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불행
케빈 A. 밀른 지음, 손정숙 옮김 / 황소자리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바깥의 날씨는 쌀쌀,하여 옷을 여미고 다닐 정도의 날씨임에 분명한데 사무실 근처에서 공사하는 드르륵 - 소리를 순간 매미 소리로 착각하여 흠칫 놀란 가슴을 민망스러움과 함께 조심스레 내려 놓는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시월이구나. 「달콤한 불행」이라는 이 책을 구월 중반에서 끝자락을 넘어가는 사이에 안고 있었던 책이었는데 슬럼프에 빠질 뻔한 나를 붙들어주기는 커녕 더욱 더 구렁텅이에 집어넣고 이리저리 휘어젓는 듯한 정신없는 상태로 참 힘들게 읽었던 기억부터 나기에 서평을 쓰기에도 겁부터 난다. 처음에 달콤한 불행이라는 반어법이 적절히, 혹은 과하게 섞여 무슨 뜻일지 짐작할 수도 없는 가운데 이 책을 집어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하지만 읽는 도중에 아직도 한참 남은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휘리릭, 장난스레 넘기며 '이걸 도대체 언제 다 읽는담 - ' 하며 한숨을 폭폭 내쉬기도 하고 내 취향이 아닌 듯한 이 책의 문장들을 읽는다는 것이 내게는 고역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쉬이 읽히기는 하나 나와 맞지 않는 책이기에 읽기 싫은 책,이라고 하면 - 사실 무엇이 그렇게 맞지 않고, 무엇이 그렇게 읽기 싫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 어떤 느낌인지 알려나 모르겠다. 그렇기에 다 읽고 나서도 곧바로 서평을 쓰지 못하고 한참을 주위에서 서성거렸고, 그럴 수록 이 책 역시 책장 으로 들어가질 못하고 미처 쓰지 못한 책들과 함께 줄세워 놓았더랬다. 그러다가 이제와서 서평을 쓰려니 이 책 뿐만이 아니라 이 책 그 후의 책들이 얽히고 설켜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야할지 종잡을 수가 없음에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져옴을 느끼지만, 이내 아직 식지 않은 기억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소피와 가렛이 있음을 깨닫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이 태어난 날에 '생일 축하해!' 라는 말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싶은데 아이러니하게 자신의 생일을 싫어하다 못해 최악이라고 여기고 있는 어쩌면 괴짜처럼 보일 수도 있는 소피라는 여자가 있다. 아홉 살 생일에 자신의 실수로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그녀, 늘 과거라는 프레임에 갇혀 자신의 삶이란 있을까 싶은 그런 그녀에게 오지 못할 것만 같은 가렛이라는 남자가 다가오지만 그녀에겐 버겁기만 하다. 하지만 진심이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던가, 그의 진심을 보게 되면서 닫혔던 마음이 조금씩 얼음이 녹 듯, 살살 녹아 아무에게도 비밀리에 묻었던 자신의 과거를 그에게 털어놓는다.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것을 받아주는 그를 보며 행복한 앞날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간다. 그러나 가렛은 그런 소피를 처절하게 배신하듯 (독자들에게까지 내비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는) 일방적으로 까닭 모를 이별통보를 하고 난 뒤 사라져버린다 (······) 그로부터 1년 후, 그녀의 생일에 그가 다시 돌아와서 자신과 한번만 만나달라고 얘길한다. 그런 그에게 소피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영속하는 행복을 100명에게서 얻겠다는 제안,을 한다.

 

 

 

책의 후반부를 읽다보면, 소피와 가렛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임을 알 수 있을진대, 그것으로 독자는 작가에게 농락당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은 순전히 소피와 가렛을 위한, 그들의 상처 치유를 위한 목적성 농락이고, 또한 그것은 기분 나쁘지 않은 아니, 도리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한가지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면 독자에게 아무런 힌트따위 없이 휙, 떠넘기듯 부담스러우리만큼 너무 갑작스러운 몇 개의 우연들이, 게다가 그로 인한 너무 뻔한 전개가 눈에 짚일 만큼 주위에 도사리고 있기에 답답한 마음을 한가득 안고 '역시 소설, 그래, 소설이니까' 라는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음을 한탄한다. 너무 많은 우연은 독자를 쉬이 질리게 할 터, 조금은 자중했으면 - 하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책을 읽는 독자에게 작가는 미스포춘 쿠키를 먹이는 것 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미스포춘 쿠키 속에 들어있는 메시지도 함께 보라며 재촉한다. 작가가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내용은 이렇다. 행복을 찾습니다. 영속하는 행복만 돼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은 안 돼요. happiness@kevinamilne.com으로 제안을 보내주세요. (한국의 독자는 les_editeurs@naver.com) 영속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한 것일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여름에 무릎을 추켜세우고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일, 햇빛이 내리쬐는 가을 오후 뽀송뽀송 말린 이불을 덮고 햇빛 냄새를 맡으며 낮잠을 자는 일, MR 혹은 오르골을 들으며 한껏 여유를 부리는 일, 계절마다 꽃이 필 적마다 구경하기 위해 잠시 나가는 외출, 술을 사이에 둔 진솔한 대화, 포기하고 있던 것에 굴러들어온 행운 같은 것, 등의 나열한 모든 것들이 내가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일들,이지만 그것이 영속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나에게는 늘 영원한 행복으로 남아있어주길. 행복이라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도 사소해서 우리 눈엔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웃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무신경하게 지금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행복이라는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과 맞닥뜨리게 한다. 고맙다, 내가 가지고 있는 행복을 상기시켜 그간 쌓인 먼지를 닦아내게 해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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