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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언젠가 백수린이 라디오 방송에 나왔는데, 그 방송을 다 듣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한 말만 들었습니다. 백수린은 자신은 어두운 생각을 더 많이 하지만, 글은 밝게 쓴다더군요. 그 말 듣고 나도 그런데 했습니다. 그때 무슨 책 때문에 방송에 나왔는지 잘 모르겠네요. 책이 아니고 다른 것 때문에 나왔을지도. 다시듣기 들어볼까 하다가 안 들었습니다. 백수린 소설은 언제 처음 봤는지 모르겠는데 젊은작가상에서 처음 봤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에 만난 소설집 《여름의 빌라》는 세번째인 듯한데, 앞에 나온 두권은 못 봤습니다. 짧은 소설이 담긴 건 만났군요. 거기에는 따스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했습니다. 그것보다 앞에 나온 소설집에는 조금 어두운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동안 젊은작가상이나 소설 보다를 봐서 그런지 여기 실린 소설에서 세 편이나 봤던 거더군요. <시간의 궤적>과 <고요한 사건>은 세번째로 만났네요. 이렇게 여러 번이나 보게 된다면 젊은작가상이나 소설 보다 안 보는 게 나을지 하는 생각도 잠깐 했는데, 그런 소설집을 보면 몰랐던 소설가를 알기도 해서 괜찮기도 합니다. <고요한 사건>은 <악스트>에서 처음 봤습니다. 이 말 이 소설이 담긴 젊은작가상 봤을 때도 했겠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의 궤적>만 세번째 보는 건가 했는데, 이거 쓰다가 <고요한 사건>도 세번째였다는 게 생각났습니다. <시간의 궤적>과 <고요한 사건>에는 비슷한 거 하나 있네요. 친하게 지내다 멀어지는. 이런 건 다른 소설에도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고요한 사건>과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을 비슷하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춘기 아이가 나오는 걸로. 중학생이 되면 어른일까요.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에 나오는 유나는 중학생이 되고 성에 관심을 가진 것도 같습니다. 친한 친구가 있어도 그 친구한테는 말할 수 없는 걸 아주 친하지 않은 다미한테는 말했습니다. 다미는 학교에서는 노는 아이로 알려졌습니다. 사람은 짧은 시간만 만나게 되리라는 걸 생각하기도 할까요. 그건 나이를 먹고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고요한 사건’이나 ‘아키시아 숲, 첫 입맞춤’에는 그런 말이 나오더군요. 그런 말은 너와 나를 가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시간의 궤적>에서 ‘나’와 언니가 멀어진 것도 너와 나로 갈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처음에 두 사람은 파리라는 낯선 나라에서 만나고, 서로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고 파리에 갔으니. ‘나’는 공부하다가 어려움을 느끼고 사귀는 사람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프랑스 사람과 결혼하기로 해요. 언니는 파리로 주재원으로 일하러 왔다가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져요. 한사람은 프랑스에 남고 한사람은 프랑스를 떠나는 거지요. 아무리 좋아서 한 결혼이어도 살다보면 힘들기도 하겠지요. 그런 투정할 사람도 없고, ‘나’는 언니한테 투정을 부린 건지. ‘나’는 자신 때문에 언니와 멀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낫겠지요. 서로 먼 곳에 살아도 연락하고 살 수 있었을 텐데. 바로는 아니어도 ‘나’가 언니한테 연락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때는 예전과 같은 가까움은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연락 안 하고 어떻게 사는지 멀리서 듣는 게 나을지.
다른 나라에서 만난 사람과 오래 연락하고 사는 사람도 있겠지요. <여름의 빌라>에서 주아는 스물한살에 독일에서 잠시 만난 베레나와 한스 부부와 오랫동안 연락하기도 했어요. 주아가 지호와 결혼하고 독일에 다섯해 동안 살 때는 가까이에 있었네요. 가까운 사람과 사이가 삐걱거릴 때 다른 사람을 만나면 좀 나아지기도 할까요. 주아는 남편 지호와 조금 삐걱거렸는데 베레나가 시엠레아프에 빌린 빌라에 오라고 하자 거기에 갔어요. 그건 지난해 여름이었군요. 거기에서 보내는 시간은 거의 좋았지만, 돌아올 때쯤에는 별로 안 좋았어요. 저는 다른 나라에 가 본 적은 없지만, 그런 곳에 가면 그곳 사람이 별나게 사는 걸 보기도 하잖아요. 비가 많이 올 때는 호수가 흘러넘쳐 수상 가옥에 사는 사람 있지요. 그 지역 특성 때문에 그런 거지만. 전 지호가 말한 구경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한 것도 맞고 한스가 말한 관광객이 와서 그곳 사람이 산다고 한 것도 맞다고 생각해요. 지호는 사는 게 힘들어서 자기 처지에서 캄보디아 사람을 본 건 아닐지. 나중에 베레나가 주아한테 편지를 보내는데 거기에는 슬픈 일이 담겨 있었어요. 사람은 자신이 힘들면 다른 사람을 잘 못 보기도 하죠.
서로 다른 사람 엄마와 할머니지만 비슷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아니 <흑설탕 캔디> 할머니가 나중에 태어났다면 <폭설> 속 엄마가 되지 않았을까 했습니다. ‘흑설탕 캔디’ 할머니는 부잣집에 태어나 공부를 하고 대학에도 갔지만 공부를 다 마치지는 못하고 부모가 결혼하라고 해서 했습니다. 남편이 오래 아프다 죽고는 이제 편하게 살아야겠다 할 때 둘째 며느리가 사고로 죽고 아이들을 돌보게 됩니다. ‘나’는 할머니를 다른 할머니와 다르게 여기기도 했어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네번째 기일에 동생은 ‘나’한테 할머니가 프랑스에 살 때 이웃인 브뤼니에 씨와 사귀었다고 합니다. ‘나’는 할머니 일기장을 보고 그때 일을 생각해요. 다른 나라에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피아노와 음악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와 브뤼니에 씨는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런 일을 할머니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혼자 간직했군요. 이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다니. 이 소설에 나오는 할머니 멋집니다.
자신의 사랑을 찾아 떠난 <폭설> 속 엄마도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힘들었겠지만. 엄마가 딸인 ‘나’를 생각했겠지만, 자기 사랑을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닐지도 모르지요. ‘나’는 엄마를 다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자신이 엄마가 되고 그런 엄마를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에서 주희는 ‘폭설’ 속 엄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주희는 지금까지 체념하고 살았는데, 빨간색 지붕 집을 부수는 걸 보고, 친구인 한나 후배 무용수를 만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음이 자리한 듯합니다. 그렇다고 바로 뭔가 바뀌지는 않겠지요. 주희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아니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할지도 모르지요. 저는 그쪽이기를 바랍니다.
앞에까지 쓰고 <아주 잠깐 동안에>는 안 썼다는 거 알았습니다. 그건 많은 사람이 한번쯤 겪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도왔지만, 힘이 들어서 이걸 왜 했지 하는. 시간이 흐르고 그런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하겠지요. 남을 도울 때는 어디까지 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안 해도 어중간해도 마음이 안 좋기도 하잖아요. 이 소설에 나온 ‘나’는 어중간했던 것 같네요.
희선
☆―
오래전, 스스로 너무 늙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아직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할머니는 늙는다는 게 몸과 마음이 같은 속도로 퇴화하는 일이다 생각했다. 몸이 굳는 속도에 따라 욕망이나 갈망도 퇴화하는.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몸뿐이라는 사실을. (<흑설탕 캔디>에서, 1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