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닝 데이 - [할인행사]
안톤 후쿠아 감독, 에단 호크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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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에 들어가 형사로서 좀 더 굵게 나아가고 싶은 신참 제이크(에단 호크)를 기다리는 알론조(덴젤 워싱턴)는 그의 피부색처럼 강한 느낌이 난다. 하루 동안 제이크는 이 검은빛 피부의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이 바닥의 냄새와 풍경을 맛봐야 한다.

이 바닥은 무슨 바닥이냐? 알론조의 입장은 이렇다. 큰 줄기로는 그 역시도 마약 범죄에 맞서 그것을 줄이거나 관리하는 거지만, 잔 줄기는 어느정도 융통성을 가지고 눈도 감고 타협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즉, 법원칙대로만 한다고 효과적으로 그러한 일을 수행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가령, 큰 것을 물기 위해 작은 것은 그냥 봐주면서 정보도 얻는다거나, 영장 없이 가택을 수색하는 일. 더 나아가 거물 마약범의 돈을 털어 사인을 조작하고 서로 돈을 나눠 갖는 막가는 짓까지 말이다. 물론 알론조가 선택한 이 방법이 단지 일의 효과적인 수행력을 높이기 위해 시작한건지, 그러다 언제부터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도 너무 눈을 감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여튼 이 바닥에서는 통하는 알론조의 아우라에 약간 기세가 눌린 제이크는 '원칙 고수'를 십자가 마냥 가슴에 대고 알론조에 대항한다.  하지만 번번히 알론조의 능변과 극한 상황에 몰리면서 잠시 자신의 자리를 이탈, 조금씩 알론조의 입김에 스며든다. 여기서 기억나는 인상적인 장면과 대사는 이렇다. 알론조가 제이크에게 소개한 몇몇 어르신들?이 제이크를 보면서 하는 말이 대충 요약하자면, "너는 젊은 시절 알론조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즉 알론조도 너처럼 처음에는 법과 정의, 그리고 신념이 가득찬 신참 형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남들보다 더 이 바닥에 적응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성장했다는 뉘앙스가 아니겠는가?

알론조는 무지막지한 인물은 아니다. 그래도 몇번 기회는 준다. 하지만 제이크가 끝까지 거부한다면 그도 어쩔 수 없이 최종 선택을 할 것이다. 제이크는 어쨌든 댓가를 치러야 하고, 알론조 역시 댓가를 치러야 한다. 각자 자신이 선택한 방법 그 안에는 역시 서로 다른 운명의 순서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사소해 보이는 작은 실수 혹은 작은 선행이 나중에 한 사람의 큰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건, 다른 영화들에서도 자주 다뤄지는 것인데, 늘 신선한 흥미를 준다.

헐리우드 영화는 강하고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영상을 관객들에게 볼거리로 선사하지만, 마무리는 늘 판에 박은듯이 어떤 암묵적인 룰을 따른다. 이 영화는 과연??

 

감독 안톤 후쿠아(Antoine Fuqua)는 흑인인데, 그래서 그런지 흑인 뒷골목의 풍경이나 거기 나름의 팽팽한 힘의 질서를 잘 전달해준다.

덧붙임-스포일러를 노골적으로 안 드러내고 쓰려다보니, 쭈욱 가다 멈춘 느낌이 난다. 그래도 다 말해버리면 앞으로 볼 사람들한테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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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0일 로버트 알트만이 세상을 떠났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공로상을 받았지만, 그는 헐리우드에서 이질적인 진영에 속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칸느와 베니스 등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았지만, 아카데미에서는 감독으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한국 전쟁이 배경인 영화 매쉬(1970년작)를 비롯해서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 긴 이별(The Long Goodbye), 내쉬빌, 세 여인(3 Women), 플레이어, 숏 컷, 패션쇼, 고스포드 파크, 더 컴퍼니 등 귀에 익숙한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다. 

영화에 대한 자기만의 고집을  갖고 영화사에 로버트 알트만이라는 하나의 분명한 주름을 만들고 갔음에 그 뒷모습이 아름답고 또한 무겁게 느껴진다.

그러나 스크린 위에 투사된 필름의 깜빡임도 멎으면 왠지 모르게  쓸쓸해지듯, 한 존재의 사라짐 앞에 그리고 평소 관심을 갖던 감독이라 묘한 감정이 생긴다.

영화 긴 이별의 마지막 장면 - 그 큰 나무들 사이로 비스듬히 뻗은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이 그에 대한 마지막 페르조나의 영상으로 떠오른다.  정말 긴 이별처럼.. 잘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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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과 정신의학 - 라캉 이론과 임상 분석
브루스 핑크 지음, 맹정현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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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옮겨진 혹은 우리나라 학자?들이 직접 쓴 라캉에 관한 책들이 점점 늘고있다. 허나 아쉽게도 라캉의 손에서 나온 일차적인 텍스트(육화된-텍스트화된 음성)는 번역본으로도 흔치 않고 우리말로 괜찮게 옮겼다는 소문 역시 듣지 못했다. 

프랑스어를 잘 한다면 찾아서 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영역본을, 그것도 수월치 않다면 어떻게 해야 라캉과의 접속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그 중 하나가, 라캉을 잘 읽어내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닐까? 비록 그것 역시 간접적이긴 하지만, 한계 상황에서 최대치를 끌어 올리는 방법이 되겠다.

핑크가 들어가면 왠지 따스하니 좋다. 핑크 플로이드도 좋고 핑크팬더도 좋다. 이런 억지스런 핑크빛 장난으로 소개하는 사람이 바로 브루스 핑크다. 물론 Fink지만.. 

흔치 않은 라캉 임상에 관한 책('라깡과 정신분석임상'이라고 조엘 도르의 번역본도 있다)인데, 저자의 과잉된 지적 유희 없이 차분히, 그리고 생각보다 읽기에 수월하다(앞 부분에 비해 뒤가 조금 어렵다). 물론 번역도 잘 된 책이다. 아마 이 책이 국내에서 라캉책을 번역하는데 용어 선택에서 좋은 본보기가 됐을 것이다.

임상에 관한 책이라 하니, 환자(분석주체)들의 다양하고 비일상적인 흥미로운 사례나, 정신분석가와의 면담 내용들이  펼쳐져 있나 생각도 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례 보다는 라캉 임상의 일반적인 접근을 다루기에 그러한 것들도 설명에 녹아있다. 어떻게 보면 임상을 위한 (혹은 둘러 싼) 이론을 그리는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라캉에 관심이 있고, 믿을 만한 학자의 (어렵지 않은) 잘 된 번역서를 원한다면, 이 책은 꽤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책 뒤에 찾아보기(색인)가 없어 아쉽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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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라캉의 이론에 대한 다섯 편의 강의
나지오 지음, 임진수 옮김 / 교문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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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에 관한 책들이 번역서로 혹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써서 많이 나오고 있다. 번역서는 지젝과 그의 동료들에 의해 '(실전) 응용'의 측면에서 다뤄진 것들이 눈에 띈다. 국내 학자들이 생산하는 라캉(텍스트)은 이미 나온 것들을 다른 식으로 되먹임하는식의 모양새가 많다.  그나마 명쾌하게 라캉을 전달하는지도 일반 독자로서는 확신하기 어렵다.

이 책은 프랑수와즈 돌또 이후, 정신분석학을 이끄는 사람중에 하나로 꼽히는 스페인 출신의 나지오가 쓴 것이다. 일단 '정신분석학' 이라는 터에서 어느 정도의 '내공'을 뿜어내는 고수임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라캉이 프로이트를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않았듯이, 나지오도 적당한 편법으로 때에 따라 라캉을 비라캉적(설명)으로 펼치면서 읽는 사람들에게 이해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즉 라캉이 겨우 벗어난 프로이트의 그늘을 다시 라캉 위로 드리우면서 가시적인 이해를 위해 중층적이고 정밀한 차원을 잠시 접는 방식 말이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에너지' 개념을 라캉에 주입해 (방편지로) 활용하는 부분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나지오도 그 방법의 장단점과 한계를 충분히 알고 있고, 독자에게도 주지시키면서 노련하게 진행한다.

이 책이 우리가 쉽게 접하는 라캉에 관한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점은, 라캉의 표면이 아니라 그 '깊이의 골'을 다양하게 건드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 다른 레벨의 차원에서 라캉과 만나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 번역된 것이 아니라서, 용어에 다소 혼란이 있을 수 있다. 가령, 분석자, 분석가, 피감독 분석가(p.36 주 참고)가 헷갈린다. 분석가는 정신분석가를 말하고, 분석자는 환자인데, 환자라는 표현대신 라캉이 선호하는 용어인 분석주체(가령 '라캉과 정신의학' p.29, 브루스 핑크 지음, 맹정현 옮김)나 피분석자(가령 '끝낼 수 있는 분석과 끝낼 수 없는 분석' 프로이트 지음, 이덕하 옮김)로 하기도 한다. 요새는 대개 '주이상스'로 번역되는 것이 이 책에서는 '향락'으로, 또 '시니피앙(기표)'은 어색하게 '기호표현'으로 되어 있다. 라캉 용어가 잘 자리잡지 못한 과도기에 번역된 것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그러한 것을 잘 정리하고 본다면, 읽기에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마지막 장에는 나지오가 라캉한테 직접 초대받아 한 강연이 실려 있는데, 이는 간접적으로 라캉도 나지오를 인정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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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의 7가지 개념
나지오 / 백의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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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출신 나지오(Juan-David Nasio)가 정신분석학의 일곱 가지 주요 개념을 프로이트와 라캉을 통해 설명한 책이다. 거세, 남근, 나르시시즘, 승화, 동일시, 초자아, 폐제의 순서로 이어진다. 각 장은 먼저 프로이트가 그러한 개념을 어떻게 고안, 혹은 사용했는지를 밝히고, 이것을 라캉이 무엇을 비판하고 수정해서 새롭게 전개하는가를 보인다. 그리고 나서 프로이트와 라캉의 문헌에서 발췌한 구절을 옮겨 실어서 선명하고 간략한 반복 학습?의 효과를 준다. 읽는 사람을 배려한 다소 교과서적인 구성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라캉의 책들이 많은데, 대개 마치 물에 떠 있는 라캉의 현란한 풍경을 묘사한다면, 이 책은 그 밑으로 침잠해 들어가 프로이트를 한번 제대로 짚고 그 반발력이 수면위 라캉을 통해 어찌 드러나는지를 생동감있게 그린다. 쪽수가 많지 않은 책이지만, 각 개념의 한줄기 한줄기를 섬세하게 다듬는다.

라캉을 조금 맛보고 머리 속에서 정리 안된 개념들이 빙빙 돈다면, 이 책을 통해 좀 더 잡힐듯한 윤곽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나지오)가 프로이트와 라캉의 '겉' 을 단지 순수하게 전달하는 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소화한 것을 맛깔나게 그리고 제대로 풀어내는 학자의 내공을 품고 있음이다.

내가 본 책은 개정판인데, 번역자(표원경)는 몇몇 용어를 초판과 달리 향유,향락은 주이상스로, 배제는 폐제로 바꿨다고 서두에서 말한다. 작은 실수로 보이는데, 책 뒷표지에는 아직 배제로 찍혀 있다. 번역은 뭔가 자연스럽게 깊이 후벼내는 맛은 없지만, 그래도 읽기에 불편하지 않게 성실하게 옮긴 것 같다. 참고로  'object a'는 '타대상'이라 했는데, 이 용어는 그냥 '대상 a'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마찬가지로 '남근'은 그냥 '남근'으로 쓰일 때와 좀 더 상징적 개념에서는 '팔루스'로 번역하기도 하는걸로 안다, 최근에 라캉 용어가 전보다 많이 정리된감이 있지만, 더 적합한 우리말을 빨리 찾아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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