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장화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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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즐기지도 않는 아포가토 생각이 간절하여 오후 2시의 햇살을 등에 업고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투게더를 사가지고 들어와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떠놓고 커피를 타서 조금씩 조금씩 한 잔을 다 부어버렸다. 캬 - 그래, 이 맛이야! 라며 싱글벙글대며 냠냠 잘도 먹다가 문득, 마음 한 구석이 뜨뜻,해졌다. 이유 모를 애잔함이 스며들어와 한동안 뭉클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입 안에 따뜻한 커피와 입 속의 체온으로 인해 녹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이스크림 먹다가 주책이다 정말. 그러고보니 이 책을 읽을 당시는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줄이 끊어질 듯한 위태로운 그네를 신나게 타는 것같은, 그 정도로 들쑥날쑥 정신없는 감정 기복을 부여잡고 생활을 해왔던 9월의 마지막,이었다. 그 속에서 항상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건조하다고 생각되는, 그래서 늘상 읽은 뒤 에잇,하며 짜증내는,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눈길보다 손길이 먼저 뻗치는, 에쿠니 가오리와 다시 한번 재회했다. 화사한 파스텔톤의 예쁜 표지의 빨간 장화라는 제목으로. 그가 유선상으로 흉내내던 쿡쿡거리는 히와코와 두개의 질문 사이에서 '응'이라는 대답만 하는 쇼조는 이미 증발해 버리고 읽은 뒤엔 나의 책 속에서 꼼틀꼼틀 살아 숨쉬는 히와코와 쇼조가 서 있다.

 

 

 

히와코와 쇼조의 결혼이 어느 덧 10년차, 그러나 둘 일상생활 속의 특별함,이라던가 소소한 행복,은 처음부터 그들의 것이 아니었던 것인 듯 무미건조한 일상의 총칭이라 불려도 이상할 것 없는 그런,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이다. 당신은 여기 있는데도 마치 없는 것 같아. (p109) 듣고 있는 것인지 혹은 귀가 먹어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인 것인지 아무런 미동도 없는 쇼조에게 히와코는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지칠만도 한데 계속해서 재잘재잘 떠든다. 쇼조가 듣고 있지 않다는 걸 그제서야 알아채기라도 한 듯 어느새 그녀의 재잘거림은 그렇게 잦아든다. 그렇게 한번, 두번 쇼조에게 체념해가는 그녀를 보며 이런 것이 바로 결혼 생활이냐며, 당신네들의 연애시절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나는 발만 동동 굴러대며 떼를 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애를 했다는 것만 기억할 뿐, 어떤 식으로 사랑을 속삭였는지 - 실은 그런 일이 있었을런지도 의아스러운 - 히와코는 기억해내지 못한다. 가장 아름답게 각인되어야 할 사랑의 조각들을 잊지않게 퍼즐로라도 끼워 맞추어 주지 그랬느냐며 쇼조를 타박하지만 그는 그대로 텔레비전에 푹 빠져있을 뿐, 자신의 하나뿐인 연인 - 이라고 하기엔 이미 멀어보이지만 - 인 히와코에게도 다정한 눈길조차 주지 않는데, 알지도 못하는 여인네에게 눈길 한번 던질리 만무하다. 그의 그런 태도에 독자인 나조차도 질려버리게 만드는 힘은 쇼조만의 것이다. 아니,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지만 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히와코의 모습이 다시 어두워지는 것을 볼 때, 그러니까 희망과 체념의 연속인 삶을 사는 것 같은 히와코에게도 질려버렸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히와코는 빨간 장화 과자가 자신과 쇼조의 결혼생활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서로 어긋나는 상징처럼. (p162) 제목의 빨간 장화,는 의아하게도 과자였다. 쇼조가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오는 빨간 장화 모양의 용기 안에 든 초콜릿과 떡과자. 히와코는 쇼조에게 4년째인가 5년째에 더 이상은 그것을 사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쇼조는 고집 센 할아버지처럼 크리스마스 때마다 그것을 손에 들고 오고, 히와코는 이내 쿡쿡 웃는 것으로 체념하고 만다. 그리고는 그것을 옷장 안에 깊숙히 넣어두고는 꺼내지 않다가 처분,하려고 꺼내지만 그것이 버리면 안 되는 것이라도 되는 듯 다시 옷장 깊숙히 넣어둔다. 그것은 아마 히와코의 옷장 속에서 내년도, 내후년에도, 그 후,에도 나오지 못할 것임을 히와코도, 나도 알고 있다. 쇼짱은 나를 '세상'으로부터 지켜주려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은 듣지 않는다. 내 대답은 듣지 않으면서, 그래도 나를 향해 이야기한다. (p195) 깔깔깔, 웃음이 나온다. 히와코를 보며 이야기하는 쇼조라니, 히와코와 쇼조는,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이 구절에서 언뜻 들었다. 그래, 이런 것도 사랑이라 불릴 수 있는가, 이런 것도 부부애라 말할 수 있는가. 아직 잘 모르겠다. 그게,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결혼,이라는 것이 싫어질런지도 모르겠다. 결국 히와코와 쇼조의 관계에 대한 어떠한 결정이라는 것은 작가의 시선 선상에 제외된, 그러니까 애초에 결여됐던 것인지 그 무엇 하나 변화된 것 없이 이 책의 마지막을 향해 덧없는 책장을 넘기게 했다. 나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쇼짱에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런 사실이 유쾌하게 느껴졌다. 유쾌하고 행복한, 슬프고 홀가분한 일로. (p227) 무심해 마지않는 쇼조에게 오늘도 재잘거리고 있을 히와코가 존재하기를, 그와 그녀가 한 공간에서 무사하기를 - 나의 일이 아니라서 조금은 이기적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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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불행
케빈 A. 밀른 지음, 손정숙 옮김 / 황소자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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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깥의 날씨는 쌀쌀,하여 옷을 여미고 다닐 정도의 날씨임에 분명한데 사무실 근처에서 공사하는 드르륵 - 소리를 순간 매미 소리로 착각하여 흠칫 놀란 가슴을 민망스러움과 함께 조심스레 내려 놓는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시월이구나. 「달콤한 불행」이라는 이 책을 구월 중반에서 끝자락을 넘어가는 사이에 안고 있었던 책이었는데 슬럼프에 빠질 뻔한 나를 붙들어주기는 커녕 더욱 더 구렁텅이에 집어넣고 이리저리 휘어젓는 듯한 정신없는 상태로 참 힘들게 읽었던 기억부터 나기에 서평을 쓰기에도 겁부터 난다. 처음에 달콤한 불행이라는 반어법이 적절히, 혹은 과하게 섞여 무슨 뜻일지 짐작할 수도 없는 가운데 이 책을 집어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하지만 읽는 도중에 아직도 한참 남은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휘리릭, 장난스레 넘기며 '이걸 도대체 언제 다 읽는담 - ' 하며 한숨을 폭폭 내쉬기도 하고 내 취향이 아닌 듯한 이 책의 문장들을 읽는다는 것이 내게는 고역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쉬이 읽히기는 하나 나와 맞지 않는 책이기에 읽기 싫은 책,이라고 하면 - 사실 무엇이 그렇게 맞지 않고, 무엇이 그렇게 읽기 싫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 어떤 느낌인지 알려나 모르겠다. 그렇기에 다 읽고 나서도 곧바로 서평을 쓰지 못하고 한참을 주위에서 서성거렸고, 그럴 수록 이 책 역시 책장 으로 들어가질 못하고 미처 쓰지 못한 책들과 함께 줄세워 놓았더랬다. 그러다가 이제와서 서평을 쓰려니 이 책 뿐만이 아니라 이 책 그 후의 책들이 얽히고 설켜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야할지 종잡을 수가 없음에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져옴을 느끼지만, 이내 아직 식지 않은 기억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소피와 가렛이 있음을 깨닫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이 태어난 날에 '생일 축하해!' 라는 말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싶은데 아이러니하게 자신의 생일을 싫어하다 못해 최악이라고 여기고 있는 어쩌면 괴짜처럼 보일 수도 있는 소피라는 여자가 있다. 아홉 살 생일에 자신의 실수로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그녀, 늘 과거라는 프레임에 갇혀 자신의 삶이란 있을까 싶은 그런 그녀에게 오지 못할 것만 같은 가렛이라는 남자가 다가오지만 그녀에겐 버겁기만 하다. 하지만 진심이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던가, 그의 진심을 보게 되면서 닫혔던 마음이 조금씩 얼음이 녹 듯, 살살 녹아 아무에게도 비밀리에 묻었던 자신의 과거를 그에게 털어놓는다.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것을 받아주는 그를 보며 행복한 앞날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간다. 그러나 가렛은 그런 소피를 처절하게 배신하듯 (독자들에게까지 내비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는) 일방적으로 까닭 모를 이별통보를 하고 난 뒤 사라져버린다 (······) 그로부터 1년 후, 그녀의 생일에 그가 다시 돌아와서 자신과 한번만 만나달라고 얘길한다. 그런 그에게 소피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영속하는 행복을 100명에게서 얻겠다는 제안,을 한다.

 

 

 

책의 후반부를 읽다보면, 소피와 가렛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임을 알 수 있을진대, 그것으로 독자는 작가에게 농락당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은 순전히 소피와 가렛을 위한, 그들의 상처 치유를 위한 목적성 농락이고, 또한 그것은 기분 나쁘지 않은 아니, 도리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한가지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면 독자에게 아무런 힌트따위 없이 휙, 떠넘기듯 부담스러우리만큼 너무 갑작스러운 몇 개의 우연들이, 게다가 그로 인한 너무 뻔한 전개가 눈에 짚일 만큼 주위에 도사리고 있기에 답답한 마음을 한가득 안고 '역시 소설, 그래, 소설이니까' 라는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음을 한탄한다. 너무 많은 우연은 독자를 쉬이 질리게 할 터, 조금은 자중했으면 - 하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책을 읽는 독자에게 작가는 미스포춘 쿠키를 먹이는 것 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미스포춘 쿠키 속에 들어있는 메시지도 함께 보라며 재촉한다. 작가가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내용은 이렇다. 행복을 찾습니다. 영속하는 행복만 돼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은 안 돼요. happiness@kevinamilne.com으로 제안을 보내주세요. (한국의 독자는 les_editeurs@naver.com) 영속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한 것일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여름에 무릎을 추켜세우고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일, 햇빛이 내리쬐는 가을 오후 뽀송뽀송 말린 이불을 덮고 햇빛 냄새를 맡으며 낮잠을 자는 일, MR 혹은 오르골을 들으며 한껏 여유를 부리는 일, 계절마다 꽃이 필 적마다 구경하기 위해 잠시 나가는 외출, 술을 사이에 둔 진솔한 대화, 포기하고 있던 것에 굴러들어온 행운 같은 것, 등의 나열한 모든 것들이 내가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일들,이지만 그것이 영속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나에게는 늘 영원한 행복으로 남아있어주길. 행복이라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도 사소해서 우리 눈엔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웃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무신경하게 지금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행복이라는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과 맞닥뜨리게 한다. 고맙다, 내가 가지고 있는 행복을 상기시켜 그간 쌓인 먼지를 닦아내게 해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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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무고한 청년의 무죄 입증 방법, 이라는 주제로 현직 변호사가 쓴 소설이라네요. 다큐 형식으로 쓰인 소설이라고 대강 짐작만 하고 있는데, 과연 어떤 이야기들을 안고 있는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들도 확인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 책이에요. 

 

 

 

 

 

꾸준히 책을 써내는 조경란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책을 한번 정도는 접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편인 것 같아요 이 책은.. 그럼에도 그녀가 써내는 글의 오묘함과 신비로움에 마음껏 파고들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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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망머리앤 2010-10-04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어찌하는건지 보러왔지~~~

하늘보리 2010-10-04 14:2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언니야~ 이게 맞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어 ㅋㅋ

곰곰이v 2010-10-04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댓글따라 방문하게 되었어요.
같은 평가단으로서 저희가 공동으로 추천한 책이 선정되면 정말 좋을텐데.
앗, 두 분께서는 이미 아시는 사이인가봐요^^

하늘보리 2010-10-04 18:26   좋아요 0 | URL
그런데 왠지 빵과 장미가, 대세인 것 같은.. ^^, 위에 까망머리앤님과는 이미 인연이에요~ 깔깔깔 토순이님, 알라딘 8기를 기점으로 좋은 인연 만들어가요! ^^
 
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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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하기 바로 직전, 전공 서적과 다를 바 없는 책 한 권을 몇일 동안이나 들고, 내려놓기를 반복하여 간신히 읽어내리고 어떤 책을 고를까 시야에 확 들어오는 책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끝내는 아무런 책도 손에 집지 않은 채 잠이 들어버렸다. 후에 책이 읽고 싶어 손을 뻗었을 때는, 붉은 생채기가 확연하게 눈에 띈 채로 쓰러져있는 참새인 양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의 내가 화장실의 거울로 마주한 순간이다. 엄마를 간호하지 않는 시간에는 책을 좀 읽어야겠다, 생각하다 아무렇지 않게 소설을 집어들고 어리석음에 한숨을 내쉬며 제대로 읽을 수 있을리 만무하잖아,라며 스스로를 책망하며 내려놓았더랬다. 나에게는 당시 생채기에 연고를 발라줄 그런 책이 절실히 필요했다. 혹은, 텅 비어버린 상태에서 미친 듯이 웃을 수 있는 책이거나. 한참을 주저앉아 책장을 훑어내리다가 끌림이라는 책과 마주하고 서서 소리내어 안녕,하고 말했다. 끌림,이라는 단어가 참 예쁘다,라고 생각하며.

 

 

 

여행 에세이 중 가장 감성적인 에세이, 라고 혹자는 말하지만 나는 이병률 작가에게서 특출난 감성을 엿보지는 못했던 듯 싶다. 누구든 가지고 있는 감성을 끌어내는 능력이 있을 뿐,이라고 딱 거기까지만. 실은 잘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조차. 공황 상태에서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자체는 언제나, 늘 어려운 과제처럼 부담스럽게만 느껴진다. 끝없는 나락에 빠져 허우덕대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손을 잡고 일으켜준 고마운 친구,라고 얘기하면 끝이 난 것도 같은데, 그렇게 끝내버리기엔 아쉬운 마음이라는 녀석이 입을 삐쭉 내밀고는 삐쳐있는 모양새로 나를 아니꼽게 노려보고 있을 성 싶어 낄낄 웃으며 이 책을 읽던 그 때를 떠올리고는 책을 휙휙 다시 한번 넘겨보며, 포스트잇 플래그가 붙어있는 곳은 다시 한번 정독하며, 그렇게 -

 

 

 

책에서 풍겨지는 향은 감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연상케하기에 충분했지만, 나는 주춤하지 않고 풍덩, 그 곳에 침범했고, 작가는 제지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 곳은 그가 만들어낸 세상도, 공유하는 세상도 아닌 나의 세상이었다,라는 표현이 맞을지 실은 잘 모르겠다. 열정이란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에 들어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에 놓여있는 상태가 되고, 그걸 갖지 아니하면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낯선 도시에 떨어진 그 암담함과 다르지 않다. (#001, '열정'이라는 말) 가끔은, 있다면 자네, 거기 내 안에 꼼틀꼼틀 움직이고 있는가,아니면 쉬고 있는가, 혹은 죽었는가, 하며 끄집어내서 묻고 싶기도 하고 지금은 니가 열심히 활동해야할 차례라고, 너는 니 차례도 모르냐며 따지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는 늘 언제나 열등감을 열정으로 착각하곤 했었는데, 그 점이 항상 아쉬우면서도 아직까지도 고치지 못하는 고질병이다. 그러고보면 내가 열정을 발휘해서 이뤄낸 것이 무엇이 있나,라며 초점없는 눈을 한동안 첫 페이지에 두고선 멍,하니 앉아있었다. 참 우습다. 고작 한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라고 탓하지 마세요. 인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나는 왜 이럴까······」라고 늘, 자기 자신한테 트집을 잡는 데, 문제는 있는 거예요. (#032,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왜 이러냐며, 한탄 안해본 이 누가 있으랴. 하지만 대부분은 문제가 자신에게 있음을 다행히도 자각하고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었다. 나 역시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 어떠한 개입도 없다고 생각하고 개입할 수 있는 것은 행운과 불운 뿐이지만, 그것도 자신이 타이밍을 잘 맞춰야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투정부린다. 실재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너, 나, 미워해요?

 

 

 

헌데, 난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을 찾고자 했던 것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글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이병률 작가의 감성? 필력? 그의 긍정적(으로 보인) 마음가짐? 실은 「#013, 길」「#018, 사랑해라」「#020,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을, 아니 다시 태어나야 할」「#023, '아비'의 맘보*」「#025, 511 W22ND STREET, NEW YORK」「#026,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027, 소파에 눕다, 구르다, 끄적이다」「#031, something more」「#035, 좋은 풍경」「#039, 좋아해」「#043, 먼 훗날」「#045, 영국인 택시 드라이버」「#047, 시시한」「#056, 생일」「#061, 페루에서 쓰는 일기」「#067, 케 세라 세라」등 많은 곳에 포스트잇 플래그를 덕지덕지 붙여놓았고, 그 곳에는 무엇 하나 빠뜨릴 수 없는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던 글들이 수북히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었다. 나는 복잡복잡한 일상 속에서의 내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었을 뿐이고, 단순한 여행 에세이인줄 알았던 「끌림」이라는 이 곳에서 예상치못한 이 책을 읽으며 누구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만의 여유를 한껏 즐기며 읽은 책이었음에 분명하다. 고마워,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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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디자인에 눈을 뜨다 - 문화와 환경이 어우러진 도시디자인 산책
김철 지음 / 조이럭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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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에는 전문적 내용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저는 도시계획이나, 건축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며, 책의 의도 역시 도시디자인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보다 현장에서 보고 들었던 도시디자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도란도란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저자는 겁도 없이 과감하게 타이핑 쳐냈다. 그러나 사실 난 그가 도란도란 들려준다는 이야기는 고사(姑捨)하고 실은 사진만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진 한장마다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작가의 손가락이 닿는 곳엔 애증어린 시선이 닿아있었고,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기쁜 일이었고 그 기쁨의 두배는 그에 합당한 활자를 보는 일,이라고 여지없이 생각하고 있는 참이었다. 하지만 도시디자인,이라는 것에 나의 지식이 얕았던 탓일까,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책을 다 덮고나서도 이렇다 할 정도로 뇌리 속에 박히는 단어조차 남지 않은 채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그래서 이 책을 나와 같은 시기에 접하여 써내려간 다른 이의 서평과 그와 부합하는 별의 개수를 보노라면 그 틈새에는 여지없이 지극히 주관적인 내 불만과 불평의 개입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래.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 라며 내 별점수를 보는 순간, 내가 책을 잘못 읽었나, 라는 착각을 갖게 만들어 혼동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들과 나의 차이는 어떻게 해야 좁혀질까, 사고 방식? 책을 받아들이는 방식? 에라, 모르겠다.

 

 

 

강의 시간에 최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불현듯 떠오른다. 다른 나라에서 몇 년 걸릴 공사를 한국에선 6개월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말. 그 때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아 헤헤거리며 흘려들었지만, 그와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나로서는 '아, 정말이었어'라는 생각지도 않은 말이 나오게 된다. 지금은 몸 담고 있지 않지만, 작년 12월달부터 한달간을 한 디자인 시공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현장에 나가 실측하고 캐드 도면을 그려주고나서 심사 뒤에 ok 해버리는 식의 공사가 비일비재했고, 그 일을 하면 할 수록 졸업 작품에 허비했던 1년이라는 시간은 덧없이 느껴지기 일쑤였다. 나는 그 곳에 있는 동안 2개의 건물을 만들어냈고, 일을 관둔 한달하고도 보름만에 1개가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후엔 언니도 회사를 사직 의사를 전해서 나머지 한개의 행방은 알 길이 없다. 훗 날 그곳에 지나다들러 돌아봐야 알 수 있을터다. 번갯불에 콩 구어먹기 식의 공사는 이른바 삼풍백화점, 와우아파트, 성수대교와 같은 부실공사를 연상케한다. 아, 말이 흘렀다.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야지.

 

 

 

하물며 건물 하나에도 이렇게 신경을 써야하는 판에 도시디자인이라니? 그것도 하나같이 견줄 수도, 견주어서도 현저히 저평가되어 있는 한국에 비해 프랑스 「라데팡스」, 「마른라발레」와 「리브고슈」,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와 「라이프치히」 「유럽, 그 도시의 취향」과 마지막으로 아마 비판을 가했을 것만 같은 「한국의 도시디자인」이라는 흥미있는 타이틀로 독자를 향해 손을 내미니 그 유혹적인 곳에 끌리는 사람이라면 그의 손을 잡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고 판단된다. 나 역시 뭣 모르고 그의 손을 덥썩 잡았지만, 부푼 마음을 계속 안고 그와 함께 발 맞춰 그곳을 돌아보기엔,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엔 러닝 타임이 너무 짧았고, 도시디자인에 관한 내 지식이 얕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프랑스의 「라데팡스」는 저자가 말하기에 마천루로 된 숲 사이에서도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편하게 숨 쉴 수 있다는 점이 라데팡스의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라데팡스는 외국 관광객은 고사하고 프랑스 사람들에게까지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들은 바 있다. 그 까닭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고층건물에서 찾을 수 있는데,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고층건물이라는 폐쇄적인 의미는 사람들에게 쉽사리 닿지 못함을 저자는 간과했던 모양일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 개선문 계단에서 한가로이 오후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사진에서는 뜨악했다. 외면받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라데팡스에 사람이 찾아든 것이다. 글쎄, 가보지 않은 나는 왈가왈부 떠들어댈 순 없겠지만, 주관적인 생각으로 라데팡스는 프랑스의 도심으로 자기메김하기엔 매우 큰 부족함을 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매력적인 도시임엔 틀림이 없다, 생각한다.

 

 

 

그 후에 사실 나머지는 어떠한 감흥도 내 안에서 일어나지 않았음에 과감히 생략하고, 가장 인상깊었던, 이미 독일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 1위로 꼽히고 있는 독일의 친환경 도시「프라이부르크」사실, 저 위에 별 세개는 프라이부르크에 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밀하게 잘 표현해내주었다. 도시디자인이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 라고 어깨를 으쓱대며 독일 사람도 아닌 주제에 남모를 자부심을 표출하며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이 도시를 한껏 구경하며 이내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프라이부르크는 미래지향적인 에너지 수급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데 그 대안으로는 에너지 보존, 신기술 사용,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것 등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시도가 이루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점은 교통정책을 꼽을 수 있는데, 매연과 보행자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서민들이 교통체계에 가지는 불편함을 줄여 나가고 있다는 점과 전차의 이동에 대해서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뒤섞여 이동한다는 것과 특히 도로의 주인이 사람이라는 것을 보며 자연스레 정말 사람의,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모든 사람들이 꿈꿔온 그런 도시구나, 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게 만들었음에 실로 경이로워 눈을 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글쎄, 한국이 이 정도로 발전하려면 억만년이 걸릴까? 하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폭, 새어 나온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한국 도시디자인을 이야기하기 전에 사람을 향하는 도시디자인의 조건이라며 인본주의적 문화기반과 철학, 도시 정체성을 고려한 장기적 비전,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라는 이 세가지를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서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고 심지어 광장으로서의 제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광화문이라던가, 길가에 널부러져있는 자전거모양은 자전거도로의 현 주소를 설명하는 듯 했다. 사실 어느 자전거도로의 표기는 같을테지만. 도시디자인이란 선진국 따라잡기가 아닌 지역의 특성과 본래의 의미를 살린 것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고, 그에 따른 시민들의 참여 역시 소홀해서는 안될 것이다.

 

 

 

 

(p52 , 8째줄) 늘어난 인구의 수용을 위해 시작된 주택개발과 공금으로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주택난은 어느 정도 완화되는 시점을 완화되었습니다.

(p56 , 3째줄) 각 구역별 개발은 하위 자치단체와 민간 개발업자 그리고 지역주민이 구체적인 색칠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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