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의 수필은 좋아할 것 같다.

나 역시 그렇다.

최근작 1Q84도 그렇고... 그가 과대평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시대의 흐름에 맞추고 있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소설은 나에게 물음표이다.

하지만 그의 수필은 확실히 느낌표이다.

독특하면서도 생산적인 취미, 거침없어 보이지만 다소 소심한 성격이 있다는 것이 얼핏얼핏 드러나는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하루키는 확실히 수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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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내가 처음으로 이 수필을 읽었을 때 쓴 내용이다.

 

확실히 소설보다는 수필이 좋다고 달아놓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한 여전한 의문부호가 있다는 것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글이다.

 

참 흥미로운 일이다. 일정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내가 읽은 책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봄과 여름 사이. 밖은 무덥지만 내가 있는 안은 쌀쌀한, 그런 곳에서 나는 때로는 냉수를 마시고, 때로는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세탁기를 돌리면서, 중간중간 잠도 들었다가, 하면서 하루키를 읽었다.

 

2년 전과 지금의 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책은 1983년 수필집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와 1986년의 수필집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가 함께 엮인 책이다. 안자이 미즈마루와는 처음 작품을 함께 하게 된 작품들이라고 하는데, 직접적으로 그림과 글이 관련이 없는데도, 묘하게 맞아들어가는 부분이 있어서 재미가 있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가 소설로 옮겨지기 직전의 습작 같은 느낌이 든다면,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는 그야말로 수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필인 만년필도 그렇고, 마이 스니커 스토리도, 거울 속의 저녁노을도, 마치 한 편의 짧은 소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이제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는 수많은 하루키의 팬들이 이 수필을 인용하며 자신의 소확행을 이야기하는 글을 몇 번이나 보았다. 이것을 살짝 뒤집어, 작지만 확실한 불행을 이야기하는 글도 두 편 본 것 같다. 어쩌면 이 수필 전체의 태반이 소확행에 관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커피를 마시는 것, 존 업다이크를 읽는 것, 스니커즈를 신고 걷는 것, 재즈 음악을 듣는 것, 레스토랑에서 책을 읽는 것, 브람스를 듣고 프랑스 요리를 먹는 것, 여행하는 나라의 셰이빙 크림을 사는 것, 이미 어른이 된 상태에서 고등학생들의 등교 모습을 지켜 보는 것, 지갑 속에 누군가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것, 지도를 그리는 것, 백화점에 가는 것, 포도를 먹으며 문고판 책을 사서 읽는 것, 사람이 거의 없는, 텅텅 비다 시피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 그리고 학교를 땡땡이 치고 화창한 봄날을 즐기는 것. 그러고보니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라는 제목은 얼마나 귀엽고, 재치있고,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웃음짓게 만드는 제목인지! 아마도 소확행에는 오늘 같은 날, 잔업에 시달려 체력은 고갈되고 미세 먼지 때문에 실내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머물러야만 하는, 이런 날 하루키의 수필을 읽는 것도 분명히 포함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낀다.

 

 ·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커티삭 자신을 위한 광고
크리스마스
커피를 마시는 어떤 방법에 대하여
존 업다이크를 읽기에 가장 좋은 장소
FUN, FUN, FUN
만년필 
스파게티 공장의 비밀
마이 네임 이즈 아처
A DAY in THE LIFE
쌍둥이 마을의 쌍둥이 축제
마이 스니커 스토리
거울 속의 저녁노을
사보이에서 스톰프를

화가와 작가의 해피엔드

· 랑게르한스섬의 오후
안자이 미즈마루 끼―서문을 대신하여
1 레스토랑에서 책 읽기
2 브람스와 프랑스 요리
3 셰이빙 크림 이야기
4 여름날의 어둠
5 여고생의 지각에 대하여
6 지갑 속의 사진
7 모두 함께 지도를 그리자
8 ONE STEP DOWN
9 세면실에서의 악몽
10 시계는 어떻게 늘어가는가
11 트레이닝셔츠
12 CASH AND CARRY
13 UFO에 대한 성찰
14 고양이의 수수께끼
15 철학으로서의 온더록스
16 백화점의 사계
17 BUSY OFFICE
18 뉴스와 시보
19 소확행
20 포도
21 8월의 크리스마스
22 워크맨을 위한 레퀴엠
23 '핵겨울' 영화관
24 지하철 긴자 선의 원숭이의 저주
25 랑게르한스섬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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