 ‘장도리 씬’, 그 좁은 복도에서 오달수는 얼마나 외로웠나. 이 영화는 그보다 훨씬 가혹한 외길로 리건 톰슨을 내몬다.

 

그는 쌉쌀한 현실과, 달콤한 환상 사이에서 어떤 길을 택할까? 영화는 열린 결말을 취하고 있으나, 열연(?)의 결과로 부상당해 붕대로 온 얼굴을 감은 그의 모습은 어쩐지 버드맨과 판박이다. 결국 현실을 극복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현실과 뒤섞이지도 못한 남자는 차라리 수퍼히어로를 닮고 싶어지는 법. 그렇지 않은가?

 

상 복 많은 영화가 그렇듯, 영화는 갈피갈피마다 난해한 상징으로 가득하다. 눈짓으로도 상대를 속이는 농구선수처럼 음악, 구도, 대사, 분위기 하나하나에 의미가 녹아있다. 예술과 평론, 키치와 아방가르드, 현실과 이상, 무의식과 의식의 영역까지 짧은 러닝타임에 많이도 꾹꾹 눌러 담았다. 그 흘러넘치는 의미론적 허세에 대해서도 영화는 스스로를 풍자하는 안전장치를 달아놔 평론가들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든다. 거리의 배우가 맥베스를 독백하는 바로 그 장면, “꺼져라, 꺼져라 갸냘픈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가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제 시간이 오면 무대 위에서 장한 듯 떠들어대지만 지나면 알아주는 이 없는 가련한 배우일 뿐. 그것은 백치가 떠드는 한바탕 이야기, 소란으로 가득하여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헐. 그래, 너 잘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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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11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그렇게 좋다고 해서 저도 볼 생각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5-03-11 11:09   좋아요 0 | URL
상당히 난해하고 복잡한 영화인데 락방님은 어떻게 정리하실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