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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라캉의 이론에 대한 다섯 편의 강의
나지오 지음, 임진수 옮김 / 교문사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라캉에 관한 책들이 번역서로 혹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써서 많이 나오고 있다. 번역서는 지젝과 그의 동료들에 의해 '(실전) 응용'의 측면에서 다뤄진 것들이 눈에 띈다. 국내 학자들이 생산하는 라캉(텍스트)은 이미 나온 것들을 다른 식으로 되먹임하는식의 모양새가 많다. 그나마 명쾌하게 라캉을 전달하는지도 일반 독자로서는 확신하기 어렵다.
이 책은 프랑수와즈 돌또 이후, 정신분석학을 이끄는 사람중에 하나로 꼽히는 스페인 출신의 나지오가 쓴 것이다. 일단 '정신분석학' 이라는 터에서 어느 정도의 '내공'을 뿜어내는 고수임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라캉이 프로이트를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않았듯이, 나지오도 적당한 편법으로 때에 따라 라캉을 비라캉적(설명)으로 펼치면서 읽는 사람들에게 이해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즉 라캉이 겨우 벗어난 프로이트의 그늘을 다시 라캉 위로 드리우면서 가시적인 이해를 위해 중층적이고 정밀한 차원을 잠시 접는 방식 말이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에너지' 개념을 라캉에 주입해 (방편지로) 활용하는 부분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나지오도 그 방법의 장단점과 한계를 충분히 알고 있고, 독자에게도 주지시키면서 노련하게 진행한다.
이 책이 우리가 쉽게 접하는 라캉에 관한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점은, 라캉의 표면이 아니라 그 '깊이의 골'을 다양하게 건드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 다른 레벨의 차원에서 라캉과 만나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 번역된 것이 아니라서, 용어에 다소 혼란이 있을 수 있다. 가령, 분석자, 분석가, 피감독 분석가(p.36 주 참고)가 헷갈린다. 분석가는 정신분석가를 말하고, 분석자는 환자인데, 환자라는 표현대신 라캉이 선호하는 용어인 분석주체(가령 '라캉과 정신의학' p.29, 브루스 핑크 지음, 맹정현 옮김)나 피분석자(가령 '끝낼 수 있는 분석과 끝낼 수 없는 분석' 프로이트 지음, 이덕하 옮김)로 하기도 한다. 요새는 대개 '주이상스'로 번역되는 것이 이 책에서는 '향락'으로, 또 '시니피앙(기표)'은 어색하게 '기호표현'으로 되어 있다. 라캉 용어가 잘 자리잡지 못한 과도기에 번역된 것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그러한 것을 잘 정리하고 본다면, 읽기에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마지막 장에는 나지오가 라캉한테 직접 초대받아 한 강연이 실려 있는데, 이는 간접적으로 라캉도 나지오를 인정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