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정말 멋지다!  미술과 과학의 마찰(부비 부비),, 이런 시도 자체가 지적 자극을 수직 상승시킨다. 기발하고 흥미로운 책제목은 그냥 잔머리를 굴려서 짓는다쳐도, 그러한 책에 두툼한 살을 붙일 수 있으려면 범상치 않은 역량이 필요할 것이다. 



레너드 쉴레인(Leonard Shlain)은 외과의사이면서도 인류학이나 미술에 관한 심도 높은 책들을 써냈다. 그냥 단순히 취미로 자신의 직업과 동떨어진 특이한 능력발휘로 만족을 구하는 저술활동으로 보이진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책은 겉표지가 달라진걸 알 수 있는데, 개정판으로 바뀐건 아니고 아마 재판 찍을때 겉표지 디자인을 새로 한것으로 보인다. 영어 원서(<Art & Physics>)는 1, 2권이 아닌 한권짜리이고  겉표지가 두가지 정도 보인다. 위의 원서 겉장 사진은 책 본문에도 있는 마그리트의 '거울공장'이란 그림이고, 또 다른 원서 겉장은 화가가 새알을 보고 새를 그리는 '투시'라는 제목을 가진 그림이다. 원서는 약 17,000원 정도면 구할 수 있을 거 같다.

여기서 다루는 과학은 그리 어렵게 구사되진 않지만, 고대(그리스)부터 아인슈타인 그리고 양자역학에 이르는 커다란 폭을 누빈다. 거기다가 심리학, 정신분석학적인 내용들도 들어가 있어, 다양한 지적 호기심에 발작? 직전인 사람들에겐 좋은 꺼리가 될 듯 싶다. 물론 절판된 책이라 구하느라 더 열받을 수도 있지만..

레너드 쉴레인의 다른 책 두권도 번역되어 나왔다.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자에 초점을 두고 거대한 확장이나 흐름을 좇는 책을 썼다. 아직 이 두권은 보지 못했지만, 저자의 방대한 자료 수집과 그것을 독창적으로 배열하는 능력이 엿보인다.

곧 만지러 가겠습니다. 지나...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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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를 꿈꾸는 책-이란 게시판은 절판이나 품절되어 주변에서 구하기 힘든 책들을 다루고자 한다. 그런 책들 중에는 참 좋은 것들이 많은데, 독자의 입장에서 재간행을 통해 멀쩡한 모습을 다시 보고 싶기도 하다. 그렇게 된다면, 책의 입장에서는 그전까지는 일종의 깊은 잠이겠고( 재생을 꿈꾸면서..), 우리 앞에 새모습으로 나타나는 순간 '불사의 추구'가 성취되는게 아닐까? 그것 또한 영원하지 않더라도..

 



<요가 -불멸성과 자유-(Yoga : Immortality and Freedom)>

엘리아데(Eliade, Mircea 1907-1986)의 젊은 시절 사진은 볼살도 탱탱하고 늠름해보이기까지 한다. 머리가 훤한 나이든 모습하고 비교하면 다른 사람 같기도 하다. 위 사진은 아마 인도에서 다스굽타의 지도 아래 요가철학을 공부하던 때이거나 그 비슷한 시기일 것이다.

이 책을 갖고 있긴 하지만, 조금씩 변색이 되어가고 있고, 책 중간 중간 어딘가가 접착력이 약해져서 날개쭉지 하나 떨어질듯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첵 제목에 '요가'라는 말이 들어가긴 했지만, 온통 요가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인도의 전통 사상과 그 후 좀 더 발전된 철학적인 흐름도 살펴 볼 수 있고, 탄트리즘과 연금술에 대한 것들도 있어 책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거기다 주(석)를 보면, 정말 오래된 문헌이나 여러 다양한 원전들이 인용됨을 알 수 있다. 엘리아데의 젊은 정력이 무게 있게 잘 실린 책이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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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5-01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가 이 책..암만 찾아도 구하기가 힘들더군요..중고책으로 사려고 해도 어렵고..-_-
그런데 번역은 괜찮나 모르겠네요. 고려원 책들의 번역이 워낙 날림들이 많은 것 같아서리..

TexTan 2007-05-01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절판, 품절된 책중에 헌책으로도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더군요. 좋은 책들은 주인이 잘 놔주지 않나봅니다^^ 제가 보기에는 번역은 무난했던거 같습니다. 영어로 된 책은 3만원 조금 넘는 선에서 구할 수 있겠더군요.
 

 켄 윌버의 <감각과 영혼의 만남> 개정판이 나왔다. 전보다 50쪽 정도 늘었는데, 옮긴이의 해설 부분 첨가 때문인듯이 보인다. 아직 개정판을 읽어보질 않아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차례를 보자면 기본 구조는 변함이 없고 소제목에서 두 군데 정도 고친 것이 보인다.  양장본으로 바뀌긴 했지만, 가격도 꽤 오른 편이다. 전의 책도 용어 몇개만 주의해서 본다면, 번역때문에 손해볼 거 같지는 않다.

이 책은 제목처럼 -감각과 영혼-이라는 어떤 명상적인 그저 좋은 말들이 담겨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종류도 아닐 뿐더러 그렇게 수월하게 읽히지도 않는다. 켄 윌버의 비판적인 시각이 강화되어 있고, 철학과 과학에 걸쳐 지적인 스캔(scan) 작업이 행해진다 . 

우리가 알고 있는 학문체계를 기존의 방법으로는 충분히 다룰 수 없는데, 그것은 서로 차원이 다른 범주들을 어떤 우세한 하나의 해석으로 평면적으로 묶으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해가 생겨날 수 밖에 없고, 각자 자기 영역 안에서의 장점은 다른 것들과 만날때 여지없이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의 자를 가지고 모든 것을 잴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 자가 적절히 쓰일 영역과 한계를 정하고, 어떤 자가 좀 더 상위 영역에 해당하는지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 외에도 이 책은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철학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는데, 켄 윌버가 어찌보면 '야인'에 속하긴 하지만, 그의 식견이 예사로운 편은 아니라 들어볼 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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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무의식

밝은 색이 칠해진 반듯한 2층집이 보이고, 밖에서는 시각의 한계로 닿을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 지표면 아래에 있다면, 그 건물은 마치 묘한 공간을 뿌리처럼 아래로 뻗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층 안에서 활용되지 않는 것들, 현실에 순발력있게 대응하지 못하는 물건들은 대개 저 지하로 내려가기 마련이다. 이것 저것 잡다한 물건들이 집주인의 순간 순간의 판단으로 배열되고, 지하의 물건들은 뜻하지 않은 이웃?을 가까이 하게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같이 지하의 습기를 공유하면서 먼지로 만들어진 연한 그물에 포획된 채 잡종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니 우리 사람에게도 그와 유사한 구조와 과정이 진행된다니, '무의식'에 대한 관심은 어쩔 수 없는 나라는 존재 자체와 결부된 직접적인 호기심이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생각한다는)라는 말이 있듯이..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이라는 생각과 개념은 아무 토대 없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이미 "무의식은 무엇이고 어떠하다"라는 것을 무방비로 받아들였고, 머리가 좀 커지자, 그 '무의식'에 대해 좀 더 심화된 접근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 나는 것이다. 혹은 자기가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공부를 통해 발전시킨 '무의식'에 대한 것을 전혀 새롭고 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그 무의식이라는 거 자체를 무시하기로 작정을 하던가.. 

연한 두부와 좀 단단한 두부가 있고, 그것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듯이 무의식도 일종의 고르기에 속한다. 가령, 프로이트냐 융이냐.. 사람에 따라 프로이트 반, 융 반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학문 영역에서는 프로이트에서 파생된 무의식 이론이 강세로 보인다. 그런데 융의 것도 그냥 신비적인 부드러움에 기대려는 대중들의 취향일뿐이라고 무시하기에도  뭔가 개운치 않다.

 

 

 

 

 

'꿈풀이 복풀이'차원 보다 단지 융이 좀 더 지적인 냄새가 나고, 모양새가 너무 펑퍼짐하지 않아서 그를 활용하는게 마음이 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명 융의 차원에서 가시적인 효과와 연속적인 효능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할 거 같다. 누군가가 융을 뉴에이지쪽으로 묶고 거리두기를 하는 이유도 타당함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융을 말끔히 떨쳐버릴만큼 그 흔적의 무게는 가볍지 않을 것이다.

................

무의식에 관한 책은 참 많다. 꼭 서구쪽 이론이 아니더라도, 동양쪽도 찾아보면 꽤 체계적인 접근들이 보인다.  그런데 무의식에 대한 의식적인 노력들이 과연 나의 무의식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아무리 무의식에 대해 다양한 지식과 노하우를 익힌다고, 무의식으로 직접 통하는 백도어라도 발견하지는 못할 거 아닌가..

그리고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무의식이 정말 그 무의식에 대한 것이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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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할리우드의 정신분석 한나래 시네마 10
슬라보예 지젝 / 한나래 / 1997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읽다가 좀 뜸을 들이고 마저 읽은 터라 연속적인 독서가 이루어지진 않았다.

책 제목에서 '영화에 관한 (지적인) 읽기' 라는 풍경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지젝의 글맛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대충 어떤식으로 글들이 풀려 나갈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젝은 영화에 관한 책이라고 해서 '영화 이야기'만 늘어 놓는 것도 아니고, 영화에 관한 책이 아니더라도 영화 이야기를 그렇게 자제하는 거 같지는 않다.

왜 이런 말을 꺼내는가 하면, 이 책을 단지 영화에 대한 책으로 오인하고 집었다가는 낭패를 보던가, 행운을 얻던가? 둘 중 하나로 이끌릴 관성이 농후해 보이기 때문이다. 즉, 책 제목이 풍기는 거 치고는 영화 이야기가 그렇게 주도적으로 나오지도 않으면서도 쉽지 않은 집중력을 가지고 봐야  이해가 가능하기에 그러하다. 물론 순전히 내 생각에 기대어 다른 사람들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광범위하게 퍼뜨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므로 영특하고 이해력이 좋은 사람들한텐 해당사항이 아닐게다.

찰리 채플린부터 본격적으로 지젝의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러다가 잠시 비헐리우드 영화쪽으로도 넘어가는데,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와 그의 연인이자 배우인 잉그리드 버그먼에 대한 것이 나온다. 이 부분은 '왜 여자는 남자의 징후인가?'라는 장에 속하는데, 로셀리니 감독의 영화(잉그리드 버그먼이 출연한 영화들도 포함해서)들의 분석과 아울러, 영화 밖에서도 그 둘의 만남은 물론 이름에서까지 묘한 고리들을 끄집어 낸다. 결국 로셀리니와 버그먼이라는 두 연인이 그냥 하나의 절묘한 '예'로 이 장에 자리잡는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라캉, 프로이트, 칸트, 헤겔, 알튀세르, 푸코, 하이데거 등이 줄줄이 딸려 나오고, 그 사유의 물결 속에서 영화는 작게 소근되는 하나의 '예시' 역할을 맡는다.(원래 지젝은 영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무엇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그 활용이 참으로 풍부하고 예리하다는 거..)

내가 흥미있었던 부분은 '왜 남근은 나타나는가?'라는 장인데, 알랭 그로스리샤르를 통해 소개하는 18세기 괴물 얼굴 삽화가 인상적이었다. 이것을 데이비드 린치의 '코끼리 인간'(보통 엘리펀트 맨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과 뭉크의 회화로까지 이끄는데,  그 왜상적 찌그러짐, 기형에서 '남근'이라는 (원시적) 돌기(코끼리 코)를 읽어낸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어머니의 '응시'와 이를 곧바로 확장해서 '엄마와 아들'의 근친상간적인 낌새를 펼쳐보이는 것이다.

지젝이 쓴 영화에 관한 (제목에서 노골적으로 풍기는)책은 내가 알기로는 여러 사람과 함께 쓴 <항상 라캉에 대해...>말고는, <삐딱하게 보기>와 <진짜 눈물의 공포> 그리고 이 책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가 있다. 이미 <삐딱하게 보기>에서 몸을 충분히 풀어서인지, 이 책에서는 산만하지 않게 핵심 굴곡을 적당히 파 내려가는 내공이 충분히 느껴진다.

초기 지젝의 산뜻함과 지적인 매운맛이 잘 배합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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