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리커버 에디션)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김인순 옮김 / 필로소픽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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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시리즈를 틈틈이 읽고 있던 중 아무튼 양말 을 읽다가 거기에 등장한 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이라는 책을 소개한 부분을 읽게 되었다. 제목도 독특하고, 내용도 궁금해서 책을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서 읽는 동안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군데군데 '여우와 신포도'를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있어서 다소 민망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이런 부분을 읽다 보면 겉으로는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추구하지만 속으로는 우아하게 사치하는 것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 없기에, 어떻게든 우리는 만족하며 사는 법을 알아야 하기에, 작가의 생각이 억지라도 매도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몇 구절은 분명히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 부는 악하고 빈은 선하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드러나는 부분이 그랬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 특히 그랬다.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 비즈니스 클래스, 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비행기 맨 앞의 퍼스트 클래스에는 진하게 화장을 하고 붉게 립스틱을 바른, 머리에서 발끝까지 베르사체로 친친 감은 부인들이 앉아 있다. 그 뒤에는 비행기 단골 고객으로서 마일리지 회원권을 지닌 콤비 차림의 신사들이 자리하고서, 여승무원들을 노예처럼 부린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비즈니스 클래스로 여행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고 느낀다. 어느 정도나마 교양 있게 처신하는 사람들은 오직 이코노미 클래스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그곳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들만을 고풍적인 의미에서 '우아하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적어도 그들은 비행기 앞부분의 승객들처럼 상스럽지는 않다.(p212~213)



이런 몇가지 부분을 제외하면 그래도 재미있는 부분은 많다. 개인적으로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이라고 하면 모 연예프로에 나오는 한 연예인이 생각나는데, 한때 최고의 부와 명성이 있었던 그가 지금은 빚을 열심히 갚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치하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서도 인생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가장 대표적인 부분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연어 머리로 스테이크를 만들어 대접하는 장면이었는데, 그야말로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현실적으로 잘 응용한 예가 아닌가 싶다. 


영국 사회 형태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신분제도가 존재하지만 누구나 신분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고 또 오로지 돈에 의해 신분이 좌우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차이는 행동과 언어인데 이 두 가지는 배워 익힐 수 있다. 마거릿 대처의 젊은 시절 언동은 훗날 보수당에서 정권을 잡았을 때와 사뭇 달랐다. 이를테면 노동계급 출신이라도 누구나 성인 오락실에 가는 대신 속보 경마장을 관람하는 등의 시민적인 생활양식을 받아들여서 중산층에 합류할 수 있다. 그리고 중산층에 기반을 둔 사람들은 어느 날 상류층의 생활 방식과 언어, 행동을 받아들여서 속보 경마 대신 갤럽 경마를 관람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국인들은 지배자의 민족이다. '지배자라는 것'이 항상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의미를 내포하는 독일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헝가리인들과 영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자기 극기', 비록 상상의 세계라 할지라도 '자기 세계의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지배자이다.(p 50)


'복권 로타르'는 복권에 당첨되고 나서 불과 5년만에 세상을 하직했다. 이처럼 우리가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이 정반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것을 아주 적절하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했다. "신은 인간들을 벌하려는 경우에, 그들의 기도를 들어준다."

역설적인 소리로 들리겠지만, 여기에서 한 걸은 더 나아가 실패를 성공의 비결로 볼 수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가난한 망명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부유한 나비 채집가와 2류 서정 시인으로 인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어쩌면 본인을 위해서도 다행히 나보코프는 모든 것을 잃었다. 웅장한 승리와 처참한 실패는 종종 놀라울 정도로 가까이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상실과 실패, 심지어는 이른바 불행이라는 것도 훗날 역경을 뚫고 모습을 나타내는 승리의 참된 전제 조건을 이룬다.

듣기 좋은 말로 행복을 이야기하는 진부한 감언이설을 뒤쫓는 사람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진정한 가난은 물질적인 것의 결핍이 아니라 건강이나 아름다움, 부유함, 무엇을 좇든지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삶의 기복을 평가할 줄 알고 위기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은 경우에 따라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p 59)



책을 읽다가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 이 생각나는 부분도 있었다.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도가 지나쳐서, 베르사유의 정원에 작은 마을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농부의 아낙처럼 옷을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서, 젖소의 신선한 우유를 마시고 손수 빵을 굽고 버터와 치즈를 만들었다. 바스티유가 폭풍에 휩쓸린 날에도 세브르의 우유통과 자신의 가슴 모양을 본따 만든 우유 컵을 들고서 즐거운 표정으로 돌아다녔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컵에 '왕비의 가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 지나친 태도는, 대부분 '소박한 삶'에 대한 동경이 잠시나마 부의 저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망적인 소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런 소원을 품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p 185)


그와 반대로 상대적인 빈곤에서 벗어나 이따금 넘치는 풍요의 세계에 탐닉하는 경험은 아주 자극적일 수 있다. 다만 상반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복권 사는 사람처럼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삶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삶은 설사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불행만을 가져올 뿐이다.(p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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