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
두경아 지음 / 길벗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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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기 - 특별기고]

내 책상 위의 후지오호(富士五湖) ― 플래티넘 #3776 센추리 후지오호 다섯 자루

후지산을 처음 본 것은 이번 여행이지만,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후지산 주변의 다섯 호수를 알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만년필을 모으면서 하나씩 손에 넣었던 플래티넘 #3776 센추리 ‘후지오호(富士五湖) 시리즈’ 때문이다.

후지오호는 후지산 북쪽 기슭을 둘러싼
모토스호(本栖湖, もとすこ),
쇼지호(精進湖, しょうじこ),
사이호(西湖, さいこ),
야마나카호(山中湖, やまなかこ),
가와구치호(河口湖, かわぐちこ)의 다섯 호수를 말한다.

플래티넘은 이 다섯 호수를 하나씩 만년필로 만들었다.

첫 번째는 2011년 ‘本栖(Motosu)’.

두 번째는 2012년 ‘精進(Shoji)’.

세 번째는 2013년 ‘西(Sai)’.

네 번째는 2015년 ‘山中(Yamanaka)’.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가 2016년 ‘河口(Kawaguchi)’였다.

2011년 시작된 시리즈가 2016년 가와구치까지 나오면서 비로소 후지오호 다섯 자루가 완성된 것이다.

플래티넘도 2016년 가와구치를 발표하면서 이를 후지오호 시리즈의 최종작으로 밝혔다.

나는 이 다섯 자루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섯 자루 모두 아직 한 번도 잉크를 넣어 사용하지 않았다.

만년필을 사면 당연히 잉크를 넣고 글을 써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녀석들은 처음 손에 들어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펜촉에 잉크 한 번 묻히지 않은 채 지금까지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말 그대로 아직 한 번도 잉크를 머금어보지 못한 처녀 상태의 다섯 자루다.

사진 속에 늘어놓은 순서도 발매 순서 그대로다.

1. 本栖(Motosu) ― 모토스호(本栖湖, もとすこ)

2011년 나온 첫 번째 만년필이다.

후지오호 시리즈의 시작이면서 #3776 센추리의 시작을 알린 모델이기도 하다.

완전히 투명한 몸체가 특징이다.

플래티넘은 이후 공식 자료에서도 本栖를 2011년 후지오호 시리즈의 첫 모델로 소개하면서, 완전한 투명 몸체를 특징으로 들고 있다.

모티프가 된 곳은 모토스호(本栖湖, もとすこ).

후지오호 가운데 가장 깊은 호수이며 물이 맑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만년필 역시 색을 거의 넣지 않은 투명한 몸체로 호수의 맑은 물을 표현했다.

처음 이 펜을 구입했을 때 투명한 바디 안으로 빛이 스며드는 모습이 너무 맑아 한동안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기도 했다.

‘아, 이게 모토스호의 물빛을 표현한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타누키호에 갔을 때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모토스호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 다시 실감났다.

타누키호에서 조금 더 가면 모토스호가 나온다.

책상 위에 있는 만년필의 이름과 실제 여행지의 지명이 그대로 겹쳐졌다.

시간만 있었으면 가보고 싶었다.

결국 이번에는 타누키호에서 돌아섰다.

내 책상 위에는 오래전부터 ‘本栖’가 있었는데 정작 그 이름의 주인공인 호수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2. 精進(Shoji) ― 쇼지호(精進湖, しょうじこ)

2012년 두 번째로 나온 모델이다.

모티프는 쇼지호(精進湖, しょうじこ).

사진으로 보면 첫 번째 本栖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몸체에 아주 옅은 푸른빛이 돈다.

투명한 수면에 아침빛이 스며든 듯한 느낌이다.

本栖의 맑은 투명함과는 또 다르다.

두 자루를 나란히 놓아야 그 미묘한 차이가 제대로 보인다.

처음 구입했을 때는 本栖와 거의 비슷한 투명 만년필처럼 보였다.

‘왜 또 투명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햇빛 아래에서 바라보니 本栖와는 다른 은은한 푸른빛이 드러났다.

쇼지호의 수면에 아침 햇살이 비치는 모습을 표현한 만년필이라는 설명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번 여행에서 이른 아침 신칸센을 타고 달리다 구름 사이로 후지산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그런 맑은 겨울 아침빛을 보았다.

오랫동안 책상 위에서 보아온 푸른빛이 실제 후지산의 아침 풍경과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3. 西(Sai) ― 사이호(西湖, さいこ)

2013년 세 번째 모델.

모티프는 사이호(西湖, さいこ)다.

이름은 한자로 달랑 ‘西’.

일본어로는 ‘사이’라고 읽는다.

다섯 자루 가운데서도 사진으로 금방 구별되는 만년필이다.

몸체 전체에 물결이 흐르는 것 같은 독특한 가공이 들어가 있다.

빛을 받으면 투명한 몸체 위로 선들이 반짝이면서 호수의 수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난다.

처음 손에 넣었을 때도 이 물결무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만년필을 이리저리 돌려보면 빛을 받을 때마다 몸체 위의 선들이 반짝였다.

‘이건 정말 호수 수면을 담아냈구나.’

그렇게 느꼈다.

이번 도쿄 여행에서는 우에노공원의 시노바즈노이케(不忍池)도 걸었다.

물론 그곳은 사이호와 전혀 다른 도쿄 한복판의 연못이지만, 수면 위에 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니 문득 이 만년필의 물결무늬도 생각났다.

서로 다른 장소의 물이었지만 빛을 받아 흔들리는 수면이라는 점에서는 묘하게 겹쳐 보였다.

4. 山中(Yamanaka) ― 야마나카호(山中湖, やまなかこ)

2015년 네 번째 모델.

모티프는 야마나카호(山中湖, やまなかこ).

세계 3,776자루 한정으로 만들어졌는데, 숫자 3,776은 후지산의 해발고도 3,776m에서 가져왔다.

플래티넘은 후지오호 가운데 가장 높은 해발 약 1,000m에 자리한 야마나카호에 아침의 맑은 빛이 비치며 호수가 반짝이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투명한 몸체에 빛이 들어오면 수면이 반짝이는 듯 보이도록 가공한 것이 특징이다.

플래티넘의 대표 만년필인 ‘#3776’이라는 이름 자체가 후지산의 해발고도 3,776m에서 비롯되었다.

야마나카 한정판은 이 상징적인 숫자를 한정수량에도 그대로 적용해 3,776자루를 제작했다.

즉 #3776이라는 모델명과 야마나카의 한정수량 모두 후지산의 높이 3,776m를 공통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이 펜을 구입했을 때도 ‘3776’이라는 숫자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후지산을 모티프로 한 #3776이라는 이름에 다시 후지산 높이만큼인 3,776자루라는 한정수량을 맞춰놓은 셈이다.

이번 여행에서 시라이토 폭포를 바라볼 때는 절벽 사이로 흘러내리는 수많은 물줄기와 그 위에 비치는 햇빛을 보았다.

폭포의 물과 호수의 물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의 모습에서는 山中의 투명한 바디가 떠올랐다.

5. 河口(Kawaguchi) ― 가와구치호(河口湖, かわぐちこ)

2016년 마지막으로 등장한 다섯 번째 모델이다.

모티프는 가와구치호(河口湖, かわぐちこ).

앞의 네 자루가 대부분 투명하거나 아주 옅은 색인데, 마지막 가와구치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다.

짙은 청색이다.

플래티넘이 붙인 색의 이름은 ‘Dawn Blue’.

해가 뜨기 직전,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에 후지산과 가와구치호가 깊은 푸른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플래티넘의 공식 설명도 ‘새벽을 기다리는 가와구치호’를 중심 이미지로 삼아, 정적 속에 떠 있는 후지산과 호수의 수면을 표현했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 한정수량은 2,500자루였다.

처음 구입했을 때도 이 짙은 청색은 앞의 네 자루와 확연히 달라 보였다.

투명하거나 옅은 색의 만년필 네 자루 사이에 놓으니 가와구치의 푸른색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마지막은 새벽의 푸른빛으로 장식했구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라는 느낌이 확실했다.

그래서 다섯 자루를 나란히 놓으면 마지막 가와구치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투명한 네 자루 끝에 짙은 푸른색 한 자루.

후지오호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잘 어울리는 만년필이다.

타누키호에서는 커다란 구름 사이로 후지산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숨기를 반복했다.

겨울의 푸른 하늘과 짙은 구름 사이로 눈 덮인 후지산이 나타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와구치의 Dawn Blue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만년필 속에서는 새벽의 푸른빛으로 후지산을 상상했는데, 이날은 실제 후지산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6. 책상 위의 후지산, 창밖의 후지산

本栖, 精進, 西, 山中, 河口.

다섯 자루를 하나씩 모으면서 후지오호의 이름과 위치도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런데 정작 후지산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보았다.

신후지역으로 들어가는 신칸센 오른쪽 창밖으로 후지산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렇게 흥분했던 것도 어쩌면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오랫동안 만년필 이름으로 익숙했던 후지산과 그 주변의 지명들이 갑자기 실제 풍경으로 나타난 것이다.

책상 위에서는 투명한 바디와 옅은 푸른빛, 물결무늬, 반짝이는 빛, 새벽의 짙은 청색으로 후지산과 다섯 호수를 상상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눈 덮인 정상과 구름, 시라이토 폭포의 물줄기, 타누키호의 겨울 수면으로 후지산을 직접 만났다.

시라이토 폭포를 지나 타누키호까지 갔고, 그곳에서 흰 머리의 후지산을 질리도록 바라보았다.

타누키호에서 조금만 더 가면 모토스호(本栖湖, もとすこ)였다.

‘저기까지 가면 내가 가지고 있는 첫 번째 녀석, 本栖의 진짜 호수를 볼 수 있는데.’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이번에는 거기까지였다.

책상 위에 다시 다섯 자루를 발매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本栖, 精進, 西, 山中, 河口.

아직 어느 한 자루에도 잉크 한 번 묻히지 않았다.

처음 손에 넣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다섯 자루가 나란히 놓여 있다.

그동안은 만년필을 보면서 호수를 떠올렸다면, 이제는 이 만년필들을 볼 때마다 이번에 직접 보았던 흰 머리의 후지산과 타누키호의 겨울 풍경도 함께 생각날 것 같다.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한 다섯 호수도 남아 있다.

언젠가는 이 다섯 자루의 이름을 하나씩 직접 찾아가 보는 여행도 해보고 싶다.

그때는 책상 위에서만 보아온 本栖, 精進, 西, 山中, 河口를 실제 호숫가에 서서 하나씩 만나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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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체격에 중간 키, 짧게 깎은 머리에 윤곽이 뚜렷한 지적인 얼굴. 젊었을 때 흰 정장이라도 입었다면 ‘미청년’처럼 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설 연휴 때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그때 느낌으로는 마음이 많이 약해지신 것 같더군요."

미야가키 상에 관해서는 전부터 우타야마도 들었다. 에도가와 란포가 스스로 자기 이름을 붙인 문학상을 만들었듯이(운영 주체는 당시의 일본탐정작가클럽이었지만 기금은 란포가 기부했다) 미야가키 선생 또한 자기 이름을 그런 형태로 남기고 싶다고 거리낌없이 공언했다.

"십 몇 억 엔이라니, 만약에 그런 엄청난 재산을 둘러싸고 상속 다툼이라도 일어나면 그야말로 살인사건이 나는 건 문제도 아니겠네."

"뜻하지 않은 사태가 일어나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검토하느라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뜻하지 않은 사태?"

그리고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이를 악문 듯한 말투로 그 사태를 전했다.

"미야가키 선생님께서 오늘 아침, 자살하셨습니다."

"하하, 하하하……."

이윽고 처음 소리를 낸 사람은 기요무라였다. 그는 문 앞에 선 이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테이블에 한 손을 짚고 일어섰다.

"안 속아요, 이노 씨. 그런 수법은 먹히지 않죠."

기요무라가 익살스러운 말투로 내뱉었다.

"만우절 놀이에는 이제 슬슬 식상할 때가 되었다니까요."

그 말에 실내의 긴장이 단숨에 풀어졌다. 기요무라는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뭐 그래도 모처럼 선생님이 꾸미신 계획을 무시하기도 난처하니 여기서 적당히……."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안타깝게도 미야가키 선생님은 정말로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이때 초대받은 손님들 각자의 머릿속에는 과연 어떤 생각이 스쳐갔을까.

"그런 문제에 관해서는 절대로 착오가 없을 겁니다. 침실 침대에서 수면제를 많이 드신 모양입니다."

아아…… 하는 긴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우타야마는 이노에게 걸어가며 물었다.

"유서는?"

"있었습니다."

"원래는 당연히 바로 경찰에 신고해야겠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말씀하시는 뜻을 잘 모르겠는데요."

"그건…… 여기서 설명드리기가 좀 힘든 문제라서."

"잠깐만요. 분명히 맞는 말씀입니다. 경찰에 알려야 하죠. 하지만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매우 특수한 상황이라……. 그러니까, 돌아가신 미야가키 선생님께서 당분간 경찰에 연락해서는 안 된다는 유언을 남기신 겁니다."

불쑥 일어선 시마다는 손에 든 검은 물체를 테이블 위에 내던졌다.

"이거 접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기로 약속했는데."

두 개의 팔에 두 다리, 뾰족한 두 귀에 창처럼 생긴 꼬리, 등에는 날개 두 개가 달려 있는 그것은 검은 종이로 만든, 우타야마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이접기였다.

아리아드네.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미노스 왕의 딸이면서도 젊은 테세우스에게 반해, 괴물을 쓰러뜨리기 위해 미궁으로 들어가는 그에게 길을 찾을 때 쓸 실꾸리를 건네준 공주…….

이 저택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응접실 이름이 ‘미노타우로스’이고, 방금 나온 넓은 홀은 ‘아리아드네’라고 불린다. 이처럼 이 저택에 있는 열 몇 개의 방에는 각각 미노스 궁전의 에피소드와 관련 있는 신화 속 인물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복도 폭은 1미터도 되지 않는다. 실내나 현관 계단 부분과는 달리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지 않아 적갈색 플라스틱 바닥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높은 천장은 복도 폭을 한 변으로 삼은 정사각형 유닛(철골과 유리로 이루어진 그 납작한 피라미드가 그것이다)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리는 푸른 색이 감도는 두툼한 무늬 유리인데, 그리로 스며드는 자연광은 이미 저녁 어둠에 젖어가고 있었다.

복도는 직선과 직각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복잡하게 얽혀, 저택 중앙부의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복도가 이 저택 명칭의 유래가 된 ‘미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미궁’ 주인의 너무도 갑작스러운 ‘자살’.

‘이제 와서 장수 기록에 도전할 생각은 전혀 없네.’

석 달 전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던 미야가키…….

그때 이미 그 양반은 오늘 일을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이상하다…….

이노 미쓰오가 보여주는 기묘한 말과 행동은 무엇일까.

가속도가 붙은 어둠이 더욱 짙어지는 미로 모양의 복도를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돌고…… 이윽고 목적지인 미야가키의 서재에 도착했다.

MINOSS.

새겨진 글자를 눈으로 더듬었다.

미노스.

명장名匠 다이달로스에게 명령을 내려 미궁을 만들게 한 크레타 왕의 이름이 제작자의 실수인지 로마자로 표기한 그 철자에는 S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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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약속했던 4시에서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미야가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서인 이노 미쓰오도 나타나지 않았다.

"설마 이노 씨가 오지 않았을 리는 없을 텐데……."

"예를 들면 미야가키 선생님이 몸이 좋지 않다거나."
우타야마는 3개월 전 자기 건강을 ‘형편없다’고 평하던 노작가의 어색한 웃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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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문단 ‘배후의 대가‘라고나 불러야 할 존재!
우타야마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대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한, 이른바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시대의 유행을 넘어서 미야가키만큼 열렬한 ‘신봉자‘를 거느린 추리작가도 드물지 않을까.

"끈덕지군, 자네도. 난 원래 마음이 아주 약한 사람일세. 예를 들면 말이야, 내겐 소년 시절부터 간절히 바라던 소망이 하나 있었지. 한번 내 손으로 사람을 죽여보고싶다는 소망이. 하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네. 몇 십 년씩 살인 이야기만 써온 건 말하자면 그 보상 행위겠지."

‘미로관迷路館‘이라고 불리는 그 저택은 미야가키 요타로가 십여 년 전에 별장으로 지은 집이다. 원래 목적에 걸맞게 여름 한철을 지내는 데 쓰던 시절에는 우타야마도 몇 차례 초대받은 적이 있다. 그 이름대로 집 안 복도가 복잡한 미로 모양을 한 기상천외한 건물이라 처음 방문했을 때는 상당히 당황했다. 미야가키는 장난꾸러기아이 같은 얼굴로, 놀라는 방문객들의 반응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곤 했다.

"날 과대평가하는군. 그 유명한 밴 다인 씨가 한 말이 옳아. 한 작가가 뛰어난 탐정소설을 여섯 편 이상은 쓸 수 없다는. 내가 사십 년 가까이 대체 몇 작품이나 썼는지아나? 장편만 해도 그 한계치를 곱절이나 넘어섰네."

"연말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규슈에 있는 무슨 절집 셋째아들이라고....... 아, 만나면 알 걸세. 자네도 분명히 관심을 갖게 될 거네."

염려하던 미야가키의 컨디션이 ‘건강한 건지 어떤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미야가키가 아직도 내심 창작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있었다. 그것만 해도 오늘 먼 걸음을 한 수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물론 이때 우타야마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설마 이것이 살아 있는 미야가키 요타로와 이야기를 나눈 마지막 기회가 될 줄은.

"살려줘......."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오른쪽에서 누군가가 우타야마의 어깨로 털썩 쓰러졌다.
"으악!"
우타야마는 소리를 지르며 얼른 피했다. 게이코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쓰러진 사람은 그대로 무릎을 꺾더니 무너지듯 바닥에 폭 고꾸라졌다.

십각관에 수차관....... 참극으로 얼룩진 나카무라 세이지의 저택. 그리고 지금 설마 이렇게 느닷없이 이 미로관에서도?
"이럴 수가!"
우타야마는 큰 소리를 지르며 쓰러진 기요무라를 피해 넓은 홀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카무라 세이지.
다시 시마다의 입을 통해 나온 그 이름에 우타야마는 불쑥 ‘불길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막연한 어떤 예감을 느꼈다.

"그런데 저 도우미 할머니,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우타야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쓰러져 있던 기요무라가 벌떡 일어났다. 그 옆에 있던 시마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정말 실례했습니다. 그래도 제법 명연기였죠?"
기요무라는 활짝 웃으며 입가에 묻어 있던 붉은 얼룩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기요무라 준이치는 만우절 연극을 성공시켜서 무척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제대로 한 방 먹은 시마다도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오히려 아주 유쾌하다는 표정이다. 테이블에 나란히 앉자마자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둘은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기요무라 준이치, 30세.
사 년 전 『기상』 신인상에 입선해 작가로 데뷔. 수상작 「흡혈의 숲은 오컬트적인 소재를 건조한 터치로 그린 수작이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갸름한 얼굴. 얼핏 보기에도 미남 청년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이라는 사실을 우타야마는 잘 알고 있다.

"어지간히 하시지, 기요무라 씨?"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흘끔 보며 후나오카가 말했다.
"처음 뵙는 분도 계신데, 실례가 지나치잖아?"
후나오카의 말을 듣고서야 우타야마는 사태의 흐름을 눈치챘다. 허허 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가 다시 문 쪽을 돌아보았다.

"응, ‘암색텐트‘라는 작은 극단에 있었던 모양이야. 지금은 그만둔 상태지만."

"일부러 주방에서 케첩까지 조달해왔으니 저 사람도 참 곤란하군요. 하지만 원래 배우였으니 연기는 꽤 수준급이죠?"

스자키 쇼스케, 41세.
오늘 모인 미야가키요타로의 ‘제자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인물이다. 중세 유럽을 무대로 삼은 중후한 본격물이 특기인데, 워낙 집필이 느려 편집자들이 피하려는작가다.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어. 혹시 이미 망령이 드신 걸까?"
"저 할머니는 원래 그런 분이에요."

돌아보니 스자키는 여전히 안쪽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검은 테 안경을 쓴 신경질적인 얼굴. 갈색 스웨터를 걸친 야윈 체격에 구부정한 등이 특징적이다. 그가 기요무라의 명연기에 크게 놀라는 모습을 떠올려보았지만 아무래도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자기가 받는 급여만큼 일하는 것 외에는 별 관심이 없죠. 미야가키 선생님은 오히려 그런 면을 더 좋게 보신 것 같지만. 그리고 조금 전에 벌인 그 소동은 두 번째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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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만드는 기술 이야기 - 다리, 터널, 도로, 통신망, 전력망, 철도, 댐, 상하수도, 건설 장비까지 우리 주변을 둘러싼 인프라의 모든 것
그레이디 힐하우스 지음, 윤신영 옮김 / 한빛미디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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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북알프스 여행기 - 특별기고]

黒部ダム(쿠로베댐) 건설기
― 26년 도로맨의 눈으로 본 일본 토목기술의 기념비
(파쇄대를 뚫고 북알프스에 떨친 일본의 토목기술)

1. 여행지가 아니라 거대한 토목구조물 앞에 서다

立山黒部アルペンルート(다테야마쿠로베 알펜루트)를 여행하며 만난 수많은 풍경 가운데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 중 하나가 黒部ダム(쿠로베댐)이었다.

웅장한 북알프스의 산과 깊은 계곡 사이를 막아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관광객의 눈으로만 보면 장대한 풍경 속에 자리한 유명 관광명소다.

그러나 내 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나는 토목기술자로 26년을 살아왔다.

국도와 고속도로의 설계와 공사현장을 오가며 수많은 도로와 터널, 교량을 직접 설계하고 공사를 감독했다.

그중에는 국내 최초의 해저터널 건설공사도 있었다.

그렇게 평생을 도로와 함께 살아온 사람의 눈으로 黒部ダム(쿠로베댐)과 関電トンネル(간덴터널)을 바라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콘크리트 구조물 하나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저 거대한 산속에서 측량을 하고, 길을 내고, 터널을 뚫고, 물과 암반과 싸우며 구조물을 세웠을 당시 기술자들과 근로자들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토목기술자의 위대함이여.”

이 댐을 만든 일본의 토목기술자들과 근로자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2. 전후 일본의 전력난에서 시작된 黒四(쿠로욘)

黒部ダム(쿠로베댐)은 단순히 관광을 위해 만들어진 댐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은 빠른 경제복구 과정에서 심각한 전력 부족에 시달렸다.

특히 関西(간사이) 지역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안정적인 대규모 전원개발이 절실해졌다.

関西電力(간사이전력)은 사람의 접근조차 쉽지 않았던 黒部川(쿠로베강) 상류의 막대한 수력에 주목했다.

그 결과 추진된 사업이 黒部川第四発電所(쿠로베강 제4발전소) 건설사업이다.

흔히 ‘黒四(쿠로욘)’이라고 부르는 대사업이었다.

1956년 공사가 시작되어 1963년 완공될 때까지 약 7년이 걸렸다.

당시 돈으로 500억 엔이 넘는 막대한 사업비가 들어갔고 연인원 약 1,000만 명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171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오늘날 거대한 관광명소가 된 黒部ダム(쿠로베댐)은 그만큼 많은 사람의 땀과 희생 위에 세워진 구조물이다.


3. 높이 186m, 일본 최대급 아치식 댐

黒部ダム(쿠로베댐)은 黒部川(쿠로베강) 상류에 건설된 아치식 콘크리트댐이다.

댐 높이는 186m.

댐 정상부 길이는 약 492m에 이른다.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산과 산 사이를 하나의 곡선으로 연결하고 있다.

아치댐은 수압을 댐 자체의 무게만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곡선 형태를 이용해 양쪽 암반으로 전달하는 구조다.

따라서 무엇보다 양쪽 산의 암반이 충분히 견고해야 한다.

댐의 형태 하나만 보더라도 지형과 지질, 구조계산, 시공기술을 모두 종합한 결과물이다.

내가 댐 위를 걸으며 자꾸 양쪽 산과 댐의 접합부를 바라보게 된 것도 토목쟁이의 버릇 때문이었을 것이다.

관광객들은 호수와 방류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콘크리트 구조와 암반부터 눈에 들어왔다.


4. 가장 먼저 해결해야 했던 문제, 어떻게 공사장까지 들어갈 것인가

이곳에 댐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사람도 장비도 자재도 들어갈 길이 없었다.

지금이야 버스를 타고 扇沢(오기사와)에서 関電トンネル(간덴터널)을 지나 黒部ダム(쿠로베댐)까지 쉽게 들어간다.

하지만 1950년대 당시 이 일대는 북알프스 깊숙한 오지였다.

거대한 댐을 만들려면 시멘트와 철근, 중장비와 수많은 인력을 끊임없이 현장으로 운반해야 했다.

따라서 먼저 산을 관통하는 자재운반용 터널이 필요했다.

이것이 大町トンネル(오마치터널), 현재의 関電トンネル(간덴터널)이다.

그러나 이 터널이 黒四(쿠로욘) 공사의 가장 악명 높은 난공사가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5. 터널 앞을 가로막은 破砕帯(파쇄대)

공사는 순조롭게만 진행되지 않았다.

1957년 5월.

터널을 굴진하던 공사팀 앞에 예상하지 못했던 지질대가 나타났다.

破砕帯(파쇄대)였다.

파쇄대란 단층운동 등으로 암반이 잘게 부서져 매우 약해진 지질대를 말한다.

단단한 암반이라면 발파하고 버럭을 반출하며 앞으로 굴진하면 된다.

그러나 파쇄대에서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암반 자체가 부서져 있기 때문에 굴착하는 순간 무너질 수 있고 그 틈을 따라 엄청난 양의 지하수가 터져 나온다.

실제 関電トンネル(간덴터널) 공사에서는 차가운 지하수가 터널 안으로 쏟아졌다.

공식 기록에도 이 파쇄대는 黒部ダム(쿠로베댐) 건설의 대표적인 난공사로 기록되어 있다.

불과 약 80m 정도의 구간을 통과하는 데 약 7개월이 걸렸다.


6. 물과 흙과 암반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터널

알펜루트 버스를 타고 関電トンネル(간덴터널)을 지나면서 지금도 당시 破砕帯(파쇄대)를 통과한 지점을 볼 수 있다.

버스 안에서도 이곳이 黒四(쿠로욘) 건설의 최대 난공사 구간이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나도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보려고 했다.

하지만 달리는 버스 안에서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데다 어두운 터널이라 제대로 찍기가 어려웠다.

그곳에서는 당시 암반 틈에서 얼마나 많은 물이 터져 나왔는지, 그리고 공사팀이 그 물과 어떻게 싸웠는지 영상과 자료로 보여주었다.

물을 머금은 부서진 암반.

굴착하면 무너지고,

막으면 다시 물이 터지고,

그 물을 빼내면서 다시 조금씩 굴진해야 하는 공사.

터널공사를 해본 사람이라면 그 상황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터널에서 물은 단순히 ‘물이 나온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막대한 용수가 들어오면 지반이 함께 흐트러지고 막장 붕괴와 토사 유출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공사를 계속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7. 80m를 뚫는 데 7개월

전체 터널 길이에 비하면 파쇄대 자체는 길지 않았다.

약 80m.

하지만 이 80m를 돌파하는 데 무려 7개월이 걸렸다.

하루에 몇 미터씩 굴진하는 일반적인 터널공사의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구간이었다.

한 발 앞으로 나가기 위해 배수하고, 보강하고, 굴착하고, 또다시 무너지는 지반을 잡아야 했다.

당시 기술자들과 근로자들은 결국 파쇄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산을 우회할 수도 없었다.

댐 건설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이 산을 뚫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파쇄대를 돌파했다.

그 뒤에야 자재와 인력을 黒部(쿠로베) 깊숙한 곳으로 대량 수송할 길이 열렸다.

지금 우리가 편안히 버스를 타고 지나는 関電トンネル(간덴터널)은 원래 관광시설이 아니다.

黒部ダム(쿠로베댐)을 만들기 위해 먼저 뚫어야 했던 공사용 생명선이었다.


8. 171명의 이름 앞에서

거대한 토목공사는 기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현장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黒四(쿠로욘) 건설공사에서는 모두 17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 黒部ダム(쿠로베댐) 오른쪽에는 그들을 기리는 殉職者慰霊碑(순직자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댐을 바라보며 그 숫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171명.

지금의 산업안전 기준으로 보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희생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시대의 열악한 장비와 기술, 혹독한 자연조건 속에서 이 거대한 공사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위험을 감수해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이기도 하다.

거대한 구조물의 뒤에는 언제나 사람의 노동이 있다.

토목기술자로 살아온 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黒部ダム(쿠로베댐)의 높이나 길이보다도 171이라는 숫자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9. 黒部記(쿠로베기)

댐 주변을 돌아보다 콘크리트 벽에 설치된 청동판 하나를 보았다.

제목은

黒部記(쿠로베기)

였다.

일본 시인 竹中郁(다케나카 이쿠)이 黒部(쿠로베) 개발의 과정을 시처럼 적어놓은 글이다.

현장에서 직접 읽었던 글이라 여행기에 원문 그대로 남겨두고 싶다.


[黒部記 원문]

黒部記

昭和三十一年五月の勇断
たちまち英智による工事に着手
秀れた自然への礼讃をこめて
関電 黒部の両トンネルは掘り進められた

思いもかけず 同三十二年五月
関電トンネルで大破砕帯に遭遇し
人智人力の限りをつくして半年
未来をひらく鍵は貫かれた

ここへわれらが生みつづけた黒部湖は
澄みわたる大空からの光りを貯え
いずかたへでも電力は
昭和三十五年十一月に湧きはじめた

遠く山野をはしり 川を越え 街をくぐり
人間生活の手となり 足となる電力
その源は全く澄い 讃歌はこれを呼んだ
時にこれ 昭和三十八年六月であった

竹中 郁


[黒部記 해석]

1956년 5월의 용단.

곧바로 지혜를 모아 공사에 착수하고,
뛰어난 자연에 대한 찬미의 마음을 담아
간사이전력의 쿠로베 양쪽 터널은 앞으로 굴진해 나갔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듬해인 1957년 5월,
간덴터널에서 거대한 파쇄대와 맞닥뜨렸다.

사람의 지혜와 힘을 모두 쏟아부은 반년 끝에
마침내 미래를 여는 열쇠가 관통되었다.

이곳에 우리가 만들어낸 쿠로베호는
맑게 갠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담고,
그곳에서 태어난 전력은
1960년 11월부터 솟아나기 시작했다.

멀리 산과 들을 달리고,
강을 건너고,
도시 아래를 지나,

사람들의 생활에서 손이 되고 발이 되는 전력.

그 근원이 이토록 맑고 깨끗하니
찬가가 이를 노래한다.

때는 1963년 6월이었다.

― 竹中郁(다케나카 이쿠)


글 가운데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人智人力の限りをつくして半年
未来をひらく鍵は貫かれた’

라는 부분이었다.

사람의 지혜와 힘을 다한 반년 끝에 미래를 여는 열쇠가 관통되었다.

토목기술자인 내게는 단순한 미사여구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 ‘반년’ 안에 파쇄대와 싸운 기술자와 근로자들의 시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10. 黒部湖(쿠로베호)

댐을 막으면서 산속에는 거대한 호수가 생겼다.

黒部湖(쿠로베호)다.

해발 약 1,450m의 북알프스 깊숙한 곳에 자리한 거대한 인공호수다.

맑은 물과 주변의 높은 산, 그리고 거대한 콘크리트댐이 함께 만들어내는 풍경은 인공구조물과 자연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댐을 만든 것은 사람이지만 그 물을 채우는 것은 눈과 비이고, 그 주변을 둘러싼 것은 수천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산이다.

현장에서 보니 댐 자체만큼이나 이 호수가 인상적이었다.


11. ダム湖百選(댐호수백선) 黒部湖(쿠로베호)

댐 주변 콘크리트 벽에는 작은 명판 하나가 붙어 있었다.

ダム湖百選
黒部湖

(댐호수백선
쿠로베호)

였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길 100선’ 같은 식으로 일본에서도 지역에 사랑받고 가치가 있는 댐 호수를 선정한 제도가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黒部湖(쿠로베호)는 2005년 일본의 ダム湖百選(댐호수백선)에 선정된 65개 호수 가운데 하나다.


[ダム湖百選 선정 취지 원문]

私たちの生活を水害から守り、
用水や電力の供給を行っているダム湖は、
四季を通じて美しい景観を見せたり、
水や自然の学習と上下流交流の場となるなど、
人々にさまざまな恩恵をもたらしているものが多くあります。

ダム湖百選は、
そのような地域に親しまれ、
地域にとってかけがえのないダム湖を選定、顕彰することによって、
より一層地域に親しまれ、
地域の活性化に役立つことを願って認定するものです。


[해석]

우리 생활을 수해로부터 지키고,
용수와 전력을 공급하는 댐 호수 가운데에는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고,
물과 자연을 배우는 장소가 되며,
상류와 하류 지역 사람들이 교류하는 공간이 되는 등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주는 곳이 많이 있다.

‘댐호수백선’은 이처럼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고,
그 지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댐 호수를 선정하고 널리 알림으로써

그 호수가 더욱 지역민의 사랑을 받고,
지역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인증하는 제도이다.


선정 기준도 단순히 풍경만 보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경관,
생태계에 대한 배려,
역사적 가치,
사람과 자연의 교류,
상하류 지역의 교류,
학습장소로서의 이용,
지역 주민의 관심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2005년 전국 165개 댐 호수가 추천되었고 이 가운데 65곳이 선정됐다.

그 하나가 바로 黒部湖(쿠로베호)다.


12. ダム湖百選(댐호수백선)이 소개하는 黒部湖(쿠로베호)

공식 ダム湖百選(댐호수백선) 자료에서는 黒部湖(쿠로베호)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원문]

黒部湖は、通称「くろよん」の名で全国に親しまれている黒部ダムの貯水池。

建設費には昭和31年当時で513億の巨費が投じられ、
延べ1,000万もの人手により、
実に7年の歳月を経て完成しました。

今では立山黒部アルペンルートの名勝として知られており、
大迫力の放水や、
大自然の中にそびえる巨大建造物としての存在感以外にも、
黒部ダムには数々のエピソードや歴史が詰まっています。


[해석]

쿠로베호는 통칭 ‘쿠로욘’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전역에 널리 알려진 쿠로베댐의 저수지다.

건설에는 1956년 당시 513억 엔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었고,
연인원 1,000만 명에 이르는 인력이 동원되어
무려 7년의 세월 끝에 완성되었다.

오늘날에는 다테야마쿠로베 알펜루트의 명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력 넘치는 방류와
대자연 속에 우뚝 선 거대한 구조물이라는 존재감뿐만 아니라,

쿠로베댐에는 수많은 이야기와 역사가 담겨 있다.


그 글을 읽어보니 역시 黒部湖(쿠로베호)를 단순히 아름다운 호수로만 선정한 것은 아니었다.

거대한 자연,
댐이라는 토목구조물,
그리고 그것을 만들기까지의 역사까지 함께 평가받은 곳이었다.


13. 관광객이 지나가는 터널 속에 남은 공사현장

현재 우리가 扇沢(오기사와)와 黒部ダム(쿠로베댐) 사이를 편안하게 이동하는 길은 70년 가까이 전 공사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뚫었던 길이다.

버스는 터널을 아무렇지 않게 달린다.

에어컨이 나오고,
조명도 켜져 있고,
관광객들은 창밖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콘크리트 벽 너머에는 당시 터널 기술자들과 근로자들이 겪었던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특히 破砕帯(파쇄대)를 지나며 그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 버스로 몇 초 만에 지나가는 그 짧은 구간을 뚫기 위해 당시 사람들은 7개월 동안 물과 암반을 상대로 싸웠다.

토목이라는 일은 완성되고 나면 너무 당연해 보인다.

터널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길 같고,

교량은 원래 강 위에 놓여 있었던 것 같고,

도로는 원래 산을 넘어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 먼저 산을 조사했고,
누군가 선을 그었고,
누군가 계산했고,
누군가 발파했고,
누군가는 막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과정을 아는 사람에게 완성된 구조물은 그냥 구조물이 아니다.


14. 『黒部の太陽(쿠로베의 태양)』

이 공사는 일본 사회에서도 워낙 큰 사건이었다.

결국 黒四(쿠로욘) 건설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木本正次(기모토 쇼지)의 논픽션 소설 『黒部の太陽(쿠로베의 태양)』이 발표되었고, 이를 원작으로 1968년 같은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주연은 三船敏郎(미후네 도시로)과 石原裕次郎(이시하라 유지로).

감독은 熊井啓(쿠마이 케이)였다.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묘사되는 장면 역시 関電トンネル(간덴터널)의 破砕帯(파쇄대) 공사다.

암반이 무너지고 차가운 물이 터널 안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기술자와 근로자들이 공사를 계속한다.

실제 黒四(쿠로욘) 건설이 그만큼 당시 일본인들에게도 ‘세기의 난공사’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이다.


15. 화려한 관광지 뒤에 있는 7년

오늘날 黒部ダム(쿠로베댐)은 너무나 잘 정비된 관광지다.

전망대가 있고,
식당이 있고,
관광방류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알펜루트를 따라온 관광객들은 댐 위를 걷고 黒部湖(쿠로베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이곳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관광지라는 모습 뒤에 1956년부터 1963년까지 이어졌던 7년의 공사현장이 보인다.

길도 없었던 산.

파쇄대.

쏟아지는 지하수.

수많은 터널.

거대한 콘크리트 타설.

그리고 171명의 희생자.

그 모든 시간이 끝난 뒤 지금의 黒部ダム(쿠로베댐)이 남았다.


16. 171명의 희생을 기억하는 殉職者慰霊碑(순직자위령비)

이 거대한 쿠로베댐을 바라보며 또 하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었다.

바로 이 댐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다.

쿠로욘 건설공사에서는 모두 171명이 목숨을 잃었다.

쿠로베댐 우안에는 이들을 기리는 殉職者慰霊碑(순직자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위령비에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여섯 사람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그 곁에는 공사 중 목숨을 잃은 171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쿠로베댐을 여기까지 돌아보면서 나는 거대한 아치댐의 위용과 발전시설, 북알프스를 뚫고 들어온 터널과 파쇄대를 보며 토목기술의 힘에 감탄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기술과 장비만이 아니었다.

험준한 북알프스의 산속에서 길을 내고, 터널을 뚫고, 물과 암반과 싸우며 직접 공사를 해낸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171명은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토목기술자로 26년을 살아오며 수많은 공사현장을 경험한 나에게 그 숫자는 결코 가볍게 다가오지 않았다.

공사현장에서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의 거대한 토목구조물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높이 186m의 거대한 쿠로베댐을 바라보며 느꼈던 경이로움 뒤에는 그렇게 171명의 희생이 있었다.

그들의 희생까지 기억할 때 비로소 쿠로베댐의 역사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사 중 목숨을 잃은 171명의 순직자들에게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

17. 토목기술자의 눈으로 바라본 黒部ダム(쿠로베댐)

댐을 떠나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 평생 토목현장에서 살아왔다.

설계도면 위에서 선을 그리고,
현장에서 구조물이 실제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수도 없이 보았다.

국도와 고속도로의 설계와 공사현장을 오가며 수많은 도로와 터널, 교량을 직접 설계하고 공사를 감독했다.

그중에는 국내 최초의 해저터널 건설공사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黒部ダム(쿠로베댐)을 보며 단순히

“크다.”

“대단하다.”

라는 감상만 들지는 않았다.

저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고민했을까.

설계자는 밤새 도면을 들여다봤을 것이고,

현장 기술자는 예상하지 못한 지질을 만나 머리를 싸맸을 것이며,

근로자들은 차가운 물이 쏟아지는 막장 안으로 다시 들어갔을 것이다.

토목공사는 자연을 상대로 하는 일이다.

도면에서 아무리 완벽하게 계획해도 현장은 그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특히 산과 땅속은 열어보기 전까지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그것이 터널공사의 무서움이고 토목의 어려움이다.

1950년대의 기술과 장비로 북알프스 한복판에서 이 정도 규모의 사업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같은 토목기술자의 입장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8. 우리 토목기술자의 위대함이여

나는 黒部ダム(쿠로베댐)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도로를 여행하면서 사람들은 대부분 목적지를 기억한다.

터널을 지나면서 그 터널을 누가 뚫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다리를 건너면서 그 교량을 누가 설계하고 누가 만들었는지도 잘 생각하지 않는다.

댐에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까지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것이 어쩌면 토목인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완성된 뒤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당연한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누군가는 몇 년씩 현장에서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목숨까지 잃었다는 것을.

黒部ダム(쿠로베댐) 역시 그런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일본을 무조건 찬양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기술은 기술대로 평가해야 한다.

1950년대 북알프스의 혹독한 자연 속에서 길을 만들고, 터널을 뚫고, 파쇄대를 돌파하고, 마침내 높이 186m의 거대한 아치댐을 완성한 기술자와 근로자들의 집념에는 같은 토목인으로서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래서 黒部ダム(쿠로베댐) 앞에서 내 마음속에 떠오른 말은 결국 하나였다.

“우리 토목기술자의 위대함이여.”

그리고 한마디를 더 남긴다.

이 댐을 만든 일본의 토목인들과 근로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Translated by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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