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털리 부인의 연인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5
D.H. 로렌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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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사랑』 코니의 성과 사랑에 대한 초기 인식
― 사랑과 자유, 멜러스 이전 코니의 성과 사랑에 대한 인식


1. 코니의 독백을 통해 드러나는 사랑과 자유에 대한 인식

가. 독백의 기본 시각
ㅇ(성적 사랑에 대한 회의) 코니는 성적 사랑을 아름답고 숭고한 것으로 미화하는 기존의 관념에 강한 의문을 제기함
ㅇ(여성의 자유 중시) 남성과의 성적 관계보다 여성 개인의 독립된 자아와 내면의 자유를 더 높은 가치로 인식
ㅇ(성적 관계의 이면) 성에는 사랑과 친밀감뿐 아니라 욕망·지배·종속의 문제가 존재할 수 있다고 바라봄
ㅇ(자기보존의 의지) 남성과 관계를 맺더라도 자신의 내면과 자유까지 상대에게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러남


2. 성적 사랑에 대한 코니의 비판적 시각

가. 성의 낭만화에 대한 거부
ㅇ(감상적 미화에 대한 반감)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포장하더라도 성적 관계에는 오래된 결합과 예속의 성격이 존재한다고 인식
ㅇ(남성 중심적 사랑관 비판) 성적 사랑을 찬미해 온 시인들이 대부분 남성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존의 사랑과 성에 관한 담론을 남성 중심적인 것으로 바라봄
ㅇ(결합과 예속의 공존) ‘connexions and subjections’라는 표현에서 성적 관계를 두 사람의 결합인 동시에 한쪽이 다른 쪽에 종속될 가능성이 있는 관계로 인식함

나. 성적 사랑보다 높은 자유
ㅇ(자유의 우위) “여성의 아름답고 순수한 자유”를 어떤 성적 사랑보다 더 높은 가치로 평가
ㅇ(내면의 독립) 여성의 행복과 가치가 남성과의 사랑이나 성적 관계에 의해서만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ㅇ(자아의 우선성)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자신의 자유로운 자아를 잃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태도가 나타남


3. 남성의 성욕에 대한 코니의 인식

가. 본능적이고 유아적인 욕망
ㅇ(성적 집착) 남성들이 ‘like dogs’처럼 성에 집착한다고 표현하면서 남성의 성욕을 강하고 본능적인 욕망으로 바라봄
ㅇ(유아적 욕망)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심술을 부리는 어린아이에 남성을 비유함
ㅇ(남녀의 차이 강조) 여성은 성을 넘어선 자유의 가치를 알고 있는 반면 남성은 여전히 성적 욕구에 매달려 있다고 판단

나. 관계 속 여성의 양보
ㅇ(현실적 양보) 남성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여성이 때로는 남성의 성적 욕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
ㅇ(관계의 불균형) 남성의 욕구 충족 여부가 관계의 지속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남녀의 성적 관계를 완전히 대등한 관계로 바라보지 않음
ㅇ(냉소적 시각) 이러한 양보를 사랑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행위라기보다 관계를 깨뜨리지 않기 위한 현실적인 대응으로 인식함


4. 육체적 관계와 내면의 자유

가. 육체와 자아의 분리
ㅇ(육체와 정신의 구별) 남성과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과 자신의 내면까지 남성에게 내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판단
ㅇ(내면의 비종속) 여성이 남성의 성적 요구에 응하더라도 자신의 정신과 자유로운 자아는 남성의 지배 아래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
ㅇ(자기 상실의 거부) ‘A woman could take a man without really giving herself away.’라는 생각을 통해 육체적 관계가 곧 여성 자신의 전적인 헌신이나 자기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봄

나. 공감되는 부분
ㅇ(관계 속 독립성) 사랑하거나 육체적으로 가까워진다고 해서 자신의 생각과 자아까지 상대에게 넘겨줄 필요는 없다는 점에는 공감됨
ㅇ(사랑과 복종의 구별) 친밀한 관계라 하더라도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정신적으로 종속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함
ㅇ(자유로운 개인의 중요성) 사랑하는 두 사람 역시 각각 독립된 인격체라는 점에서 코니가 내면의 자유를 강조한 부분은 인상적으로 다가옴


5. 성적 관계를 권력의 문제로 바라보는 코니

가. 성을 통한 주도권의 역전
ㅇ(남성 권력의 거부) 코니는 자신을 남성의 권력 아래 내어주지 않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을 이용해 오히려 남성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
ㅇ(성적 반응의 통제) 자신의 절정을 의도적으로 억제한 채 남성만 먼저 절정에 이르게 함으로써 관계의 흐름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
ㅇ(남성의 도구화) ‘while he was merely her tool’이라는 표현에서 남성을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한 도구로까지 바라보는 극단적인 생각이 나타남

나. 권력 역전에 대한 생각
ㅇ(지배 방향의 전환) 남성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여성이 남성을 지배한다면 권력의 방향만 뒤바뀌었을 뿐 지배와 종속의 관계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함
ㅇ(상대방의 인격성 문제) 자신이 남성의 도구가 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남성을 자신의 도구로 만드는 것은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관계와도 거리가 있음
ㅇ(성의 도구화에 대한 거리감) 성을 상대와의 친밀감이나 교감보다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태도에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움


6. 코니가 말하는 자유에 대한 생각

가. 자유의 긍정적 의미
ㅇ(자아의 보존) 사랑과 성적 관계 속에서도 자신의 자아와 내면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중요한 문제의식을 제시함
ㅇ(종속의 거부) 사랑이라는 이유로 어느 한쪽이 상대방에게 복종하거나 자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음
ㅇ(여성의 독립성) 여성의 가치와 행복을 남성과의 관계에 종속시키지 않고 독립된 한 인간의 자유에서 찾으려는 태도는 강한 인상을 줌

나. 방어적 자유의 한계
ㅇ(자기보호적 성격) 코니가 말하는 자유는 상대와 함께 누리는 자유라기보다 상대에게 종속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지키려는 방어적 성격이 강하게 느껴짐
ㅇ(육체와 감정의 단절) 자유를 지키기 위해 육체와 내면, 성과 감정을 철저하게 분리한다면 오히려 타인과의 깊은 관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함
ㅇ(자유와 고립의 경계) 상대에게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 것이 자유일 수는 있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을 열지 않는 상태까지 나아간다면 자유와 고립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음


7. 종합적인 느낀점

ㅇ(자유에 대한 공감) 사랑이나 성적 관계 속에서도 자신의 자아와 내면의 자유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코니의 생각에는 공감함
ㅇ(지배와 종속에 대한 거리감) 다만 남성에게 종속되지 않기 위해 오히려 상대를 통제하고 도구화하려는 방식은 지배의 방향만 바뀐 것일 뿐, 대등한 관계라고 보기는 어려움
ㅇ(나의 생각) 사랑과 자유는 서로 대립하는 가치라기보다 각자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상대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할 때 함께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함

[원문]
And however one might sentimentalize it, this sex business was one of the most ancient, sordid connexions and subjections. Poets who glorified it were mostly men. Women had always known there was something better, something higher. And now they knew it more definitely than ever.

The beautiful pure freedom of a woman was infinitely more wonderful than any sexual love. The only unfortunate thing was that men lagged so far behind women in the matter. They insisted on the sex thing like dogs.

And a woman had to yield. A man was like a child with his appetites. A woman had to yield him what he wanted, or like a child he would probably turn nasty and flounce away and spoil what was a very pleasant connexion.

But a woman could yield to a man without yielding her inner, free self. That the poets and talkers about sex did not seem to have taken sufficiently into account.

A woman could take a man without really giving herself away. Certainly she could take him without giving herself into his power.

Rather she could use this sex thing to have power over him. For she only had to hold herself back in sexual intercourse, and let him finish and expend himself without herself coming to the crisis: and then she could prolong the connexion and achieve her orgasm and her crisis while he was merely her tool.

-알라딘 eBook <영어문고 : 채털리 부인의 사랑>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중에서

[해석]
아무리 감상적으로 미화해 보려 해도, 이 성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오래되고도 추잡한 결합과 예속 관계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을 찬미했던 시인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여자들은 언제나 그보다 더 나은 것, 더 높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여자들은 그 사실을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욱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여성이 누리는 아름답고 순수한 자유는 그 어떤 성적인 사랑보다도 한없이 더 경이로운 것이었다. 다만 불행한 점이라면, 이런 문제에서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너무나 뒤처져 있다는 것이었다. 남자들은 개처럼 성적인 것에 집착했다.

그리고 여자는 양보해야 했다. 남자는 자신의 욕구 앞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여자는 남자가 원하는 것을 내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는 어린아이처럼 심술을 부리고 홱 돌아서 버려, 꽤 즐거웠던 관계마저 망쳐버릴 것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에게 양보하면서도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자유로운 자아까지 내줄 필요는 없었다. 성을 노래하고 이야기해 온 시인들과 논객들은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자는 남자를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내어주지 않을 수 있었다. 분명 남자의 권력 아래로 자신을 넘겨주지 않고서도 그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히려 여자는 이 성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남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성관계에서 자신의 반응을 억제한 채 자신은 절정에 이르지 않고, 남자만 먼저 절정에 이르러 힘을 소진하게 두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여자는 관계를 계속 이어가면서 자신의 오르가슴과 절정에 이를 수 있었다. 그때 남자는 단지 그녀가 자신의 쾌락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민음사]
아무리 감상적 차원에서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 성관계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지저분한 관계이자예속 중 하나였다. 이것을 찬미한 시인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여자들은 항상 뭔가 더 나은 것, 뭔가 더 고귀한 것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더 명확하게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한 여자의 아름답고 순수한 자유는 그 어떤 성관계의 사랑보다도 한없이 더 훌륭한 것이었다. 다만 불행한 것은 이 문제에 있어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 너무나 멀리 뒤처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남자들은 마치 개처럼 성관계에만 집착했다.

그리고 여자는 이에 따라야만 했다. 남자란 욕구로 가득찬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여자는 그가 원하는 것을 주지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아이처럼 심술 사나워져 골을 내고 날뛰면서 이제껏 아주 유쾌했던 관계를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욕구에 굴복할 때 여자는 자기 내면의 자유로운 자아를 내주지 않고 지킬 수가 있었다. 바로 이 점을 성에 대해서 노래하거나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자신을 진짜로 내주지 않고도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분명 여자는 자신을 남자의 지배하에 떨어뜨리는 일 없이도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니, 여자는 오히려 이 성관계를 이용하여 남자를 지배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여자는 성교할 때 그저 자신을 가만히 다잡고 있으면서, 자기는 절정에 오르지 않고 남자로 하여금 용을 쓰며 일을 마치도록 내버려 두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그녀는 그 성교를 좀 더 길게 끌면서 남자를 단순한 도구로 삼아 자신의 오르가즘과 절정을 이룰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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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해마다 빠짐없이 우리 뒷마당에 있는 12미터쯤 자란 덤불에서꺾은 길고 보드라운 갯버들 가지를 타샤에게 보낸다. 작년 그녀는 그 가지들이 뿌리를 내렸고 자신의 관목 묘상에서 어린 가지들을 키우고 있다고말했다. 타샤는 ‘하지만 내 가지들이 토바의 나무처럼 높이 자라게 할 마음은 없어요‘ 라고 한마디 했다. - P56

가을이면 그녀는 엄청난 양의 바구니를 쌓아놓고,앵초 씨앗을 뿌린다. 고운 흙에 씨앗을 가볍게 뿌리고는, 바구니를 밑에서부터 물에 흠뻑 적셔 뒷문 옆 포도덩굴 밑에 넣어둔다. 바구니에 뚜껑을 덮고서 ‘그 다음에는 봄이 올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으면, 무럭무럭 싹트기시작해요‘ 라고 말한다. - P57

늘 그렇듯 타샤는 앵초에 대해 확고한 의견을 피력한다. "퍼시픽 자이언트‘는 너무 화려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녀는 색깔이 짙은 반헤이번종류와 커다랗게 꽃송이를 이루지 않고 잎 사이에 꽃송이가 각각 멋대로피는 ‘줄리아나‘ 교배종을 좋아한다. 하지만 다른 종류를 구하려고 몇 시간거리의 길도 마다 않는다. - P57

타샤는 내가 보낸 프랑스 갯버들을 식기실 창가에 두고, 앵무새 페글러 선장‘과 함께갯버들이 크는 모습을 본다. "허브의 꺾꽂이용 가지를 버드나무 줄기와 함께 유리에서뿌리내려봤어요? 뿌리를 얼마나 잘 내리는지 몰라요." - P58

봄에 나무 옆에서 고개를 내밀어 경이로움을 자아내는 스노드롭 같은 꽃들은4월이면 애정을 받고 그림의 모델이 된다.
타샤의 침실에 있는 앵초 화분들은 해의 움직임을 쫓아 집 안 여기저기로 옮겨진다.
타샤는 ‘아침마다 코기, 앵초와 같이 잠에서 깨지요‘ 라고 말한다. - P60

타샤는 부엽토와 염소 배설물 비료를 골동품 테라코타 화분에 담고 앵초를 심는다. 영국에 갔다가 구해온 화분들이다. 타샤는 오래된 테라코타 화분을 잘 안다. 무엇보다 원하는 바, 즉 깊이나 높이, 그리고 중심에 꽃이 튀어나올 모양새를 정확히 안다. 당연히 각각의 식물에 각기 다른 화분이사용되고, 앵초는 입의 테두리가 없는 키 큰 화분에 담긴다. - P61

타샤는 모은 화초류만큼이나 화분도 자랑스러워한다. 온갖 크기와 깊이의 화분들이 있어각각의 꽃에 알맞게 쓰인다. 타샤는 흙을 손에 묻혀가면서 심은 엄청나게 많은 바이올렛과앵초 화분들을 실내로 옮기느라 진땀을 흘린다. - P62

타샤는 4월 초에 고립되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4월 말이 되면,
진흙과 가랑비와 잿빛 풍경에 조바심을 낸다. 그녀는 짜증스런 목소리로투덜댄다. "마크 트웨인이 뭐랬는지 알잖아요. 뉴잉글랜드 지방은 아홉 달은 겨울이고, 석 달은 썰매 타기에 나쁜 날씨라고 했거든." 그리고는 장화를 신고, 털스웨터를 몇 겹 껴입고 그 위에 숄을 두르고 밖으로 나간다. 그녀는 뿌리 덮개(이식한 나무뿌리를 보호하는 짚과 나뭇잎 등의 혼합물: 옮긴이)의 아래를 살피고, 싹을 틔운 구근에 닿지 않게 소나무 가지를 치운다. - P64

"나는 꽃이 무리지어 피어야 된다고믿기 때문에 튤립 구근을놀랄 만큼 많이 심는답니다." - P67

2타샤가 이른 봄에 뿌리 덮개를 들춰보기는 해도, 실제로 덮개를치우는 것은 5월이나 되어서다. 지난 11월에 조심스레 뿌려둔 잔가지와 낙엽더미를 긁어서 치우면, 어린 가지와 덤불이 모습을 드러낸다. 버몬트의정원이 얼마나 빠르게 갈색에서 아름다운 신록으로 변하는지 지켜보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며 마음의 위로마저 된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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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저녁이면 타샤는 활활 타는 벽난로 앞에 앉아, 돋보기를 쓰고씨앗 카탈로그와 원예 서적을 읽을 것이다. 영국에서 온 신간에서 분홍색엔젤 트럼펫 (일명 천사의 나팔꽃: 옮긴이)을 보거나 잡지에서 어느 집안에서 물려내려오는 패랭이꽃을 보면 ‘사냥이 시작된다. 타샤는 찾기 힘들지만 반드시 손에 넣어야 되는 화초와 씨앗의 ‘수배 명단‘을 갖고 있다. 이때가 튜더집안의 수단과 매력과 결단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 P44

하지만 타샤는 꽃송이가 피어날 희망만으로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겨우내 언덕 위 작은 온실에서 그녀의 영혼이 풍성해지고, 그림을 그릴꽃들이 자라난다. 타샤는 아무리 바빠도 매일 집과 온실을 잇는 미로를 오르내리며, 피어나는 꽃에 물을 준다. 타샤는 한겨울이면 내게 종종 말한다.
"일러스트레이터가 안 됐다면 토바처럼 온실 재배인이 되었을 거예요." 단순히 나를 칭찬하는 말만은 아니지 싶다. 타샤는 온실의 화초를 두고 오래도록 법석을 떤다. 또 3월은 그 화초들이 가장 빛을 발하는 시기이다. - P46

버몬트 주민들이 진흙탕 계절‘이라고 부르는 시기가 4월 초에 시작되면, 식물과 씨앗 소포를 배달하는 사람들이 타샤의 집으로 직접 오지못하게 된다. 비포장도로가 몇 킬로미터 이상 구불구불 이어져서, 날씨가아주 좋을 때도 운전하기가 힘들다. 진흙탕 계절에는 그 길을 통과할 재간이 없다. 기나긴 4월 몇 주간 타샤는 완전히 고립된다. - P50

진흙탕 계절 동안 타샤는 응접실의 개들이 흙발로 골동품 카펫을 밟지않도록 응접실 카펫을 걷어낸다. 밖에 나갈 때면 무릎까지 올라오는 국방색 장화를 신는다. 장화를 신고 걸으면 철버덕 소리가 나면서 발자국이 생긴다. 그렇게 걸어 양동이를 들고 염소 우리에 가거나 손수레를 밀고 꽃밭주위로 간다. - P51

날씨가 궂어도 할 일이 많다. ‘아가씨‘ - 젖 짜는 염소 - 은 살림집에 연결된 헛간에서 산다.
동물들에게 사료를 주러 가는 길에 타샤는 구근의 싹이 나왔는지 살펴보고,
가끔은 고개를 내민 용감한 ‘글로리 오브 더 스노‘를 발견하기도 한다. - P52

4월은 타샤를 유혹할 만큼 앵초가 풍성하긴 해도, 아직은 실내에서 자라는 화초들이 주를 이루는 달이다. 4월이면 타샤는 옮길 수 있는 식물은 뭐든 집 안으로 들고 가서, 창틀에 올려놓고 감상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하실 돌계단에는 페이퍼화이트, ‘테트아테트‘, ‘민노우‘ 수선화들과 튤립, 은방울꽃, 사프란을 심은 골동품 화분이 즐비하다. 이것들은 겨울이 짧고 온화하다고 속아 넘어간다. - P54

타샤는 꽃피는 돌능금나무 밑에는 사프란을 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프란이 구근을 다른 데서 옮겨와 멋진 일을 해낸 들쥐들의 솜씨 (아니면 다람쥐일지 누가알겠어요."라는 것이다. 하지만 들쥐떼의 배설물 때문에 봄이면 타샤는이웃들과 몇 트럭 분량의 배설물을 놓고 협상을 벌인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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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정원 - 버몬트 숲속에서 만난 비밀의 화원 ㅣ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이야기 6] 『타샤의 정원』과 흙담 밑 나의 작은 화단
― 사라진 옛집에 다시 피어나는 꽃들

1.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타샤 튜더

타샤 튜더(Tasha Tudor, 1915~2008, 향년 92세)는 미국의 동화작가이자 그림책 화가이다. 그녀는 보스턴의 유복하고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 스탈링 버지스(William Starling Burgess)는 선박과 항공기를 설계한 기술자였고, 어머니 로저먼드 튜더 버지스(Rosamond Tudor Burgess)는 초상화가였다. 증조부 프레더릭 튜더(Frederic Tudor)는 미국의 얼음 무역으로 큰 부를 이루어 ‘얼음왕’이라 불린 사업가였다.

그녀의 출생 당시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을 딴 스탈링 버지스(Starling Burgess)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나타샤(Natasha)를 좋아해 이름을 나타샤로 바꾸었고, 그것이 줄어 타샤(Tasha)가 되었다. 태어날 때의 성은 버지스(Burgess)였으며, 훗날 어머니의 결혼 전 성인 튜더(Tudor)를 자신의 성으로 택해 법적으로 타샤 튜더가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유모의 보살핌을 받았고, 집안은 보스턴 상류사회의 유력 인사들과 교류했다. 타샤는 태생부터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홉 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에는 코네티컷주 레딩에 사는 가족 친구의 집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자연과 가까이 생활하며 농사와 가축 돌보기, 요리와 바느질 같은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타샤가 훗날 선택한 소박한 생활을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아낸 삶으로 보기는 어렵다. 실을 잣고 옷을 만들며 가축을 기르고 장작 난로를 사용한 생활은 경제적 궁핍의 결과가 아니라,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타샤가 자신의 취향과 신념에 따라 선택한 삶이었다.


2. 결혼과 가족, 그림책 작가로 이룬 성공

타샤는 1938년(22세)에 토머스 L. 맥크리디 주니어(Thomas L. McCready Jr.)와 결혼해 두 아들과 두 딸을 두었다. 가족은 1945년(29세)에 뉴햄프셔의 오래된 농가로 옮겨 생활했으며, 그곳의 가족과 가축, 정원과 들판은 타샤의 글과 그림에 자주 등장했다.

첫 번째 결혼은 1961년(45~46세)에 끝났고, 이후 앨런 존 우즈(Allan John Woods)와 재혼했지만 이 결혼도 1966년(50~51세)에 끝났다. 첫 번째 결혼이 끝난 뒤 자녀들은 성을 맥크리디에서 튜더로 바꾸었다. 훗날 버몬트의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지어준 세스 튜더(Seth Tudor)도 네 자녀 가운데 한 명이었다.

타샤는 결혼한 해인 1938년(22~23세)에 첫 그림책 『호박 달빛』을 출간한 뒤 평생 100권이 넘는 책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1945년(29세)에 『마더 구스』로 첫 번째 칼데콧 아너를 받았고, 1957년(41세)에는 『1은 하나』로 두 번째 칼데콧 아너를 받았다. 그림책뿐 아니라 크리스마스 카드와 달력, 포스터에도 수많은 그림을 남겼다.

타샤는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작품으로 경제적인 성공을 거둔 작가이기도 했다. 1971년(55~56세)에는 직접 쓰고 그린 『코기빌 페어』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당시 자녀들은 모두 성장해 독립한 상태였고, 이 책의 성공은 타샤가 오랫동안 바라던 버몬트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3. 작가로 번 돈으로 마련한 30만 평의 땅

타샤가 버몬트에서 소유한 넓은 땅은 집안에서 그대로 물려받은 재산이 아니었다. 그는 오랜 작가 생활과 『코기빌 페어』의 성공으로 마련한 수입을 바탕으로 1971년 무렵(55~56세), 버몬트 남동부의 외딴 산림을 구입했다.

아들 세스는 그 땅의 일부를 개간하고 1750년경에 지어진 뉴햄프셔 농가를 본떠 집을 지었다. 타샤는 그 집을 ‘코기 코티지(Corgi Cottage)’라 부르며 남은 생애를 보냈다.

타샤는 흔히 ‘30만 평의 정원을 가꾼 사람’으로 소개된다. 나도 처음에는 약 30만 평에 이르는 땅 전체가 정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약 250에이커, 우리 면적으로 약 30만 평은 타샤가 소유한 땅 전체의 면적이었다.

약 30만 평의 땅을 모두 농장으로 경작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손대지 않은 자연림이었고, 일부 목초지에서는 염소를 길렀다. 꽃과 나무를 집중적으로 가꾼 주요 정원은 집과 헛간 둘레의 약 2~3에이커였다. 우리 면적으로 환산하면 대략 2,400~3,700평이니, 그것만으로도 개인이 가꾼 정원으로는 매우 넓은 규모였다.

타샤는 그곳에서 19세기 뉴잉글랜드풍의 옷을 입고 실을 잣았으며, 염소와 닭을 기르고 정원을 돌보았다. 타샤의 정원은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한 배경과 성공한 작가로서 마련한 경제적 기반, 넓은 땅을 구입할 수 있었던 여건, 그리고 오랜 세월 직접 꽃과 나무를 돌본 노동이 함께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4. 소박한 시골 할머니인 줄 알았지만

처음 『타샤의 정원』을 읽었을 때만 해도 나는 타샤를 시골의 조그마한 정원에서 꽃을 가꾸며 살아가는 소박한 할머니라고 생각했다. 책에 담긴 낡은 집과 골동품 가구, 손수 지은 옷과 정원의 꽃들은 물질적인 풍요와 거리가 먼 검소한 생활처럼 보였다.

그러나 타샤의 생애와 정원의 실제 규모를 자세히 알고 나니 처음의 인상만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웠다. 그는 보스턴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작가로 성공해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뒤 약 30만 평에 이르는 버몬트의 땅을 구입했다. 그 대부분이 숲이고 실제 정원은 그보다 작았다고 해도, 개인이 그만한 토지를 소유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소박한 시골 할머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면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한 ‘땅부자’였던 셈이다. 물론 넓은 땅을 소유했다는 사실만으로 타샤의 노동과 삶의 가치를 낮게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그의 전원생활을 이해하려면 꽃과 동물, 낡은 집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장면뿐 아니라 그 생활을 가능하게 했던 경제적 조건도 함께 바라봐야 한다.


5.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삶은 아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받고 힘든 직장생활과 고단한 현실에 지칠 때 전원생활을 꿈꾼다. 꽃이 피는 정원을 가꾸고, 직접 기른 재료로 음식을 만들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나 역시 처음에는 『타샤의 정원』과 같은 책을 읽으며 잠시 마음을 달래고 위안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전원생활은 책이나 사진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평온하고 낭만적인 일만은 아니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며 농사를 많이 지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조금이나마 맛보았다. 땅을 일구고 작물을 심어 거두는 일은 날씨와 계절에 맞춰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고된 노동이다.

전원생활에는 노동뿐 아니라 많은 돈도 필요하다. 땅과 집을 마련해야 하고, 넓은 정원을 유지하려면 시간과 비용을 계속 들여야 한다. 잡초를 뽑고 물을 주는 일부터 집과 울타리를 보수하고 가축을 돌보는 일까지 어느 하나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타샤의 삶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생활방식은 아니다. 충분한 경제적 기반과 넓은 땅, 오랜 노동을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삶이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 삶의 물질적 조건까지 외면한 채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타샤의 삶과 정원이 지닌 가치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타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경제적 여건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꿈꾸었던 생활을 실제로 만들었고, 넓은 정원을 평생 직접 돌보았다. 중요한 것은 타샤의 삶을 그대로 흉내 내는 일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과 함께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경제적 기반과 노동까지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다.


6. 『타샤의 정원』이 불러낸 기억

정원 작가 토바 마틴(Tovah Martin)과 사진가 리처드 W. 브라운(Richard W. Brown)은 타샤의 생활과 정원의 사계절을 『타샤의 정원』에 담았다. 눈 속에서 피어나는 수선화와 봄의 튤립, 여름의 장미와 허브, 가을의 정취와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까지 펼쳐진다. 꽃과 나무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정원과 더불어 살아가는 타샤의 일상과 생각도 함께 담은 책이다.

타샤는 정해진 설계도를 그려놓고 식물을 심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마음 가는 대로 어울려 심었다. 아흔 살이 넘어서도 장미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던 타샤에게 가드닝은 평생 배우며 누리는 ‘기쁨의 샘’이었다.

『타샤의 정원』을 읽는 동안 내가 태어나 스무 살까지 살았던 시골집과 흙담 밑의 작은 화단이 떠올랐다. 정원이라는 말도, 가드닝이라는 말도 모르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들과 산에서 마음에 드는 풀과 나무를 가져다 심고 그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를 기다리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7.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

사진 속 집은 내가 태어나 스무 살까지 살았던 시골집이다. 집은 지금 사라지고 없지만, 눈 내리던 어느 겨울날 찍어둔 사진 속에서는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낮은 지붕을 맞댄 집들이 흙담 안에 옹기종기 들어앉아 있다. 흙과 돌로 쌓은 낮은 담이 마당 앞을 길게 두르고, 담 뒤로는 집과 집 뒤편의 나무들이 솟아 있다. 좁은 마을길은 집 옆을 지나 대문을 향해 굽어 올라가며, 대문 곁에는 집보다 훨씬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굵은 가지를 사방으로 펼치고 있다.

겨울에 찍은 사진 속 나의 시골집에는 지붕과 마을길과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은 흰 눈만 보인다. 그러나 내 기억 속 옛집은 흰 눈에 잠긴 모습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계절이 바뀌면 흙담 밑에서는 꽃이 피고, 담쟁이는 담을 뒤덮으며, 집 둘레의 나무에서는 여러 열매가 익는다.


8. 흙담 밑에 있었던 작은 화단

시골집 마당 안쪽, 흙담 아래에는 담을 따라 길게 이어진 작은 화단이 하나 있었다. 정원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만큼 소박한 공간이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곳에 여러 풀과 나무를 가져다 심으며 제법 정성을 들였다.

1980년대의 일이니 꽃집이나 묘목상에서 마음에 드는 꽃을 골라 사다 심을 형편도 아니었다. 화단에 심은 것들은 대부분 들판과 길가에서 뽑아 온 들꽃이었다. 들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꽃이 보이면 뿌리째 뽑아 화단에 옮겨 심었고, 산에서는 진달래와 개나리를 캐다 심기도 했다.

우리가 노간지나무라고 부르던 나무도 산에서 캐다 심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 나무를 트리로 꾸며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허락 없이 산에서 나무를 캐오는 것은 처벌받을 수 있는 일이지만, 당시 어린 나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살아 있는 나무를 집으로 옮겨 크리스마스트리로 키워보겠다는 생각에 제법 진지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일이었고, 그때의 나는 그것을 ‘가꾸는 일’이라고 인식하지도 못했다. 그저 마음에 드는 풀과 나무를 옮겨 심고, 그것이 살아남아 새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지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9. 해당화와 백일홍, 분꽃과 봉숭아

우리 집 화단에 들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해당화와 백일홍뿐 아니라 분꽃과 봉숭아도 피어 있었다. 분꽃과 봉숭아는 그 시절 시골집 흙담 밑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꽃들이었다.

화단 앞쪽에는 낮은 돌을 줄지어 놓아 경계를 만들었고, 그 돌 앞에는 키 작은 채송화가 알록달록한 꽃을 피우며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름난 꽃이나 귀한 나무를 계획적으로 배치한 화단은 아니었지만, 계절이 되면 저마다의 자리에서 꽃이 피었다.

흙담에는 담쟁이덩굴이 칭칭 감겨 올라갔다. 봄이면 연둣빛 새잎이 돋았고, 여름이면 짙은 초록빛 잎이 흙담을 거의 보이지 않게 온통 뒤덮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잎은 붉은빛과 갈색빛을 띠다가 서서히 말라 떨어졌다. 흙담은 그대로였지만 그 위를 덮은 담쟁이의 빛깔은 계절마다 달라졌다.

그곳은 들과 산에서 데려온 식물들이 제대로 뿌리를 내렸는지 살펴보던 어린아이의 실험장이었고, 계절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놀이터이기도 했다.


10. 한여름에도 손이 얼 것 같았던 우물

화단의 왼쪽 끝 가까이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그 우물에서는 한여름에도 손이 얼 것처럼 차가운 물이 나왔다. 무더운 날에도 물에 손을 담그면 금세 얼얼해질 만큼 차가웠다. 한여름에 그 우물물로 등목을 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대전에 사시던 고모님께서 가끔 시골에 오시면 그 우물물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셨다.

화단 오른쪽에는 장독 하나를 땅에 묻어두었다. 그 장독은 겨울에만 사용했다. 동치미를 담아두었다가 겨울 내내 뚜껑을 열고 꺼내 먹었다. 한여름의 차가운 우물물과 겨울의 동치미는 꽃과 나무와는 또 다른 옛집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11. 집 둘레를 채웠던 과실나무와 장독대

집 둘레에는 여러 과실나무가 있었다. 집 뒤에는 밤나무가 세 그루 정도 있었고 그 곁에는 감나무도 자랐다. 옛날식 푸세식이라 냄새가 지독했던 뒷간 옆에는 대추나무와 단감나무, 벚나무가 있었으며, 흙담 바깥에는 앵두나무가 자랐다.

뒤뜰에는 포도나무를 세 그루 정도 심어놓았고, 간장과 고추장, 된장 등이 가득 담긴 장독들이 놓인 장독대도 있었다. 포도나무는 그늘진 곳에 있어 열매가 제대로 달리지 않았다. 세 그루나 있었지만 포도를 따 먹은 기억은 거의 없다. 포도나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포도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초여름이면 담 밖의 앵두나무에 빨간 앵두가 열렸다. 흙담 너머로 뻗어온 가지에서 잘 익은 앵두를 골라 따 먹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그러나 나무가 더 자라면 뿌리 때문에 흙담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걱정이 생겨 나중에는 베어냈다.

뒷간 옆의 단감나무는 몇 년 동안 땡감나무인 줄만 알았다. 열매가 달려도 당연히 떫을 것이라고 생각해 따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그 나무의 감을 혼자 따 먹고 있는 모습을 딱 보았다. 그때서야 땡감인 줄 알았던 감이 달고 아삭한 단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는 이미 그 맛을 알고 있었는데, 나는 몇 년 동안 땡감인 줄만 알고 입에도 대지 않았으니 몹시 억울했다.

그래도 시골집에서 자란 덕분에 대추와 감, 밤과 단감, 앵두와 버찌를 따 먹으며 살았다. 특히 버찌를 정신없이 따 먹고 나면 입술이 꺼멓게 물들곤 했다.

집 둘레의 나무들이 모두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흙담 밖의 앵두나무는 담이 무너질 것을 걱정해 베어냈고, 뒷간 옆의 대추나무와 벚나무는 죽은 뒤 베어버렸다.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질 때마다 그 나무가 만들던 그늘과 꽃, 해마다 내어주던 열매도 함께 사라졌다.


12. 대문 옆의 느티나무 보호수

대문 옆에는 집의 다른 나무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낮은 흙담과 지붕보다 훨씬 높이 솟아 굵은 가지를 사방으로 펼친 나무였다. 우리 집에서 심어 가꾼 나무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며 마을의 세월을 함께 견뎌온 보호수였다.

느티나무 곁의 보호수 비석에는 1991년 9월 25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고 새겨져 있다. 지정 당시 기록은 수종 느티나무, 수령 120년, 수고 15m, 나무 둘레 2.8m이다. 비석 아래에는 “조상의 얼이 깃들인 이 나무를 보호합시다”라는 문구도 새겨져 있다.

1991년 당시 추정 수령 120년에 그 뒤로 흐른 세월을 더하면, 2026년 현재 수령은 단순 환산으로 약 155년이 된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때에도 느티나무는 이미 집보다 훨씬 크고 오래된 나무였다. 우리 집에 딸린 나무 한 그루라기보다 집과 마을의 시간을 함께 지켜본 존재에 가까웠다.


13. 사진 속에서 다시 돌아오는 계절

내게 남은 옛집 사진은 눈 내리던 겨울의 한 장면뿐이다. 그러나 나는 사진에 미처 담기지 않은 공간들의 위치와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한다. 흙담 안쪽 어디에 화단이 있었는지, 우물과 땅에 묻은 장독은 어디에 있었는지, 집 뒤와 뒷간 옆, 담 밖에는 어떤 나무가 자랐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사진을 바라보면 눈 덮인 겨울 풍경 위로 다른 계절이 겹쳐진다. 흑백에 가까운 집과 담에 꽃과 잎의 색이 돌아오고, 한여름의 차가운 우물물과 겨울 동치미의 맛까지 함께 떠오른다. 사진 한 장은 그렇게 내가 태어나 성장한 집과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되짚어가는 기억의 지도가 된다.


14. 타샤의 정원과 나의 작은 화단

타샤의 정원과 내 어린 시절의 화단은 규모도, 만들어진 조건도 달랐다. 그 차이를 알고 나니 두 공간을 같은 것으로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식물을 가까이에 심고, 그것이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기를 기다리는 기쁨은 서로 닮아 있었다.

『타샤의 정원』이 내게 건네준 것은 타샤의 전원생활을 그대로 따라 살고 싶다는 환상이 아니었다. 이 책은 오래전에 사라진 옛집과 흙담 밑의 작은 화단, 그리고 그곳에서 보낸 계절을 다시 불러내 주었다.

그 시절의 생활은 힘들었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다. 가난 그 자체가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형편 속에서도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찾아 옮겨 심고 작은 기쁨을 만들었던 시간은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 있다.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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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8-13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그나저나 정원이 3천평이라니 한국인은 꿈도 꿔보지 못할 스케일이네요.

대장정 2026-08-13 10:17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어마어마한 스케일입니다.
 

타샤의 정원은 버몬트에서 가장추운 곳에 있지만, 3월이 오면 희망이 넘치고 아직 봄이 아닌데도 봄이 시작된 분위기가 감돈다. 타샤에게는 이때가 가장노력하는 기간이다. 지루한 겨울을 보내는 동안 타샤는 정원 때문에 안달이 난다. 진달래가 바람 피해를 받지 않게 하려고 늦겨울 내내 눈 걱정을 하며 보낸다.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타샤의작은 천국에 정점을 찍는 것은 바로 눈이다. 3월 초, 눈밭은 타샤가 원하는 데 비해 너무 얕거나 너무 깊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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