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문단 ‘배후의 대가‘라고나 불러야 할 존재! 우타야마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대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한, 이른바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시대의 유행을 넘어서 미야가키만큼 열렬한 ‘신봉자‘를 거느린 추리작가도 드물지 않을까.
"끈덕지군, 자네도. 난 원래 마음이 아주 약한 사람일세. 예를 들면 말이야, 내겐 소년 시절부터 간절히 바라던 소망이 하나 있었지. 한번 내 손으로 사람을 죽여보고싶다는 소망이. 하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네. 몇 십 년씩 살인 이야기만 써온 건 말하자면 그 보상 행위겠지."
‘미로관迷路館‘이라고 불리는 그 저택은 미야가키 요타로가 십여 년 전에 별장으로 지은 집이다. 원래 목적에 걸맞게 여름 한철을 지내는 데 쓰던 시절에는 우타야마도 몇 차례 초대받은 적이 있다. 그 이름대로 집 안 복도가 복잡한 미로 모양을 한 기상천외한 건물이라 처음 방문했을 때는 상당히 당황했다. 미야가키는 장난꾸러기아이 같은 얼굴로, 놀라는 방문객들의 반응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곤 했다.
"날 과대평가하는군. 그 유명한 밴 다인 씨가 한 말이 옳아. 한 작가가 뛰어난 탐정소설을 여섯 편 이상은 쓸 수 없다는. 내가 사십 년 가까이 대체 몇 작품이나 썼는지아나? 장편만 해도 그 한계치를 곱절이나 넘어섰네."
"연말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규슈에 있는 무슨 절집 셋째아들이라고....... 아, 만나면 알 걸세. 자네도 분명히 관심을 갖게 될 거네."
염려하던 미야가키의 컨디션이 ‘건강한 건지 어떤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미야가키가 아직도 내심 창작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있었다. 그것만 해도 오늘 먼 걸음을 한 수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물론 이때 우타야마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설마 이것이 살아 있는 미야가키 요타로와 이야기를 나눈 마지막 기회가 될 줄은.
"살려줘......."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오른쪽에서 누군가가 우타야마의 어깨로 털썩 쓰러졌다. "으악!" 우타야마는 소리를 지르며 얼른 피했다. 게이코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쓰러진 사람은 그대로 무릎을 꺾더니 무너지듯 바닥에 폭 고꾸라졌다.
십각관에 수차관....... 참극으로 얼룩진 나카무라 세이지의 저택. 그리고 지금 설마 이렇게 느닷없이 이 미로관에서도? "이럴 수가!" 우타야마는 큰 소리를 지르며 쓰러진 기요무라를 피해 넓은 홀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카무라 세이지. 다시 시마다의 입을 통해 나온 그 이름에 우타야마는 불쑥 ‘불길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막연한 어떤 예감을 느꼈다.
"그런데 저 도우미 할머니,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우타야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쓰러져 있던 기요무라가 벌떡 일어났다. 그 옆에 있던 시마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정말 실례했습니다. 그래도 제법 명연기였죠?" 기요무라는 활짝 웃으며 입가에 묻어 있던 붉은 얼룩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기요무라 준이치는 만우절 연극을 성공시켜서 무척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제대로 한 방 먹은 시마다도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오히려 아주 유쾌하다는 표정이다. 테이블에 나란히 앉자마자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둘은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기요무라 준이치, 30세. 사 년 전 『기상』 신인상에 입선해 작가로 데뷔. 수상작 「흡혈의 숲은 오컬트적인 소재를 건조한 터치로 그린 수작이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갸름한 얼굴. 얼핏 보기에도 미남 청년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이라는 사실을 우타야마는 잘 알고 있다.
"어지간히 하시지, 기요무라 씨?"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흘끔 보며 후나오카가 말했다. "처음 뵙는 분도 계신데, 실례가 지나치잖아?" 후나오카의 말을 듣고서야 우타야마는 사태의 흐름을 눈치챘다. 허허 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가 다시 문 쪽을 돌아보았다.
"응, ‘암색텐트‘라는 작은 극단에 있었던 모양이야. 지금은 그만둔 상태지만."
"일부러 주방에서 케첩까지 조달해왔으니 저 사람도 참 곤란하군요. 하지만 원래 배우였으니 연기는 꽤 수준급이죠?"
스자키 쇼스케, 41세. 오늘 모인 미야가키요타로의 ‘제자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인물이다. 중세 유럽을 무대로 삼은 중후한 본격물이 특기인데, 워낙 집필이 느려 편집자들이 피하려는작가다.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어. 혹시 이미 망령이 드신 걸까?" "저 할머니는 원래 그런 분이에요."
돌아보니 스자키는 여전히 안쪽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검은 테 안경을 쓴 신경질적인 얼굴. 갈색 스웨터를 걸친 야윈 체격에 구부정한 등이 특징적이다. 그가 기요무라의 명연기에 크게 놀라는 모습을 떠올려보았지만 아무래도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자기가 받는 급여만큼 일하는 것 외에는 별 관심이 없죠. 미야가키 선생님은 오히려 그런 면을 더 좋게 보신 것 같지만. 그리고 조금 전에 벌인 그 소동은 두 번째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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