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 넘어진 듯 보여도 천천히 걸어가는 중
송은정 지음 / 효형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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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나는 호되게 혼이 나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나를 혼내는 책은 싫어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건 좀 별개였다. 분명한 것은, 작가는 나를 혼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혼을 냈던 것일까. 나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부끄럽다. 그 부끄러움을 조금 서평에 기대어 조금 발설해보려고 한다.

 

 

나는 종종 나의 마지막은 책 속에 파묻혀 책과 함께 동거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책방으로 귀결되었다. 그래, 나는 책방을 하는 사람이 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사업을 꾸리는 데에는 영 취미가 없는 사람이므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배우자가 퇴직하여 우리의 거처가 정해지면 단독주택을 짓고 그 옆에 별채로 아주 작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 작은 공간은 내가 꽃을 만지는 공간이기도 하고, 책을 보는 공간이기도 하다. 꽃과 책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을 꿈꾸었다. 그곳은 나의 공간이지만, 당신의 공간이 될 수도 있는 곳이었다. 특이한 것은 내가 읽어본 책들만 진열하고 판매하는 것이었다. 베스트셀러는 오롯하게 나의 기준으로만 판명되는 그런 책방. 그 책방의 이름은 벨라책방이라며 거창하게 작은 표지판을 두는 상상도 했다. 일을 하다가 시간이 날 때면 나는 우리의 집을 상상하며 이리저리 설계를 해보곤 했다. 참으로 즐거운 상상이었다. (아, 하지만 현재는 단독주택에 대한 소망이 점점 희미해진다. 스물여섯 해 동안 단독주택에 살아본 나는, 그 집을 관리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오랜 생각을 품고 지내던 올해 어느 날, 1년만 책방을 해볼까. 하는 무모한 생각을 가졌다. 실은 그 생각은 작년 즈음부터 하고 있었는데, 실행에 옮길 생각은 한 적이 없다. 다만, 호기롭게 나의 배우자에게 “나한테 천만 원만 투자해줘.”라고 말한 적은 있다. 나의 소심함에 도대체 그런 호방한 성격이 어디에서 나온 걸까. 그는 그러마, 했다. (하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길 때에는 나는 그에게 사업제안서를 만들어 보여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후로는 혼자서 상상을 할 때가 많았다. 딱 3-4평의 작은 공간이었으면 했고, 너무 당연하게 커피나 음료, 술은 팔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딱 그럴 수 있는 공간을 찾았는데, 그곳은 며칠 후에 철거를 하고 있었다. 새로 인수받아서 인테리어를 하게 된 모양이었다. 그걸 배우자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는 걱정을 했다. 제대로 된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의 위험함에 대해 나열했다. 아니 아니 여보, 내가 거기에서 당장 할 생각은 아니었어. 그냥 내가 원한 건 딱 그만큼의 공간이었단 거야. 그뿐이야. 하지만 여전히 나는 눈에 레이저를 켜고 보고 다닌다. 내 생각에는 내가 5년 안에 책방을 꾸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면밀하고 꼼꼼하게 보고 다니는 것이다.

 

 

 

 

사설이 너무 길었다.

 

 

 

염리동 주택가에 2014년 11월 29일 토요일에 문을 열어서 2016년 8월 31일 수요일에 문을 닫은 여행전문 책방 ‘일단멈춤’

 

책방에 대해 관심을 가질 무렵 나는 인터넷을 자주 뒤적거렸다. 어떤 것을 생각해야 하고,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며, 어떤 것을 결정해야 하고,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에 대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 당장 책방을 할 것이 아닌데도 갈증이 일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에서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라도 조금씩 보여주어 그 갈증에 목을 축였다. 특히 카드리더기에 대한 부분이 그랬다. 카드리더기에 대한 이렇게 자세한 후기라니. 풉.

 

설렘과 기대로 시작했던 책방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내 시간은 나지 않았고, 화장실을 갈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화장실을 언제쯤 가야 하는지에 대한 타이밍도 봐야 했고, 무엇보다 돈을 걱정해야 하면서 점점 궁색해져만 갔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책방은, 누구의 방해도 없는 무해한 공간인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이었다.

 

결국 책방을 운영하기 위해 책방 외에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저자의 모습은 나의 엄마의 모습을 오버랩시켰다. 내 엄마는 수년간 여전히 그러고 살고 있다. (세상에는 포기하고 싶지 않아도 포기해야 하는 게 주어져야 하는 법인데, 엄마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자식인 나를 포기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연락을 하지 않는다. 사실 그 때문에 나는 사업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기질에 엄마의 우악스러움이 포함되어 있을까 봐. 그리고 자영업의 고충을 모르지 않기에.) 어쨌든, 저자는 책방 임대차 계약 2년을 목전에 두고 책방을 폐업 대신에 잠정적 휴식기라는 이름으로 책방을 닫았다.

 

나는 책방을 열었다는 것보다, 책방을 닫았다는 것이 더 용감하고 대담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를 두고 ‘나는 실패한 것일까.’라고 책의 앞부분에 써두었는데,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을 실패라고 한다면, 나는 체중이 조금만 늘어도 실패하고, 꽃꽂이가 생각처럼 되지 않았을 때도 실패하고, 어제 공부한 것을 오늘은 기억하지 못했다고 실패했다고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실패는, 실패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패라고 자각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어나갈 때가 정말 실패라고 생각한다. 부족함을 알고 휴식기를 가진 후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이건 좀 별개인데 좀 더 깊이있게 생각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삶을 장난을 하듯 살고 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진중하게 사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오탈자 133. 내가 가진 하루 치 에너지를 ▶ 하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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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에듀윌 9급 공무원 6개년 기출문제집 국어 - 고난도 기출문제 부록+기출문제편+해설편 2020 에듀윌 9급 공무원 6개년 기출문제집
배영표 지음 / 에듀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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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는 어렵지만, 나는 국어는 자신 있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완전히 착각이었고 오만이었다. 이미 카페에서 국어의 몇 문제를 풀어보고 나는 기력이 쇠할 정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실력이 낮은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꼭 말장난처럼 느껴져서 도대체 이게 뭐야!라며, 애꿎은 문제들을 노려보기까지 했으니까.

 

 

문제집을 받아보니 여전했다, 문제들은. 당연하지, 기출문제니까. 풀어보았는데, 내가 찍은 것 말고는 전부 정답인 것 같은 환영까지 보였다. 하지만 문제를 풀고 해설을 읽어도 왜 그게 답인지 모르겠으니, 국어는 정말 최대 난제였다. 내가 이제까지 잘 안다고 자신했던 국어, 韓國語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공무원 준비가 아니더라도, 이건 공부를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게다가 기출문제에 한자는 왜 꼭 한두 문제는 끼어있는 것인지, 이건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한자도 함께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집을 풀다 보니, 가장 어려운 것이 국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공부를 하면 된다,라는 범위가 정해져있지 않으니 더욱 그랬다. 내가 읽는 말, 내가 쓰는 말, 내가 보는 말, 내가 듣는 말들이 모두 '국어'였다. 기출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제까지 나온 문제의 결이나 문제의 형식 등을 좀 더 면밀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에듀윌에서 나온 문제집은 문제와 해설이 각기 나누어져 있어서 보기가 편했다. 해설에 대한 부분은 내가 이해를 못 한 부분도 더러 있지만, 해설은 대체적으로 친절한 편이고,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해설에 대한 강의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정답이 틀리거나 해설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들긴 했는데, 저자의 교재 검토와 교재 감수 위원의 검토, 외부 전문가의 검토로 3중 감수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어 혼란을 좀 줄일 수도 있다는 것도 단연 장점으로 꼽힐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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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에듀윌 9급 공무원 6개년 기출문제집 한국사 - 고난도 기출문제 부록+기출문제편+해설편 2020 에듀윌 9급 공무원 6개년 기출문제집
신형철 지음 / 에듀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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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팍팍하다 느껴진다. 특히나 내 지금 직업을 가지고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으려나, 하고 생각해보면 아득하고 막연해진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직업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시기가 잦아지고 있어 변화가 필요하기도 하다. 내 일을 계속해서 이어가되, 조금 더 안정적일 수 있는 직업. 그건 다름 아닌 공무원일 텐데, 검색해서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져버렸다. 그래서 카페에 가입해 둘러보다가 우선 문제를 좀 훑어보자 하고, 보는데 난이도가 어떤지조차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냥 나는 많이 어려웠다.) 문제 20개 중에 아는 게 거의 없다니. 심지어 알던 것도 갸우뚱거리게 된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현재 한국사는 자격증만 있으면 패스가 되는 부분이어서 많은 공시생들은 시험보다 자격증을 우선 따놓고 시험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한 공시생은 시험을 볼 수밖에 없는데, 2020 에듀윌 9급 공무원 6개년 기출문제집 한국사에서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개년 9급(국가직, 지방직, 서울시, 사회복지직) 문제와 경찰직 문제를 분석하여 실어놓았기 때문에 조금 더 집중해서 공부를 할 수도 있을 수 있다.

 

 

 

사실 한국사라는 과목은, 한국인이라면 응당 알아야 하지만 한 나라의 역사를 전부 다 알기에는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연도별로 정리하며 공부를 한 게 아니라면 쉽지 않다. 그냥 그냥 아는 어느 정도로만 한국사를 대한다면 문제들을 보고 나처럼 당황하고 뒷걸음질을 칠 수도 있다. 이건 뭐지? 이건 뭐야?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결국 문제를 다 풀지도 못한 채, 해설을 펼쳐본다. 개인적으로 틀린 문제를 다시 틀리는 이유는, 문제와 답만 외우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출문제의 경우에는 해설이 친절한 경우를 본 적이 별로 없다. 우선은 답만 알고 넘어가~라는 식이었달까. 그런데 이 책 역시 기출문제이기 때문에 세세한 해설을 요구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해설 자체도 꼼꼼하게 되어있어 실제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읽어봐도 모르는 경우에는 에듀윌 홈페이지에서는 해설강의가 무료로 진행되고 있으니 강의를 들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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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매일 피아노를 칩니다 - 느리게 하지만 선명하게 달라지는 나를 만나러 가는 길
김여진 지음 / 빌리버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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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Rubato’는 언제일까, 생각해보면 너무 명확히 그때였다. 이곳에 와서 적응하며 살아내야 할 때.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래도 달래지지 않는 헛헛함이 쌓여 고름으로 번졌다. 내가 세상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소리로써 표현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느닷없이, 배우자에게 통보했다. “나 피아노를 배워야겠어.”

 

 

나는 피아노만 아니라면 어떤 악기든 상관이 없었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우선 부피가 커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악기를 살 생각은 없었지만, 내가 연주하고 싶을 때마다 꺼내기에 피아노라는 악기는 무리가 있었다. 대안으로 생각했던 것이 바이올린이나 우쿨렐레나 기타 정도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 피아노를 등록한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 피아노 학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바운더리를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피아노를 만났다.

 

 

나는 피아노와는 낯선 관계다. 서먹서먹함을 넘어 짝사랑하다 친구한테 빼앗겨버린 존재가 피아노의 존재였다.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엄마를 조르고 조르고 조르다가 드디어 등록을 하게 되었던 날. 그때의 설렘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일곱 살의 설렘. 피아노 앞에 앉아서 건반을 누르고 소리가 났을 때 느낀 그 전율. 그런데 그 설렘은 만 하루를 가지 못했다. 피아노를 다녀와서 나는 수두를 앓았다. 며칠을 꼬박 앓아야 했기에 피아노는 고사하고 방안에서만 틀어박혀 지내야만 했었다. 그리고 예상했겠지만, 나는 그 이후로도 피아노를 다니지 못했다. 학교에 가는 초등생의 나는 속셈학원을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피아노 안녕.

 

 

그리고 다시, 피아노 안녕.

 

 

 

 

고백하자면, 나는 피아노를 갈 때만 피아노를 친다. 레슨이 끝나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연습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니 피아노가 늘지를 않는다. 잘 하고는 싶지만, 굳이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피아노이다.

 

같은 맥락으로 출석하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하고 다녔고 실제로 물속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던 내가 키판 없이 배영을 하고, 어설프게나마 자유형을 하던 그 희열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크리스마스에 ‘Noel’을 치고 싶어! 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오만 원짜리의 저렴한 피아노를 구매하게 되었다. 노엘도 노엘이지만, 이제까지 배운 것들이 너무 빠르게 잊히는데 그게 너무 아쉬웠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집에 있는 피아노를 뚱땅거리지만, 나는 나아지고 있는 걸까. 글쎄......

 

 

 

그런데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는 말이, 피아노를 치고 있다는 말이, 얼마나 뻔뻔하고 염치없고 부끄러운 것인지 피아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여실히 느끼게 된다. 110. 오늘은 욕심 부리지 않아. 서툴렀던 부분을 서투르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이야. 라는 부분에서 그랬고, 두 마디만 천 번 반복을 한다는 부분에서도 그랬으며, 239. 실수가 잦아지는 구간에서 손가락이 헤매지 않도록 연습하고 곡에 몰입하는 법을 체득한다.는 부분에서 그랬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피아노를 대하고 있는가를 상기할 때마다 부끄러움이 몸을 에워쌌다. 내가 마주 앉아 있는 피아노에게 사죄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마저 들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내가 왼손 계이름을 읽을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만족하지 않아야 실력이 늘 텐데, 나는 이런 작은 것에 만족하고 있으니 도통 실력이 늘지 않는 걸까.

 

 

 

47. 피아노를 배우면서 잘못을 인정하는 법과 인내심을 다시 배운다.

나 같은 초보자는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악보에서 눈이 벗어나기만 해도 기다렸다는 듯 틀려버린다. 그럴 때마다 자꾸만 신경질을 넘어 화가 난다. 이건 분명 내 문제이고 피아노한테 화풀이할 일이 아닌데도, 피아노한테 화풀이를 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 대단한 곡을 치느냐하면 그건 또 아니다. 정말 뚱땅뚱땅하며 피아노를 치는 수준, 간단한 동요 하나를 치는데도 그렇다. 이런 내가 다른 곡들을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지레 겁을 집어먹는다. 다시 처음부터 한다. 다시, 다시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나를 다독인다. 그래도 안 된다. 계속 틀린다. (휴)

 

 

내가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 스타카토이다. 부드럽게 가다가 통통 거리는 게 이게 뭐라고 난 힘들지? 싶었는데, 48. 화음 스타카토가 너무 어려워요.란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었어!!! 아!

 

 

 

그리고 작가의 선생님을 보며, 나의 피아노 선생님도 생각났다. 피아노를 생전 처음 배우는 걸 알아서 기초부터 배우는 게 좋겠다고 먼저 말씀해주셨다. 게다가 내가 연습을 안 했다는 것을 알 텐데도, “리라 씨는 할 수 있어요. 조금만 더 연습하면 될 것 같아요. 연습하면 안 되는 건 없어요. 리라 씨만 포기하지 않으면 돼요.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요.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는 것보다 성인이 되어서 피아노를 배우는 게 더 대단한 거예요.”라고 늘 다독여주신다. 얼마나 상냥하고 다정한지... 그래서 그런지 자꾸 응석을 부리게 된다. 아마 선생님은 모르시겠지. 내가 선생님보다 나이가 한 살 많다는 것을. (또 몰라야 한다.) 나의 피아노 선생님이 지금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피아노를 계속해서 배울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무언가를 할 때에 가르쳐주는 사람 혹은 함께 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작가의 선생님도 만만치 않다. 왜인지, 나긋나긋하게 노래하듯 말할 것 같은 사람.

포르테(f) : ‘세게’가 아니라 ‘건강하게’

83. 호흡하세요. 숨 쉬어요.

88. “시작해볼까요? 털썩 주저 앉는 느낌이에요. 드레스 자락을 쥐고 왕 앞에 나서는데 속으로는 주저앉는 심정으로.”

224. “분명히 이 곡과 어울리는 감정이 있단 말이에요, 여진씨는. 그런데 주춤하고 멈칫하는 게 느껴져요. 여기에 포르테가 있잖아요. 일상에서 포르테를 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더라도 어떡해요. 여기에서만큼은 포르테로 표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쇼팽이 말하고 있잖아요.”

 

 

 

 

162. 나는 ‘울고 싶다’는 말을 속으로 진짜 자주한다. 너무 울고 싶다. 명백한 이유를 알 수 없이 답답할 때, 이유를 당장에 찾을 수 없으니 언어로도 구체화할 수 없는 감정이 치솟고 그 시점에서 울컥 올라오는 말이 ‘울고 싶다’인 거다. 절대 울지 않아도 그냥 매일 조금씩 울고 싶다. 기본값으로 웃음이 많아 잘 웃는데 속이 울이 많다.

 

작가랑 내가 너무나도 동일시되던 부분들1.

나도 울고 싶다라는 말을 정말 자주한다. 왜 울고 싶냐고 물어보면, 복잡한 마음을 말로 설명할 수 없어서.라고 대답해왔다. 그런데 그때마다 울어버린다면 나는 매일매일을 울어야 할지도 모른다. 길을 가다가 돌멩이에 발이 채이면 울고 싶은데, 그렇다고 울 수는 없지 않나. 기껏 시간을 들여 반찬을 했는데 그 반찬이 맛이 없어 울고 싶은데, 그렇다고 울 수는 없지 않나. 어떤 때는 공들여 화장을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울고 싶은데, 그렇다고 울 수는 없지 않나 말이다. (뭐, 사실은 그런 이유들로 운 적도 있음을 살짝 고백한다.) 근데 이런 사람이 또 있다니... 세상에...

나는 며칠 전 배우자가 술을 많이 먹고 들어온 날, 그 새벽에 샤워를 하고 수건을 욕실 앞에 두었는데 그걸 보고 울고 싶었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세상에 울고 싶은 일은 많지만, 그 어떤 일이 마음을 온통 흔드는 일이 아니라면 나는 절대 울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울고 싶다.

 

 

 

164. 공허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책을 읽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으면,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낀다.

 

166. “일도 해야 하고 원고도 써야 하고 피아노 연습도 해야 하고 사이버 대학에 재학 중이었는데 복학을 해서 인터넷 강의도 들어야 하고 할 게 진짜 많고 힘들어요. 피곤해요. 그런데 불행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작가랑 내가 너무나도 동일시되던 부분들2.

누가 나한테 일을 하라고 한 것도, 책을 읽으라고 한 것도, 글을 쓰라고 한 것도, 피아노를 배우라고 한 것도, 꽃꽂이를 배우라고 한 것도, 수영을 다니라고 한 것도, 한자 공부를 하라고 한 것도, 필사를 하라고 한 것도, 독서노트를 쓰라고 한 것도, 일기를 쓰라고 한 것도, 가계부를 쓰라고 한 것도, 도서관에 가라고 한 것도, 강제저축을 하라고 한 것도, 영화를 보라고 한 것도 (…중략…) 아니다. 그럴 사람도 없다. 나의 배우자는 내가 무엇을 하든 지지한다. 강요를 하는 것도 없고, 조언은 내가 원할 때에만 해준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내가 자처한 것이고, 내가 벌린 것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할 게 너무 많아서 힘들고 피곤하다. 할 게 많은데도 이외에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진짜 울고 싶다.

근데 아이러니하게, 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즐거울 때도 많다. 개중에는 억지로 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즐거우니까 한다. 매일매일 시간이 너무 빠르고, 좀 더 더디게 갔으면 좋겠다. 잠을 자는 시간도,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도, 멍 때리고 있는 시간도 아까울 때가 있다. 이 정도면 병인가 싶다가도,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쩌란 말이야. 하고 이내 체념한다. 즐거우면 됐다.

 

 

 

 

 

성실히 아름다운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하고 또 소리도 내본다. 입으로든, 성대로든, 손가락으로든, 그게 어떤 방식이든. 72.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잡기 위해 더듬거리는 그 손을 지지한다. 나는 또 피아노를 뚱땅거릴 예정이다. 피아노를 왜 배우냐는 말에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하고 싶으니까- 이다.

 

 

 

 

덧1. 이 책은 정말 신기하게도, 이 책을 읽은 분들의 서평까지도 열정적이다. 너무 재미있다. 계속 찾아 읽게 된다.

덧2. 현을 해머로 때리는 힘으로 소리가 난다. (<양과 강철의 숲>을 다시 읽어야 하나. 읽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덧3. 나도 외워본다. 발렌느. (고래 : 프랑스어로 발렌느 (Baleine))

 

 

 

오탈자 41. 이론 적인 부분은 금방 이해를 하고 따라오거든요 ▶ 이론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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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강승현 옮김 / 모모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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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보다 20대에, 그리고 30대가 들어서서 더욱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매우 광범위하면서 난해하게도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몇 년째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여전히 나는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정답이 없기에 더 어려운 문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씩 관찰하고, 내게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들을 꼼꼼하게 넣어둔다. 머릿속이든 메모든 마음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그렇게 하나가 모이고 또 하나가 모여서 내 삶의 방향을 계속해서 지시하고 실행하고 수정하고 다시 실행할 것도 안다. 그럴 때면 마음이 복잡해지니까 책을 펴야지.




마침 어릴 때 읽었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겼다. 책을 읽을 당시가 감사하게도 평화로운 이른 오전이었다. 오전에는 마음이 더없이 한량과 같아져서 생각을 좀 더 깊이 할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난생처음 말을 해보는 사람처럼 천천히 제목을 곱씹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지?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가 생각난다. 생존의 욕구, 안전의 욕구, 사회참여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바로 그것인데, 이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속한다. 이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인간은 스스로를 불행하다 여기기도 한다.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실려있으려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펼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하는 곳에 신이 있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바보 이반>

<촛불>

<에멜리얀과 북>

<무엇 때문에>


책에는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어릴 적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동화라고 생각하며 지냈던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여전히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나는 이 책에 내 마음대로 동화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유순한 이야기에서 삶의 기본기를 만난다. 인간의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이며,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진정한 행복은 어디 있는가 하는 물음과 그 답을 톨스토이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을 내 삶에 적용을 시키느냐 아니냐는 논외로 한다.




모두 유명한 이야기라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고, 나머지 이야기들은 ‘들은 적 있는 것 같은데...’ 정도였다. 심지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도 대략적인 줄거리만 아는 정도여서 새롭기까지 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와 <촛불>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아마 근래에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바탕을 좀 더 공고히 해주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 아닌가, 해서이다.



그중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네가 걸은만큼 네 땅이 될 것이다.”라고 나에게 제안한다면 나는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도 바흠과 같은 꼴이 되었으려나. 하지만 나는 실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바흠처럼 그렇게 많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을 것 같긴 하지만 그건 그 상황이 닥치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욕심을 많이 부리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걸 꽁꽁 숨기며 살아왔던 것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달래기 위해 주문처럼 외고 있는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인데,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을 알아챌 때마다 “이만하면 됐어.”라고 일부러 말하곤 한다.




살면서 욕심을 가지는 것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겪고 있다. 수많은 것에서 하나 정도는 욕심을 가져도 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하나가 내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사람 참 우습지. 적절한 조율과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람이기 때문에 51:49라 하더라도, 아니 50.1:49.9라고 하더라도 한쪽으로 좀 더 치우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잘 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여러 이야기들을 읽으며 삶을 살아가며 버려야 하는 것과 추구해야 할 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퍽 귀한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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