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접하기 바로 직전, 전공 서적과 다를 바 없는 책 한 권을 몇일 동안이나 들고, 내려놓기를 반복하여 간신히 읽어내리고 어떤 책을 고를까 시야에 확 들어오는 책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끝내는 아무런 책도 손에 집지 않은 채 잠이 들어버렸다. 후에 책이 읽고 싶어 손을 뻗었을 때는, 붉은 생채기가 확연하게 눈에 띈 채로 쓰러져있는 참새인 양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의 내가 화장실의 거울로 마주한 순간이다. 엄마를 간호하지 않는 시간에는 책을 좀 읽어야겠다, 생각하다 아무렇지 않게 소설을 집어들고 어리석음에 한숨을 내쉬며 제대로 읽을 수 있을리 만무하잖아,라며 스스로를 책망하며 내려놓았더랬다. 나에게는 당시 생채기에 연고를 발라줄 그런 책이 절실히 필요했다. 혹은, 텅 비어버린 상태에서 미친 듯이 웃을 수 있는 책이거나. 한참을 주저앉아 책장을 훑어내리다가 끌림이라는 책과 마주하고 서서 소리내어 안녕,하고 말했다. 끌림,이라는 단어가 참 예쁘다,라고 생각하며.

 

 

 

여행 에세이 중 가장 감성적인 에세이, 라고 혹자는 말하지만 나는 이병률 작가에게서 특출난 감성을 엿보지는 못했던 듯 싶다. 누구든 가지고 있는 감성을 끌어내는 능력이 있을 뿐,이라고 딱 거기까지만. 실은 잘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조차. 공황 상태에서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자체는 언제나, 늘 어려운 과제처럼 부담스럽게만 느껴진다. 끝없는 나락에 빠져 허우덕대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손을 잡고 일으켜준 고마운 친구,라고 얘기하면 끝이 난 것도 같은데, 그렇게 끝내버리기엔 아쉬운 마음이라는 녀석이 입을 삐쭉 내밀고는 삐쳐있는 모양새로 나를 아니꼽게 노려보고 있을 성 싶어 낄낄 웃으며 이 책을 읽던 그 때를 떠올리고는 책을 휙휙 다시 한번 넘겨보며, 포스트잇 플래그가 붙어있는 곳은 다시 한번 정독하며, 그렇게 -

 

 

 

책에서 풍겨지는 향은 감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연상케하기에 충분했지만, 나는 주춤하지 않고 풍덩, 그 곳에 침범했고, 작가는 제지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 곳은 그가 만들어낸 세상도, 공유하는 세상도 아닌 나의 세상이었다,라는 표현이 맞을지 실은 잘 모르겠다. 열정이란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에 들어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에 놓여있는 상태가 되고, 그걸 갖지 아니하면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낯선 도시에 떨어진 그 암담함과 다르지 않다. (#001, '열정'이라는 말) 가끔은, 있다면 자네, 거기 내 안에 꼼틀꼼틀 움직이고 있는가,아니면 쉬고 있는가, 혹은 죽었는가, 하며 끄집어내서 묻고 싶기도 하고 지금은 니가 열심히 활동해야할 차례라고, 너는 니 차례도 모르냐며 따지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는 늘 언제나 열등감을 열정으로 착각하곤 했었는데, 그 점이 항상 아쉬우면서도 아직까지도 고치지 못하는 고질병이다. 그러고보면 내가 열정을 발휘해서 이뤄낸 것이 무엇이 있나,라며 초점없는 눈을 한동안 첫 페이지에 두고선 멍,하니 앉아있었다. 참 우습다. 고작 한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라고 탓하지 마세요. 인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나는 왜 이럴까······」라고 늘, 자기 자신한테 트집을 잡는 데, 문제는 있는 거예요. (#032,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왜 이러냐며, 한탄 안해본 이 누가 있으랴. 하지만 대부분은 문제가 자신에게 있음을 다행히도 자각하고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었다. 나 역시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 어떠한 개입도 없다고 생각하고 개입할 수 있는 것은 행운과 불운 뿐이지만, 그것도 자신이 타이밍을 잘 맞춰야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투정부린다. 실재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너, 나, 미워해요?

 

 

 

헌데, 난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을 찾고자 했던 것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글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이병률 작가의 감성? 필력? 그의 긍정적(으로 보인) 마음가짐? 실은 「#013, 길」「#018, 사랑해라」「#020,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을, 아니 다시 태어나야 할」「#023, '아비'의 맘보*」「#025, 511 W22ND STREET, NEW YORK」「#026,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027, 소파에 눕다, 구르다, 끄적이다」「#031, something more」「#035, 좋은 풍경」「#039, 좋아해」「#043, 먼 훗날」「#045, 영국인 택시 드라이버」「#047, 시시한」「#056, 생일」「#061, 페루에서 쓰는 일기」「#067, 케 세라 세라」등 많은 곳에 포스트잇 플래그를 덕지덕지 붙여놓았고, 그 곳에는 무엇 하나 빠뜨릴 수 없는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던 글들이 수북히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었다. 나는 복잡복잡한 일상 속에서의 내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었을 뿐이고, 단순한 여행 에세이인줄 알았던 「끌림」이라는 이 곳에서 예상치못한 이 책을 읽으며 누구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만의 여유를 한껏 즐기며 읽은 책이었음에 분명하다. 고마워,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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