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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위로 - 위로는 정말 그런 걸지도 모른다, 엉뚱하고 희한한 곳에서 찾아오는 것
강세형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7월
평점 :
나는 위로를 받기보다
위로를 하는 쪽에 속해있었다.
위로를 하는 게
힘들게만 느껴졌다.
난 분명 그렇게
이야기하려던 것이 아닌데 말이 딴 데로 새어나간 경우도 분명 있었다.
그럴 땐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낫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하지만 내가 위로를
받는 상황이 되니 위로를 받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괜찮아요? 참
흔하더라고요. 나도 그런 적 있어요. 시간이 약이에요. 모든 게 다 잘 될 거예요. 따위의 말을 들을 때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고,
흔하다는 말에 너도 그
일을 겪을 예정이냐고 억지를 부리고 싶었고,
나도, 혹은 내
주변에도 그런 적 있다는 말에 너도 내 상황과 한치도 다르지 않고 꼭 같았냐고 묻고 싶었으며,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너만 그런 거 아니니 유난 떨지 마라.라고 꼬아듣기도 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에
얼마만큼 지나야 되는 것이냐며 소리 높여 묻고 싶기도 했고,
모든 게 다 잘 될
거예요.라는 말이 이미 다 끝나버린 상황에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렇게 말한 이들이
내가 이렇게 된 것이 고소해서, 재미있어서, 심심해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게 정말 위로였다는 것을.
그러나 정작 나는
위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어떤 식으로라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내가 꺼내지 않았는데
불쑥 꺼내며, 자꾸 나를 위로하려고 드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서 자꾸만 도망가 버리고 싶었다.
정말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오늘 밥은 뭘
먹었느냐고 물어봐 주는 것.
아무 말 없이 손잡아
주고 안아주는 것.
내 상태와 감정을
인정받고 이해받는 것.
그게
전부였다.
책을 읽을 수 없는
날들이 점점 길어졌다.
초반에는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면, 그때뿐이라는 사실을 느낄 때면 얼마나 공허해졌는지 모르겠다.
읽다가 말고 읽다가
말고 하는 날들이 지속되면서 책을 손에서 놓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눈에 띈 책이
있었다.
강세형 작가의
<희한한 위로>
강세형 작가의 책을
가지런히 모아둔 책장의 한편을 떠올린다.
에세이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처음의 느낌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책을 늘 사서 책장에 꽂아둔다.
제목에서 풍겨오는
유혹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아마 다른 작가의 같은
제목이라면 아주 많이, 꽤 많이 망설였을 텐데, 강세형 작가니까.
예쁜 카페를 찾았다.
그곳에 난 <희한한 위로>를 가져가 그 위로들을 꼭꼭 씹었다.
24. 나의 구내염이
심해지기 시작했을 때, 나를 외롭게 만드는 말이 하나 있었다. “나도 그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피곤하면 나도 그런다,
아니 누구나 다 그러는 거 아니냐.’ 그럼 난 별것도 아닌 일로 징징거리는, 꾀병 부리는 애가 된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어쩐지 좀 억울하기도 했다. 그냥 한두 군데 헐어서 아프다고 하는 게 아닌데, 매번 입안을 보여주며 ‘당신도 정말 이만큼 셀 수도 없이 많이,
심하게 허나요?’ 이럴 수도 없고. 그래서 언젠가부턴 부러 안 아픈 척 애를 쓰기도 했다.
위에 서술한, 내가
느꼈던 감정이었다.
나도 그랬어. 누구도
그랬어. 라는 말에, 너도 나와 상황이 꼭 같았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나 역시 그런 말에
대해 입을 닫아버렸다.
같은 일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상황이라는 게 존재한다.
나 역시 J와 함께
겪은 이 일을, 우리가 받은 상처가 꼭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덜하고 더하고의
차이가 아니라 서로 처해있는 상황이 달랐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우리 똑같이 힘들지가 아니라,
그때의 너는 얼마나
힘들었니. 하고 그때의 각자를 품어주는 일이다.
저자 강세형은 베체트
병이라는 희귀병 유전인자를 가진 환자였다.
이제까지 본인이 뭘
잘못하고 잘 못해서 자꾸 구내염이 생기는 줄 알았는데, 베체트 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조금 웃었다고 했다.
굳이 따지자면
베체트라는 병이 잘못하고 잘 못한 것이었는데,
그동안 혼자 관리를 잘
못해서 덜 노력해서 등등의 이유로 얼마나 자책하고 살았는지에 대하여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81. 나는 운이 좋은
삶을 살아왔던 게 아닌가 싶다. 아슬아슬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내 깜냥을 혼자 버텨낼 수 있는 삶을 살아왔던 거니까.
82.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이, 그것도 연달아 우르르 몰아치자 나는 한없이 작아졌고 무력해졌다. 혹시 내가 가진 운은 그동안 다
써버렸고, 이제는 견뎌야 할 날들만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산다는 것이 한없이 귀찮아지기도 했다. 그즈음 그런 나를 어색해하며 멀어져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더 내게로 바짝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도움을 받는 것에도 우울감을
느꼈다.
83. 이래도? 이래도
네가 견딜 수 있어?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엄마의 갑상선암 수술이 있었고, 봄에는 우리 부부에게 일이 있었다. 초여름에는 아빠의 뇌경색이 있었다.
책의 저 문구를 보며
병원에 있을 때부터 유일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블로그 이웃님에게, 내 상황에 대해 슬프지? 안 슬퍼? 그럼 이건? 아니면 이건
어때? 라며 굉장히 심술궂은 신이 내게 장난을 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썼던 적이 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저 생각을 했던 저자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해보며 그때의 저자를 조금 도닥여주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난 며칠 전에
외할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153. 그래서 늘
어렵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은 너무 어렵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잘 안 된다. 내가 이 선택을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모두 돌려보고, 장단점을 다 뽑아보고, 내가 그 단점들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생각은 끊임없이 돌아간다. 그
과정을 수없이 돌려봐도 내키지 않는 일에는, 좀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내가 선택을
하는 것을 유보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게 갑작스럽게 나타난 건 아니고 몇 년 됐다. 선택을 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정적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인데, 이걸 선택 장애라고 표현하기에는 애매하기도 하다. 이게 문제가 되는 까닭은, 큰일들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소하고 작은
일에서도 내가 선택을 잘 하지 못한다. 음 먹을까 말까 이런 부분에서도 J가 먹으면 되지! 하면 뭔가에 허락받은 애처럼 그래! 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봐야지 해놓고 그냥 늘 넘어갔었는데, 아무래도 좀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바보가 되는 기분이야.
184. 아무리
그곳으로 돌아가고 또 돌아가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기억에서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86.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기억하는 겁니다.”
“아니요. 경험하는 게
아니라,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이 그저 재생되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과거의 그때로
돌아가
그 상황을 겪고 또
겪으며, 나는 과거 속을 살고 있었던 거니까.
나를 정말 힘들게
했고, 힘들게 하는 것.
모든 상황들이 그
공간의 나를 데려다 놓는 통에 너무나도 힘들었다.
조금씩 발을 빼서 걸어
나오는 방법을 알아야지.
227. 운이 좋아서
나는, 나의 마을을 발견했다. 식물들이 가득하고, 내가 좋아하는 책과 영화가 있는, 그리고 내가 가장 힘든 순간에도 내 곁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마을을 발견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이 마을은 어쩌면 내가 발견하기 훨씬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내가 나를 잘 몰라서, 마음만 너무 바빠서, 그저 힘들어하기만 하는 데 지쳐서, 이 마을을 돌아볼 생각조차 못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어쩌면 그것이 나의 수많은 시행착오 중에 가장 큰 착오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그리고 지금의 내 상황을 돌아보며, 그동안 내가 위로랍시고 마음을 할퀴었던 말들에 대해 깊숙이 생각하며 사죄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사람은 늘
혼자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지에 대하여 고찰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바랐던 위로는 내가 말을
하고 싶어질 때까지 옆에서 가만히 기다려주었다가 말을 하면 고개를 끄덕여주고 안아주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말하기 싫었고, 말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보내며 침묵으로 일관해 주기를 부탁했었다. 제발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었다. 말없이 곁에서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많이 고마웠다. 싫은 사람들도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너 까짓것라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되었다.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햇빛이 좀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한다.
오랫동안 축축해져있던
손을 햇빛에 보송하게 말리고 고개를 들면, 다른 손이 있다.
당신과 내가 기꺼이
손을 잡는 날,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안아주겠다.
언젠가부터 꿈꿔온, 내
가장 큰 고민이자 걱정인 “오늘 저녁 뭐 먹지?”의 소망을 품고 오늘도 난 잘 지낼 예정이다.
오탈자 210.
질리는 법이 잘 없다 (중쇄 찍을 때 이건
수정을 좀 해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