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씨, 산티아고에는 왜 가셨어요? - 진짜 가수 박기영의 진짜 여행
박기영 지음 / 북노마드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가수 박기영에 크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그녀의 노래 몇 곡을 알고 있고, 시원하게 내지를 수 있는 그녀의 가창력을 매우 좋아하기는 하지만 팬이라고 할 수는 없다. 뭐 가창력 인정 받는 가수라고 해서 전부 내가 좋아해야 할 필요는 분명히 없으니까. 물론 나에게도 참 저게 가수냐 싶은 가수, 저것도 노래냐 싶은 노래가 있다. 하지만 콘서트형 가수 뿐 아니라 비주얼 위주 혹은 흔히 트렌드를 따르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 또한 똑같이 좋아한다. 또한 양쪽의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이다.  

오히려 나는 어느 한 쪽이 한 쪽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일종의 거부감이 든 적이 많다. 김태원이었던 것 같다. 모 방송에 나와서 "음악을 차별하는 것은 인종차별보다도 나쁘다"고 비틀즈의 한 멤버가 말했었다고 한다.(그 멤버 이름을 김태원은 밝혔는데 내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방송을 본 순간 저거다 싶었다. 내가 록음악을 잘 몰라도 김태원이 우리 나라 록음악에 한 획을 그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그가 질풍노도의 청춘을 다 거쳐 아저씨가 되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일방적인 타협이나 변절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음악을 하기 위한 포용력으로 느껴진다. 왜 서정주의 시처럼 소쩍새가 되어 봄에도 울고 천둥이 되어 여름에도 울다가 가을이 되어 핀 꽃 앞에 설 수 있는 것처럼. 힘든 세월을 돌고 돌고 돌아 큰 깨달음으로 돌아온 것처럼. 

나에게 적어도 음악이란 것은, 듣는 순간 위로가 되고 계속 생각나서 흥얼거릴 수 있고, 또 그때마다 새롭게 위안이 되는 것이다. 너무 어려우면, 마치 완벽하지만 한 번 읽어서는 잘 모르겠는 고전처럼 계속 곱씹어야 된다면 나에게는 좋은 음악이 아니다. 나에게는. 첫 소절 듣는 순간부터 아, 이 거다, 싶어야 한다. 그래서 나와 이런 면에서 생각이 좀 다른(혹은 다르게 들릴 수 있는) 뮤지션들의 주장에는 거부감이 먼저 든다. 그런 면에서 내가 이 책을 우연히 카페에서 보게 된 것은 다행이다. 만약 통상 내가 책을 읽을 때 저자를 알고 읽듯이 박기영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나서 이 책을 접했더라면, 아마 안 읽었을 것이다. 

쉽게 쉽게 가지 않고, 구태여 어려운 길을 택하는 그녀. 아마도 그것은 그녀의 성격 문제가 아닐 것이다. 쉽게 가는 그 순간, 그녀 자신의,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낼 수 없기에 몸부림치면서 지켜왔을 것이다. 이 또한 책을 읽고 나서야 든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그녀, 참 대단하다. 책을 통해서 한 사람의 생각을 이렇게나 확장시켜 놓다니. 

다소 성깔(이 단어 외에 다른 단어가 생각이 잘 안난다. 이 단어와 최소한 유사한, 그러나 어감은 좀 부드러운 단어를 찾고 싶었는데 생각이 도저히 안난다.)이 있어보이는, 또한 그것을 구태여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그녀라서 더 호감이 갔다. 최소한 책에 적힌 그녀의 이야기는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으니까. 중간 중간 드러나는 약한 부분에 나도 진심으로 응원을 하게 해 주었으니까. 마지막 도착지에서 흘린 눈물에 나도 순간 찡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음악인으로서의 자존심, 도도함, 자의식, 고집과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미래를 꿈꾸는 그녀를 머릿속에서 따로따로 떨어뜨리지 않게 해 주었으니까. 

나는 앞으로 그녀의 노래를 즐겨 듣게 될까.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그녀가 책을 낸다면 다시 독자가 될 가능성은 100%이다. 

P.S. 엉뚱하게도 책을 다 읽은 내 머릿속에 가장 남는 부분은 박기영과 결혼한 사촌 언니와의 대화이다. 아내로, 엄마로, 살면서 예술인으로서의 '나'를 포기하고 사는 언니가 '행복해'라고 하자 박기영은 화를 낸다. 그 다음 순간, 크게 웃으며 이어진 언니와의 대화. 나 또한 그렇게 될까. 지금은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잘 안 보여서 모르겠고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묘하게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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