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으로 읽는 철학사.zip
로버트 C.솔로몬/캐슬린 M.히긴스 지음, 박근재. 서광열 옮김 / 작은이야기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보통 두꺼운 철학사책이 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보다는 그때그때 필요한 철학자 항목을 찾아서 보기 마련이다. 그건 단지 분량이 많아서라기 보다는, 대개 철학사를 다룬 책들의 어떤 엄숙하고 건조한 분위기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유연하고 흥미롭게 읽는사람의 눈을 계속 붙잡아서 끝까지 완주를 도와줄 철학사책이 있다면  하는 바램도 가져보게 된다.

이 책 <철학사.zip>는 일단 크게 진지한 자세를 갖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보인다. 거기다 컴퓨터에 넣고 압축을 풀 필요도 없이 그냥 펼쳐서 보면 된다.(특이한 책제목에 대한 농담이다)

<철학사.zip>가 가장 독자에게 호소하는 바는, 동양과 서양은 물론이고, 여태 잘 다루지 않던 대륙의 철학들도 아우르면서 방만하지 않게 (간결하게) 담아낸다는 것이다. 특히 짧게 다루기는 했지만 남미 아즈텍이나 아프리카쪽을 살핀 것은 생소하지만 새로운 지적 자극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볼땐, 그것이 반은 맞는 거 같다. 물리적으로도 책의 중간 부분까지는 그러한 성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글의 서술방식이 지루하지 않게 재미나다.

그러다 뭔가 불길한 예감을 받고야 마는데, 불교의 선(禪)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선禪은  일본의 전통종교와 불교가 종합된 것이며 사무라이계급의 발생과 함께 등장했다."(153쪽)에서 이건 어떤 선을 설명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선이 일본에서 발생했고 그것이 어떤 바탕에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보이는데, 중국의 선은 이 책에선 소거된 상태다.  그리고 니체의 '신의 죽음'에 대해 "그것은 근대적 퇴폐성과 불신이라는 고통이자, 분노의 폭력적인 결과이며 결국 어떠한 '진리'도 없다는 괴로운 진리이다"(266쪽)라는 설명으로 갸우뚱하게 만든다. 저자 중에 한명이 니체에 대해 여러권의 책을 낸걸로 나오는데, 니체를 너무 자기식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나 의심이 든다. 칸트를 다룬 곳에서는 기독교 신자이며 또한 뉴턴 물리학의 신봉자였던 칸트가 "신앙의 여지를 마련하기 위해 지성을 제한해야"(217쪽)한다고 주장했다는 부분과 '선험적 자아(transcendental ego)'(221쪽)도 뭔가 미심쩍다. 그런데 여기서 '초월적', '선험적', '선천적'에 대해 나도 엄밀한 구분을 시도하기엔, 희미한 기억으로 골치아프기에 멈춰야 할 거 같다. 그리고 새롭게 철학사를 다룬 책에서 어떤 전체적인 책의 흐름에 사소한 것을 너무 쪼는 것도 격에 맞지는 않는 거 같다. 한편으로는 그것을 옮긴분들이 역주로라도 보강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약간 의문이 드는 부분적인 문제는 위와 같고, 전체적으로는 분명 동양(중국 인도)과 서양철학사의 흐름을 균형있게 다루려는 의지와 내용들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대철학에 한정되는 것이고, 동양쪽에서는 그 이후에는 아무 연락이 없다. 중간과 끝까지 동서를 종횡무진하기에는 책의 분량문제인지, 아니면 저자들의 버거움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책의 전반부까지는 상당히 흥미롭고, 새로운 지적 자극을 주는 내용들도 갖추고 있다. 그러다가 후반부는 보통 서양철학사(중세, 근대)로 변해버린다. 그러나 후반부도 나름대로 철학과 그 사회상을 유기적으로 엮으면서 짧은 시간에 훑어볼 수 있게 한 장점은 분명히 있다. 아마 공동저자의 책인데 두 사람의 필력차이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