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방 - 유품정리인이 미니어처로 전하는 삶의 마지막 이야기들
고지마 미유 지음, 정문주 옮김, 가토 하지메 사진 / 더숲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직업으로 삼을 수 없는 것들이 아주아주 많지만 개중에서도 생명과 죽음과 관련된 것은 더욱 그렇다. 최근에 읽었던, <머지않아 이별입니다>라는 소설에서 등장했던 장례 디렉터라는 직업을 접하게 되면서 그런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이 생경했다. 세상에 없는 직업이라는 생각보다는 입에 올려본 적 없는 직업군이라 그랬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인 <시간이 멈춘 방>은 유품정리인이었다. 며칠 전에 이 직업이 티비프로그램에서도 나왔던 것 같은데 나는 보진 못하고 돌아다니는 캡처본만 봤었지만, 그 캡처본만으로도 어떤 고충을 느끼는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어두워졌었다.



유품정리인인 고지마 미유는 고독사로 생을 마감할 뻔했던 아버지의 돌연사 이후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2014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유품정리인의 삶을 시작했다고 하니 올해로 7년 차인 셈이다. 유품정리인이라고 하면 단순히 유품정리만을 해주는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유품정리 외에도 쓰레기 집 청소, 특수 청소까지 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독사가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사람들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실제 고독사가 발생한 현장의 사진을 쓰다 보면 보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이 고인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행위가 아닌지, 유족의 슬픈 기억을 들쑤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고. 그래서 저자는 고독사 현장에서 목격하는 방의 특징을 응축해 미니어처로 재현해냈다.

 

 

 

 

 

 

고독사를 방지할 수 있는 방책을 제안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고독사의 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는 것이 이 책의 취지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에 떠오른 사람이 있다면, 말을 걸고 얼굴을 보러 가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도 책의 말미에 써두었다. 책의 서문을 읽을 때도, 책의 본문을 읽을 때도, 서평을 쓰는 지금도, 저자는 참 인간적인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쓰레기 집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떠한 사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채로 쓰레기 집에 사는 사람의 기질적인 특성이 게으름에 비롯되었을 것이라고만 생각해서 그렇다. 여전히 접객업이나 격무에 시달리는 사람들, 수집벽이 있는 사람, 정리 방법을 모른 채 혼자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 산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지만, 치매나 발달장애로 인해 정리 정돈이나 분류가 어려운 사람이나 스토커로 인해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고서는 처음으로, ‘아, 그런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사를 가도 같은 건물로 이사를 와서 밖에 빨래를 널 수 없었고, 봉투를 뒤질까 봐 쓰레기를 내놓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쓰레기들을 상자에 포장하여 이삿짐으로 위장해 빼내기로 했는데, 스토커가 모습을 드러내고 어디로 가는 거냐며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고 해서 곤란을 겪었다는 글이 쓰여있었다. 그렇다면 의뢰인은 얼마만큼의 고통을 겪고 지냈던 걸까.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소중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이별로 인한 상실감으로 우울증에 걸려서 무기력하게 되어버린 사람들도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가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주지 않으면 금세 쓰레기 집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면서 “난 저렇게는 안 될 거야.”라고 단언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유품 정리를 하다 보면, 자칭 고인의 친구라는 사람들이 줄줄이 나타나 집 안을 염탐하며 이른바 돈이 될 만한 것들이나 자신이 쓰고 싶은 물건들을 점찍어둔다. 그러면서 “죽기 전에 나한테 준다고 한 거야!”라고 무척이나 당당하게 말을 한다며. 하지만 그 친구들만 그럴까, 가족도 그럴 텐데. 저자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괴로운 점이, 인간의 이면이 드러나는 순간을 마주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티비나 책에서 겪는 것들도 마음이 힘들어지는데, 직접 그런 꼴을 보면 회의감이 얼마나 들까 싶다. 인간이 인간일 때에야 가장 인간다운 법인데.

 

 

 

 

 

 

생을 살 때에도 외로웠을 그들이, 생을 마감한 후에도 외로웠을 거라 마음이 착잡해진다. 짧은 페이지가 마음을 헤집어놓았고, 그 마음들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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