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책방에서 책을 사면, 주인 아저씨가 비닐이나 포장종이로 책을 싸주신다(포장종이와 비닐을 겹쳐서 해주기도 한다). 요새는 보기 힘든 풍경인데, 이렇게 싼(옷을 입힌) 책은 시간이 지나도 책 표지가 노출되지 않으니까 보관에 유리하다. 그런데 단점은 표지가 보이지 않아, 무슨 책인지 펼쳐봐야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연찮게 먼지 쌓인 책 하나를 펼쳐보게 되었는데, 콜린 윌슨의 <현대살인 백과>라는 책이다. 1990년에 범우사에서 나온 책으로, 최근에 <잔혹- 피와 광기의 세계사>와 비슷한 류의 책이다. 그러나 두 책은 현재 다 절판 상태이다. 

 

 

 

 

<아웃사이더>라는 책으로 콜린 윌슨을 처음 만났고, 책 제목도 그렇지만 내용에서도 뭔가 남다른게 있었다. 막 젊음이 시작할 무렵이니까 평범한 궤도에 벗어나고픈 심리에 안성맞춤인 책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뒤로 책방에서 콜린 윌슨이라는 이름이 찍힌 책은 기대를 하고 무작정 손에 쥐고 집으로 향하기도 했는데, <우주의 역사>가 그 두번째 만남이다. 문학(<아웃사이더>)에서 과학으로 건너 뛴 비연속적인 사상의 풍경이지만, 과학 서적도 흥미있어 하는 편이라 불평없이 잘 읽었던 거 같다.

그런데 <현대살인 백과>라는 책을 빌미로 콜린 윌슨에 대한 기대는 사라졌다. 여러 방면을 쑤시고 잡학다식하게도 많은 자료들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아웃사이더>의 콜린 윌슨에 비한다면, 너무도 평범한 바닥을 달리는 모습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열심히 달리기는 하지만, 왜 조금도 지상 위로 뜨질 못하는 것일까?

'불가사의'가 들어간 책들도 썼는데, 그 자신도 작가로서 하나의 불가사의가 아닐까? 이런 책 한권을 쓰면 어떨까? '아웃사이더의 추락-콜린 윌슨의 불가사의'...  너무 과했나? 그러나 그 만큼 <아웃사이더>의 콜린 윌슨이 너무 빛났기 때문이리라. 이 책도 곧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거 같다.

<소설의 진화>는 <아웃사이더>와는 다르지만, 문학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구상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콜린 윌슨의 책을 본다면, 아마 이 책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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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고 있는 동문선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정리해 봤다. 최근에 산 건 별로 없고, 대개 예전에 구입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일단 방 안  책꽂이에 꽂혀 있는 눈에 닿는  책들을 가지고 리스트를 만들어 봤다. 아마 집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미지의 동문선 책들도 있을 것이다.  왠지 동문선에서 나온 책들 중에는 눈에 가는 것들이 많았다. 지금도 탐나는 책들이 많긴 한데, 사고 나서 금방 손이 가지는 않았던 거 같다. 책표지나 편집이 약간 보수적이라서 그럴까? 나는 표지가 따스한 색을 가진 책들을 대개 빨리 본 듯 하다.

흔하지 않은 좋은 (전문성을 갖춘) 책들을 많이 내는 거 같은데,  가끔 번역에서 점수를 깎아먹는 거 같다(가령 서양  인문 번역서들).  그런데 알라딘에는 왜 이다지도 동문선 책표지들이 없는 것일까?

 

 

 

 

                 이미지, 시각과 미디어                                                   원시미술

존 버거 책에 대해 평들이 좋은데, 나는 별 재미는 못 본 거 같다. 그렇다고 집중해서 곱씹으면서 보지도 않았으니, 다시 한번 음미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영화의 환상성>은 프랑스 장 루이 뢰트라(Jean-Louis Leutrat)의 책으로 영화에서의 환상-그 깃듬에 대해 카메라의 활용이나 미쟝센, 음성 등을 통해 접근한다. 특히 '환상성의 문양들'(문양이란 표현이 약간 의심스러운데, 적절한 번역인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다)이라는 제목을 가진 2장에서는 피, 문, 거울, 고양이, 초상화, 조각상, 창문 등 여러 가지 문양이 영화 안에서 어떤 환상의 효과를 창출하는 지 보여준다. 또 자크 투르뇌르, 토드 브라우닝, 테렌스 피셔 등 여러 감독들의 고전(대개 호러) 영화들에 대해서도 살펼 볼 수 있다. 레오나르도 아담의 <원시미술>은 많은 미술에 관한 책들하고 차별성을 갖는데, 현재는 절판인거 같다.

 

 

 

 

 

조선무속고   조선무속의 연구                                 조선의 귀신

 민족의식이 왕성할 때, 우리것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이런 책들도 구했었다. <조선무속고>를 지은 이능화(李能和)는 <백교회통> <조선여속고> <조선도교사> <조선불교통사> 등 우리나라 종교문화에 대한 굵직한 연구서들을 냈다(친일 학자라는 논란도 있는 것으로 안다).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조선총독부의 촉탁[囑託])의 조선 종교나 무속에 관한 책들(<조선의 귀신> <조선의 점복과 예언>)은 일제시대 정치적인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조사된 것이지만, 그러한 것들을 감안하고 본다면, 그 꼼꼼한 자료들은 그냥 제쳐두기엔 아까운 면이 있다.  

 

 

 

 

인도종교미술    힌두교의 그림언어  만다라의 신들  여신들의 인도

심볼, 도상 같은 상징체계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만다라(曼茶羅, Mandala)에 대해서도 그러한데,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김용환의 <만다라 - 깨달음의 영성세계>가 한자가 많기는 하지만, 가장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대원사(빛깔있는 책들)에서 나온 홍윤식의 <만다라>는 얇은 책이지만, 만다라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살필 수 있게 꾸며졌다. 사진이나 도표도 적절해서 처음 입문서로 괜찮아 보인다.   <인도종교미술>아지트 무케르지라는 인도학자의 책인데, 이쪽 분야에 관한 책이 여러 권 동문선을 통해 번역되어 있다. <힌두교의 그림 언어>는 두 명의 독일 학자들의 책인데, 좀 수월하게 힌두교의 아이콘들에 대해 접할 수 있게 구성되었다. <만다라의 신들><여신들의 인도>는 짝이 맞는 비슷한 맥락의 책으로 저자도 같다. 본문의 사진들이 선명하지 못해 답답함을 주지만, 그림을 통해서 그것을 보완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책도 드문 편이라 관심이 있다면 소장할 만한 책으로 보인다. 만다라는 융(Jung)이 특히 관심을 가졌는데, 수잔 핀처 같은 사람에 의해 미술치료로도 연구되고 있다.

 

 

 

 

 

                               군달리니       탄트라 - 미술판      탄트라        카마수트라

 위에서 말한 아지트 무케르지의 <군달리니><탄트라>란 책이다. <군달리니>는 대개는 '쿤달리니(Kundalini)'라고 불리는 인도 요가의 한 종류이기도 하지만, 몸 안에 뱀의 형상으로 감겨진 에너지를 뜻한다. 저자는 단지 학문적인 접근(따라서 생리학이나 사상적인 배경 등 이론 부분에 치중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이 책의 장점일 수 있다)으로 다루고 있지만, 기본적인것에서부터 전문적인 내용까지 다양한 그림과 도표를 활용하면서 골고루 담아내고 있다. <밀교의 세계>는 개론서 성격을 벗어나 평이하게 쓰여진 책인데, 전에 출판사 고려원에서 나온 걸 약간 손 본거 같다.  

 


 

 

 

중국예술정신     중국문화개론      화하미학               하상         동북민족원류        역과 점의 과학

 여기는 책표지들이 다 전멸이다. 중국 문화에 대해서 깊은 관심은 없지만, 앞으로 보게 될 거 같아 미리 구입해 둔 책들이다. <동북민족원류>는 꽤 오래전에 본 책인데, 요새 동북공정이니 해서 중국의 역사관에 대해 경각심이 큰걸로 아는데, 이 책에도 그러한 중국인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때는 이런 시각이 생소해서 약간 당황했었던 기억이 난다. <역과 점의 과학>은 일본인 학자의 책인데, 동양과 서양의 시간, 달력 등에 대해 꼼꼼하게 잘 다루고 있다.

 

 소설은 <벽오금학도>가 유일하다. 이외수 소설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 책은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다. 무술에 관한 <권법요결>하고 <소림사..>로 시작하는 책도 산 거 같은데, 어딨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운기학설(運氣學說)>이란 책도 앞으로 볼 생각으로 미리 사 둔건데, 알라딘에는 아예 책 정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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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리스트 설명 내용에 포함된 이능화와 만다라에 관한 (타 출판사의) 책들

 

 

 

   이능화의 책들

 

                                 조선해어화사        백교회통       조선여속고

 

 

 

  만다라 책들

 

만다라 - 깨달음의 영성세계  만다라

 

만다라 미술치료에 관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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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라 2008-01-24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는 '신의 기원'이 꽤 좋았습니다.

TexTan 2008-01-2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동문선에 좋은 책들이 많죠. 가끔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zeitgeist 2008-07-15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대단하십니다. 뭐시는 분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시간을 내서 책들을 읽을 수 있죠..? 시간이 많이 남으시나.. 그게 궁금해요.
 

 고등학교 때 읽은 과학책이 많아봤자 얼마나 되겠나만은 강하게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 '우주심과 정신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이렇게 두 권이다.

 

 

 우주심과 정신물리학

<우주심과 정신물리학(Stalking the Wild Pendulum : On the Mechanics of Consciousness>은 그 당시 나에게 꽤 충격이었는지 나중에 몇권을 더 사서 친구들한테 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상당히 개성 있는 물리학책이다. 어떻게 보면 '몸-의식의 물리학'이라 할 수 있고, 그 파동의 물질 특성이 의식에까지 이어지는 (영향을 주는) 과정을 독창적으로 그려낸다. 더우기 이 책에서는 '쿤달리니 증상'을 두뇌 안에 (감각피질의) 미세한 점의 위치(homunculus)와 전류의 순환과 연관지어 살피기도 하는데, '의식'에 대해 상당히 열린 자세로 흥미로운 물리학을 전개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신과 전문의 리 사넬라((Lee Sannella) 박사의 <신비의 쿤달리니(The Kundalini Experience>에서도 다뤄지고 있다(특히 236-265쪽). 이러한 것이 기존의 어떤 책들의 도움도 있었겠지만, 저자 스스로 알아낸 아이디어나 사고에 더 힙입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 유사한 흐름의 책들에서 보이는 어떤 무임승차하고는 성격이 다르다. 즉 특이하고 기발한 이국적인 지식들을 모아서 자기 방식대로 꿰어 놓은 알록달록 헝겊 같은 모양은 아닌 것이다. 벤토프는 여기저기 화려하게 일을 벌려 놓기 보다 단순한 일관성으로 이것을 해낸다.  

 

이차크 벤토프(Itzhak Bentov)(왼쪽 사진)는 1979년에 아깝게도 비행기 사고로 죽고, 아주 짧은 글이 가까스로 나온다. 우리나라에선 <우주의식의 창조놀이( A Brief Tour of Higher Consciousness>의 제목으로 나왔다. 원제보다 우리나라 번역서 제목이 더 좋아 보인다. 책의 내용이 워낙 짧기 때문에, 서문과 뒤에 부록이 붙어서 널널한 편집으로 겨우 한권으로 만들어낸 거 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이 책은 대단히 파격적인 여행-니르바나 여행을 펼치고 있다. 자세한 설명이 담겨 있지 않아 속 시원한 맛은 없지만, 어떤 은유적 모멘트는 놀라울 정도다. 나머지는 읽은 사람들 머리 속에서 나름대로 펼쳐져야  하지 않을까.

 

 

폴 데이비스(Paul Davies)<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역시 물리학의 도움으로 우리가 어디까지 사고 여행을 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폴 디렉(Paul Dirac)(오른쪽 사진. 외모에서 언뜻 비트겐슈타인 분위기가 난다)이라는 천재 물리학자가 자신의 방정식을 통해 미지의 입자를 예언하고, 또 그것이 나중에 실험에 의해 발견되는 드라마틱한 부분이 재미있었다(전자의 거울 이미지로 쌍이 되는 반대 성질을 가진 반전자(反電子)의 예고). 디렉은 물리 실험 보다는 이렇게 방정식 자체의 아름다운 형식에 더 매료되고 그것을 추구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원자 속의 유령>,<슈퍼스트링>, <초힘>은 마치 시리즈처럼 순서대로 읽어도 좋을 만큼 연속성이 있다.

 

 

<원자 속의 유령><슈퍼 스트링>은 폴 데이비스와 줄리언 브라운이 함께 엮은 책으로, 각각 양자역학과 끈 이론에 대한 대담형식의 책이다. 대담에 들어가기 앞서 간략한 이론적인 배경을 설명하고 있어, 읽기에 좀 수월한 감을 준다. <원자..> 이 책에서는 데이비드 봄이 눈에 띄며, <슈퍼 스트링>에는 스티브 와인버그와 리처드 파인만 같은 유명한 물리학자와의 대담을 통해 양자역학과 끈이론에 대한 직접적인 급소를 흥미롭게 구경할 수 있다. 특히 파인만은 끈이론에 대해 회의적인데, 그와의 물음과 대답 속에는 폴 디렉도 나온다.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는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 1963)>에서 쉬운 부분만 골라서 재편집한 것이다. 폴 데이비스는 이 책에서 약 10 쪽(번역서 기준)의 서문을 썼다.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대단히 인기 있는 물리학자인데, 아사람의 책도 나중에 마틴 가드너와 함께 정리해 볼 생각이다. 이 책은 양장본과 보급판이 출간 되었는데, 나는 보급판으로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두께로 볼 때, 굳이 양장본으로 가질 이유는 없을 거 같다.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는 우리나라에 Volume 1, 2로 나왔는데, 두께가 만만치 않아서인지(각각 700에서 800쪽 사이다) Volume 1은 다시 Volume 1-1, Volume 1-2 반양장본으로 나뉘어 나왔다. 하지만 이럴 경우엔 차라리 양장본이 값도 별로 차이 안나고 소장면에서 유리할 거 같다.

추천사를 보면, 쟁쟁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황제의 새마음>, <우주 양자 마음>로저 펜로즈<초공간>, <평행 우주>미치오 가쿠 등이다. 대단히 광대한 양의 물리학책인데, 이 긴 도전에 앞서 당분간 '여섯 가지 물리'로 만족해야 겠다.

 

 

 <폴 데이비스의 타임머신(How to Build a Time Machine)>은 <시간의 패러독스 (About Time)>와 함께 '시간'을 정면으로 주제로 삼은 책이다. <시간의 패러독스>에 "오랫동안 고생을 참아준 가족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했는데, 거의 500쪽이 넘는 이 책을 다 보는 것도 독자 입장에선 고생스러울 거 같다. 폴 데이비스는 <생명의 기원>도 그렇고 <우주의 청사진(The Cosmic Blueprint>에서 보듯이 대단히 원대한 기획을 책에 담는다. 두 권 다 '자기조직화'가 양념 중 하나로 쓰이기도 했는 데,  진행 방식도 유사하다(폴 데이비스 책들이 대개 비슷한 차례 패턴을 가진다). <우주의 청사진>은 주제와 방향은 좋아 보이는데, 책의 양도 그렇고 충분히 뭔가를 드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용두사미처럼).  어쨌든 <...타임머신> 이 책을 보고 '타임머신'에 관한 영화를 즐긴다면 그 재미는 배가 될까 아니면 별효과가 없을까? 얼마 전에 기대하지 않고 봤던 [타임라인(TIMELINE)]이 생각이 난다. 마이클 크라이튼 소설을 가지고 만든 영화로 프랑스에서 유적 발굴을 하다가 교수가 과거로 사라지게 되는데, 여기에 벌어지는 과학자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남녀의 사랑 등이 골고루 담겨 있다. 나름대로 쏠쏠한 재미가 있었는데 중세 전투 장면도 볼거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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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 관련된 사람하면, 일단 엘리아데와 함께 조셉 캠벨이 떠오른다. 조셉 캠벨(Joseph Campbell)도 엘리아데처럼 특히 인도 신화를 잘 활용하고, 다양한 지식에 열려 있는 신화학자다, 내 생각에는 엘리아데가 철학적 훈련 덕분인지 좀 더 섬세하게 수직적으로 들어가는 면이 있고, 조셉 캠벨은 '보편성'이라는 원초적인 그림을 맞추기 위해 폭넓게 수평적인 확장에 더 관심이 있는 거 같다. 글은 엘리아데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줄곧 견지한다면, 조셉 캠벨의 글은 읽는 사람의 시선을 향하여 대화하듯 가까운 맛이 난다. 이것이 조셉 캠벨의 대중친화적인 태도가 묻어나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캠벨은 미디어를 통해서도 볼 수 있는데, 우연찮게 TV 강의 형식으로  인도신화와 요가에 대해 설명하는 흥미로운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세계의 신화 이야기>에서 엘리아데와 조셉 캠벨의 이름이 같이 있는 걸 찾을 수 있는데, 이 두터운 책에서 두 사람은 서문, 즉 얼굴마담? 역할을 하고, 세르기우스 골로빈이 본문을  엮어나간다.   <신화의 이미지>는 최근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다. 엘리아데가 비슷한 대상, 주제라고 해도, 자기만의 독특한 프리즘을 활용해서 좀더 세밀한 (새로운) 빛깔이 나오게 건드린다면(그래서 얼핏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엘리아데만의 섬세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향취를 담기는 어렵다) 조셉 켐벨은 좀 더 큼지막하게 무난하게 책을 이어가는 거 같다. 그래서 책의 줄거리와 차례를 보면, 좋게 말하면 무리하지 않는 것이고, 좀 야박하게 말한다면, 불교와 인도 신화에 너무 기대어 저절로 생기는 그 흐름을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즉 조셉 켐벨의 식견이 뛰어나기도 하겠지만, 그가 접하는 영역들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힘, 탄력의 덕도 보는 거 같다. 인도에서 아주 예민한 아이콘 혹은 연관된 다른 장소로 이어지는 링크를 운 좋게 찾으면, 그 이후는 수월해진다는 말이다(이것이 협소한 영역에서는 금방 소진되고 말지만, 인도처럼 다양하고 광대한 영역에서는 대단히 유리할 것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조셉 캠벨의 대표작으로 세계 곳곳의 다양한 신화들에 새겨진 동일한 패턴, 즉 하나의 얼굴을 드러내는 책이다. 흔히 하는 비유로 달 하나가 천개의 강에 비추듯이 말이다. 그런데 책이 두꺼워서 그런지, 다 읽고 나서도 그런 (잡다한 것들을 명쾌하게 거대한 하나의 얼굴로 모으길 바라는) 기대감이 충족되진 않았던 거 같다. 어쩌면 내 독서의 집중력에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신화의 세계(Transformations of Myth Through Time)>는 원제에 비해 우리말로 번역된 제목이 좀 밋밋해 보인다. 인디언 신화에서부터 이집트,  인도,  그리스 그리고 유럽의 아서왕과 성배에 관한 전설까지 폭은 넓지만, 어떤 통일성은 떨어져 보인다. 생전의 강의를 묶었다고 하는데, 요가와 융심리학적 발상으로 (영적인 방향으로) 자기 성장의 도식을 시도한 부분이 눈여겨 볼 만 하다. 이 부분만 오히려 큰 주제로 삼아서 한권으로 만들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네가 바로 그것이다(Thou art that  : Transforming Religious Metaphor)>는 부제를 봐도 알겠지만, <신화의 세계>와도 원서 제목이 댓구를 이루는 거 같고, 신화가 아닌 종교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얼핏 제목만 봐서는 인도 종교를 다룬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서양인인 조셉 캠벨의 근원적인 자리인 유대-기독교에 관한 책이다. 우파니샤드의 대표적인  "네가 바로 그것이다(Tat tvam asi)"라는 말은 너 안에 깃든 절대신을 가리킨다. "너가 신이다"와 "너 안에 무엇이 신이다"는 분명 차이가 있다. 굳이 책의 제목을 이걸로 한 것만 봐도, 기존의 유대-기독교의 해석과는 다른 어떤 의도가 담겼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신화의 힘>은 신화와 관련된 책들 중에서 아마 부담없이 수월하게 읽고, 의외의 수확을 얻을 수도 있을 거 같다. 대담형식이라 읽기 쉬우면서도 다른 공부로 이어질 만한 영양가 있는 자극들이 많이 담겨 있다. 내가 조셉 캠벨을 처음 만난 책이기도 하다.

 

 <신의 가면> 시리즈 중에서, 동양 신화 차례를 보면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심지어 티벳까지 다루는데, 한국은 빠져있다. 신화학자들은 원시 부족의 자료까지 찾아서 연구할 정도로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 지식 외적인 것이 덜 작용하겠지 하는 생각도 순진한 것일까? 내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어떤 흐름이나 맥락을 보더라도 중국에서 붕 떠서 일본으로 바로 넘어가는 태도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뭔가 제대로 보는 눈을 가진 학자라면, 기존 연구들이 비록 그런 관행이었다 하더라도, 당연히 의문을 가질 만한데도 말이다. 한국의 신화와 전설, 무속은 언제까지 괄호 안에 둘러 쌓여 있어야 할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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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낀 서양 스님처럼 생긴 켄 윌버(Ken Wilber)의 책이 새로 나왔다. <의식의 스펙트럼(The Spectrum of Consciousness)>, 흔히 말하는 문제작에 속하는 책이다. 켄 윌버의 다른 책들도 우리나라에 이미 여러 권 나와있다. 그런데 정작 그 남자의 첫 번째 책은 여기서는 다소 늦게 소개되는 셈이다. 미국에선 1977년에 처음 나왔으니 벌써 30년 전이다. 이 책은 켄 윌버가 이미 이십대 초반쯤 마무리를 지었지만, 받아 주는 출판사가 없어 몇년에 걸쳐 빛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매니아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데, 동서양이 맞물린 최고지식을 가려 뽑아 스스로 수행을 통한 높은 식견으로 그것들을 통합적으로 재구성해낸다는 소리를 듣는다. 흔치 않은 독특한 색깔을 가진 지성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엇비슷한 작업, 가령 서양의 최신 과학 이론과 동양 사상을 중매하는 일들은 많지만, 그 색깔만 화려한 표피는 시간이 흐르면 금방 벗겨질만큼 가벼운 것들이 많다.

분명 켄 윌버는 그런 자기 흥에 겨워 성급한 짜맞추기에 급급한 지식인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고 그의 사상이 여태 유례가 없는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사유의 성과물이라고도 보기는 어렵다. 제대로 된 동양 철학의 정수를 알지 못하는 서양인에게는 그 남자의 결과물이 너무도 새롭고 경이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다. (학파로서의) 상키야, 요가, 베단타와 불교의 화엄 그리고 나가르주나의 공사상('중론'의 엄격한 논리적 비판력)에 대해 어느 정도 살펴본다면, 켄 윌버가 이 사상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섭취했고, 새롭게 이용하는지 알 수 있다. 거기다 새로운 과학인 시스템 이론도 제한적으로 잘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과거에 그러한 개념이나 설명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현대적인 언어로 다시 쓸 수 있다는 건, 단순한 반복이라기 보다 또다른 창조 작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런걸 활구(活句)라고 하지 않던가?

어쨌든 이십대 초반에 자기 지성의 기획이 담긴, 그리고 거대한 지적 영향력을 가진 책을 썼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이 <의식의 스펙트럼>에서 처럼 '스펙트럼'은 여러 의식 단계(혹은 지식)의 풍경들을 끊어진 갈래로 구분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각기 차이로 인해 구별되는 레벨을 갖지만, 그것이 (퇴보와 상승으로)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강조하는 통합적 사고에 효과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나중에 요긴하게 쓰이는 '홀론' 개념과도 짝이 잘 맞는다.

<의식의 스펙트럼>을 좀 더 대중적으로 다듬었다는 책이 <무경계(No Boundary)>이다. 책 제목을 처음에는 '의식의 경계(Boundary of Consciousness)'로 했다가 나중에 무경계로 바꿨다고 한다. 책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오히려 처음 지은 제목이 더 적당해 보인다. '무경계'란 제목은 내용에 비해 너무 높게 잡은 느낌마저 든다.  처음 켄 윌버가 두각을 나타낼 때, '프로이트와 붓다의 만남'이란 소리도 들었다지만, 이 책을 보면, 오히려 페르소나와 (전인적) 자기 성장을 강조하는 융과 겉그림이 더 가까워 보인다.

켄 윌버는 나중에 <의식의 스펙트럼>과 <무경계>에서 낭만적 관점으로 인한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는데, 아동기에 대해 순진하게도 어른의 입장에서 '상실한 낙원' 쯤으로 설정한 부분이다. 즉 전단계와 초월 단계를 구분 못한 것인데, 나중에 아동기는 전단계로 수정된다.  이러한 내용은 <무경계> 책 뒤에 '켄 윌버의 사상'에서 번역자(김철수)가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모든 것의 역사>는 그의 통합적인 관점이 제대로 드러난 또 하나의 야심작이자 대표작으로 보이는데, '온우주'와 '홀론' 개념이 주요하게 쓰인다. 그의 사상을 분명하게 종합적으로 구성해냈다고도 볼 수 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은 어떤 하나의 눈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레벨의 눈을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켄 윌버는 크게 감각의 눈, 이성의 눈, 관조의 눈으로 나누는데, <아이 투 아이>라는 책 제목은 바로 감각의 눈에서 관조의 눈으로 상승적 이행을 내포하는 제목이라 보인다. 이 책에서는 '의식의 만다라 지도'라는 소제목을 가진 장이 눈길을 끈다.

 <감각과 영혼의 만남>은 그래도 최근의 책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데, 1부에서는 그 전의 책에서 다루어진, '존재의 대사슬', '(진리의) 네 상한(the four quadrants) 등이 다시 간략히 설명되고 있으며, 이후부터는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철학 등 현대철학에 관한 내용들이 비판적으로 자주 나온다. 들뢰즈(Deleuze)를 델루즈라고 표기했는데, 미국에선 델루즈라고 읽는지 확인할 도리는 없다.  철학뿐만이 아니라 과학, 종교 등 다양한 지식의 영역들이 다루어지는데, 처음 켄 윌버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는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는 아내(트레야)의 투병과 그것을 지켜보는 켄 윌버의 사적인 이야기로 채워진 책으로 알았는데, 꼭 그런것은 아닌듯 하다. 기회가 되면 구해서 봐야 할 거 같다.

<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는 지금은 절판이라 구할 수 없는 책이다. 나는 다행히 고려원에서 나온 걸 가지고 있다. 원제는 'Quantum Questions'으로 이 책에서 켄 윌버는 서론 부분과 편집을 맡았다. 따라서 나머지 부피에는 다른 과학자들, 하이젠베르그, 슈뢰딩거, 아인슈타인 등의 글이 차지한다.

 

<영혼의 거울(Sacred Mirrors)>은 알렉스 그레이의 그림집 같은데, 여기에도 '화가의 눈 - 예술과 영원의 철학'이라는 켄 윌버의 짧은 글이 실려 있다. 딱히 알렉스 그레이의 그림을 좋아하는 취향도 아니고 책 가격에 비해 쪽수가 적어서 아마 볼 기회는 없을 듯 하다. 비닐커버로 닫혀진 책이 아니라면 나중에 서점에서 보면 될 거 같다. 그런데 알렉스 그레이의 인체 투시도?는 단지 상상으로 그려진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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