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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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가을을 만나다

— 비 내리는 갑천을 따라 걸었던 30.6km의 하루 —

2026년 10월 24일, 토요일

날씨: 하루 종일 비

ㅇ 걷기 코스: 집 → 유림공원(국화축제) → 신세계백화점 → 엑스포다리 → 둔산대공원 → 도안호수공원 → 가수원교 → 소태봉,옥녀봉 → 집

ㅇ 걷기 기록

* 전체거리 : 30.6km
* 출발시간 : 오전 9시 25분 15초
* 소요시간 : 7시간 02분 30초
* 운동시간 : 5시간 54분 45초
* 휴식시간 : 1시간 07분 45초
* 평균속도 : 5.2km/h
* 누적고도 : 53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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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에는 비를 맞으며 걸어보자

지난 10월 10일, 대전도시철도 1호선의 스물두 역을 따라 48km를 걸었다.

유성온천역에서 출발해 반석역을 찍고 판암역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유성온천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었고, 그곳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그냥 주말이니 또 한번 걸어보자는 생각이었다.

마님은 일직근무를 나갔다. 지난번에는 마님이 사과를 싸줬지만, 이번에는 그럴 형편이 아니니 내가 직접 사과를 썰어 통에 담았다.

배낭을 챙기고 집을 나서려는데 밖에서는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아니, 모처럼 걷겠다고 나서는 날에 비라니.

그렇다고 비가 온다는 이유로 걷기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우산을 챙겨 들고 오전 9시 25분, 집을 나섰다.

처음부터 비가 꽤 내렸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걷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거리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고, 나무에서는 젖은 낙엽들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릴 모양이었지만 걷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오래 걷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직은 레인코트를 꺼내 입을 필요는 없겠다 싶어 우산을 쓴 채 계속 걸었다.

오늘은 어디까지 걸을까.

아직 정해진 것은 없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자는 생각뿐이었다.

2. 비 내리는 국화축제, 그리고 태권브이

우산을 쓰고 걷다 보니 제17회 유성국화축제 현장이 나타났다.

국화축제가 한창이었다.

노란색과 분홍색, 자주색과 붉은색 국화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비를 맞은 꽃들은 색깔이 더욱 진해 보였고, 물기 어린 바닥에는 꽃과 주변 시설물의 모습이 비쳤다.

축제장에는 단순히 국화 화분만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갖가지 조형물도 만들어놓았다.

그중 단연 눈길을 끈 것은 거대한 로보트 태권브이였다.

어릴 적 즐겨 보았던 바로 그 태권브이가 꽃으로 옷을 갈아입고 서 있었다. 몸통에는 노란 국화가 촘촘히 박혀 있었고, 특유의 브이자 장식도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커다란 로켓처럼 생긴 조형물도 있었다.

태권브이와 로켓이라니.

어릴 적 만화영화를 보던 때가 떠올랐다. 꽃구경을 하러 왔다가 뜻밖에 어린 시절의 영웅까지 만난 셈이다.

국화꽃으로 만든 커다란 책도 있었다. 펼쳐진 두 장의 책장을 꽃으로 빼곡하게 장식해 놓았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괜히 더 눈길이 갔다.

이 밖에도 두 마리 학이 긴 목을 굽혀 부리를 맞대고 있는 조형물이 있었다. 서로 마주한 목이 하트 모양을 이루고 있었는데, 제법 그럴듯했다.

녀석들, 사람들 사진 찍으라고 자세 한번 잘 잡았구먼.

국화꽃 사이에는 인공 폭포도 만들어놓았다. 바위 사이로 물이 떨어지고 주변에는 형형색색의 국화들이 가득했다.

한쪽에는 노란색과 자주색 국화들이 줄지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분홍색 꽃들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축제장을 둘러보며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라 우산을 들고 구경하기가 조금 불편했지만, 꽃구경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비에 젖은 국화와 물기 어린 바닥이 가을날의 운치를 더했다.

처음부터 국화축제를 구경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그냥 걷다가 만난 것이다.

이것이 오늘 첫 번째 우연이었다.

3. 엑스포다리에서 레인코트로, 그리고 코스모스

국화축제를 구경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엑스포다리까지 걸어왔다. 출발한 뒤 거의 10km를 우산을 쓰고 걸은 셈이다.

이쯤 되니 우산을 들고 걷는 일이 슬슬 귀찮아졌다.

마침 엑스포다리 아래에는 비를 피할 만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산을 접고 배낭에 넣어두었던 레인코트를 꺼내 입었다.

이제야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물론 레인코트를 입었다고 비가 그치는 것은 아니지만, 장거리 걷기에는 우산보다 훨씬 편했다.

다시 걸음을 옮기며 갑천변에 펼쳐진 코스모스 꽃밭을 바라보았다.

분홍색과 흰색 코스모스가 강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붉고 푸른 아치가 교차하는 엑스포다리가 보였고, 반대편에는 높이 솟은 엑스포타워가 서 있었다.

그런데 이곳이 어딘가.

불과 엿새 전에도 왔던 곳이 아닌가.

지난 10월 18일 일요일, 고향 친구가 대전에 찾아왔었다. 그날도 비가 내렸지만 마님과 친구, 이렇게 셋이 함께 이곳을 찾아 코스모스를 구경했다.

그날의 이야기는 「가을비 속에 만난 동네 친구」라는 제목으로 남겨두기도 했다.

그런데 엿새 만에 또 이곳에 온 것이다.

그날은 친구와 마님이 함께였고, 오늘은 나 혼자다.

코스모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피어 있었다.

엿새 전에도 느꼈지만 요즘 코스모스는 키가 작아 예전처럼 하늘거리는 맛이 없다. 그래도 넓게 펼쳐진 꽃밭을 바라보니 가을 분위기는 제법 난다.

같은 장소를 찾았으니 사진도 비슷하게 찍게 된다.

엑스포다리를 배경으로 한 장, 이번에는 카메라를 반대편으로 돌려 엑스포타워를 배경으로 또 한 장.

그러면서 엿새 전 친구와 함께 걸었던 시간이 떠올랐다.

고향 친구와 함께한 코스모스 구경도 좋았지만, 오늘 혼자 걸으며 그날을 떠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았는데도 함께하는 사람이 다르고, 그 자리에 서 있는 내 마음도 다르다.

엿새 전에는 친구와 함께 코스모스를 보았고, 오늘은 코스모스를 보며 친구를 떠올렸다.

꽃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엿새라는 시간 사이에 또 하나의 추억이 쌓였다.

4. 사과 한 조각과 따뜻한 커피

걷기를 이어가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준비해 온 사과를 꺼내고 따뜻한 커피도 한 잔 마련했다.

비 오는 날 오래 걸은 뒤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은 참 좋다.

사과 한 조각을 곁들이니 이만한 간식도 없다.

근사한 카페에 앉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걷다가 잠시 쉬어가는 이 시간이 좋았다.

한 손에는 사과를 들고, 옆에는 커피를 놓았다. 빗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사과를 씹었다.

오래 걷는 날에는 이런 짧은 휴식도 중요하다.

아무리 걷는 것을 좋아해도 계속 걷기만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다리를 쉬게 하면서 주변도 둘러보고, 사진도 확인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배낭을 둘러멨다.

아직 걸을 길이 많이 남았다.

5. 둔산대공원에서 만난 또 하나의 우연

이번에는 둔산대공원에서 또 하나의 행사를 만났다.

「2026 대전지역 전통민속놀이 대축제」.

넓은 광장에 초록색 천막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과 우산을 쓴 방문객들이 오가고 있었다.

천막에는 지역별 민속놀이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영 협조해 주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바람에 광장에는 물이 고여 있었고, 바닥은 온통 젖어 있었다. 넓은 공간에 마련된 행사 시설들을 보니 맑은 날이었다면 제법 볼만했을 것 같았다.

행사를 준비한 사람들은 얼마나 속상할까.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천막과 행사장을 설치하고, 준비할 것도 많았을 텐데 하필 비가 내리다니.

그래도 천막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저마다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도 보였고, 우산을 쓴 시민들도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구경하며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신승훈의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우연히」.

우연히 그렇게 널 만난 거야.

오래전에 들었던 노래다.

노래 속에서는 우연히 만난 사람이 애틋한 사연의 주인공이지만, 오늘 내게 우연히 찾아온 것은 사람 대신 축제들이었다.

국화축제를 만났고, 이번에는 전통민속놀이 행사까지 만났다. 그 사이 엿새 전 친구와 함께 보았던 코스모스도 다시 보고 왔다.

이쯤 되면 참 풍성한 하루다.

그냥 걷겠다고 길을 나섰을 뿐인데, 대전에서 열리는 가을 행사들을 연달아 구경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동차를 타고 목적지만 찾아다녔다면 이런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그런데 걸으니 보인다.

오늘은 발길 닿는 곳마다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6. 갑천누리길, 물새들과 함께 걷다

다시 갑천을 따라 걸었다.

엑스포다리에서 가수원교까지 이어지는 길은 갑천누리길 1코스다.

총연장 약 10.3km.

도심을 가로지르는 갑천을 따라 걸으면서도 자연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길이다.

한쪽에는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이어지고, 다른 한쪽에는 갈대와 물풀이 우거진 하천이 펼쳐져 있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고층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으니 도심과 자연이 나란히 있는 셈이다.

물가에서는 오리들이 무리를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녀석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물 위를 떠다녔다.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헤엄치는 녀석도 있었고, 함께 움직이는 녀석들도 있었다.

얕은 물에는 하얀 백로들도 보였다.

긴 다리로 물속을 천천히 걸으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어떤 녀석은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었고, 다른 녀석은 날개를 펼치기도 했다.

그 뒤로는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었다.

참 재미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심 한복판에서 물새들이 제법 한가롭게 자기들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월평습지 일대에는 갑천 습지보호지역이라는 안내판도 있었다.

안내판을 읽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이 단순한 산책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대와 물풀, 물새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도심 가까이에 남아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물길을 따라 걷다 보니 징검다리도 만났다.

물 위로 콘크리트 블록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그 옆으로는 물이 흘렀다. 비가 내려 젖은 블록들을 바라보니 괜히 옛날 생각도 났다.

비가 내리는 갑천변은 한산했다.

산책로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고, 나무 아래에는 젖은 낙엽들이 떨어져 있었다. 길게 뻗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가을이 조금씩 깊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런 날에는 일부러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니 길이 한결 조용하다.

우산을 쓰고 걷던 아침과 달리 이제는 레인코트를 입고 있으니 두 손도 자유롭다.

물가의 새들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때로는 발걸음을 멈추며 걸었다.

오랫동안 도로와 교량을 다루던 토목기술자라 그런지 다리 아래 비탈면이나 시설물도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쉬는 날에도 그런 것까지 살펴보고 있으니 직업이란 것이 참 무섭다.

그래도 오늘은 업무를 보는 날이 아니다.

그냥 걷는 사람이다.

7. 도안호수공원에서 먹는 건빵

둔산대공원에서 민속놀이 행사를 구경한 뒤에도 한참을 더 걸었다.

대략 6km쯤 걸었을까. 도안호수공원에서 잠시 쉬었다.

이곳에서는 아까 먹던 사과 대신 건빵을 꺼냈다.

‘우리밀 추억건빵’.

건빵이라니.

군대에서 먹던 그 건빵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건빵을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추억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서 팔고 있으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한 봉지를 뜯어 먹었다.

오래 걷다가 먹으니 건빵도 제법 맛있다.

지난번 48km 걷기에서는 코다리냉면에 동태전까지 시켜 먹었다. 결국 너무 많이 주문한 동태전은 절반이나 포장해서 들고 왔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오늘은 사과와 커피, 건빵으로 간식을 해결했으니 제법 소박한 편이다.

물론 30km 넘게 걷는 사람이 먹는 것을 너무 소박하게 챙기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뭐, 어쩌겠는가.

건빵도 맛있으면 그만이지.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8. 가수원교에서 방향을 바꾸다

갑천누리길 1코스의 끝은 가수원교다.

엑스포다리에서 시작해 갑천을 따라 내려온 길이 이곳에서 끝난다.

그러나 오늘 걷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수원교에서 방향을 바꿔 건양대학교병원 쪽으로 향했다. 이후 소태봉과 옥녀봉을 거쳐 목원대학교 방향으로 걷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하천을 따라 걷던 길에서 산길과 도심을 지나는 길로 바뀌었다.

비를 맞으며 오래 걸었으니 몸도 제법 무거워졌다. 하지만 여기까지 걸어왔으니 집까지도 내 두 발로 돌아가야 한다.

애초에 어디까지 걷겠다고 정하지 않았으니, 돌아가는 길도 오늘 걷기의 일부다.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최종거리 30.6km.

지난번 대전도시철도 1호선 48km 걷기보다는 짧았지만, 이번에도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걸었다는 점에서 지난번과는 또 다른 하루였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갑천누리길에 얽힌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9. 8년 전 걸었던 길, 그리고 다음 걸음

2018년 10월.

그때도 갑천누리길을 걸었다.

갑천누리길은 모두 세 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1코스는 엑스포다리에서 가수원교까지 이어지는 약 10.3km의 도심 속 갑천길이다. 2코스는 약 16.6km, 3코스는 약 13.0km로, 세 코스를 합하면 약 40km에 이른다.

2018년 10월에는 이 길을 두 차례로 나눠 걸었다.

먼저 1코스를 걸었다. 그런데 가수원교에서 걷기를 끝낸 것이 아니라 집까지 그대로 걸어 돌아왔다.

그렇게 걸은 거리가 20km였다.

다음에는 2코스와 3코스를 한 번에 이어 걸었다. 두 코스를 합하면 약 30km. 그렇게 두 차례에 걸쳐 갑천누리길 세 코스를 모두 완주했다.

벌써 8년 전 일이다.

이번에는 비 내리는 갑천을 따라 1코스를 다시 걸은 셈이다. 물론 국화축제도 구경하고 코스모스 꽃밭도 둘러본 뒤, 가수원교에서 건양대학교병원 쪽으로 방향을 바꿔 소태봉과 옥녀봉, 목원대학교를 거쳐 집으로 돌아왔으니 전체거리는 30.6km가 됐다.

그러고 보니 나머지 2코스와 3코스도 다시 걸어보고 싶어졌다.

다음 주쯤 두 코스를 한 번에 다시 걸어볼까.

2018년에 걸었던 길이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그때 보았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새롭게 바뀐 곳도 있을 것이다.

8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도 같지는 않을 테고.

이번에는 그냥 걷고 싶어 길을 나섰다가 국화축제와 전통민속놀이 행사를 만났다. 엿새 전 친구와 함께 보았던 코스모스를 다시 보았고, 비 내리는 갑천을 따라 걷다 보니 8년 전의 기억까지 떠올랐다.

그러고는 또다시 걸어보고 싶은 길이 생겼다.

2018년 10월에 걸었던 그 길을, 2026년 가을에 다시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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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열네 번의 인생 수업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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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속에 만난 동네 친구

— 비에 젖은 대전의 어느 일요일(’26.10.18.), 세월이 흘러도 이어지는 관계와 만남의 소중함

1. 대전에 오는 동네 친구

오랜만에 고향 동네 친구가 대전에 놀러 온다고 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다. 같은 동네에서 자랐으니 알고 지낸 세월만 해도 반세기에 가깝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나뿐 아니라 아내와도 인연이 있다. 아내에게도 중학교 동창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일요일에 온다고 하자 아내가 토요일에 오라고 했다. 일요일에는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는 일기예보에 비가 저녁부터 온다고 했다며 부득불 일요일에 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일요일로 약속이 정해졌다.

모처럼 찾아오는 친구를 어디로 데리고 갈까 고민했다. 하필 날씨가 좋지 않으니 야외 나들이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대전에 왔으니 이것저것 구경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겠다.

이 친구에게는 우리 부부와 관련된 특별한 이력이 있다.

바로 우리 부부의 중신애미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나와 아내를 맺어준 사람이 바로 이 친구다. ㅋㅋ

2. 하늘거리지 않는 코스모스

친구를 만나 먼저 갑천변 코스모스 꽃밭으로 향했다.

분홍색과 흰색 코스모스가 넓은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꽃밭 너머로는 엑스포다리가 보였다. 잿빛 하늘 아래 펼쳐진 코스모스는 제법 아름다웠다.

그런데 꽃밭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코스모스가 너무 작았다.

내가 기억하는 코스모스는 저렇지 않았다. 사람 허리춤을 훌쩍 넘기는 가느다란 줄기 끝에 꽃을 매달고, 가을바람이 불면 하늘하늘 흔들리던 꽃이었다.

바람이 세게 불면 쓰러질 듯 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섰다. 꽃잎이 예쁜 것도 좋았지만, 코스모스는 그렇게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더 좋았다.

요즘은 키가 작은 왜성 품종을 많이 심어서인지 예전처럼 훤칠한 코스모스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꽃은 촘촘하고 화려하지만 하늘거리는 맛이 없다. 꽃밭은 풍성해졌는데 운치는 오히려 줄어든 것 같다.

어린 시절 고향의 가을 풍경이 떠올랐다.

그때는 길가에도 코스모스가 흔했다. 누가 심었는지도 모르는 꽃들이 가을이면 피어났고, 가느다란 줄기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특별히 가꾸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그 시절 우리는 그런 풍경 속에서 자랐다.

같은 동네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이제는 쉰 살을 훌쩍 넘겼다. 그때는 매일 마주치던 얼굴들이었는데, 이제는 서로 다른 곳에서 살면서 이렇게 날을 잡아야 만날 수 있다.

코스모스 구경을 마치고 꿈돌이와 꿈순이도 만나러 갔다.

대전의 마스코트인 꿈돌이와 꿈순이를 보니 1993년 대전엑스포가 생각났다. 그때 우리 나이 스무 살 무렵이었다. 어느덧 30년이 훌쩍 지났으니 꿈돌이도 우리와 함께 세월을 먹은 셈이다.

우산을 쓰고 사진도 찍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날씨가 영 고약했다.

3. 비 맞은 개꼬라지

일기예보에는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했지만, 비는 저녁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것도 적당히 내리는 비가 아니었다. 대차게 쏟아졌다.

우산을 받쳐 들어 머리와 윗몸은 어느 정도 비를 피했지만, 바짓가랑이와 신발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빗물이 튀고 바닥에 고인 물을 밟을 때마다 바짓단이 젖어 들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길도 온통 구적구적했다.

그래도 이왕 나온 김에 구경은 계속했다.

마침 엑스포과학공원 일대에서 대전 빵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비가 그렇게 쏟아지는데도 행사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산을 든 사람들이 천막 사이를 오가며 빵을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틈에 섞여 돌아다녔다.

대전의 빵축제라면 역시 성심당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성심당 부스에 가보니 줄이 드럽게 길었다.

비까지 맞아가며 그 긴 줄에 서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빵이 아무리 맛있어도 그렇지, 신발까지 젖어 가며 기다릴 일은 아니었다.

결국 축제장 성심당 부스의 긴 줄은 포기했다. 대신 그 근처에 있는 성심당 DCC점 튀소정거장으로 향했다.

친구는 그곳에서 빵을 한 보따리 샀다. 우리야 대전에 사니 언제든 사 먹을 수 있지만, 멀리서 찾아온 친구는 기왕 온 김에 넉넉히 사 가고 싶었을 것이다.

친구가 산 빵은 내가 대신 들었다. 한 손에 빵 봉지를 잔뜩 들고 젖은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사진에도 남았다.

그동안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신발 속까지 물이 들어왔다. 아내도 친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셋 다 비 맞은 개꼬라지가 되었다. ㅋㅋ

토요일에 오라고 했던 아내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겠는가.

4. 비에 젖어도 즐거운 하루

몸은 고단했지만 참 재미있었다.

어릴 적에는 친구를 만나는 일이 특별하지 않았다. 같은 동네에 살았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 시간을 맞추고 먼 길을 오가야 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어도 만나면 반갑고 편안하다. 오랜 친구 앞에서는 굳이 지난 시간을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서로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그날 찍은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비에 젖은 풍경도,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던 모습도 사진 속에 남아 있었다.

다음에는 날씨가 좋은 날 다시 만나면 좋겠다.

하지만 이번처럼 궂은 날씨에 고생한 하루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쨌든, 비는 실컷 맞았어도 친구는 참 잘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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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손장섭, 강연균, 임옥상 같은 호남의 화가들이 풍경 속에 그리는 시뻘건 들판이 남도의 역사적 아픔과 한을 담아낸 조형적 변형인 줄 알았는데, 여기 와보니 그것 자체가 리얼리티였네요. 정말로 강렬한 빛깔이네요."
나의 학생들은 이처럼 시각적으로 감성적으로 정직하고, 무엇인가 느낄 줄 아는 답사의 모범생들이었다. 대학생 시절 나 역시 처음 남도땅을밟았을 때, 나에게 다가온 가장 큰 감동은 남도의 포근한 들판과 느릿한산등성이의 곡선 그리고 저 황토의 붉은빛이었다. - P16

월출산 도갑사
월출산의 대표적인 절집 도갑사(寺)의 정취는 아침나절 산안개가 걷힐 때 가장 아름답다고 기억한다. 매표소에서 돌담을 끼고 계곡을따라 조금 가다보면 비스듬히 출입문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해탈문(解脫)은 국보 제50호로 일찍부터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초기의 목조건축으로 집의 생김새가 특이하고 주심포. 다포 양식의공존이라는 건축사적 의의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 정도 건물에 국보라는 가치를 부여한 것에 나는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시대가 오래되고드물다고 해서 국보가 되는 것은 아니리라. - P18

도갑사 관음32응신도
사실 도갑사의 불화로 말할 것 같으면 생각할수록 아쉬움이 남는 조선시대 불화의 최고 명작이 봉안되어 있었다. 지금은 일본 교토(京都)의 대찰인 지은원(知恩院, 지온인)에 소장되어 있는 <관음32응신도三十二應身圖)>다. 높이 2.3미터, 폭 1.3미터의 비교적 대작인 이 두루마리 탱화는 화려한 고려 불화의 전통과 조선 전기의 산수화풍이 어우러진 둘도 없는 명작으로 1550년 인종 왕비인 공의왕대비(恭懿王大妃)가돌아가신 인종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이자실(李)에게 그리게 하여이곳 도갑사에 봉안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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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월출산과 남도의 봄
잃어버린 옛 정취의 미련국토의 최남단, 전라남도 강진과 해남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장 제1절로 삼은 것은 결코 무작위의 선택이 아니다. 답사라면 사람들은 으레 경주·부여·공주 같은 옛 왕도의 화려한 유물을 구경 가는 일로생각할 것이며, 나 또한 답사의 초심자 시절에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난 세월 내가 답사의 광)이 되어 제철이면 나를 부르는곳을 따라가고 또 가고, 그리하여 나에게 다가온 저 문화유산의 느낌을확인하고 확대하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수없이 여러번 다녀온 곳이 바로 이 강진·해남땅이다. - P13

강진과 해남은 우리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무대의 전면에 부상하여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일 없었으니 그 옛날의 영화를 말해주는 대단한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한 곳이며, 지금도 반도의 오지로 어쩌다 나 같은 답사객의 발길이나 닿는 이 조용한 시골은 그 옛날은둔자의 낙향지이거나 유배객의 귀양지였을 따름이다. - P13

남도의 황토, 남도의 들판나주평야의 넓은 들 저편으로는 완만한 산등성의 여린 곡선이 시야로 들어온다. 들판은 넓고 평평한데도 산은 가깝게 다가오니 참으로 이상스럽다. 나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마치 길게 엎드려 누운 사람의 등허리 곡선처럼 느슨하면서도 완급과 강약이 있는 리듬을 느낀다. 말끝을당기며 "~잉" 소리를 내는 남도사투리의 여운과도 같고, 구성진 육자배기의 끊길 듯 이어지는 가락같이도 느껴진다. 그것은 나만이 느끼는 별스런 감정이 아니었다. 김아무개라는 졸업생이 내게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
"남도땅의 산등성은 참으로 포근하게 감싸주는 아늑함이 있네요.
경산의 압량벌이나 안동 쪽에서는 펑퍼짐하거나 육중한 것이 가로막아 저런 따스함을 못 느끼거든요."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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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두 번째 기록 ㅣ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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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가 아니라 슬픔이었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두 번째 기록』 — 세스지

책 소개

* 지은이 : 세스지(背筋), 일본의 공포소설 작가
* 옮긴이 : 전선영
* 출판사 : 반타
* 출간일 : 2026년 6월 22일
* 분량 : 364쪽
* 장르 : 일본 공포소설, 모큐멘터리 호러
* 작품 특징 : 잡지 기사, 인터뷰, 인터넷 게시글, 목격담 등 다양한 기록을 엮어 긴키 지방의 특정 장소에서 발생한 괴이한 사건들을 추적하는 작품
* 특이사항 : 2025년 국내 출간된 동명 소설을 일부 개작한 작품. 기본 줄거리는 유지하면서 인물 설정과 주제, 결말 등을 변경한 일본 문고판을 『두 번째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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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무섭지 않았다.

산속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목소리,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 기괴한 행동을 하는 여자, 수상한 종교 집단과 저주를 부르는 스티커까지. 실제로 이런 일을 겪는다면 공포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활자로 읽는 이야기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산만했다.

1984년 소녀 실종사건에서 시작해 수련회 집단 히스테리, 인터넷 괴담, 아파트 투신사건, 미확인 생물, 기괴한 사진과 신흥 종교까지. 사건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하나의 이야기에 몰입할 만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끼어든다. 작가는 이 모든 사건에서 공통점을 찾아 하나의 장소로 연결하려는 것 같은데, 내게는 서로 다른 괴담을 이것저것 가져다 붙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반복되는 단서들이 조금씩 연결된다. 산과 댐, 신사와 도리이, 감과 신부, 그리고 마시라사마.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던 말들이 뒤에 가서 설명된다. 하지만 단서들이 연결된다고 해서 읽는 동안 끊겼던 몰입까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연결 관계를 이해하는 것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후반부에 이르러 그동안 괴담 속에 가려져 있던 한 가족의 비극이 드러났다.

사람들을 두렵게 했던 빨간 여자는 한때 남편과 두 자녀를 둔 어머니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종교에 빠져들었고, 그 과정에서 가족의 삶은 무너져 내렸다. 아키라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으며, 홀로 남은 세노는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들의 사연을 알고 나니 귀신의 정체나 괴담의 진상보다 그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 더 마음에 남았다. 그때까지 무섭지 않게만 읽었던 이야기에서 비로소 슬픔을 느꼈다.

결국, 가족인가.

가족을 갖고 싶었던 사람, 가족을 잃은 사람, 그리고 잃어버린 가족을 끝내 놓아주지 못하는 사람.

특히 빨간 여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었다. 열 살 때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3남 1녀, 네 남매를 홀로 책임지셨다. 어린 자식 넷을 키우며 살아오신 세월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럼에도 어머니는 힘을 잃지 않으셨고, 우리 네 남매를 끝까지 지켜주셨다.

그래서 빨간 여자의 이야기가 더욱 안타까웠다. 남편을 잃은 슬픔과 혼자 자식을 키워야 하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종교에 빠져들고, 결국 자식들마저 비극으로 몰아넣은 삶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만약 우리 어머니도 그랬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꽂이에 꽂혀 있던 최인호의 『가족』 두 권을 찾아 꺼냈다.

1권의 표지에는 아버지가 어린아이를 목말 태우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탄 아이도 함께 웃고 있다. 아이를 목말 태운 아버지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하다.

2권의 표지는 더욱 따뜻하다. 아버지가 아들의 뒤에서 두 팔로 가슴을 감싸 안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해맑게 웃고, 아버지는 그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다. 아이의 웃음이 아버지에게 전해진 것인지, 아버지의 행복이 아이에게 전해진 것인지 모를 만큼 두 사람의 표정이 밝다.

그래, 이게 가족의 모습이어야지.

아이를 어깨에 태워주고, 품에 꼭 안아주고, 함께 웃으며 살아가는 것. 자식에게 아버지의 어깨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고, 아버지의 품은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키라와 세노의 아버지도, 나의 아버지도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저 사진 속 아버지와 아이처럼 함께 웃고 살아갈 시간이 우리에게는 너무 짧았다. 아키라와 세노도 아버지의 빈자리를 안고 자라야 했고, 나 역시 열 살 이후로는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탈 수도,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도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떠난 뒤 남겨진 가족의 삶은 너무나 달랐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모두 채울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우리 네 남매가 살아갈 울타리는 끝까지 지켜주셨다. 반면 소설 속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뒤 종교에 의지했고, 가족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았다.

그 여자도 처음부터 그런 삶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키라와 세노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책 표지 속 아버지와 아들의 웃는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런 가족의 모습이었다면, 그 여자와 아키라, 세노도……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다.

결국 책을 덮고 내 마음에 남은 것은 귀신도, 저주도 아니었다. 열 살에 아버지를 잃은 우리 네 남매의 곁을 끝까지 지켜주신 어머니였다. 그 세월의 무게를 이제야 조금 헤아려 본다.

어머니의 은혜는 하늘같다.

식상하고 상투적인 말이지만, 지금 내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내게 이 책은 공포가 아니라 슬픔의 이야기였고,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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