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소여의 모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3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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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의 모험을 어릴 때 안 읽어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집에 있던 소년소녀문학 전집에도 있었고 초등학교 도서관에도 있었다. 동네 도서관은 물론. 그렇지만 원래 마크 트웨인이 쓴 원본이 이렇게나 두꺼운 책이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무려 408쪽이라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차례차례 읽어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한 일은 아니어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지는 책을 먼저 읽으며 목록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는데, 다시 앞으로 돌아와 차례차례 읽어나가던 중 그리스로마신화를 다룬 변신 이야기,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첫손에 꼽히는 햄릿, 카프카의 변신,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다음으로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이 있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론적에 대한 고민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체제에 대한 무거운 고민을 던져서 책을 읽는 내내 전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홀가분하고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책의 가장 사랑스러운 점은, 어릴 때는 어릴 때의 이해력의 범위에서 톰 소여의 모험을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어릴 때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 하나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지나간 시절에 묻혀 있던 감정을 하나하나 발굴해내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구나, 나도 이렇게 성장해 왔구나 하고 생각하면 뭉클해진다. 톰과 친구들은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는데, 어릴 때 읽을 때에는 그 나이에 죽음이나 사고가 와 닿지 않아서인지 그저 재미있는 모험담이었는데, 이 에피소드들을 어른이 되어서 읽을 때에는 오싹하기도 하고, 소름이 돋기도 해서, 정작 이 나이가 되어서 요즈음 책에 한참 빠져 있을 때에는 평소에 혼자 다녀도 아무렇지도 않은 길이 무섭고,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또 쉽게 보이는 점 중의 하나는 아이들의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다. 고집스럽고 우스꽝스럽고 유연하지 못하고 고리타분할지언정 이 소설 속 어른들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톰만 하더라도 부모가 없고, 헉의 아버지는 있으나마나한 사람이다. 아이들만 소풍을 보내고 믿을 만한 어른들이 따라가지 않는 부분을 보거나 살인과 관련이 있을 수 있는 목격자를 허술하게 놓쳐버리는 등 당시 사회는 현재 미국을 생각해보면 연결이 되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정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어른들은 성경을 강요하고, 약간만 돌출 행동을 보여도 이를 꺾어 놓기 위해 애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읽었던 책이 어른이 되어서는 다르게 읽히는 경험이 흥미로웠다. 아마도 이 책은 어릴 때 부모가 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자기 전 읽어주기에 참 좋은 책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허클베리 핀과 짝을 이루는 톰 소여의 모험이 사실은 먼저 나온 책인데, 전집에서는 허클베리 핀이 더 앞에 나와 있다. 아마도 문학사적으로 허클베리 핀이 좀 더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인 것 같다. 톰 소여의 모험을 쓴 후 세계관이 겹치는 허클베리 핀을 썼다면 거기에는 분명히 작가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며, 속편격인 책이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작가의 생각이 좀 더 구체화가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시간이 흐르면서 톰과 헉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마크 트웨인도 성장했을 테니까. 그 흐름을 조금이나마 알아보기 위해서 훨씬 뒤에 있는 톰 소여를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머리말
이 책에 기록한 모험담은 대부분 실제로 일어난 것들이다. 한두 가지는 내가 직접 겪은 경험이요, 나머지는 내 학교 친구들이 겪은 경험이다. 허클베리 핀은 실존 인물에서 취해 왔다. 톰 소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톰은 한 개인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세 친구의 특징을 결합하여 만든 인물이다. 말하자면 조립식 건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이상야릇한 미신들은 하나같이 이 이야기의 배격이 되는 시기, 즉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이나 사십 년 전 서부의 어린이들과 노예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던 것들이다.
나는 주로 소년 소녀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이 책을 썼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어른들한테서 외면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때 자신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이야기했는지, 그리고 때때로 어떤 이상한 짓에 몰두했는지 어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회상하도록 하는 것이 내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제1장 "톰, 요 녀석"-폴리 이모가 의무를 다할 것을 결심하다-톰이 음악을 연습하다-도전-몰래 집에 들어오다
노부인은 코 끝에 안경을 걸치고는 안경 위쪽 너머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이마 위로 안경을 추켜 올리고 안경 아래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부인이 안경을 통해 사내 녀석처럼 그렇게 작은 것을 찾는 일이란 거의, 아니 한 번도 없었다. 그녀한테 안경은 위엄을 갖추고 자부심을 과시하기 위한 것, 멋을 부리기 위한 것일 뿐 사물을 잘 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난로 뚜껑을 통해서 보더라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생각이 단순한 뭇 사람들처럼 그 여자도 자신이 음흉하고 은밀한 외교술의 재능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허황되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뻔한 술수를 자못 놀랍고 비열한 잔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2장 물리치기 힘든 유혹-전략적 행동-순진한 아이들을 놀려 먹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행동에 관한 중요한 법칙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어른이건 아이건 어떤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면, 그 물건을 손에 넣기 어렵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다. 만약 그가 이 책의 저자처럼 현명하고 훌륭한 철학자였다면, 노동이란 무엇이든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고, 놀이란 무엇이든 의무적으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 이치를 알게 되면 조화(造花)를 만들거나 물레방아를 밟아 돌리는 일은 노동인 반면, 볼링을 치거나 몽블랑 산을 등반하는 일은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리라. 영국에는 여름철이 하루 일정으로 사두마차(四頭馬車)를 몰고 30킬로미터에서 5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다니는 부유한 신사들이 있다. 그런 특권을 얻기 위해서 꽤 많은 돈이 드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만약 그 신산들이 그런 일을 하고 품삯을 받는다면 그 일은 노동이 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곧 그 일을 그만두게 될 것이다.

제3장 대장이 된 톰-승리와 보상-우울한 행복감-직무와 직무 태만
그런 뒤 폴리 이모는 애꿎게 톰을 때린 것이 양심에 걸렸다. 마음속으로는 뭔가 상냥하고 전다운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고 훈육에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잠자코 침묵을 지키며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하던 일을 계속했다. 톰은 부루퉁한 얼굴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오히려 이런 불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이모가 내심으로는 자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기분이 언짢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뻤다. 이모에게 어떤 신호도 보내지 않고, 또한 이모가 보내는 어떤 신호도 보지 못한 척하리라. 이모가 이따금씩 자기를 눈물 어린 눈길로 바라본다는 것을 알았지만 톰은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톰은 자기가 중병에 걸려 죽어 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이모가 자기한테 허리를 구부리고는 단 한마디라도 좋으니 용서한다는 말을 해 달라고 애걸하지만, 그래도 그는 벽 쪽을 향해 돌아누운 채 끝까지 용서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죽어 버릴 것이다. 아, 그러면 이모는 어떤 기분이 들까?...... 이렇게 비탄에 잠기는 것이 그에게는 몹시 쾌감을 주는 일이라서 어떤 세속적인 기쁨이나 성가신 즐거움 때문에 방해받기가 싫었다. 그런 감정과 접촉하기에는 너무나 신성한 일이었다. 그래서 얼마 뒤 오래간만에 일주일 동안 시골에 가 있던 이종사촌 누나 메리가 집에 돌아와 한껏 기분이 좋아서 춤추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오자 톰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렸다. 메리가 한쪽 문으로 노래와 밝은 햇살을 몰고 들어왔다면, 톰은 다른 쪽 문으로 구름과 어둠을 몰고 나가 버렸던 것이다......그때 갑자기 문득 제비꽃이 생각났다. 그래서 볼품없이 구겨지고 시든 꽃을 끄집어냈다. 그랬더니 가뜩이나 울적한 행복감이 훨씬 더 커졌다......이렇게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있자니 그 고통이 너무 감미로운 나머지 톰은 실오라기처럼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 장면을 마음속에 여러 번 되풀이해서 그려 보았다.

제4장 정신적 곡예-주일 학교에 가다-주일 학교의 교장 선생-'뽐내기'-유명 인사가 된 톰
“빌리, 너 노란 딱지 있니?”
“응, 있어.”
“너 그거 다른 거랑 바꿀래?”
“네가 가진 게 뭔데?”
“감초 사탕 한 토막이랑 낚시바늘 하나.”
“어디 봐.”
톰은 그 물건을 꺼내 보여 주었다. 그 물건들은 꽤 쓸 만했기 때문에 서로 물건 주인이 바뀌었다. 그러고 나서 톰은 흰 구슬 서너 개를 빨간 딱지 세 장과 바꾸고, 그밖에 시시껄렁한 물건 몇 가지를 파란 딱지 서너 장과 바꿨다. 톰은 약 십 분에서 십오 분 동안 계속 지키고 서서 다른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계속하여 온갖 색깔의 딱지를 사 모았다...... 이 파란 딱지 한 장은 성경 두 구절을 외우면 받는 상이었다. 파란 딱지 열 장은 빨간 딱지 한 장과 맞먹고 또 그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 빨간 딱지 열 장은 노란 딱지 한 장과 맞먹는데, 노란 딱지 열 장을 모으면 주일 학교 교장 선생이 그 학생에게 (물가가 싼 그 무렵에 무려 40센트나 줘야 살 수 있는) 수수하게 제본한 성경 한 권을 주었다...... 톰은 그런 상을 받기를 한 번도 갈구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가 그 상에 따르는 영광과 갈채를 오랫동안 갈망해 왔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월터스 교장 선생은 명령을 내리고 판단을 하고 이곳저곳 그럴 수 있는 곳이라면 누구에게나 지시를 내리는 등 주일 학교 교장으로서의 온갖 공적 임무를 하면서 ‘뽐내기’ 시작했다. 도서실 사서도 역시 책을 한 아름 안고서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꽤 수선을 피우며 ‘뽐내는’ 바람에 곤충의 권위자라고 할 톰을 기쁘게 했다. 젊은 여자 선생들도 ‘뽐내면서’ 얼마 전 친구한테 얻어맞은 학생들을 허리를 구부려 쓰다듬어 주고, 버릇없이 구는 사내아이들한테 예쁜 손가락을 들어 경고를 보내고, 착한 아이들의 등을 다정하게 두드렸다. 젊은 남자 선생들도 아이들을 조용히 꾸짖기도 하고, 다소 권위를 보이면서 아이들의 훈육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뽐내고’ 있었다.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선생들은 대부분 강단 옆에 있는 도서실에서 일거리를 찾았다. 또 이 일거리를 (짐짓 짜증이 나는 듯한 표정으로) 두세 번 자주 되풀이해야 했다. 계집아이들도 온갖 방법으로 ‘뽐냈고’, 사내아이들도 너무 열심히 ‘뽐내는’ 바람에 공중에는 팔매질한 종이 뭉치가 날아다녔고 아이들이 서로 씩씩거리며 맞붙어 싸우는 소리도 들렸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그 훌륭한 인물은 느긋이 버티고 앉아서 모든 신도를 향해 판사답게 엄숙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고, 또 자신의 위풍당당함이라는 따뜻한 햇볕 속에서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결국 그 신사도 뭔가 보란 듯이 ‘뽐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월터스 교장 선생을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게 하는 데 단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을 상품으로 건네주며 천재를 보라는 듯이 소개하는 기회였다.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린 바로 그 순간 톰 소여가 노란 딱지 아홉 장에다 빨간 딱지 아홉 장, 그리고 파란 딱지 열 장을 가지고 앞으로 걸어 나와 성경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청천벽력’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월터스 교장 선생은 적어도 앞으로 십 년 안에 톰이 성경을 받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지난 십 년 동안 있었던 사건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었다.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라서 이 새로운 영웅은 판사와 같은 반열에 올랐고, 주일 학교에는 이제 놀랄 일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어 버렸다. 사내아이들은 하나같이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쓰라리게 고통 받는 이들은 바로 자신들이 이 달갑지 않은 영광을 만드는 데 한몫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은 딱지를 지난 번 톰이 담장 칠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특권을 팔아서 모은 재산과 맞바꾸었던 것이다.

교장 선생은 이런 상황에서 가능한 만큼 한껏 감정을 표현하며 톰에게 상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교장 선생의 태도는 어딘지 모르게 맥이 빠져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교장 선생은 본능적으로 이번 일에는 납득할 수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감지했던 것이다.

월터스 교장 선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아이는 가장 쉬운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판사가 그 아이한테 질문을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잠자코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어서 교장 선생은 이렇게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판사님의 질문에 대답하도록 해라, 토머스. 두려워하지 말고.”
톰은 그래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꾸물대고 있었다.
“자, 그럼 나한테는 말할 수 있겠지?” 부인이 말했다. “맨 처음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 이름은.......”
“다윗과 골리앗이요!”
나머지 장면에 대해서는 차라리 막을 내려 보여 주지 않는 쪽이 인정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제5장 쓸모 있는 목사님-예배를 보며-클라이맥스
이제 재미없는 설교가 다시 계속되자 톰은 또다시 고통 속에 빠졌다. 그때 문득 주머니 속에 넣고 있던 보물이 생각나서 그것을 끄집어냈다. 아가리가 무시무시하고 큼직한 검은 딱정벌레였다...... 벌레는 상자 밖으로 나오자마자 대뜸 그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당연히 톰은 엉겁결에 손톱으로 딱정벌레를 튀겼고, 그놈은 복도로 튕겨 나가 벌렁 나자빠졌다...... 딱정벌레는 뒤집어진 채 속수무책으로 다리를 버둥거렸지만 제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가 없었다...... 설교에 별로 관심 없는 다른 사람들도 딱정벌레를 보고 구원 투수라도 만난 듯 힐끔힐끔 쳐자보았다. 그때 주인 곁을 떠난 푸들 한 마리가 묶여 있는 것에도 싫증이 나고 나른한 여름 날씨로 인해 늘어지고 심심해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슬픈 표정을 짓고는 어슬렁거리며 가까이 다가왔다......개는 뜻밖의 사냥감을 훑어보고 나서 안전한 거리에서 흥흥 냄새를 맡으며 벌레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고 나서 주둥이를 내밀어 조심스러게 낚아채려고 했지만 그만 놓치고 말았다.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시도해 보자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개는 딱정벌레를 앞발 사이에 두고 엎드려 앉아서 실험을 계속했다. 한참동안 그 짓을 하더니 마침내 싫증이 났는지 무관심하게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졸기 시작했고 조금씩 턱이 아래쪽으로 쳐지더니 그만 적을 건드리고 말았다. 그러자 적이 개를 덥석 물었다. 개가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흔들어 대자 딱정벌레는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떨어져 이번에도 벌렁 나자빠졌다. 근처에 있던 구경꾼들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몸을 흔들었다. 몇몇 사람은 부채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톰은 기뻐서 신바람이 났다. 개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고, 어쩌면 실제로도 멋쩍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슴 속으로는 분노를 느끼고 복수심에 불탔다. 그래서 딱정벌레한테 접근해 또다시 조심스럽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개는 또다시 싫증을 냈다....... 개는 크게 하품을 하고 한숨을 쉬더니 딱정벌레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그만 그 위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순간 푸들은 갑자기 큰 비명을 지르며 복도 위쪽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개는 계속해서 깽깽거리며 비명을 질러 댔다. 제단 앞쪽을 가로질러 가더니 맞은편 복도 아래쪽으로 달려 내려왔다. 또 문 앞을 가로지르더니 요란스럽게 마지막 직선 코스를 내달렸다. 달리면 달릴수록 푸들의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고, 마침내 광속(光速)으로 궤도를 돌고 있는 양털 혜성 같은 모습이 되었다. 한바탕 정신없이 뛰던 개는 마침내 궤도에서 벗어나 주인의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주인은 푸들을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고통 속에 깨갱거리는 비명이 곧 조금씩 줄어들더니 마침내 멀리 사라져 버렸다.
이때쯤 해서 교회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느라 마치 질식할 것처럼 얼굴이 빨개졌고, 설교는 완전히 중단되었다. 설교가 곧 다시 시작되기는 했지만 어색하고 중간 중간 끊기는 바람에 감명을 주는 설교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심지어 엄숙한 구절이 나와도 마치 가련한 목사가 익살스러운 농담이라도 한 듯 사람들은 의자 뒤로 얼굴을 숨기고 불경스러운 웃음으로 답할 뿐이었다. 이런 시련이 끝나고 축도를 올리자 회중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6장 자기 성찰-이를 뽑다-자정의 마술-마녀와 마귀-조심스러운 접근-행복한 시간
월요일 아침이 되자 톰 소여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또다시 일주일 동안 학교에 가야 하는 기나긴 고통이 시작되기 때문에 월요일 아침이면 언제나 그랬다. 그래서 톰은 차라리 주말과 주초 사이에 휴일이 처음부터 없는 편이 낫겠다고 불평하면서 월요일 하루를 시작했다. 휴일을 재미있게 보낸 뒤에 또다시 학교생활의 포로가 되어 족쇄를 차는 것이 더욱더 지긋지긋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톰은 생각에 잠긴 채 자리에 누워 있었다. 문득 몸이 아프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아프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막연하지만 한 가닥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톰은 여기저기 몸을 만져 보았다. 아무 데도 아픈 곳이 없었지만 다시 한번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배가 아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꽤 기대를 하며 복통을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증상은 약해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제7장 협정을 체계하다-조숙한 실습-실수를 저지르다
나른한 날 중에서도 가장 나른한 날이었다. 스물다섯 명의 학생이 졸린 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윙윙거리는 벌들의 주문(呪文)처럼 영혼을 가라앉혔다. 저 멀리 불타는 듯 햇살에 빛나고 있는 카디프힐이 베일처럼 아른거리는 열기 사이로 부드러운 초록색 모습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보랏빛으로 불들면서 말이다. 새 몇 마리가 나른한 날갯짓으로 공중 높이 날아올랐다. 암소 몇 마리를 빼놓고 나면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물론 암소들마저도 잠을 자고 있었다.

제8장 톰, 진로를 결정하다-옛 장면들을 재현하다
얼마 후 다시 로빈 후드가 된 톰은 배반한 수녀한테 속아 넘어가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상처에서 흐르는 피로 힘을 잃고 기진맥진하여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조가 무법자 전체를 대표하여 눈물에 젖은 슬픈 모습으로 톰을 끌어내어 힘없는 그의 손에 활을 들려 주었다. 톰은 “이 화살이 떨어지는 곳, 녹음이 우거진 곳에 이 가련한 로빈 후드를 묻어 주오.”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활을 쏘고 그대로 쓰러져 죽어야 했다. 그러나 쓰러진 곳이 마침 쐐기풀 위였기 때문에 시체치고는 너무 가볍게 튀어 일어나고 말았다.

제9장 음울한 상황-심각한 문제가 소개되다-인전 조가 설명하다
얼마 동안 삽에 담긴 흙과 자갈을 내던질 때 들리는 신경 거슬리게 하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몹시 단조로운 소리였다. 마침내 삽이 나무 관에 닿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고, 일이 분이 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관을 들어 땅 위에 올려놓았다. 그들은 삽으로 관 뚜껑을 뜯더니 시체를 꺼내어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쳤다. 구름 사이로 달이 나타나자 생기 없이 창백한 얼굴이 드러나 보였다.

제10장 엄숙한 맹세-공포가 후회를 낳다-정신적 형벌
아침 식사가 끝나자 이모가 톰을 옆으로 불러 앉혔다. 톰은 이제 이모한테 매를 맞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런대로 마음이 후련해졌지만 막상 이모는 그를 때리지 않았다. 이모는 톰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어쩌면 그렇게 늙은 이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러고는 마침내 앞으로 계속 멋대로 행동하여 신세를 망쳐서,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센 이모를 슬픔과 함께 무덤으로 보내라고 했다. 이제는 이모가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모의 이 말이 톰에게는 매를 1000번 맞는 것보다도 더 아팠다. 몸보다도 마음이 더 아팠던 것이다. 톰은 크게 소리 내어 울면서 용서해 달라고 빌었고 앞으로 개과천선하겠다고 거듭거듭 약속했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이모한테서 풀려났지만 톰은 완전히 용서받은 것 같지 않았으며, 또한 이모 역시 자기의 약속을 별로 믿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톰은 이모한테서 물러났지만 너무나 비참한 생각이 들어 시드에게 보복하고 싶은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팔꿈치에 뭔가 딱딱한 것이 느껴졌다. 한참 뒤에 톰은 슬픈 표정으로 천천히 자세를 고쳐 앉고는 한숨을 쉬며 그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종이에 싸여 있었다. 톰은 종이를 펼쳐 보았다. 긴 한숨이 나오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바로 그 놋쇠 손잡이가 아니던가!
마지막 깃털 하나가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듯 지금까지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던 톰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제11장 머프 포터가 나타나다-톰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
톰은 놀란 가슴이 진정되자 사람들의 행렬에 끼어들었다. 다른 곳으로 가 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두렵고 불가사의한 어떤 힘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묘지로 향한 것이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그 무시무시한 장소에 도착한 톰은 조그마한 몸으로 군중 사이를 비집고 나가 그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 어젯밤 자신이 이곳에 있었던 일이 까마득히 먼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제12장 톰이 관용을 베풀다-폴리이모의 마음이 약해지다
이모는 원래 특허 받은 약품이나 새로 유행하는 건강법이나 치료법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했다. 이런 것들에 대해 모조리 실험을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또 온갖 ‘건강’ 잡지를 구독했을 뿐더러 사기성 짙은 골상학에도 돈을 썼다. 그런 잡지들을 가득 채운 진지함을 가장한 무지함이 이모한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 잡지에 나오는 통풍, 잠자리에 드는 법,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법, 먹어야 할 음식, 마셔야 할 음료수, 운동량, 지녀야 할 마음가짐, 복장 방법 등에 관한 ‘헛소리’가 이모한테는 하나같이 소중한 복음처럼 들렸다. 이모는 이번 달의 건강 잡지에서 지난달에 추천한 내용을 모두 밥 먹듯 뒤집어엎는다는 사실을 결코 깨닫지 못했다. 그녀는 너무나 단순하고 고지식해서 이렇게 쉽사리 희생자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이모는 늘 수중에 엉터리 잡지들과 엉터리 약품을 잔뜩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모는 자신이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에게 치유의 천사요 ‘길르앗의 유향’의 화신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제13장 젊은 해적들-약속장소로 가다-캠프파이어를 하며 나누는 잡담
톰은 마침내 마음을 굳혔다. 그는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태가 되었다. 자신이 친구도 없이 버림받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자기들 떄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을 알게 되면 아마 후회할 테지. 나는 올바르게 행동하고 그들과 잘 지내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들이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은 거야. 나를 내쫓아야 속이 편하다면 그렇게 하라지...... 그래, 결국은 그들이 나를 지금의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놓은 거야. 그러니 범죄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이때쯤 톰은 메도레인 아래쪽으로 멀리 와 있었고,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멀리서 아득하게 들렸다. 앞으로 다시는 귀에 익은 저 종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왈칵 솟았다...... 차디찬 세상 밖으로 밀려났으니 이제 따르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용서해 주었다. 그러자 톰의 흐느낌이 더욱 격렬해졌다.

제14장 야영생활-신나는 기분-톰이 야영지를 몰래 떠나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자 톰은 자기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어리둥절했다. 일어나 앉아 눈을 비비고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겨우 기억이 났다. 서늘한 회색빛 새벽이었다. 숲 속에 깊이 내려앉아 있는 정적과 침묵 속에는 달콤한 평화와 안식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고, 위대한 대자연의 명상을 방해하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나뭇잎과 풀잎에는 방울방울 이슬이 구슬처럼 맺혀 있었다. 모닥불 위에는 흰 재가 엷게 한 겹 덮여 있었고, 가느다란 푸른 연기 한 줄기가 곧게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조와 헉은 아직도 단잠을 자고 있었다.
숲 속 저 멀리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지저귀자 곧 다른 새가 화답했다. 곧이어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들렸다. 서늘한 회색 아침이 점점 환해지자 차츰 소리가 잦아지면서 생명이 되살아났다. 잠을 떨치고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대자연의 경이로움이 생각에 잠긴 아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제15장 톰이 정찰하다-상황을 알게 되다-야영지로 돌아와 보고하다
이모가 가엾어서 차마 견딜 수가 없었다. 톰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단풍나무 껍질을 꺼내서 촛불 옆에 놓았다. 그런데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르자 어떻게 할까 잠시 머뭇거렸다. 좋은 해결책이 생각났는지 톰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는 얼른 그 껍질을 다시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이모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그녀의 핏기 없는 입술에 입을 맞추고 곧바로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온 뒤 문에 걸쇠를 걸었다.

제16장 즐거운 하루-톰이 비밀을 털어놓다-해적들이 교훈을 얻다-한밤중에 몰아치는 폭풍우-인디언 전쟁
매우 쓸쓸하고 적막하다는 느낌이 갑자기 톰을 엄습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자존심과 싸운 뒤 두 친구의 뒤를 쫓아가며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잠깐! 잠깐만 기다려! 할 얘기가 있어!”
아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들에게 다가간 톰은 아까부터 말할까 말까 망설였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아이들은 시무룩하게 듣고 있다가 마침내 톰이 말하려고 하는 ‘요점’을 알아듣고는 인디언처럼 환성을 지르고 “참으로 신바람 나는 일인데!” 하고 말했다. 그리고 진작 그런 얘기를 했더라면 떠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톰은 그럴듯한 구실을 댔다. 그러나 진작 얘기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그 비밀을 털어놓아 보았자 아이들을 그리 오래 붙잡아 두지는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톰은 그 비밀을 마지막 유혹 수단으로 가슴 깊이 간직해 두었던 것이다.

자정쯤 조가 잠에서 깨 아이들을 불러 일으켰다. 공기가 숨이 막힐 듯 답답한 것이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무덥고 후텁지근한 공기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모닥불을 벗 삼아 함께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꼼짝도 않고 앉아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엄숙한 정적이 계속되었다. 모닥불의 불빛 너머로는 모든 것이 온통 짙은 암흑에 휩싸여 있었다. 곧이어 불빛이 번쩍하고 번뜩이며 한순간 나무 잎사귀들을 비추더니 곧 사라졌다. 조금 있다가 또다시 번쩍했지만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강렬했다. 그러고 나서 또다시 번쩍거렸다. 숲에서는 한 줄기 바람이 희미하게 신음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들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획 하고 바람이 뺨을 스치는 것을 느끼고 ‘밤의 요정’이 지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잠시 조용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시무시한 섬광이 번쩍하고 칠흑처럼 어두운 밤을 대낮으로 바꿔 놓으며 발치에 자라고 있는 조그마한 풀잎 하나하나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또한 겁을 먹고 백지장처럼 새파랗게 질려 있는 세 아이의 얼굴도 비췄다.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가 하늘에서 굴러 내려오더니 음산한 소리를 내며 저 멀리 사라졌다. 찬바람이 한바탕 획 지나가자 나뭇잎이 우수수 소리를 냈고, 모닥불의 흰 재가 눈송이처럼 이리저리 휘날렸다. 곧이어 다시 번쩍하고 날카로운 섬광이 숲을 비추었고, 그 뒤를 따라 우당탕 하는 폭음이 세 아이의 머리 바로 위의 나뭇가지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듯했다. 그 뒤에 찾아온 짙은 암흑 속에서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 서로를 꼭 부둥켜안았다. 주먹 같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며 나뭇잎을 두들겨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드디어 전투가 끝나고 적의 군대는 위협도 불평도 수그리면서 퇴각했다. 그리하여 섬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아이들은 여전히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야영지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고마워할 일을 발견했다. 그동안 아이들의 잠자리를 지켜 주던 거대한 단풍나무가 벼락을 맞아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무서운 일이 일어났을 때 그 나무 밑에 있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제17장 행방불명된 영웅들에 대한 기억-톰이 밝힌 비밀의 요점
그러고 나서 아이들은 죽은 아이들을 맨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누구인지를 두고 서로 말다툼을 벌였다. 많은 아이들이 이 우울한 명예가 자기 것이라고 우기면서 증인들을 동원해 만들어 낸 증거를 제시했다. 결국 누가 맨 마지막으로 그 아이들을 보고 말을 나누었는지 결정이 났고, 그런 행운을 얻은 아이들이 말하자면 거룩하게 잘난 척을 하자 나머지 아이들은 그만 부러워서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별로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딱한 아이 하나가 자못 자부심을 느끼며 이렇게 기억을 더듬어 말했다.
“글쎄, 난 언젠가 한 번 톰한테 얻어맞은 적이 있다고.”
그러나 자랑삼아 한 이 말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의 말은 별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아이들은 침울한 어조로 여전히 실종된 영웅들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며 총총히 자리를 떴다.

잠시 뒤에는 삐꺽하고 교회 문이 열렸다. 손수건으로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던 목사는 고개를 쳐들자마자 그만 망부석처럼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한 사람 두 사람 목사가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급기야 그 자리에 모인 신도들이 거의 동시에 벌떡 일어나 그쪽을 쳐다보았다. 죽은 줄 알았던 세 아이가 지금 교회 복도를 따라 걸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 아이는 그동안 사용하지 않는 교회 회랑에 숨어서 자신들의 장례식 설교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폴리 이모와 메리, 그리고 하퍼네 가족은 자리에 뛰어나와 살아서 돌아온 아이들을 얼싸안고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키스를 퍼부으며 반가워했다. 한편 불쌍한 헉은 그렇게도 많은 달갑지 않은 시선을 피해 어디로 숨어야 할지 몰라 멋쩍고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망설이다가 슬금슬금 그 자리에서 빠져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톰이 그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이모, 이건 불공평해요. 누군가는 헉이 돌아온 것을 기뻐해 줘야죠.”
“암, 그렇고말고. 나도 무척 기쁘단다. 이 어미도 없는 불쌍한 것 같으니!” 그러나 폴리 이모가 아낌없이 쏟아 놓는 애정 어린 관심 때문에 헉은 아까보다 더욱 거북스러울 뿐이었다.

제18장 톰이 자신의 감정을 점검하다-놀라운 꿈-베키 새처가 빛을 잃다-톰이 질투를 느끼다-철저한 복수
톰은 이제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는 길을 갈 때에도 껑충껑충 뛰지 않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해적답게 의젓하게 으스대며 걸었다. 실제로 톰이 거리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톰은 그런 시선을 전혀 모르는 척하거나, 사람들이 하는 말도 듣지 않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톰과 조를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우러러보며 칭찬을 하자 두 영웅은 곧 눈꼴사납게 ‘우쭐’했다. 그들은 궁금해서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모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얘기를 능란하게 꾸며 댈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이야기는 영원히 끝이 날 것 같지가 않았다. 마침내 톰과 조가 담뱃대를 꺼내 유유히 연기를 내뿜자 그들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제19장 톰이 진실을 밝히다
일이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 아침 감쪽같이 온 집안 식구를 속였을 때는 아주 근사하고 기발한 농담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비겁하고 보잘것없는 짓거리처럼 보일 뿐이었다. 톰은 잠시 고개를 푹 숙였다.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 말은 진심처럼 들렸다. 노부인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뽀뽀를 해 다오, 톰! 자, 어서 학교에 가거라. 이제 그만 이모를 괴롭히고.”
톰이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이모는 옷장으로 달려가 톰이 해적 놀이를 하러 갔을 때 입었던 엉망이 된 윗도리를 꺼냈다. 그러고 나서 옷을 손에 든 채 서서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냐, 그만두자. 용기가 나지 않는군. 가련한 녀석, 또 거짓말을 한 걸 거야. 하지만 그건 행복한, 너무 행복한 거짓말이지 뭐야. 이렇게 마음에 위안이 되니 말이야. 하나님께 바라건대, 하나님께선 그 애를 용서해 주시리라 믿어. 거짓말은 거짓말이지만 착한 마음씨가 깃들어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싶지 않아. 그러니 차라리 확인하지 않겠어.”
이모는 윗도리를 치우고는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 서 있었다. 두 번이나 손을 뻗쳐 윗도리를 다시 집어 들고는 두 번이나 또다시 머뭇거렸다. 한 번 더 시도를 하더니 이번에는 이렇게 스스로를 타이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거짓말이라도 나쁜 거짓말은 아냐. 좋은 거짓말이니까. 그것 때문에 가슴 아파하진 않을 거야.”
이모는 윗도리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톰이 나무껍질에 쓴 글을 읽고 이모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애가 비록 수만 가지 죄를 지었다 해도 나는 그 애를 용서할 수 있어!”

제20장 궁지에 빠진 베키-톰이 신사처럼 행동하다
바로 그때 어떤 생각이 번개같이 톰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제가 찢었습니다!”
교실 안의 아이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 바보 같은 행동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톰은 잠시 그대로 선 채 혼란스러운 정신을 가다듬었다. 벌을 받으러 교단 앞으로 걸어 나갈 때 톰은 가엾은 베키가 놀라움과 고마움과 존경의 눈빛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자 매를 100대 맞는 것을 보상하고도 충분히 남을 것만 같았다. 자신의 행동이 멋있다는 자부심을 느낀 톰은 도빈스 선생이 때려 본 것 중에서 가장 혹독한 매를 맞으면서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꿋꿋하게 참고 견뎠다. 또한 매질 말고도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서 두 시간 동안 교실에 남아 있으라는 가혹한 명령도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톰은 벌을 다 받고 나면 교실 밖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고 있었고, 그 지겨운 시간이 무의미한 손실이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21장 젊은이들의 웅변-젊은 여성이 쓴 작문-기나긴 몽상-아이들이 복수를 하다
교실에는 다락방이 하나 있는데 그 다락방과 통하는 천장 승강구 바로 밑에 선생이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승강구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엉덩이 주위에 끈을 매단 채 아래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야옹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고양이의 머리와 턱 주위에 헝겊이 칭칭 동여매져 있었다. 고양이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면서 위쪽으로 몸을 동그랗게 오그려 발톱으로 엉덩이에 묶인 끈을 할퀴려고 했다. 아래쪽으로 내려오자 이번에는 허공에서 네 발을 허우적거렸다.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고양이는 지도 그리는 데 정신이 팔린 선생의 머리 위로 15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는 지점까지 내려왔다. 아래쪽으로, 아래쪽으로 조금 더 아래쪽으로 내려오더니 마침내 고양이는 필사적으로 선생의 가발을 낚아채어 발톱에 꼭 움켜쥐었다. 그 순간 고양이는 전리품을 꽉 껴안은 채 다락방으로 획 끌려 올라갔다. 그러자 가발이 벗겨져 버린 선생의 대머리가 어찌나 휘황찬란하게 번쩍거리며 빛을 내뿜는지! 간판집 아이가 선생의 대머리에 금빛 칠을 해 놓았던 것이다!

제22장 배반당한 톰의 신뢰-철저한 처벌을 기대하다
톰은 새로 생긴 ‘금주(禁酒) 소년단’의 화려한 허리띠가 마음에 들어 그 단체의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는 회원으로 남아 있는 한 피는 담배건 씹는 담배건 담배를 멀리하고 욕설도 삼가겠다고 서약을 했다. 이 일로 톰은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어떤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는 것은 결국 그 일을 하고 싶어 못 견디도록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사실 말이다. 톰은 곧 술을 마시고 싶고 욕을 하고 싶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임종이 임박한 듯한 치안 판사 프레이저 노인에게 희망을 걸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노인이 사망하면 장례식을 성대하게 거행할 것이다. 그래서 사흘 동안 톰은 무엇보다도 노인의 상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사망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어떤 때는 매우 희망적이어서 허리띠를 두르고는 거울 앞에 서서 예행연습까지 했다. 그러나 참으로 짓궂게도 판사의 상태는 기복이 심했다. 그러더니 마침내는 병이 차도가 있고 그러고 나서는 요양 중에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톰은 그만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사기를 당한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곧바로 ‘금주 소년단’에서 탈퇴를 했는데, 바로 그날 밤 판사는 병이 재발하여 사망하고 말았다. 톰은 그런 인물은 두 번 다시는 믿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장례식은 그야말로 성대했다. ‘금주 소년단’의 행렬이 어찌나 멋있던지 최근에 탈퇴한 톰은 질투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톰은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고, 그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시고 하고 싶은 욕도 실컷 할 수는 있었지만, 뜻밖에도 톰은 그런 것들을 조금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하고 싶다는 욕망과 흥미를 앗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제23장 머프 영감의 친구들-법정에 선 머프 포터-머프 포터가 구출되다
톰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 떠듬거렸지만 이야기에 열중하다 보니 말이 술술 쉽게 나왔다. 얼마 동안 톰의 말소리만이 들릴 뿐 법정은 그야말로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방청객들의 눈이 온통 톰에게 쏠려 있었다. 입술을 벌리고 숨을 죽인 채 톰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이야기의 매력에 끌려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가슴을 졸이는 긴장감이 절정에 이른 것은 톰이 이런 말을 했을 때였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묘비를 내리치자 머프 포터가 쓰러지고, 그 순간 인전 조가 포터의 주머니칼을 집어 들고는.......”
쨍그랑!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혼혈 인전 조가 창문을 향해 번개처럼 재빠르게 달려가더니, 제지하려는 사람들을 헤치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제24장 마을의 영웅이 된 톰-영광의 낮, 공포의 밤-인전 조의 추적
톰 소여는 또다시 빛나는 영웅이 되었다...... 심지어 마을 신문이 그의 영웅적인 행동을 대서특필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변덕스럽고 비이성적인 세상 사람들은 머프 포터를 얼마 전 맹렬히 비난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낌없이 가슴에 껴안고 호들갑을 떨었다. 세상이란 본디 그런 법이다. 그러니 굳이 그것을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톰은 머프가 날마다 고맙다고 할 때마다 고백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밤이 되면 차라리 입을 꼭 다물고 있을 것을 그랬다고 후회했다.
톰은 어떤 때는 인전 조가 절대로 붙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 어떤 때는 범인이 죽고 자기 눈으로 직접 그 시체를 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제25장 왕들과 다이아몬드에 대하여-보물을 찾아서-죽은 사람들과 유령
저 아래 달빛이 비치는 계곡 한가운데에 유령의 집이 서 있었다. 주위에 집 한 채 없는 외진 곳이었다. 울타리는 없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고, 현관 층계까지 잡초가 무성했다. 게다가 허물어진 굴뚝에, 창에는 창틀만 남았고, 지붕 한 귀퉁이도 움푹 꺼져 있었다. 두 아이는 혹시라도 파란 불빛이 창가를 획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잠깐 동안 유령의 집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때와 장송에 걸맞게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이며 유령의 집과 멀리 거리를 두기 위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고는 카디프힐 뒤쪽을 장식하고 있는 숲을 통과하여 마을로 돌아왔다.

제26장 유령이 출몰하는 집-졸린 유령들-보물 상자-운수 없는 일
“위험하다니!” ‘귀머거리에다 벙어리인’ 스페인 영감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고 아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겁쟁이 같으니라고!”
두 아이는 그만 숨이 콱 멎는 것만 같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렸다. 그 목소리는 다름 아닌 인전 조의 목소리가 아닌가! 얼마 동안 침묵이 흘렀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아이들은 조가 말한 복수의 대상이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인전 조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은 오직 톰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에 톰이 아닌 다른 사람일 수는 없을 것이다.
혼자만 위험에 빠졌다고 생각하니 톰은 우울해졌다! 동지라도 있다면 한결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제27장 의심이 풀리다-젊은 탐정들
톰은 지금껏 한꺼번에 은화 50달러 이상은 구경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같은 또래, 같은 신분의 다른 아이들처럼 ‘수백’이니 ‘수천’이니 하는 표현은 다만 말을 멋있게 하기 위한 것일 뿐이며 이 세상에는 그런 엄청난 금액의 돈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100달러나 되는 거액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한순간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숨겨 놓은 보물을 찾아 낸다는 그의 생각도 좀 더 자세히 따져 보면 10센트짜리 동전 한 움큼이거나 그저 막연하고 황홀한, 손에 넣을 수 없는 1달러 지폐 묶음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제28장 2호실에 진입하다-헉이 망을 보다
“글쎄, 위스키 유령이 출몰하는 방이었지 뭐야! 아마 ‘금주(禁酒) 여관’이라고 하는 곳에는 다 이런 유령이 출몰하는 방이 하나씩은 있는 모양이야. 안 그러니, 헉?”

제29장 소풍-혁이 인전 조의 뒤를 쫓다-'복수'-과부댁을 구하다
그러자 톰은 오늘 밤에 헉이 자기를 찾아와 신호를 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런 생각을 하자 잔뜩 부풀어 올랐던 기대감이 상당히 식어 버렸다. 그러나 톰은 여전히 더글라스 과부댁에서 보낼 즐거운 시간을 차마 포기할 수는 없었다. 왜 그런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톰은 이런 식으로 논리를 폈다. 어젯밤에도 기별이 오지 않았는데 하필 오늘 밤에 오라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확실하지도 않은 보물보다는 확실한 오늘 밤의 즐거움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 어린아이답게 톰은 마음 가는 쪽으로 갔다. 그날은 더 이상 보물 상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어서 빨리요! 다 얘기할 테니까요.”
“대체 넌 누구냐?”
“허클베리 핀이에요! 어서 빨리 들여보내 주세요!”
“그래, 정말로 허클베리 핀이로구나! 뭐, 그다지 문을 열어주고 싶은 이름은 아니지만 열어 줘라. 무슨 일인지 들어나 보자꾸나.”

제30장 존스노인이 사건에 대해 보고하다-공격받는 헉 핀-이야기가 돌다-또다른 방향-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다
“누구요?”
헉은 겁먹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들여보내 주세요! 저, 헉 핀이에요!”
“네 이름이라면 밤이건 낮이건 언제나 열어 주고말고, 얘야! 어서 들어오너라!”
떠돌이 소년의 귀로는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는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한 말이었다.

제31장 수색에 나서다-문제가 시작되다-동굴에 갇히다-칠흑같은 동굴 속-찾아냈지만 구원받지는 못하다
두 아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걷는 것뿐이었다. 그러자 얼마 동안 희망이 다시 솟아나는 기미가 보였다. 희망을 뒷받침할 만한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희망이라는 것이 나이를 먹고 실패에 익숙해져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용수철처럼 다시 일어서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제32장 톰이 탈출에 대해 이야기하다-차단된 구역에 갇힌 톰의 적
“그래, 너 말고도 너 같은 녀석들이 또 있을 테지, 톰. 그건 불을 보듯 뻔해. 하지만 우리가 조치를 취해 놓았거든. 이젠 그 동굴 속에서 길을 잃는 아이는 두 번 다시 없을 거야.”
“어째서요?”
“이 주일 전에 내가 그 동굴 출입문을 두꺼운 철판으로 덮어 버렸거든. 거기다 삼중으로 자물쇠를 채웠고. 그 열쇠는 내가 갖고 있단다.”
톰의 얼굴이 금방 백지장처럼 새파랗게 질렸다.
“왜 그러는 거냐, 얘야? 이봐, 누가 어서 빨리 가서 물 좀 가져와! 어서 빨리!”
누군가가 물을 가져와 톰의 얼굴에 끼얹었다.
“아, 이제 정신을 차리는 것 같구나.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톰?”
“아, 판사님, 그 동굴 안에 인전 조가 있다고요!”

제33장 인전 조의 운명-헉과 톰이 정보를 교환하다-동굴 탐색에 나서다-유령에 대한 방어-'정말로 아늑한 장소'-더글러스 과부댁에서 열린 파티
문을 열어젖히자 어슴푸레하고 어두컴컴한 동굴 안의 처참한 광경이 드러났다. 인전 조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유로운 바깥세상의 빛과 자유를 그리워하는 눈빛으로 문틈에 바짝 얼굴을 갖다 대고 엎드린 채 죽어 있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 가련한 인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을지 짐작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톰은 가슴이 뭉클했다. 그 사람에 대해 동정심을 느끼면서도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안도감을 느끼자 톰은 법정에서 이 흉악무도한 부랑자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뒤로 자신을 짓누르던 공포심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비로소 절실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제34장 갑자기 밝혀진 비밀-존스 노인의 기습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다
헉이 말했다. “톰, 밧줄만 있으면 우린 도망칠 수 있어. 창문에서 땅까지 그렇게 높지 않거든.”
“바보 같은 소리! 뭣 때문에 도망치겠다는 거니?”
“글쎄, 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게 익숙지 않아. 딱 질색이란 말이야. 난 내려가지 않을래, 톰.”
“야, 쓸데없는 소리 마! 아무렇지도 않아. 난 눈곱만큼도 상관 안 해.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나는 오늘 저녁 여러분을 자못 놀라게 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별로 대단한 것이 못 되었군요. 지금 이 얘기를 듣고 보니 내 얘기는 정말로 싱겁기 그지없는 것이 되고 말았소이다. 그 점을 깨끗이 인정합니다.”
사람들은 돈을 세어 보았다. 12000달러가 조금 넘는 액수였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어느 누구도 한꺼번에 그만큼 많은 현금을 본 사람이 없었다.

제35장 새로운 질서-불쌍한 헉-새로운 모험을 계획하다
톰과 헉이 뜻하지 않게 횡재를 만남으로써 초라하고 조그마한 세인트피터스버그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는 사실에 독자 여러분은 만족해할지도 모른다...... 마침내 많은 주민들의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흥분에 짓눌려 비틀거렸다. 혹시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보물을 찾기 위해 사라들은 세인트피터스버그와 인근 마을에 있는 모든 ‘유령의 집’을 찹아다니며 마루의 판자를 모두 뜯어내고 주춧돌마저 파헤치며 샅샅이 뒤졌다. 그것도 나이 어린 아이들도 아닌 어른들이 그랬던 것이다. 그중에는 꽤 점잖고 현실적인 사람들도 끼어 있었다.

더글러스 과부댁은 헉의 돈을 육 퍼센트 이자로 투자했으며, 새처 판사도 폴리 이모의 부탁을 받고 톰의 돈에도 역시 같은 이자가 붙게 했다. 이제 두 아이는 정말로 막대한 수입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각자 일 년 중 주중에는 하루에 1달러, 일요일에는 그 절반의 이자를 받게 된 것이다...... 물가가 싼 그 당시에는 일주일에 1달러 25센트면 어리아이 하나를 먹이고 재우고 공부시킬 수 있었다. 또한 그 아이를 입히고 깨끗하게 씻길 수도 있는 액수였다.

새처 판사는 톰이 앞으로 커서 훌륭한 법률가나 위대한 군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둘 중 하나를 하거나 또는 두 가지 모두를 할 수 있도록 톰이 처음에는 육군 사관 학교에 입학하고 그 다음에는 미국에서 제일가는 훌륭한 법과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할 작정이라고 했다.
헉 핀은 갑자기 부자가 되고 이제 더글러스 과부댁의 보호를 받으며 살게 되자 처음으로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그 세계에 억지로 끌려 들어가고, 그 세계 안에 내동댕이쳐졌다고나 할까. 헉이 느끼는 고통이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과북댁의 하인들은 헉을 끊임없이 깨끗하게 씻기고 옷을 말끔하게 입히며 머리에도 빗질과 솔질을 해댔다. 침대 시트도 밤마다 새로 갈아 주었는데, 그 시트에는 매정하게도 헉의 마음을 끄는 다정한 친구 같은 작은 얼룩이나 때 같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식사 때도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해야 했으며, 냅킨과 컵과 접시도 사용해야 했다. 또한 공부도 해야 했고, 일요일이면 교회에도 나가야 했다. 말도 점잖게 해야 했기 때문에 김빠져 재미없는 말들이 입속을 맴돌았다. 어느 쪽을 돌아봐도 문명이라는 빗장과 족쇄 때문에 손발을 꼼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헉은 삼 주 동안 고통스러운 생활을 용케 참고 버텨 내더니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헉이 없어진 지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일찍 톰 소여는 현명하게도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 둔 도살장 뒤꼍에 뒹굴고 있는 빈 나무통들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그중 한 통 속에서 ‘도피자’를 찾아냈다. 그는 마침 훔쳐 온 음식 찌꺼기로 막 아침을 때우고 나서 길게 누워 편안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머리는 빗질도 하지 않아 마구 헝클어졌고, 예전의 자유롭고 행복하던 시절 뭇 사람의 눈길을 끌던 낡아 빠진 넝마 조각을 그대로 걸치고 있었다. 톰은 헉을 끌어낸 뒤 그가 집을 나오는 바람에 모두들 걱정을 하고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타일렀다. 그러자 헉의 표정에서는 평온한 만족감이 사라지고 그 대신 우울한 빛이 감돌았다.

“다른 아이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어, 헉.”

“이봐, 헉.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건 너도 잘 알잖다. 그건 공평하지 못해. 그리고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너도 그런 생활을 좋아하게 될 거야.”

“그렇다면 좋아. 만약 네가 나를 산적단에 끼워 준다면, 과부댁에게 돌아가 한 달쯤 견뎌 보기로 하지. 참아 낼 수 있는지 한번 해 볼게, 톰.”

맺는말
이 연대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이것은 전적으로 한 ‘사내아이’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기서 마쳐야 한다.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면 ‘어른’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성인에 관한 소설을 쓰는 사람은 정확히 어디에서 이야기를 끝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즉 결혼을 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에 관한 소설을 쓰는 사람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끝을 내야 한다.
이 책에 등장한 인물들은 대부분 아직도 부유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언젠가 또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그들이 어떤 부류의 어른으로 성장했는지 보여 주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지금으로서는 그들의 현재 삶에 관해 아무것도 밝히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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