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 우리의 두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외 지음, 신상규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와 멀리 떨어진 저 우주 천체는 오래 전부터 관찰해 왔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우리 머릿속을 살펴보는 건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그냥 물리적인 두뇌 겉을 살펴봐야 정신과 마음에 대한 것을 알수는 없는 노릇이다. MRI 같은 자기공명영상으로 두뇌 자기장을 측정하여 시각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첨단 장비들이 생기면서, 두뇌에 대한 탐색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제는 특정 생각(단어)에 의해 변화하는 두뇌의 풍경도 엿볼 수 있지 않은가.
이 정도 단계에 왔다면, 가령 어떤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보일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 최선일까? 정신분석을 통해 어떤 억압과 자기방어기제를 살펴서 긴 시간에 걸친 언어치료에 맡겨야 하는지, 아니면 병원에서 뇌의 물리적인 이상유무를 검사하고 이를 통해 과학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일단 후자의 방법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이 책의 저자인 라마찬드란 박사와 같은 사람을 만나길 기대해 보는 것이 좋겠다. 이 책 <두뇌 실험실>에서 박사의 모습은 접근 가능한 실험에 대해서는 경험을 중시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추리와 같은 사변의 역할도 긍정적으로 보는 합리적이면서 또한 진리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가진 인물로 보인다.
이 두터운 두뇌 실험실 안에는 여러 다양한 이상두뇌와 관련된 임상사례들이 실려 있다. 신체의 일부를 잃었는데도, 그 부분을 마치 있는 것처럼 느끼는 '환상사지'와 자신의 실제 부모를 가짜라 여기기 까지하는 '카프그라 증후군', 일반적인 정신 능력이나 지능은 떨어지지만 특정 능력이 과도하게 발달된 '서번트'(영화 <레인맨>에서처럼) 그리고 다중인경장애 등이다. 특히 우반구 손상 환자 중에서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실제로 착각하고 그것을 잡으려고 거울 안으로 손을 집어 넣으려는 행동을 하는 '거울나라 증후군'은 꽤 놀라운 사례였다. 저자는 루이스 캐럴이 뇌계통의 질환이 있었는데, <거울나라의 앨리스>처럼 좌우 반전과 거울에 대한 집착이 이와 관련이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추측하기도 한다. 여기서 저자는 비범한 상상을 하나 더 겹쳐 놓는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차원이 높은 외계인들이 지구인의 모습에서 마치 우리가 이상 행동을 하는 사람(환자)들을 보면서 의아해 하듯이 그럴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책상이나 다른 사람의 팔(인공으로 만든 팔)에서 자기 신체의 감각을 지각할 수 있는 (직접 해볼 수 있는) 방법까지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철학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데, 저자는 우리의 신체상이 완벽하게 결속된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실험(속임수)을 통해 뒤바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결국 우리가 견고하고 익숙하게 여기는 신체가 어쩌면 자아가 잠시 거처하는 껍질에 불과하다는 매우 허무한 결론으로도 이끈다(영화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
프로이트에 대한 언급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대개 이런류의 책들에선 과거 심리학적 연구에 대해 새로운 과학적 접근을 통해 오류를 찾아 즐기는 악동취미를 보여주곤 하는데, 라마찬드란 박사는 일단 프로이트(특히 심리적 방어기제에 대한 이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인정을 해준다. "심리적 방어기제의 실재성과 그것이 인간 본성에서 담당하는 중추적 역할에 대해 처음으로 확신하게 되었다."(p.288)며 그의 선구적 연구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상 행동에 대해서는 심리적인 접근에 앞서 두뇌의 물리적 이상 유무를 살피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저자는 생각할 것이다.
마지막 12장은 '자아는 두뇌의 어디에 존재하는가?'라는 심오한 제목을 가졌다. 여태까지는 사례들을 중심으로 저자의 설명이 어우러졌다면, 이 부분에서는 저자가 좀 더 용기를 내서 자신의 생각을 과학에 의지해서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사고의 무게가 실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비물질적인 영혼이 있어 그 신비한 지점에서 관조하듯이 우리와 우주를 지켜본다는 낭만의 기대가 단지 두뇌 안의 뉴런 활동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건 어찌보면 암울한 환원주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마찬드란 박사는 여기에서 우리가 어떤 특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우주 속 하나의 사건이라는, 즉 거대한 과정에 참여하는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과 이를 통해 겸손함을 자각하는 새로운 종교성을 발견 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다).
이 책의 서문(저자의 말)에는 우주론에 대한 인간적인 믿음에 기반한 천동설이 만연할 때, 갈릴레오는 어떤 복잡한 방정식이나 깊은 사변에 빠져 고민하는 대신, 망원경으로 직접 천체를 관측해서 그 보여진 사실을 통해 지동설이 사실임을 알아낸 일화를 적고 있다. 저자 라마찬드란 박사도 마치 신경 과학의 갈릴레오인양 관측 가능한 두뇌를 통해서 단박에 알 수 있는 것들을 강조한다. 경험 가능한 것들을 어떤 이론이나 사색으로 채우려는 것은 어찌보면 더디고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우리의 두뇌를 갈릴레오의 망원경으로 보려는 라마찬드란 박사의 실천적인 과학적 태도와 그 결과를 통해 우리를 다시 발견하려는 탐구욕이 녹녹하게 베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대중과 함께 나누려는 열정까지도..
[번역(신상규 옮김)은 전체적으로 읽기 수월하게 된 거 같다. 책을 보다가 작은 실수가 눈에 띄어 적어본다. 408쪽 밑에 '닮지'는 '닮지 않은'에서 '않은'을 빼먹은 걸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