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무의식
밝은 색이 칠해진 반듯한 2층집이 보이고, 밖에서는 시각의 한계로 닿을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 지표면 아래에 있다면, 그 건물은 마치 묘한 공간을 뿌리처럼 아래로 뻗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층 안에서 활용되지 않는 것들, 현실에 순발력있게 대응하지 못하는 물건들은 대개 저 지하로 내려가기 마련이다. 이것 저것 잡다한 물건들이 집주인의 순간 순간의 판단으로 배열되고, 지하의 물건들은 뜻하지 않은 이웃?을 가까이 하게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같이 지하의 습기를 공유하면서 먼지로 만들어진 연한 그물에 포획된 채 잡종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니 우리 사람에게도 그와 유사한 구조와 과정이 진행된다니, '무의식'에 대한 관심은 어쩔 수 없는 나라는 존재 자체와 결부된 직접적인 호기심이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생각한다는)라는 말이 있듯이..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이라는 생각과 개념은 아무 토대 없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이미 "무의식은 무엇이고 어떠하다"라는 것을 무방비로 받아들였고, 머리가 좀 커지자, 그 '무의식'에 대해 좀 더 심화된 접근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 나는 것이다. 혹은 자기가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공부를 통해 발전시킨 '무의식'에 대한 것을 전혀 새롭고 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그 무의식이라는 거 자체를 무시하기로 작정을 하던가..
연한 두부와 좀 단단한 두부가 있고, 그것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듯이 무의식도 일종의 고르기에 속한다. 가령, 프로이트냐 융이냐.. 사람에 따라 프로이트 반, 융 반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학문 영역에서는 프로이트에서 파생된 무의식 이론이 강세로 보인다. 그런데 융의 것도 그냥 신비적인 부드러움에 기대려는 대중들의 취향일뿐이라고 무시하기에도 뭔가 개운치 않다.






'꿈풀이 복풀이'차원 보다 단지 융이 좀 더 지적인 냄새가 나고, 모양새가 너무 펑퍼짐하지 않아서 그를 활용하는게 마음이 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명 융의 차원에서 가시적인 효과와 연속적인 효능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할 거 같다. 누군가가 융을 뉴에이지쪽으로 묶고 거리두기를 하는 이유도 타당함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융을 말끔히 떨쳐버릴만큼 그 흔적의 무게는 가볍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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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에 관한 책은 참 많다. 꼭 서구쪽 이론이 아니더라도, 동양쪽도 찾아보면 꽤 체계적인 접근들이 보인다. 그런데 무의식에 대한 의식적인 노력들이 과연 나의 무의식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아무리 무의식에 대해 다양한 지식과 노하우를 익힌다고, 무의식으로 직접 통하는 백도어라도 발견하지는 못할 거 아닌가..
그리고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무의식이 정말 그 무의식에 대한 것이 맞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