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기린
가노 도모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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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받아들고, 제목을 보고서는 갸우뚱거리는 머리를 간신히 붙잡아 고정시켜놓고, 표지를 보고 다시 갸우뚱거리는 머리를 냅뒀더니 얼룩말 열댓마리가 빙글빙글 돈 기분마저 든다. '막스 티볼리의 고백'이라는 책을 무척이나 힘겹게 읽어내린 탓에 조금은 가벼운 추리소설을 읽어야겠다, 다짐을 했더랬다. 그렇다 한들, 책에 슬럼프가 빠진 것 같다 생각되던 나를 이 책이 읽은 후에 나에게 뿌듯한 웃음을 선사할 것이냐, 라는 어이없는 물음이 제기됐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는데? 우습기 짝이 없다. 우습다 못해 토악질이 나올 만큼 어리석기까지 하다. 그리하여 그저 추리소설이라는 사실적인, 또한 띠지에 붙어있는 '일본추리작가 협회상'이라는 문구를 포착하고는 그것에 의존하여 책을 한 장, 두 장 술술 읽어내린다. 정말 말 그대로 술술 잘도 넘어간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그렇게 이야기를 읽어나간다. 바로 전에 읽었던 '막스 티볼리의 고백'을 읽을 때엔 누군가가 정신을 빼앗아가고 눈길을 돌려버렸으며 책장을 넘기려는 손은 붙잡아놓은 듯 미칠 듯한 슬럼프를 느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그와는 영 딴판으로 책장이 넘어가는 손놀림이 나조차도 당황스러웠지만 오랜 만에 그런 기분을 느껴봄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참 변덕스럽기도 하여라.

 

 

 

오 마이 갓. 책을 읽었다고 하기에도 민망하리만큼의 책장이 넘어갔다. 그 때, 고작 세 장이었다. 세 장만에 안도 마이코라는 아이가 괴한에게 습격을 당하여 죽음이라는 문턱을 너무나도 쉽게 범접하고 만다. 외모, 성적때문이 아니라하더라도 - 아니, 사실은 그것이 모두라고 말할 수 있다. - 어디에서나 특출나게 잘난 사람은 있기 마련인데 안도 마이코가 그러한 아이였기에 죽은 뒤에도 아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것으로 안도 마이코가 살아생전의 그 명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고, 사실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죽음이 한 연예인의 가십거리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는 것일 뿐, 슬퍼하는 기색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조차 없음이 애석하기만 하다. 그렇게 안도 마이코의 죽음을 밑바탕 깊숙히 맨들맨들하리만큼 평평하게 깔아놓은 채로 '범인 추적'을 아니, '안도 마이코'가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여 혼자 가득 안고는 숨기고, 숨기기를 반복한 내면이라는 것이 깨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그렇지만 한없이 투명한, 또 마냥 행복하게만 보이는 스노우볼이라고 박박 우기며 독자 앞에 내놓고 거둘 생각조차 하지 않음에 독자는 그것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 속의 진실한 세계를 안도 마이코, 자신이 쓴 동화인 「유리 기린」과 「마지막 네메게토 사우루스」에서 그리고 여러 사람이 내놓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비로소 맛보게 되는 것이다. 헌데, 그 맛이라는 것이 여고생을 닮은 상큼함도, 달콤함도 아닌, 말로 형용할 수조차 없는 의외의 맛임에 독자는 그것을 차마 입에 넣지 못하고 그저 손으로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다.

 

 

 

「유리 기린」, 「3월 토끼」, 「닥스훈트의 우울」,「거울 나라의 펭귄」,「어둠의 까마귀」,「마지막 네메게토 사우루스」,「에필로그」가 삐쭉얼굴을 들이밀며 chapter마다 바뀌는 화자에 「3월의 토끼」로 넘어가는 초반엔 혹, 이대로 끝나버리는 단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을 읽고 있던 나로 하여금 실눈을 뜨고 지켜봐야할 만큼 의구심이 차오르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에필로그를 뺀 총 6개의 타이틀 아래 이루어진 퍼즐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 까닭은 시점에 따라 바뀌는 화자들의 이야기를 짜맞추어 상상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그것을 읽으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면 이 책을 바로 읽은 것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을터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이 범인의 자취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읽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기에.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미나토 가나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는데, 시점이 매 chapter마다 달라진다는 것을 볼 때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과도 유사한 면을 지니고 있다 말할 수도 있고, 소녀들의 내면을 다룬다는 면에서도 미나토 가나에가 올해에 내놓은 작품인 「소녀」와도 은근슬쩍, 혹은 억지로 연관지을 수도 있겠다,싶다. 하지만 소녀들의 내면을 다룬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금이 작가의 「유진과 유진」을 따라올 자가 없을 듯 싶다. - 실은 아직 폭넓지 못한 내가 아직 딱 거기까지만 닿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만 - 어쨌든 오랜만에 읽은 그 때, 그 시기의 아이들은 늘 보듬안아주어야할 만큼 여리고, 부서지기 쉬울만큼 외줄타기를 보는 것 만큼이나 위태롭고 불안하다는 점은 두 말하면 입아프다.

 

 

 

사실 난 이 책을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읽고나서도 서평을 쓰기가 무척 힘겨웠는데 그 까닭은 안도 마이코의 학교생활과 나의 학창 시절의 학교생활은 영 딴판,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나의 학창시절, 난 누군가의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을 뿐더러, 선생에게 인정을 받기보다는 아마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 중 한 명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 나는 학교에 당도하자마자 교복치마를 체육복으로 갈아입고는 말뚝박기에 동참하기도 했고, 힘들면 힘들다,고 온갖 짜증을 내도 받아줄 친구가 있었으며, 꽁해있다가도 매점갈 땐 룰루랄라하며 신바람 난 채로 뛰어가는 내가 기억 속 저편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도 몽롱한 상태를 유지했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잘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생각들의 꼬리가 잘려나간 채로 그대로 두기를 몇 날 며칠째, 서평은커녕 책의 줄거리라도 쓰자고 마음먹었지만 다 쓰고 난 뒤에도 아직도 머릿 속은 혼란한 상태, 그대로 여전히 자리잡고서는 두 동강난 생각들을 더 이상 끌어다모아 붙일 기력조차 부족함에 더이상은 안되겠다며 손을 놓은 꼴이다. 더듬더듬 펜으로 끄적이고 키보드를 두들기어 말도 안되는 활자들이 나동그라진 채로 있지만, 이 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아마 이것 하나.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냉철하고 날카로운 범인의 흔적이 작가가 발로 슥슥 문질러 희미하게만 남겨두는 것으로 봐서 범인을 잡는 것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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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역
캐스린 포브즈 지음, 변은숙 옮김 / 반디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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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나서 어떤 것들은 무던히 애를 써도 서평쓰기가 애매한 것들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것들을 두고 일컫는 것이 아닐까 싶다. 늘 언제나 그렇듯 그런 책은 어디든 존재하지만 이 책은 무척이나 정신이 없을 때 한번씩 들춰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집중력은 제로인 상태로 봤다고 무방하리만큼, 그러나 결코 어렵지 않게 슥슥 읽었었더랬지,싶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두리번거린다하여도 딱히 이을 말을 찾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환승역」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눈길을 압도하기에 충분한 푸른 표지와 처음 마주하였을 때, 가슴 깊숙한 그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싱그러움을, 손에 착 감기는 그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음에 방방 뛰는 기분으로 이 책과 함께 할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은 왠지 모를 허무함과 곁들여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배신감이 온 몸을 휘감고 있지만, 무임승차를 하기 위해 요리조리 갖은 수단을 동원하던 앨리의 모습에서 자신의 달러를 검수원에게 내는 앨리의 모습이 디졸브되는 순간 풉,하고 웃으며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앨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열 살의 앨리 혹은 앨리스, 아이는 마냥 천진난만하여 아이스크림과 휘핑크림과 같은 종류의 군것질을 하기 위해 무임승차를 꾀하지만, 그날따라 검수원의 눈빛은 사납고 주변 사람들은 싸늘하기만 하다. 가까스로 도착한 집에서 왜 늦게 들어왔느냐는 말에 '배고파'라는 말로 둘러대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아 자신의 말은 들으려고도 안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그에 분노한 엄마 릴리와 로티 이모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하숙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또 노동조합운동으로 이상을 쫓는 아빠 해리가 있지만 그를 이해하지 못한 엄마와는 이혼이라는 종착역에서 마주보게 되고 그럼으로써 아빠와는 두달에 한 번꼴로 앨리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페글리라는 하숙인의 서랍에서 훔쳐먹은 초콜렛은 입 안을 달콤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그로 인해 고약한 그가 걸어놓은 쥐덫에 손이 물려 달달 떨어야만 했고, 세상에서 뭔가 좋은 일을 하면 나중에 반드시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p209) 라며 미니가 좇고있던 신념이 그녀에게서 냉정하게 돌아섰을 때, 어른들은······, 가끔 어른들도 힘이 없고, 또 길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p293) , 때때로······, 때때로 어른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돌본다는 것을. (p303) 이라는 마음에 내키지 않는 그것들을 깨닫게 되며 세상의 이치들을 하나, 둘 배워나가기 시작한다. 또한 할머니에게 채 가 닿지 못한 라벤더 향이 나는 비누가 손에 덩그러니 놓여있지만 그것은 곧 라벤더 향을 좋아하는 다른 노파가 주워갈 것이고, 그는 라벤더 향을 풍기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 앨리와 마주할지도 모르지.

 

 

 

글쎄, '환승'이라는 의미의 어원을 찾아가려니 갈아탄다, 라는 의미말고 또 어떤 의미로 작용할 수 있을지 한참 동안을 머릿 속에서 굴려보아도 여섯 가지의 숫자만이 새겨져있는 주사위처럼 정해져있어 다른 상상이 끼어들 틈은 물론이거니와 그조차 이미 결핍된 상태이다. 하지만 아마 작가도 그것을 삶에 반영하여 그런 제목을 지었겠지, 라는 생각이 드니 풉,하고 웃음이 터져나온다. 책을 다 읽고도 어떤 벅찬 느낌을 받지 못하였는데 고작 제목 하나에 작가와 교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우스워서. 하지만 곧 웃음을 거둘 수밖에 없었는데, 찰지지 못한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본 세상조차 추악하리만큼 역겨움의 산물들이 넘실대고 있음에 읽어내리기에 거북함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라서 책을 중간에 내려놓고 읽기를 반복하며 결국은 휴,하고 내뱉어지는 한숨을 걷잡을 수 없었던 이유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세상의 이치들을 하나씩 깨닫는 즉시 세상에 대한 환멸감이 물밀듯 차오를 것이고 그 때에 아이의 순수성은 휘발되고 말 것이다. 그랬을 때 아이들이 무사히 환승역에서 갈아타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성장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꽤 어둡다,고 말할 수 있는 「환승역」의 앨리가, 나의 유년 시절이, 그리고 인생에 수없이 환승할 기회가 찾아올 우리의 인생이 안녕하기를.

 
 

 

 

 

p129  맨 위의 서랍장을 잠거 두었다. → 잠가 두었다.

p148  "항상 문을 잠거 놓고 지내라고 그랬지" →"항상 문을 잠가 놓고 지내라고 그랬지"

p216  엄마의 말에 로띠 이모가 호응했다. → 엄마의 말에 로티 이모가 호응했다.

p268  '움직이는 영상'라고 하는 게 나을까요? →'움직이는 영상'이라고 하는 게 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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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클럽 - 그들은 늘 마지막에 온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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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책을 집어든 손에서 전율이 지지직,하고 울려퍼지며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이 나를 거세게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 그의 이름을 보는 순간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2009년에 열 몇 편의 책을 내며 다작을 했던 그였지만, 올해 2010년들어서는 개정판까지 하여 꼴랑 5권을 냈다고 하니 그에게 독자라는 이름을 가진 나는 알 수 없는 섭섭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그의 책을 올해 초에 「비밀」,「사명과 영혼의 경계」이후 세번째 접하는 주제에 섭섭함이랄 것도 없지만, 실은 아직도 그가 책을 냈다고 하면 괜스레 눈길 한 번, 손가락 한 번이 더 가는 것이 그에 대한 애정이라고 박박 우기고도 싶다. 하지만 몇 권씩 후딱 해치우던 작년과 현저히 줄어든 그의 작품에 대한 설레임이 나조차도 낯설어 무작정 기피하고 있었던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의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깊은 수렁에 빠지긴 하지만, 애석하게도 질린다,는 표현을 쓰는 것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을 보니 어쩌면 막대사탕과 같을지도 모른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조금 남은 막대사탕을 쪽쪽 빨아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단맛이 신물로 변했을 때에 혹은 입 안에 까슬까슬한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에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나는 어리석게도 이 곳에 적용하는 꼴이다.

 

 

 

실은 나는 그의 책에 대한 서평이랄 것 없는 그것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고 읽는 순간 서평을 쓰겠다는 생각을 애초에 접어버리게 된다. 써봤자 그의 트릭에 속았다,라는 뻔할 뻔자의 똑같은 서평만 써내는 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용의자 X의 헌신」과 「백야행」의 같은 경우는 읽고서도 쓰지 않은 대표적인 예인데 남들 다 좋다고 하던 전자의 작품은 작가의 성품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며 지극히 헌신적인 사랑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나는 그 흔한 감동의 물결을 느끼기는커녕 그가 보기좋게 풀어내는 추리에 집중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내가 그의 책에서 최고라고 손꼽고 있는  후자의 작품은 서평을 써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인데 내가 느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당황했기 때문이리라. 그 때에 세 권이라는 압박감을 뚫고 순식간에 읽어버린 책의 스토리는 머릿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음에도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철필대를 잡은 손은 도무지 움직일 기미도 보이지 않고 그것으로 인해 오는 갑갑증은 결국 에레이,하며 서평쓰기는 글렀다고 읽은 것으로 족하자고 마무리를 지어버렸던 생각이 난다. 그러고서 올해에 들어 읽은 책의 느낌을 간략하게나마 쓰자는 나 혼자만의 약속이 그의 책에 대한 짤막한 평을 허락했다.

 

 

 

전같았으면 휴, 또 단편이야?라는 생각 먼저 했을텐데 이번엔 그런 생각은 할 틈도 없이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이 오랜만에 잡은 그의 책에 대한 설레임이 한층 증폭된 것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예지몽」을 읽고나서 「기묘한 신혼여행」과 「범인없는 살인의밤」을 읽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단호하게 안녕!하고 돌아섰던 나에게는 매우 놀라운 발전(?)이라고 생각될 만큼 오랜만에 그를 만나는 것을 소풍가는 아이인양 즐거워했다. 그래서 나의 곁을 묵묵히 지키고 섰는 그도 어제 밤엔 오랜만에 내 목소리가 즐거워보인다,고 하였는데 아마 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탐정클럽」 에 나오는 다섯 편의 단편 ‘위장의 밤’,‘덫의 내부’,‘의뢰인의 딸’,‘탐정 활용법’,‘장미와 나이프’는 - 조금은 억지로 만들어낸 듯 보이는 - 밀실이라는 틀 안에서 그 안의 내부사정을 꿰뚫어보는 식이다. 어떤 이야기인들 독자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지 않겠냐만은 그 중 ‘탐정 활용법’은 특히나 등짝을 후려치는 반전이 아직도 얼얼하게 남아 도무지 떨어지질 않은 채로 덮은 탐정클럽의 첫 표지에 가 붙어있다. 아, 히가시노 게이고. 당신은 진정 날 다시 당신 편에 세울 작정이신가.

 

 

 

부잣집 고객들만 응대한다는 탐정클럽의 두 명의 남녀(검은 양복 차림의 남녀였다. 둘 다 훤칠하다. 남자는 얼굴선이 조각상처럼 뚜렷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자도 길게 찢어져 위로 치켜올라간 눈매의 미인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어둡다는 느낌이 들었다. (p201))가 사건을 단시간에 - 책이라서 그리 느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 휘어잡고는 그것에 대한 결론은 이 자료를 해석한 결과, 우리가 더는 이 사건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건의 결말은 당신이 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 자료를 보면 아마 당신도 우리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그 결론을 가지고 어떻게 처리하든 그건 당신의 자유입니다. (p81) 라며 마무리한 사건까지 - 물론 사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 짝짝짝, 박수를 쳐주고 싶을만큼 그의 결말에 매력을 느낀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단편들에서는 열린 결말을 보여주고 있기에 마지막은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여운을 남긴다는 것에 또 한번 책을 읽는 묘미를 느꼈던 듯 하다. 하지만 장편이 아닌 단편,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독자에게까지 내비춰주지 않고 그들에게서 결말만 전달받는 식이기에 독자입장에서는 사건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해야할까,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식에서도 독자에게 상상력을 만들어줄 시간이 약간은 필요했을텐데, 너무 과감히 잘라버린 것 같아 안타까움이 가장 진하게 남는 부분이었다. 역시 단편이기에 제대로 버무려지지 못한 것과 같은 느낌이 아직도 하나의 응어리로 남아 2%를 훨씬 넘는 20% 부족한 부분이라 생각되지만, 그를 만났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즐겁게 읽은 것으로 족해야겠다,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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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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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이 책을 손에 집었을 때 가장 첫 문단에 씌어진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되뇌고 되뇌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을줄 알았던 이 책은 조금은 가벼울 줄 알았다,는 나의 완전한 오산이 무척이나 오랜 시간동안 이 책을 읽어나가지 못하게 붙들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이런저런 잡념들로 가득 차있어 75페이지를 읽는 동안에도 이게 무슨 내용인지 장황하게 늘어진 활자들이 질서정연하지 못한 나동그라짐을 경험해야 했기에 다시 첫 장으로 넘어가는 손길은 바스라질 듯이 위태롭기만 했다. 그러나 또 다시 같은 페이지인 75페이지가 채 넘어가기도 전에, '책을 덮어버리고 싶다'라는 마음을 안간힘을 쓰게하면서까지 마음을 다스려 정독하게 했던 까닭은 무엇이었는가. 실은 아직까지도 뒤죽박죽으로 얽히고 설킨 이 책은 나에게 있어 마구잡이로 집어올린 물고기를 눈 앞에 들이밀며 이 물고기의 이름이 무어냐,라며 재촉하는 것과 별반 다를바 없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만큼 머릿 속의 능란함을 서평을 쓰며 다시금 느끼고 있는 중이고, 또한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책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에 대해 이미 끊어진 회로를 간신히 이어 머릿 속의 전원을 켜 굴려야하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독자인 내가 보았을 때 집착이라 생각되는 것을 그는 거침없이 사랑이라 부르는 그것,때문에.

 

 

 

책의 표지에 나와있는 이 책을 쓴 이처럼 보이는 저 소년은 누구인가. 그는 인간인가, 괴물인가, 혹은 외계인인가. 그렇다면 그의 이름은 막스 티볼리인가, 아스가르 반 달러인가, 리틀 휴이인가. 나는 이미 없어졌을 그,의 고백을 경청하며 머릿 속 한 귀퉁이에서 그가 살아온 삶의 부분들의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나가기 시작했을 때 그는 내게 있어 막스 티볼리였고, 또 그것은 내가 이 책을 기억하는 한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으로 기억 속에 자리잡고는 가부좌를 튼 채 꼼짝도 하지 않음에 그가 막스 티볼리라는 명백한 사실은 의심할 여지도 없음을 깨닫기에 이른다. 감히 '그는 몇살의 누구다' 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그,는 태어나자마자 쭈글쭈글한 노인의 나이인 일흔의 나이로 태어났지만 거꾸로 나이를 먹어가는 그는 어떠한 의학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 없고, 그에 따른 해결 방법은 오로지 어머니에게 들은 "사람들이 네 나이가 얼마쯤이라고 생각하면 그에 맞춰 행동 해야 한다." (p38) 뿐인 그가 할 수 있는 선택 역시, 단지 그것뿐이었을 것임에 급작스레 마음 속에 불어 닥쳐온 서늘함이 비단 가을 바람때문만은 아님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그제야 명치 끝이 저려옴을 느낀다.

 

 

 

내가 이 책에서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부분을 꼽자면 앨리스와 재회를 했을 때부터 였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전의 이야기는 앨리스가 누군지, 그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나에게 알려주는 목적성마저 결여되었더라면 버리라면 버릴 수도 있고, 잊으라면 잊을 수도 있을 만큼 나에게 있어 이 책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지 못했음을 확신한다. 그렇기에 소설에서 추구하는 재미마저 느끼지 못했으리라. 어찌됐든 막스 티볼리에서 아스가르 반 달러라는 무척이나 괴상망측하게 생각되는 이름으로 남몰래 앨리스와 재회를 한 그 순간,에 그의 앞에 펼쳐진 그 생 역시 괴기하다. 실상 그의 고백,이랄 것 없는 이야기가 혹자들에게는 당연히 만점으로 치닫는 이 책이 나에게는 앨리스라는 여성에 대해 사랑을 애걸복걸하는 꼴로 밖에 보이지 않아 구차하다,라는 생각이 가득 메워진 채 이 책의 마지막을 덮을 수밖에 없는 것을 속상해해야만 했던 책이었다. 무척이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집요하리만큼 추악한 그의 사랑에 손발이 떨리며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듯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 책을 읽고 있던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잠시 걷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던 것 같다. 실제로 한적한 공원에서 이 책을 읽을 때에는 그렇게 했었고, 꽉 막힌 곳에서는 책갈피를 꽂지 않은 채 과감히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그의 사랑을 지켜보는 것은 썩은 밤을 베어 물고 입 안 가득 퍼지는 썩은 내를 알아차렸을 때. 그 고약한 향기,라고 이야기한다면 막스는 내가 자신의 사랑을 능욕하였다며 길길이 날뛸 것인가. 하지만 아무리 그가 그렇다 한들, 그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사랑이라는 추악함의 결정체 앞에서 우정이라는 고유명사 앞에 '처연함'이라는 말을 붙이게 만든 그의 사랑을 옹호할 수는 없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정독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그녀의 커피 잔 속에 떨어진 달을 보았다. 커피 잔 속에서 나방처럼 꿈틀대는 달. 그때 나는 보았다.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말없이 그 달에 키스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녀가 커피를 식히기 위해 그 표면에 입김을 불어 골을 낼 때 달이 폭파되어 산산히 흩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p103)  이와 같이 나같은 이는 생각하지도 못할 범접하기에도 이처럼 부담감이 들면서도 흠뻑 젖게 만들어버리는작가의 서정적인 문체들,이 아니었던가, 싶을 정도로 심장에 펌프를 달아준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벌떡거리게 만드는 문장들이, 눈에 반짝거리는 별들을 수놓아 주어 읽는다는 표현보다는 뭐랄까, 시를 읽는 것과 같이 감상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태연자약한 마음 속에 불구덩이를 지핀 것과 같이 뜨겁게, 또 시리게 만들어주는 그 문장들의 행렬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으랴. 감히 매초롬하다,라고 칭할 수 있는 문장들이 그의 손 끝의 펜대에서 데구르르 - 구르고 있는 모양새로 나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잣대는 사랑이라는 것에서 더 이상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빈약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를 하려고 해봐도 이해되지 않음에 내가 준 별 세개는 순전히 책에 들어있는 작가의 필력에 대한 몫이지, 책 자체에 대한 점수는 미안하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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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밭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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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환영 뒤에 남은 그리움을 품고 이렇게 어딘가를 응시하고 앉아 있는 것. ( 그는 언제 오는가, p284 )

 

 

메마른 햇살에 물기를 머금은 자신의 눈을 비추어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으며 이 책에 대한 서평의 서문을 열게 된 까닭은 이 책을 읽을 당시에 감정이 극도로 상승곡선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해야겠다. 답답한 마음을 움켜잡았을 때 내 손 안에 아무 것도 없음이 확인되었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눈을 시리게 만들어버린다. 그 때에 올해 칠월에 만났다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잠시 안녕,했었던 신경숙을 다시금 만났다. 내가 시월에 한일 중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신경숙의 「딸기밭」이라는 이 책을 만난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라는 책은 선물받고 겨우 일년, 이 책은 내가 중등교 때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오빠에게서 받아온 책이었으니 10년까지는 되진 않았다하더라도 거진 8,9년은 되었을 것인데, (출판일은 2007.01.15로 되어있으나 초판발행일은 2000.02.28이다.) 어쨌든 그 둘이 나란히 함께 고스란히 뒤집혀있던 책 중 한 권이라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자질구레한 변명은 책의 표지를 포장지로 감싸고 싶었을 정도로 볼품없었다,라고 이야기하며, 그래서 읽고 싶은 욕심조차 생기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실은 첫 단편 혹은 중편을 4,5번은 읽었다고, 그 느낌이 괜찮았지만 그 후의 것은 읽을 용기가 차마 생기지 않았다고. 그런데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올해에 읽고서 깊은 감명에 딸기밭을 읽어야겠다,라고 다짐한 이레에 처음 들었다.

 

 

 

일전에 난 김영하 작가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라는 책을 많은 지인들의 추천으로 읽고 나서, 후에 오는 이유 모를 허무함을 감출 수 없어서 괴리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단편 중 별 다섯개를 주고도 아깝지 않았던 김경욱 작가의 「위험한 독서」라는 책도 신경숙, 그와 감히 대적조차 할 수 없겠노라고, 그만큼 내가 읽어본 단편 중 감히 최고라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딸기밭」,「그가 모르는 장소」,「작별 인사」,「어떤 여자」,「그는 언제 오는가」라는 총 6개의 중,단편을 소개하고 있다. '아이의 죽음, 유의 죽음, 아내와의 이혼, M의 죽음, 순돌이의 실종, 동생의 죽음'이라는 것을 연상케하기에 충분한 것은 상실,이라는 단어 외에 어떤 단어를 결부시킬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매우 주관적인 나의 시선에서)「딸기밭」은 「외딴 방」의, 「작별 인사」는 「엄마를 부탁해」의 표본인 것처럼 무척이나 닮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러고보면 저자는 슬픔이라는 보이지 않는 주체를 아름다움이라는 또 다른 형상으로 승화하여 우리에게 내놓고 있다.

 

 

 

사랑이 다시 오면 이제는 그렇게 휘둘리지 않고 놀라지 않고 아프지 말아야지. 깊은 한숨과 함께하는 일이란 걸 인정해야지. 외로웠지만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도. 사랑은 허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 작별인사, p148 ) 사랑이라는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내면에 숨어있는 한창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결국은 무슨 일이냐 묻는 엄마의 품에 파묻혀 울기, 내 이런 나약한 존재임을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 어쩌자고, 그렇게까지 될 때까지 방치해두었느냐,며 타박하며 눈물을 닦아주는 친구의 손길에 기대어 흐느끼기. 그러면서 저자의 저 문장에는 나도 좀 그러고 싶다고, 그런데 그게 안된다며, 당신은 그게 되느냐며 따져묻고 싶기도 수차례. 결국 공감할 수 없다고 고개를 돌려 외면하지만, 귓가에 딱지처럼 내려앉아 바둥거리고 있는 모양새로 나동그라져 있다.

 

 

 

처음 「외딴방」을 접했을 땐 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꺽꺽, 울었던 기억이 나는데 단편 중 「딸기밭」을 읽을 땐 그러지 않았던 것이 「그가 모르는 장소」, 「작별인사」,「그는 언제 오는가」를 읽으며 뭉클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음에 울음을 토해냈었더랬다. 참 오랜만이지 싶지,했다. 신경숙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이 책은 장편소설이 아닌 중단편이기에 긴 호흡을 가지고 읽어나갈 수는 없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분명 읽어내리기 힘들 정도로 난해한 점도 없잖아 있고, 바로 그 점때문에 중간에 포기할런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오롯이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기에 가타부타 설명할 수 있는 입장 또한 되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신경숙, 그의 책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기꺼이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책임엔 분명하다. 오랜만에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은 기고(奇觚)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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