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본 영화 중에 <갇힌 여인>과 <카프카>가 있는 데, 이 영화들은 단지 영화로만 끝날 만큼 확장성이 약한 영상들이 아니다. 먼저 그들의 천재적인 문학이 있겠고, 그리고 누구나 해보고 싶은 영화지만 도전하기 까다로운 영화이니 만큼, 역량 있는 감독의 손과 배우들이 딸려들어오게 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영화화는 칠레 출신 감독 라울 루이즈 (Raul Ruiz) 의 세 편의 시도가 알려져 있다. 특히 1999년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Time Regained, Le Temps Retrouve)>에는 까뜨린느 드뇌브, 엠마뉴엘 베아르, 존 말콤비치 등 걸죽한 배우들이 나온다. 물론 그 전에 양철북으로 유명한 폴커 쉴뢴도르프에 의해 알랭 드롱도 출연했던 <스완의 사랑(Un amour de Swann / A love of Swann,1984)>도 있지만,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진 못했다.
샹탈 애커만(Chantal Akerman)이라는 여자 감독에 의해 최근에 만들어진 <갇힌 여인(La Captive / The Captive, 2000)>은 주인공 남자의 의식의 흐름과 카메라의 움직임이 느리면서도 잘 맞아떨어진 영화로 보인다. 일단 주인공이 자기의 애인 아리안느를 몰래 따라다니는 장면은 자연스레 히치콕의 <현기증>을 떠올리게 한다(감독도 스스로 히치콕 영화를 몇편 참조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밤에 차를 모는 장면에서 하늘 위로 잎사귀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역시 히치콕의 <레베카(Rebecca)>에서 어둑컴컴하고 비오는 날 대저택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는 장면을 언뜻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미행장면에서 눈여겨 볼 것은, 그 공간이 대개 협소하다는 것이다. 주로 골목길이 나오는데, 이는 마치 강박증적인 좁은 의식의 흐름을 시각화하는데 적당한 스케일로 설정된 듯 하다.
여자주인공 아리안느 역은 실비 테스튀(Sylvie Testud)가 맡았다. 어떻게 보면, (내 취향에서 보자면) 그다지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여자는 아니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 남자 주인공이 보여주는 과도한 집착에 몰입이 되질 않았다. 이 여자가 나온 영화는 내가 본걸론 이거까지 세편이다.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영화로 만든 <두려움과 떨림>, 심리적 이상 인간을 다룬 <미로> 까지... 그리고 이 여배우의 프로필을 보다가 가스파 노에 감독의 악명 높은 수작 <아이 스탠드 얼론(Seul Contre Tous:I Stand Alone)>의 전작에 해당하는 <까르네(Carne, 1991)>에도 이름이 올랐는데, 이 영화에서 이 여배우에 대한 기억이 나질 않는다(나중에 다시 보면서 찾아봐야겠다). 그러나 이 여배우가 유명하게 된 영화는 <비욘드 사일런스>다.
<비욘드 사일런스>의 캐롤리네 링크 감독의 <핑크트헨과 안톤>에도 실비 테스튀의 이름이 보인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
이 영화에서 보이는 남녀관계는 그냥 가벼운 연애담으로 만들 수도 있는 주제다. 어찌보면 남자의 단 하나의 줄기처럼 이어지는 (별 재미없는) 의식이지만, 그것을 영상과 음악으로 어떤 비슷한 호흡으로 맞춘다는게 꽤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영화 안에서 남자의 심리는 그냥 앙상한 뼈대처럼 노골적이다(이 영화는 '의식의 뼈'로 침투해서 그 뼈대를 훑는 듯한 영화다). 남자의 대상인 여자의 반응은 "(너가 좋다면) 그래 좋아.."인데, 이런 단순한 화학 반응이 어느 순간 대상으로서의 여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소멸해버리는 것은, 영화가 인간적인 요구(관객의 요구)에 불응하는 것이지만, 영화자체의 굴곡으로서는 정직했다고 보여진다.
프랑스 (지루한) 영화라면 넌더리가 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피해야 할 영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몇몇 사람한테는 권하고픈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