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 때 고씨 일가를 내쳤고 신씨와 난씨 일가를 멀리했사옵니다. 고씨는 고구려왕손으로 같은 왕손이지만 별종인 대씨에게 조아리는걸 은근히 가슴 아파했사옵니다. 고씨는 대성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면대씨와 겨룰 수 있사옵니다. 신씨와 난씨일가들은 개국공신중에도 으뜸인데 혜민부를 만들어 아프고 배고픈 자들을 구휼했사옵니다. 그뿐 아니라 군마를 양성하여 국력을 키우고 널리 학문을펼치어 사족들의존경을 한몸에 받았사옵니다. 그들을 중용하면 반드시 민심을 얻게 되옵니다."

감히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태후의 옷을벗기고 그녀의 알몸을 어루만지는 미사천은 금세 온몸이 뜨거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천하를 농단할 자리에 오르면 왜 다들 탐염에 취하게 될까? 오태후는 터질 듯이 영근 몸뚱이를 사내에게 맡겼다. 온몸에서 불꽃이튀는 듯했다. 사내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입술과 혀끝이 스치는 곳마다 정염의 불꽃이 솟구쳤다.

오태후는 방농에 다다르자 황홀경을 참지 못해 비명을 질렀다. 사내가 여인의 입을 입술로 덮어 비명을 막았다. 땀범벅이된 미사천의몸을 힘주어 끌어안은 오태후가 입을 열었다. "너를 모주로 삼아 천하를 논하고 대업을 이루겠노라."

"내성 서남쪽 모서리가 비었으니 그곳에 물감옥을 만드옵소서. 돌로 벽을 쌓되 그바닥은 사람 배꼽쯤 되는 깊이로 물을 채우고 죄인을가두옵소서. 천하 없이 흉맹한무리라도 사흘을 못 넘기고 토죄할 것이니어찌 마마께 충절을 바치지 않겠사옵니까?따르는 신하가많으면 민심이 모이고, 민심이 모이면 천심이 되며, 천심은 곧 대업을이루옵니다."

대소신료들은 물감옥을 만들라는 명이 떨어지는 순간, 오태후를 극진히 섬겨야 목숨 부지한다는 걸 깨달았다. 젊고 건장하며 용모가출중한 자들을 가려 뽑아 시종으로 삼았는데 서너 달 사이에무려 18명이나 되었다. 문시종 9명에, 무시종 9명으로 모두 18명이었다. 이들은 주홍빛 관복을 입기 때문에 주홍신이라 불리었다. 명색이 시종이지 실제는 나이 든 오태후를 밤마다 섬기는남총들이었다.

동궁을 점령한 태후의 위세는 말만 섭정이지 실제로는 황제나 마찬가지였다. 태후시종장 미사천의 위세 또한 천하를 호령했다. 나이든 여인이 젊은 사내를 품에 안아 그 정기를 받아 젊어지는 것이 대식인데, 오태후는 밤마다 시종을 바꾸어 대식을즐겼다.

사람들은 벼슬아치 중에서 중신 최인걸, 관작이 없는 선비 가운데는 선제 때대신을 역임한 이광록과 고지명을 꼽았다.그들은하나같이 청렴결백했고 의분이분명했으며,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바른 말을 거침없이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앞서거니뒤서거니 물감옥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죄를 뉘우치지 않자 어린 손자손녀들까지 모조리 옷을 입힌 채 물감옥에집어넣었다. 그것도 모자라 어린아이들이울 때마다채찍으로 후려치게 했다. 수인들은 반나절 만에 차례로 죄를 청하고 용서를빌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간 최인걸은 끝내 자신의굴복이 더 큰 죄악이라며 자결했다

"하늘이 일러준 대로 말함은 하늘의 명이니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겠사옵니까?" "어디서 그런 담대한 배포가 생겼더냐?"오태후는사도봉을 가까이 불러앉혔다.참으로 곱고 요염하구나. 부귀를 누리며 오래 살고 싶지 않느냐?""마마,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찌부귀를싫어하겠사옵니까?" "그러면 때가 될 때까지 입을 봉해야 하느니라.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때는 기다리는 것이라 하나 만들수도있음을 왜 모르시옵니까?"

오태후는 고심 끝에 사도봉을 도교 도사로 명하여 가까이 두었다. 이로부터 오태후는 불도를 버리고 도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는 동안민심을 돌리기 위해 조세를 감면하고, 군역에 나서는 백성에게 둔전을 하게했으며, 옥을 열어 죄인들을 방면했다. 그리고 관고를 열어곡식과 옷감을 나누어주고, 농지를 개간한 백성들에게 3년 동안조세를 감하고 이후에는 반을 공물로 바치게 했다. 뿐만 아니었다. 관가의 감찰을 강화하여 벼슬아치들이 백성을 못살게 굴거나 온당치 않은 형벌을 내리면 삭탈하거나치죄했다.

격문은 황음무도한 오태후와 오씨 일가를 주살하여 사직을 바로 세우고 사술을 부리는 사도봉과 주홍신의 무리를 척살하자고 했다. 또한 오태후의 심복인 태복경 왕경례와 금군대장 여석철을 참살하여, 국기를 바로 세우자고했다.소문에는 고원, 신사랑, 난강 일족이저지른 짓이라고 했다. 이에 진노한 오태후는각기 만 금씩을 걸고 그들을 주살하라고 명했다. 공을 세우겠다는 자들이 무리지어 태백산과 천문령, 오호령과 미타호로 떠났지만 아직까지 기이한 공을 세웠다는 소식은없었다.

"세월은 정녕 폐하의 편이옵니다. 강건히 오래 사시기만 하면 되나이다. 태후마마께 복종하는 신하들은 살아남기 위해 굴종할뿐이옵니다. 입에는 꿀이 있고, 뱃속에는 칼이 있으며, 마음으로는 폐하를 흠모하고 있나이다."

대원유의 밀지는 크지 않은 종이에 작은붓글씨로 쓰였다. 황후 임사향의 아버지인임창조에게 보내는 것이지만, 그 내용은신하들에게 충역을 뛰어넘는 거사를 당부하는 것이었다. 밀지를 품속에 감춘 임사향은이번에는 큰 종이를 펼쳐 놓았다."폐하를지켜보는 자들에게 묵향을 어찌들키지 않겠나이까? 그러하니 태평성대를노래하는 시 한 수를 지으시옵소서. 다른건 다 감출 수있어도 먹을 갈아 붓을 적신것은 감출 수가 없나이다."

주위를 물린 임사향은 아버지의 버선을벗겨 실밥을 뜯어내고 황제의 밀지를 넣은후 표 나지 않게 꿰매어 다시 신게 했다. "사직의운명과 가문의 운명이 모두 이밀지에 달려 있습니다. 결코 서두르지 마시고 늦더라도 거사를 성사시킬 동량들을 얻으셔야 합니다.
기밀을 유지하고 믿을 만한자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대사에는 반드시 마가 끼고, 거사에는 반드시배반자가 생긴다고했으니, 유념하십시오."굳은 표정의 국구 임창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에도 쥐 수염만 모아 만든 서수필은더욱 진기하게 여겼다. 오태후는 발해의 명장 풍응이 직접 만들어 바친 서수필을 아깝다 하지않고 대태성에게 하사했으니, 그홍은에 감읍할 일이었다.그러나 그날 밤 대태성은 자지러지게 울고 몸부림을 치다가 정말 허망하게목숨줄을 놓았다. 궁중 태의가 달려들고 내로라하는 의관들이 손을 썼지만 검은 거품을 쏟으며 쓰러지더니 금방 숨이 멎었다. 손 쓸틈없이 절명한 것이다.

"유모도 어미와 마찬가지입니다. 어찌제 젖을 먹는 갓난아이에게 독물을 먹이겠습니까? 이는 전하를 시해하여 득을 보는자들의음모와 간계입니다. 내 한 목숨은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살 생각도없습니다. 다만 간계를 밝혀 사직을 보존하옵소서.
황상의 보위가 걱정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형리는 몽둥이를 내리쳐 유모의 머리통을 깨뜨렸고, 유모는 그자리에서 즉사했다.
유모의 시가와 친정은 멸문지화를 당했다.

창에 찍혀 쓰러진 장수는 놀랍게도 부마도위 고경진이었다. 그에게 오태후는 사사로이 장모요, 공주 대진례의 생모가 아니던가.
•천하를 섭정하는 오태후를 참살하려했으니 분명 대역을 꿈꾸는 자들이었다.

"태후는 황음무도하여 황실의 법도를 그르쳤고 감히 용상을 찬탈하려고 작당했으니 그 죄업은 만 번을 참수해도 모자랄 것이다.
황자를 독살한 할머니요, 충신을 죽이고 간신과 무당에게 휘둘렸으니 이는 역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남첩에게정신 빼앗긴창부가 어찌 군림하랴? 내가독부요, 창부를 죽여 법도를 바로잡지 못한게 한이로다!"

공주가 울고불고 통사정을 해도 고경진의 궁형은 면할 수 없었다. 딸을 서인으로 만드는 어미가 어디 있으며 사위의 남근을 자르라명하는 장모가 세상천지에 또 있을까마는, 오태후의 진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예부터 역심을 품고 남몰래 통천동과태백산을 찾아 하늘에 제를 올려 천심을 얻으려 한 자들은 벼락을 맞거나 급살을 맞았사옵니다. 또한 몸에 상처 입은 지 3년이 지나지 않았거나 부정 탔거나 피를 흘렸거나 일진이 맞지 않을 때 제를 올린 자들은 모두 화를 당해 멸문했거나 급사했사옵니다. 환궁하시어 때를 기다리시옵소서."

호령하는 대원유를 왕경례는 황제로 예우하지 않았다. 궁궐로 압송된 대원유는 석고대죄를 거부했다."사해와 만백성의 주인이 어찌석고대죄를 하겠느냐? 황제는 오직 하늘과 종묘에만 머리를 숙일 뿐이니라.

해가 바뀌어 임진(812)년 3월 스무이튿날 밤, 모진 감환으로 고생하던 대원유가별궁에서 급서했다. 강황제 대숭린의 장손으로계위하여 3년간 재위한 대원유는 시호를 정황제로 하고 묘호는 의종으로 했다.그의 성수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요, 황위에올랐으나천하를 경략하지 못한 채 짧은 생애를 마쳤다.대원유의 붕어 소식은 이튿날 저녁때쯤에서야 알려졌다. 대원유에게는 손이 없었다.
종신 자식이 없기 때문에 어머니인오태후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지켜보았다고 했다.

마른 땅에 물 스며들듯 기이한 소문이 퍼진 것은 대원유가 붕어한 지 나흘 만이었다. 황제가 병사한 게 아니라 독살당했으며 오태후가계위한다는 소문이 도성을 휘돌았다.

오태후가 등극하기로 한 4월 초하루 이른 새벽,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반란군이 홀한성의 내성을 에워싸고 황궁을포위했다. 반란의 선봉에는 놀랍게도 오태후의 근신인 금군대장 여석철이 서 있었다. 더욱이 선제 정황제의 종부인 대인수가 반란의주모자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대인수는 개국 황제인 성무고황제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의 4세손으로, 일체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지만 시문에 밝고 무예가출중했다. 심성도 후덕하여 황친들의 신망이 컸으며, 말수가 적고 앞으로 나서는 법이 없는 군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처럼 신뢰할 만한 자였기에여석철과 금군이 반란의 대열에 합류한 것 같았다. 일부 시위 군사와 내관들도 가담했다.

"황위를 선제의 아우인 경왕 대언의에게 물려준다면 태후마마를 서궁으로 모시어태후로서 예를 갖추겠다. 이것은 민심이자천심이다. 천심을 거역하면 봉기할 테니 그때는 누구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대인수는 오태후가 보낸 시종 미사천에게 분명하게 뜻을밝혔다.

대언의는 등극하자마자 서둘러 연호를 주작으로 선포하고 종부인 대인수를 권지국사에 명했다. 권지국사란 나이 어린 황제를•대신하여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관작이었다. 그러나 대인수는 끝내 명을 받지않았다.

"충역을 뛰어넘은 자가 권신이 되거나 근신으로 득세하면 반드시 교활해지옵니다. 예부터 앞문의 호랑이를 막으면 뒷문으로 승냥이가들어온다고 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능히 치세하실 것이옵니다. 아무근심 마시고 오직 부처님의 가피를 빌며 다스리옵소서. 신은도성을 떠나 머지않은 곳에서 폐하를 올려다보고 있겠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용상에 오른 대언의는 용단을 내려 오태후를 둘러싸고 정사를 그르치게 한 자들을모두 징치했다. 도사 사도봉과 시종장 미사천,
오태후의 남총노릇을 한 주홍신, 오태후의 형제와 가솔 중에 학정을 일삼았던자들을 모두 삭탈하여 유배형에 처했다

"귀양간 미사천을 풀어 마마를 시종케하고 오귀옥을 국부인으로 복작하여 마마의 적적함을 달래 드리게 하라."깜짝 놀란 장달익이엎드려 간했다."자고로 잡초의 씨앗은 모을 필요가 없다고 했사옵니다. 잡초의 씨앗은 바람에 날리고 빗물 따라 흐르고 짐승의 몸에붙어서 천리를 간다고 했사옵니다. 미사천과 오귀옥이 부싯돌이 될까 두렵사옵니다."

왕효렴의 말에 신야가 소리 내어 웃었다."그대가 매일 부처님께 예배하며 무엇을기원했는지 알겠도다." "어찌 소신의 기도를아시옵니까?" "일본과 발해가 군사동맹을 확약하고 교역을 확충하자는 뜻을 왜 모르겠느냐?"

"소신이 배알하자마자 동맹과 교역을 청했으면 바로 거절당했을 것이옵니다. 일본은 섬나라여서 외적이 침공하지 않기에 대륙의 위급한 상황에 둔감하옵니다. 그래서 황명을 받들고 온 사신으로서 본분을 하늘에 맡기고 예불하고 시를 지었사옵니다.""그대는천하를 농락했다. 내가 기특하게 여겨 동맹과 교역을 윤허하노라."

드디어 을미(815)년 정월, 당제 이순은 대군을 동원하여 창의절도사 오원제를 공격했다. 오원제를 격파하면 다음 공격 목표는당연히 제나라의 이사도였다.

이사도는 당군의 보급선을 차단하는 게중요하다고 판단하고 군수물자가 집결하는 하음창을 공격했다. 특수 훈련을 받은수백 명의정진대는 당나라 보급창고인 하음창을 불태워 30만여 민(꿰미)의 돈과비단, 2만여 곡의 양곡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 무렵 발해도성에서 기이한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황궁을 경비하고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금군대장군 여석철이 자객에게암살당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도성 외곽을 수비하는 경기군 대총관 홍기선과 경사윤 동경채가 같은 날 새벽에 자객의 손에 의해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들은모두 임진(812)년에 대인수를 따라 충역을 뛰어넘은 자들이었다.

"황친은 이미 날개를 잃었사옵니다. 천하 재주를 다 부려도 날개가 없으면 날 수가 없사옵니다." "날개라......."오태후는 의미 있게웃었다. 금군대장군여석철, 경기군 대총관 홍기선, 경사윤 동경채는 이미 고인이 되었다. 홍기선과 동경채의 사인은 아직도 밝혀지지않았다.

도성을 벗어난 경기 지역 삼림에 거처를둔 대인수는 눈보라가 치던 날 황제의 칙서를 받았다. 황제가 병상에 누워 거동하기 어려우니 입궐하여 조정대사를 논하고 신하들에게 훈회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황제의 스승으로 칭하는 태사로 봉했다.칙사 문사막은 대인수가 손수 권하는 술잔을 받았다.

정유(817)년 봄, 대언의는 끝내 병상에서일어나지 못하고 붕어했다. 유언 한마디,유조 한 장 남기지 못하고 침궁에서 힘없이세상을등졌다. 성수는 스물여덟이요, 재위 5년째였다. 대소신료와 백성들은 드디어 대씨 사직은 무너지고 오씨 사직의 여황제가 탄생한다고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사단이 벌어졌다. 붕어한 황제의 유조가 공개된 것이다. 대언의가 직접 쓴 어필이 분명했고국새까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선제의 유조를 공개한 것은 놀랍게도 황후 이채복이었다.

"고정하옵소서. 전하께서 계위해도 한해를 넘기지 못하옵니다. 마마의 올해 운은 몹시 사나우나 무술(818)년은 대길하니 반드시 상서로운 일이 생길 것이옵니다. 오히려 이번에 하늘이 도왔사옵니다. 만약 마마께서 올해 등극했으면 중병을 앓아 천추만세를 못할운세였사옵니다."누가 보아도 중풍으로 쓰러진 대명충이 오래 살 것 같지 않았다.

미사천은 약삭빠른 자였다. 머잖아 황위에 오를 태후의 비위를 건들지 않는 것이 총애를 받는 지름길이라는 걸 알았다. 비록 늙은 태후에게 간택되어 남총 노릇을 하고있을망정 권세를 누리는 기묘한 맛에 취한지 오래였다. 부름을 받은 사도봉은 펄쩍뛰면서 입을열었다.

"발해 사직이 안정되어 개국할 때처럼웅혼한 기개가 넘친다면 제나라와 함께 중원을 쳐서 천하를 도모할 수 있고 단군의자손들이드디어 천지만물의 주인이 될 수있으련만,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면 천추의한이 될 것이오."장풍진은 운명의 굴레를 이미 알고있는듯했다.

말갈은 발해에 거개가 복속했지만 북흑수를 비롯하여 백돌, 우루, 불열, 철리, 월희의 일부 부족은 북방으로 달아나 곳곳에웅거하며때를 기다렸다. 그들은 막힐부 경계인 속말수(송화강)의 북방과 회원부의 경계인 흑수(아무르 강) 북방에 웅거했다.

급보를 받은 조정은 각처의 도독과 자사에게 말갈을 물리칠 것을 명하면서도 군사를 증원해주지 않았다. 도독, 자사, 현승들이 알아서군사를 초모하고 군마와 병장기를 조달하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곧 백성들을 수탈하라는 것과 같았다.북쪽 변방이 어지러웠지만도성은 황제의 병이 깊어 언제 승하할지 알 수 없었기에 긴장감이 팽팽했다. 황제 알현을 금한지 열흘이 넘었다.

6월 초순, 궁중의 긴장감이 기어이 참화의 모습을 드러냈다. 선제 대언의의 황후이채복이 밤사이에 검붉은 피를 토하며 쓰러져 영영깨어나지 못했다. 내시감이 공표하기로는 서궁 의관 예석정이 약을 잘못 지어 변고가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예석정을문죄했더니마른 약초 속에 있는 독초를 구분하지 못한 잘못을 시인하며 스스로 죄를청해 참수했다고 했다.

대인수는 지난날 임진병란을 일으켜 오태후를 유폐하고 대언의를 옹립했지만 황제가 곁에 있어 달라는 청을 거절한 채 야인으로돌아갈 만큼 기개 있는 황친이었다.그는 나라의 안위와 사직을 위해 언제든지목숨을 버릴 만큼 웅혼했고, 그의 학식과무예를흠모하는 자가 많아 군자로 통칭될만큼 민심을 업었다. 오태후는 그것이 두려웠다.

이채복의 급서는 황후 고운목에게 큰 충격이었다. 자신도 언제 독살당할지 모르기때문이었다. 황위에 오르기 위해 자식과 손자뿐아니라 며느리까지 거침없이 죽일 수있는 오태후를 떠올리면 밥 한 술 뜨기도무서웠다.

고운목의 오라버니 고진목은 아버지 고숙신을 찾아가 밀서를 내놓았다. 국구 고숙신은 고원의 후손으로 고구려 왕손의 체통을 지키며좌우로부터 신망을 받는 선비였다.왕손으로 태어나 호가호위하며 어지러운 세상 바로잡지 못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을 외면한다면어찌 군자의 도리이겠느냐. 너는 오래 살기를 바라지 말고 사람답게 살거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다만 도리를 다하고 바른 길을 가면 남보다 조금 일찍 죽을 뿐이다. 후세에 그 뜻이 갸륵하다 할 것이니 어찌광영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신중하지 않으면 더 큰 화가 미칠 테니 매사 부처님께 기도하듯 하라."

석다정은 제자 석정진이 만든 옥새를 요모조모 뜯어보고 종이에 찍어보며 진품 국새 모양과 견주어 보았다. 칙서의 국새를본떠 만든것이니 어디가 달라도 다를 듯한데 진품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했다." 이렇게 감쪽같으니 천하를 농락하겠구나."석다정은옥새를 본떠 만든 제자의 솜씨를 칭찬했다.

이사도는 대국과 홀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동맹을 맺었던 번진은 멸망했거나항복했고, 믿었던 발해조차 원군을 보내주지 않았다.
발해의 배신은 이사도를 더욱아프게 했다. 같은 고구려 후손으로 철석같이 믿었기에 배신감은 더욱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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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전쟁 - [초특가판]
네오센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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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보고] 영화 「하얀 전쟁」: 끝나지 않은 전쟁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상처

1. 작품 개요

가. 기본 정보
ㅇ (제목/원제) 「하얀 전쟁」
ㅇ (감독/주연) 정지영 / 안성기, 이경영, 심혜진
ㅇ (제작국가/개봉연도) 한국 / 1992년
ㅇ (원작) 안정효의 소설 『하얀 전쟁』을 바탕으로 한 영화임.
ㅇ (작품 성격)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전쟁 이후에도 벗어나지 못한 상처와 죄책감을 다룬 전쟁 드라마임.

나. 작품의 기본 성격
ㅇ (시대적 배경) 현재 시점은 베트남전 이후의 한국 사회이고, 과거 회상은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함.
ㅇ (공간적 배경) 현재의 한국 도시와 과거의 베트남 전장이 교차하며, 인물들이 전쟁을 끝내 과거로 밀어내지 못한 상태를 보여 줌.
ㅇ (작품의 성격) 겉으로는 전우였던 두 남자의 재회와 몰락을 다루지만, 실제로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람 안에서 계속되는 후유증을 다룬 영화임.
ㅇ (핵심 문제의식)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정말 살아남은 것인지, 그리고 국가와 사회가 기억하지 않는 전쟁의 상처를 개인이 어떻게 감당하는지를 묻는 작품임.

2. 줄거리 및 서사 구조

가. 기본 줄거리
ㅇ (사건의 시작) 한기주는 베트남전 참전 이후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소설가로, 아내와도 멀어지고 일상 속에서도 전쟁의 기억을 떨쳐내지 못함.
ㅇ (글쓰기의 계기) 그는 월간지에 베트남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을 연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묻어두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됨.
ㅇ (전우의 등장) 과거 전우였던 변진수가 한기주 앞에 나타나면서, 기주는 전쟁 당시의 기억과 죄책감을 더 깊이 마주함.
ㅇ (과거의 회상) 영화는 현재의 한기주와 변진수, 그리고 베트남전 당시의 소대 생활과 전투 경험을 오가며 전쟁이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보여 줌.
ㅇ (전쟁의 파국) 평온해 보이던 부대 생활은 점차 민간인 학살, 폭력, 공포, 광기 속으로 빠져들고, 병사들은 정상적인 판단을 잃어 감.
ㅇ (결말의 의미) 변진수는 전쟁의 기억과 죄책감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한기주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구하며, 한기주 역시 그 요구 앞에서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절감함.

나. 서사 전개의 특징
ㅇ (현재와 과거의 교차) 영화는 현재의 무기력한 삶과 과거의 전장을 번갈아 보여 주며, 전쟁이 시간의 흐름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냄.
ㅇ (전쟁영웅 서사의 거부) 영화는 참전 군인을 영웅으로만 그리지 않고, 공포와 죄책감 속에서 무너져 가는 인간으로 바라봄.
ㅇ (후유증 중심의 서사) 총격과 전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인물들을 따라다니는 기억과 악몽임.

3. 주요 인물 분석

가. 한기주
ㅇ (상처 입은 생존자) 한기주는 베트남전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마음속으로는 전쟁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인물임.
ㅇ (무기력한 현재) 그는 소설가로 살아가지만 삶의 활력을 잃었고, 가족관계와 일상에서도 안정감을 찾지 못함.
ㅇ (기억의 기록자) 베트남전 경험을 글로 쓰는 과정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자신이 외면해 온 상처를 다시 마주하는 과정임.
ㅇ (인물의 의미) 한기주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다.

나. 변진수
ㅇ (무너진 전우) 변진수는 전쟁의 폭력과 죄책감에 짓눌린 채 현재의 삶을 버티지 못하는 인물임.
ㅇ (전쟁의 피해자이자 가해자) 그는 전쟁 속에서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민간인을 향한 폭력의 현장에 놓였다는 점에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함.
ㅇ (죽음을 요구하는 인물) 변진수가 한기주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는 장면은 전쟁 후유증이 한 인간을 어디까지 몰아가는지 보여 줌.
ㅇ (인물의 의미) 변진수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쟁 속에 갇힌 채 자기 삶을 감당하지 못한 비극적인 인물이다.

다. 사라
ㅇ (현재의 여성 인물) 사라는 현재 시점에서 한기주와 관계를 맺는 인물로, 전쟁 이후의 삶과 현실을 보여 주는 역할을 함.
ㅇ (거리의 존재) 사라는 한기주의 상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가 현재의 삶에서 붙잡고 있는 몇 안 되는 관계 중 하나임.
ㅇ (인물의 의미) 사라는 전쟁의 기억에 붙들린 한기주가 현재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태를 더 또렷하게 보여 주는 인물이다.

라. 김문기 하사와 소대원들
ㅇ (전쟁 속 권력) 김문기 하사는 전장 안에서 폭력과 명령의 힘을 행사하는 인물로, 병사들이 전쟁의 광기에 휘말리는 과정을 보여 줌.
ㅇ (민간인 살해의 강요) 그는 민간인을 베트콩으로 몰아 폭력을 행사하고, 다른 병사들에게도 살인을 강요하며 전쟁의 잔혹함을 드러냄.
ㅇ (소대원들의 붕괴) 병사들은 처음에는 전쟁을 실감하지 못하다가, 점차 공포와 폭력에 익숙해지거나 그 압력 속에서 무너져 감.
ㅇ (인물들의 의미) 이들은 전쟁이 개인의 도덕과 판단을 어떻게 마비시키는지를 보여 주는 집단이다.

4. 핵심 주제 및 메시지

가. 끝나지 않은 전쟁
ㅇ (전장의 지속) 베트남전은 과거에 끝났지만, 한기주와 변진수에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
ㅇ (기억의 고통) 전쟁의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술, 글쓰기, 악몽, 관계의 실패 속에서 계속 되살아남.
ㅇ (진짜 전쟁의 의미) 영화는 전쟁의 끝을 휴전이나 귀국으로 보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 그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바라봄.

나. 참전의 명예와 실제 전쟁의 간극
ㅇ (겉으로 주어진 명분) 베트남전 참전은 국가적 명분과 군인의 의무라는 말로 포장되었음.
ㅇ (현장의 실상) 그러나 영화가 보여 주는 전장은 명예와 영웅담보다 공포, 오인, 민간인 살해, 죄책감에 더 가까움.
ㅇ (영화의 태도) 영화는 참전을 단순히 비난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다치고 망가졌는지를 따라감.

다. 죄책감과 생존의 무게
ㅇ (살아남은 자의 고통) 한기주와 변진수는 살아 돌아왔지만,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편안한 안식이 되지 못함.
ㅇ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일) 전쟁 중 벌어진 폭력과 죽음은 이들에게 계속 죄책감으로 남고, 현재의 삶을 흔들어 놓음.
ㅇ (비극의 핵심) 이 영화의 슬픔은 사람이 죽어서만 생기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 자기 삶을 제대로 살 수 없을 때 더 크게 드러남.

라. 국가가 보지 않은 개인의 상처
ㅇ (사회적 침묵) 전쟁이 끝난 뒤 사회는 참전의 공과 명분을 말하지만, 개인의 상처와 죄책감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음.
ㅇ (개인의 고립) 한기주와 변진수는 자기 고통을 가족이나 사회와 온전히 나누지 못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져 감.
ㅇ (작품의 문제의식) 영화는 전쟁을 국가의 기억이 아니라 개인의 상처로 다시 바라보게 함.

5. 인상 깊은 장면과 기억에 남는 요소

가. 한기주의 현재 생활
ㅇ (무기력한 일상) 한기주의 현재 모습은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이 평범한 삶으로 쉽게 복귀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줌.
ㅇ (글쓰기의 고통) 그는 베트남전을 글로 쓰지만, 글쓰기는 상처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처를 다시 여는 일이 됨.

나. 변진수의 등장
ㅇ (과거의 귀환) 변진수는 한기주가 묻어두었던 전쟁의 기억을 현재로 끌고 오는 인물임.
ㅇ (불안한 전우 관계) 두 사람은 같은 전쟁을 겪었지만, 서로를 위로하기보다 서로의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관계에 가까움.
ㅇ (죽여 달라는 요구) 변진수의 요구는 단순한 자살 충동이 아니라, 전쟁이 한 인간에게 남긴 마지막 절망처럼 다가옴.

다. 민간인 살해 장면
ㅇ (전쟁의 잔혹함) 민간인을 적으로 몰아 죽이는 장면은 전쟁이 사람의 판단과 양심을 얼마나 쉽게 무너뜨리는지 보여 줌.
ㅇ (강요된 폭력) 병사들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살인에 끌려 들어가는 과정은 전쟁의 가장 끔찍한 면을 드러냄.
ㅇ (죄책감의 출발점) 이 장면들은 변진수와 한기주가 현재까지 벗어나지 못한 죄책감의 뿌리로 작용함.

라.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는 장면들
ㅇ (기억의 침입) 영화는 현재 장면 사이에 과거 전장을 반복해서 끼워 넣으며, 인물들이 지금도 전쟁 속에 살고 있음을 보여 줌.
ㅇ (시간의 붕괴) 이들에게 전쟁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삶 안으로 계속 밀려오는 기억임.

6. 인상 깊은 부분과 생각

가. 전쟁영화의 방향
ㅇ (다른 전쟁영화와의 차이) 이 영화는 전투의 승패나 작전의 성공보다, 전쟁이 끝난 뒤 사람에게 남는 상처에 더 집중함.
ㅇ (영웅보다 생존자) 인물들은 영웅처럼 보이지 않고, 살아 돌아온 뒤에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생존자처럼 보임.
ㅇ (감상의 핵심) 그래서 이 영화는 전쟁을 멋진 사건으로 보지 않고, 오래 남아 사람을 망가뜨리는 경험으로 바라보게 함.

나. 한기주와 변진수의 비극
ㅇ (서로 다른 붕괴) 한기주는 무기력과 회피 속에서 무너지고, 변진수는 죄책감과 광기 속에서 무너짐.
ㅇ (전우라는 관계) 두 사람은 같은 전쟁을 겪은 전우지만, 그 관계가 서로를 살리는 힘이 되지는 못함.
ㅇ (가장 무거운 지점)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다시 서로를 마주했을 때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무겁게 다가옴.

다. 영화의 아쉬움
ㅇ (무거운 주제) 영화가 다루는 주제는 크고 무겁지만, 일부 인물과 관계는 충분히 깊게 풀리지 못한 듯함.
ㅇ (시대적 한계) 199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표현 방식과 연출 방식 때문에 지금 보면 다소 거칠게 느낄 수 있음.
ㅇ (그래도 남는 점) 그럼에도 영화는 베트남전 참전의 기억을 미화하지 않고, 참전군인의 상처와 죄책감을 정면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큼.

7. 종합 평가 및 결론

가. 종합 평가
ㅇ (작품의 성격) 「하얀 전쟁」은 베트남전 자체보다, 전쟁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무너진 삶을 다룬 영화임.
ㅇ (작품의 강점) 영화는 한국군 참전의 영웅담보다 참전자의 고통과 죄책감에 집중하며, 전쟁을 개인의 상처로 다시 바라보게 함.
ㅇ (작품의 한계) 일부 전개와 인물 묘사는 거칠지만, 전쟁 후유증을 다룬 문제의식은 분명하고 무겁게 다가옴.

나. 결론, 소회
ㅇ (핵심 인상) 이 영화는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이 반드시 전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줌.
ㅇ (남겨진 생각) 한기주와 변진수는 살아남았지만, 그들이 겪은 전쟁은 기억과 죄책감의 형태로 계속 삶을 파고듦.
ㅇ (제목의 의미) ‘하얀 전쟁’이라는 제목은 전쟁의 피비린내를 지운 말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오히려 그 하얀 표면 아래에 남은 상처와 죄책감을 드러냄.
ㅇ (한줄 정리) 「하얀 전쟁」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람 안에서 계속되는 고통과, 살아남은 자가 짊어져야 하는 죄책감을 담은 무거운 전쟁영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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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신이 감히 아뢰겠사옵니다. 당나라는 중화사관과 춘추필법으로 남의 나라역사를 왜곡하는 못된 습성이 있사옵니다.고구려후손이 세운 발해를 말갈인이 세웠다 기록하고, 당나라와 발해가 주고받은 물선도 받은 것은 조공이고 준 것은 물선이라고우기옵니다. 또한 발해에 보내는 국서에는 ‘황제께 올립니다‘라고 쓰지만, 당나라국서고에 보관하는 문서에는 ‘발해왕에게보내노라’라고 기록하옵니다."

"신이 돌아간 뒤 당나라 사관들은, 밀아고가 입조하여 조공을 받쳤다고 기록할 것이며 발해의 왕 숭린을 책봉했다고 쓸 것이옵니다.
사신 은지첨의 팔뚝에 묵형이 내리고 천자를 논힐한 것은 일언반구도 기록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더구나 폐하의 근신고장무를속죄사신으로 보낸 것을 책봉사라고 기록할 테니 어찌 간계라 하지 않겠사옵니까?"

황제 대숭린은 당제 이괄의 진사를 받아들이고 고장무에게 영원장군을 제수했다.그리고 진사품으로 보낸 한족 미녀 30명중 유난히눈에 띄는 세 명을 궁중에 두고, 나머지는 근신들에게 하사했다.

초여름부터 하루이틀거리로 내리던 비는 한여름이 되자 대엿새씩 그치지 않더니, 급기야 밤낮없이 내렸다. 비는 상경, 동경, 중경,
동모산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이재민들은 관가로 몰려들어 먹고 입을것을 달라고 아우성쳤다. 도성을 수비하는금군들이 창검을 들고 백성들을 쫓으려 했지만,
차라리 죽이라고 악을 썼다. 젖은 봇짐을 인 노파, 등짐 진 초췌한 늙은이, 빈지게를 달랑 걸멘 장정, 올망졸망한 자식들이 핏기 없는어미의 치맛자락을 잡고 비바람 속에서 떨고 있는 모습은 전장보다 나을게 없었다.

북두칠성 북쪽에 있는 별인 자미는 황제의운명을 관장했다. 자미를 객성이나 요성이침범하면 황위를 찬탈하려는 시도가 있거나역적의 무리가 준동한다 했다.

"폐하, 어리석은 백성들의 원망은 물길과 같아서 물꼬를 터주지 않으면 끝내 넘쳐둑을 무너뜨리옵니다."최벽의 말에 대숭린은고개를 끄덕였다."어찌 물꼬를 터주어야 하는고?" "중정대에서 백관을 감찰하면, 관고를열어 백성을 구휼할 때 사욕을 채운 자,
공정하지 않은 자, 눈속임한 자가 드러날 것이옵니다. 폐하를 속인 기군망상일 뿐 아니라 국기를 흔든 것이요, 백성을 수탈한죄인이옵니다. 이런 간신들을 징치한 뒤에 관고를 열어 성덕을 베푸시면 백성들이 흠복하옵니다."

그럭저럭 해를 넘기고 이듬해 봄이 되었다. 복은 쌍으로 아니 오고, 화는 홀로 다니지 않는다고 했던가. 지난 여름에는 물이넘쳐곤궁했고 이젠 봄 가뭄이 들어 차라리지난 장맛비가 그리운 형편이었다. 남쪽의신라에서도 기근이 들고 역질이 퍼져 민심이흉흉하다고 했다.

지난해 홍수에 가뭄까지 겹치니 굶주린백성들의 원성은 자자했다. 세세년년 마를일 없이 넘쳐 흐르던 궁성 밖 용천도 급격히 줄었다.
도성 안팎의 크고 작은 우물이모두 말라 너나없이 용천을 기웃거린 탓이었다. 모두가 그곳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데야 아무리하늘이 낸 용천이라고 한들버틸재간이 없었다.황궁에도 맛좋은 우물이 여러 개 있었지만, 황제의 수라상에 오르거나 황제가음용하는 물은 언제나 용천수였다. 용천을 발견한 이래 그 샘을 지극정성으로 아꼈다.상경을 용천부라 부른 것도 맑은 샘물이하염없이 솟아올라 마르지 않아 이름 지은 것이다.

좌윤 신대방은 고개를 저었으나, 좌상 장두각을 찾아가 전후사정을 늘어놓았다. 장두각은 고심 끝에 남대문 밖 용천 주변에군사를풀어 백성들의 접근을 막았다

목마른 백성들의 분노는 하루가 다르게커졌다. 처음에는 물동이를 들고 떼 지어소리지르다가 차츰 지게 작대기나 몽둥이를 들더니,
끝내는 낫, 삽, 쇠스랑을 들고무리지어 덤볐다.많은 백성들이 잡혀가고 매질을 당했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점점 수효가•불어났다. 백성들의 분노가 치솟을 무렵 아우성치는 무리와 군사들이 뒤엉켜 큰 싸움판이 벌어졌다.

삽시에 벌어진 참변이어서 미처 막을 길이 없었다. 황급히 금군과 시위 군사들이달려들어 분노한 백성들을 마구 베고 찔러겨우사태를 수습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황궁까지 포위한 무리의 주모자는 놀랍게도 지난해 죄 없이 효수당한 오감조의 동생오낙조였다. 조정공론이 분분한 것은 농구를 든 백성들에게 도성이 뚫리고 황궁까지 포위당했기 때문이었다.

"기우하고 기도했는데도 하늘이 감응치않고 귀신이 대답하지 않은 것은 폐하께서무죄한 자를 참하였거나, 억울한 자의 통곡이하늘에 닿았거나 군자를 멀리하고 소인을 가까이 했거나, 신하의 직언을 멀리했거나, 폐하께서 하늘에 순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옵니다. 하늘은 스스로 재변을 일으키지 않사옵니다."
대청윤은 황제의 심기를 아랑곳하지 않고입을 열었다. "폐하, 용천을 철벽으로 수비하는 군사들을 물리치고 백성들에게 물을 나누어•주옵소서. 물과 햇빛과 바람은 천지조화로 이루어졌기에 하늘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

폐하께서 진실로 백성들의 괴로움을 알고 하늘의 뜻을 좇는다면 천지의 기운이 화평해져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오곡이 풍성해질것이옵니다. 백성들의 살림이 넉넉해져 안정되면 널리 교화가 행해져 풍속이 후해지고, 옥에는 죄인이 없고 도둑이 사라지며, 간신과•역신이 발 디딜 곳 없어 태평성대를 누릴 것이옵니다."대숭린은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어탁을내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감히짐을 능멸하다니 용서할 수 없도다. 역심을 품었으니 치죄하겠다."

민심은 점점 더 흉흉해졌다. 배고픈 백성들은 무리지어 다니면서 도적이 되거나 강도질을 했다. 관가에 불을 지르고 관리들의집을습격하는 일도 생겼다. 기찰을 강화하고 도성 안팎의 경계를 엄중히 했지만, 한번 흐트러진 민심을 되돌릴 묘안이 없었다.할 수 없이야간에 통행을 금지하는 인정을앞당겼다. 도성 밖에서는 무장하고 떼 지어다니며 약탈을 일삼는 비적들이 나날이 늘어갔다.

황제의 눈 밖에 난 대청윤이 당분간 천문령에 들어가 근신하겠다는 상소를 아무의심 없이 윤허했는데, 어느 틈에 막힐부의군사를장악하여 충역을 뛰어넘었다는 보고였다. 대숭린은 반역의 싹을 진작 자르지못한 것이 한스러웠지만, 군사를 동원하기도 쉽지않은 정황이었다.

속말수가 마르지 않았고 거란과 말갈이 대청윤에게 복속했으며 막힐부도독 고천경을 따르는 무리가 제법 많았다. 뜬소문에는부여부도독 장국등과 장령부도독 양만신도 역심을 품었다 했다.

무자 백난별은 소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튼 채 고승명을 맞았다. 여든아홉 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흰 머리칼과 흰 수염만아니라면 늙은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눈빛과 살결이 촉촉이 빛났다.

"입을 열면 귀한 집 자손이 목숨을 잃나니......."차마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투였다."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그렇기는 하오만 귀한 집 자손에 남매여야 하고, 인물과 자색이며 학문과 무술이남에게 뒤지면 안 되니 어디서 구한단 말이오?"

"동남동녀도 기껍게 몸을 바쳐야 하지만, 부모 역시 흔쾌히 자식을 내놓지 않고 슬퍼하면 용신이 제물을 거부하오."백난별이힐책하는 투로 말하자, 이내 고승명은 한숨을 길게 토했다. 백만금을 준다고 한들 어느 누가 기꺼이 자식을 내놓으며, 극락왕생한다한들 어느 누가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는가.

지난해 장마도 용신의소행이고 금년 가뭄도 용신의 소행이 분명하니 어찌 두렵지 않으리오. 몇 번이나 황상께 주품해달라 해도 조정중신들이 믿지않았소이다. 그 죄를 어찌 받으려고

그로부터 닷새 만에 고승명을 찾아온 것은 놀랍게도 신사문이었다. 신사문 뒤에는가히 선남선녀라 할 수 있는 남매가 고운모습으로서 있었다. 고승명은 대숭린이 등극하고 신씨 일가를 매몰차게 내쫓았기 때문에 그가 애지중지하는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오자 무척놀랐다.고승명은 자리에 엎드려 예를 갖추었다.황제의 스승이었던 태사 신사랑의 아우요,한때 의부경으로 문무백관의 존경을받던인물이었다. 고승명도 신사문에게 사사 받아 학문을 키웠기에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식을 잃으면 낳을 수 있지만, 만백성을 잃으면 나라가 무슨 소용이겠소. 백 년만의 대가뭄에 온 백성이 굶주림과 역병으로신음하거늘 어찌 내 자식만 귀하다 하리오. 또한 부모가 자식을 바치고 호의호식하면 죄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고승명은 급히 황제에게 고하고, 신사문의 아들 신달진과 딸 신달지를 데리고 홀한해로 달려갔다. 제단을 마련하는 동안 두아이는평평한 바위 위에 올라 기도를 했다

백난별이 곁에 앉아 조용히 물었다. "두렵지 않은가?" 신달진이 곱게 웃었다.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생각하기로는 남보다먼저 죽는 것 같지만, 세상에는 배내옷도 못 입어보고 죽는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래 살아 뜻을 거스르고도를 얻지 못하는 것보다•보람되게 저를바칠 수 있으면 천복이 아니겠습니까." 백난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남매의 손을 맞잡았다.

"나라에서 동남동녀를 구한다는 방을 본아버님께서 아무 말씀하지 않으신 채 저희들에게 방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 길로 어머니와함께 절에 들어가 무명스님의 설법을 듣고 바로 참선에 들었습니다. 어젯밤깨달은 게 있어 저희 남매가 먼저 부모님과스님께 몸을바치기로 맹약했습니다.

소복한 사람들은 하루 종일 그 자리에서달싹하지 않았다. 신사문의 자녀들이 먼저쓰러져 그늘로 실려갔고, 끝내 신사문과 백난별도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쓰러진 사람들은 모두 온몸이 불덩어리 같았다. 입을벌려 물을 먹이고 몸에 끼얹어도 보았지만여전히혼수상태였다.

그날 밤, 휘영청 둥근달이 창공에 높이걸렸다. 정성껏 제사를 드렸건만 하늘은 요지부동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홀연 비를머금은 매지구름이 남쪽으로부터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람결이 심상치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매지구름은 강한 바람을 타고밝은 달을 가렸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더니 금세 굵어졌다.

황제 대숭린은 급히 대신 양광태를 보내 신사문을 개국공에 봉하고 식읍 3백호를내리며 그의 형 신사랑을 다시 태사로 명했다.
그러나 신씨 일가는 벼슬과 식읍을거절한 채 종적을 감추었다.

대청윤에게도 대업의 꿈이 있다는 걸 진작 눈치채지 못한게 한이었다."짐이 군사를 거느리고 친정하여 역적대청윤을 사로잡겠다.
그리하여 발해 강역에서 천추만세토록 모반의 씨를 말리겠노라."

"토평한 뒤에 쌓인 원한을 어찌 하려는고?" "지금은 속전속결해야 하옵니다. 전쟁이길어지면 양초와 군비를 조달하기 벅차옵니다. 말갈 군사가 초전에 무자비하게 도륙하면 반란군이 분열하고 군사들이 도망치게 되옵니다.!"

"개마성과 골태몽을 장수로 삼으면 역신들을 놀라게 할 것이옵니다."대숭린은 대장군 장객명에게 부월을 주어 군사를 거느리게하고, 말갈 출신 개마성과 골태몽을 장수로 삼아 토벌군을 편제했다. 이때 중신 감청학이 진언하고 나섰다.

그들은 따로 정진대를 운용하여 정면공격과 측후방공격을 감행했고, 적을 혼란케 한 뒤 사납게 도륙하여 겁에 질리게했다. 정진대를이끄는 장수 수율림은 본디 말갈 수령이었는데 적진에 뛰어들면, 항복한자뿐만 아니라 어린애부터 늙은이까지 닥치는 대로 죽이는장수였다.

상경 일대에는 대청윤을 따르는 자들이의외로 많았다. 대숭린과 함께 상경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인심을 닦아 두었기 때문이었다.

"문은 정이요, 무는 동이어서 나라가 바르게 서 있으려면 문무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나는 발해 주변에 저 너른 당나라땅과 북방의 땅과 신라가 있는 한 무관으로서 칼을 버릴 수 없습니다."

네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천기를 받들 것이다."대도진경은 아버지 뜻을 끝내 거부했다.진노한 대도무인은 그 길로 몸져누웠다.
군사들이 대도무인의 거처를 급습한 것은 이튿날 새벽이었다. 끌려가 모진 국문을 당했으나 대도무인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대청윤이 이끄는 반란군은 기세를 올리지 못하고 연신 패퇴하여 부여부를버리고 막힐부로 도주했다. 가뭄이 용천부와 현덕부,
용원부 북쪽과 솔빈부, 동평부,철리부까지 번져 민심이 흉흉할 때는 기세좋게 승전고를 울렸으나, 가뭄이 해소되자민심이 점차 등을돌렸기 때문이다. 게다가개마성과 골태몽이 거느린 말갈 군사들이무자비하게 공격하자 더욱 기가 꺾였다.

"천심이 이렇게 변덕스러울 줄 몰랐소이다. 더구나 효왕이 저리도 무능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효왕 대청윤을 부추겨 반란을일으켰던막힐부도독 고천경이 넋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포위당한 아밀지는 저항하지 않았다. 싸우면 몰살당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밀지는재빨리 대청윤의 목을 베어 고천경에게 바쳤다.
간교한 아밀지가 대청윤의 입을 막기위해 먼저 참살해 버린 것이다. 고천경은그 자리에서 아밀지의 목을 쳤다.

장객명은 고천경과 장국등을포박하여 도성으로 압송하고, 대청윤의 수급을 거두어 염장했다. 반역자의 말로를 보여주기 위해 수급을수습하여 소금에 절이라는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성으로 압송된 고천경과 장국등은 황제를 알현조차 하지 못하고 형장의이슬로 사라졌다.

이태 동안 홍수와 가뭄으로 민심이 흉흉한 것을 틈타 반역을 꾀했던 대청윤과 그일당은 참살당했고 반역의 깃대는 무참하게 꺾였다. 이듬해 을유(805)년 정월 열사흘에 이괄이 붕어했다. 며칠 뒤 정월 스무엿새, 중풍으로 거동조차 못하는 이송이 등극했다. 말도제대로 못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사람도못 알아볼 때가 많은 이송이 태극전에서 즉위식을 치렀다.

병술(806)년 윤 6월에는 산동반도 맹주이사고가 14년 동안 통치하던 제나라를 남기고 붕어했다. 아버지 이납과 할아버지 이정기와같은 병력이었다. 이사고에게는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대권은 이복동생 이사도에게 넘어갔다.

사신을 발해로 보내 당나라를 대적하는 군사동맹을 청했다. 발해의 조정공론이 분분했지만 대숭린은 결전을 각오하는 이사도와군사동맹을맺기로 했다. 그리고는 고화용과 고다불을연달아 일본에 보내 해본동맹을 요구했다

발해 황제 대숭린이 대사를 앞두고 급환으로 세상을 뜨니 기축(809)년 초여름이었다. 이에 대숭린의 장자 대원유가 황위를잇고선제의 시호를 강황제로, 묘호를 목종으로 하니 제위 기간은 15년이었다. 대원유는 연호를 영덕으로 선포하고 계위했다.

원유는 즉위할 때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단 위에 오를 만큼 비대했다. 게걸스런 식탐으로 몸무게가 무려 2백 근이나되었다.
일설에는 그의 생모 황태후 오귀담이 궁중 의관에게 처방을 잘못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대원유의 식탐은 끝이 없었다. 태자시절식탐을 저지하기 위해 황명으로 음식을 줄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엄한 아버지를 두려워해서 어머니의 편애에 매달려식탐에 빠지거나 궁녀들 치마 벗기는 일에이골이 났다.

대원유 등극하자마자 정사를 멀리한채 오태후의 섭정을 좇았다. 대원유의 아우대언의와 대명충도 대원유 못지않은 식탐으로 150근이 넘게 비대했다. 황제 대원유는 칙서를 내려 오태후의 섭정을 선포하고오태후의 오라버니 오작분을 만인지상인대내상에 명하고손아래 오라비 오작근에게 백관을 감찰하는 대중정을 제수했다. 또다른 오라비 오작촌은 군권을 장악하는 지부경으로 봉했다.
오태후의 심복들을 대신과 근신으로 삼으니 사직은 대씨로 이어졌으나 조정 대소사는 오씨의 수중에 들었다.

그녀 앞에 꿇어 엎드리기 싫어 사직상소를 낸 신하들 가운데 귀양 가지 않은 자가없었고, 섭정의 부당함을 상소한 사족들은모두참살당했다. 도성은 기찰이 삼엄하고인정이 당겨졌으며, 도성을 지키는 금군과황궁을 지키는 시위는 두 배로 늘어났다.사라졌던 10호연좌제도 되살아났으며 문황제 이래로 대우받던 문관보다 무관이 득세하게 되었다.

미사천은 오태후의 속셈을 꿰뚫어보는 심복이었다. 설사 그렇더라도 어찌 통천하겠느냐?"조정을 한손에 틀어쥐고 있지만 하늘과내통하지 않고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황위였다."마마, 태양의 다른 이름이 바로 오륜이옵니다.""오륜이라.......""고씨도한없이 높다하여 하늘을 뜻하고, 대씨도 한없이 크다 하여 하늘을 뜻하옵니다. 오씨도 곧 하늘을 뜻하옵니다."오태후는 준수한용모와 반듯한 몸매의 미사천을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내가 서궁을 버리고 동궁으로 옮긴 것만 가지고도 공론이 분분한데,
천심은 남자에게만 내리는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 "본디 세상의 주인은 여인이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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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보고] 영화 「미국의 목가」: 무너진 가정과 깨져버린 미국의 꿈

1. 작품 개요

가. 기본 정보
ㅇ (제목/원제) 「미국의 목가」 / 「American Pastoral」
ㅇ (감독/주연) 이완 맥그리거 / 이완 맥그리거, 제니퍼 코널리, 다코타 패닝
ㅇ (제작국가/개봉연도) 미국 / 2016년
ㅇ (원작) 필립 로스의 1997년 소설 『American Pastoral』을 바탕으로 한 영화임.

나. 작품의 기본 성격
ㅇ (시대적 배경)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며, 베트남전 반대운동과 사회 혼란이 한 가정 안으로 들어오는 흐름을 다룸.
ㅇ (공간적 배경) 뉴저지의 중산층 가정, 장갑공장, 마을 우체국, 메리가 숨어 지내는 낡은 공간들이 서로 대비됨.
ㅇ (작품의 성격) 겉으로는 성공한 남자의 가족 비극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식 성공과 평온한 가정이라는 믿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다룬 영화임.
ㅇ (핵심 문제의식) 좋은 집안, 성실한 아버지, 아름다운 아내, 번듯한 사업이 있어도 자식의 극단적 선택과 시대의 혼란 앞에서는 한 가정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 줌.

2. 줄거리 및 서사 구조

가. 기본 줄거리
ㅇ (사건의 시작) 시모어 레보브, 일명 ‘스위드’는 학창 시절부터 주목받던 운동선수였고, 이후 장갑공장을 운영하며 안정된 가정을 이룸.
ㅇ (가정의 모습) 그는 미인대회 출신 아내 던과 딸 메리와 함께 미국식 성공의 모범처럼 보이는 삶을 살아감.
ㅇ (갈등의 시작) 그러나 딸 메리는 말더듬과 불안, 부모와의 거리감, 사회문제에 대한 분노 속에서 점점 급진적인 방향으로 기울어 감.
ㅇ (파국의 사건) 메리는 베트남전 반대와 정치적 분노 속에서 마을 우체국 폭파 사건에 연루되고, 이 사건으로 사람이 죽으면서 가족의 삶은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감.
ㅇ (아버지의 추적) 스위드는 딸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찾아다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믿었던 가정과 미국식 안정이 이미 무너졌음을 마주함.
ㅇ (결말의 의미) 스위드는 딸을 끝내 되찾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장례식에 나타난 메리의 모습은 이 비극이 끝까지 풀리지 않았음을 보여 줌.

나. 서사 전개의 특징
ㅇ (목가의 역설) 제목은 ‘목가’이지만, 영화 속 삶은 평온한 전원시가 아니라 가정 파탄과 시대적 혼란으로 채워짐.
ㅇ (개인의 비극과 시대의 충돌) 영화는 한 가족의 문제를 넘어,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분열이 개인의 삶 안으로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보여 줌.
ㅇ (아버지 중심의 서사) 영화는 대부분 스위드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따라가며, 딸을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의 혼란과 절망을 중심에 둠.

3. 주요 인물 분석

가. 시모어 레보브, 스위드
ㅇ (성공한 미국인) 스위드는 운동, 결혼, 사업, 가정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미국 중산층 남성처럼 살아온 인물임.
ㅇ (선량한 아버지) 그는 딸을 사랑하고 가정을 지키려 하지만, 딸의 내면과 시대의 분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
ㅇ (무너진 믿음) 스위드는 성실하게 살면 가정도 사회도 유지될 것이라 믿지만, 메리의 폭력적 선택 앞에서 그 믿음을 잃게 됨.
ㅇ (인물의 의미) 그는 악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믿어온 세계가 왜 무너졌는지 끝내 알지 못한 채 함께 무너져 버린 비극적인 인물이다.

나. 던
ㅇ (아내와 어머니) 던은 겉으로는 아름답고 안정된 가정의 중심에 서 있지만, 딸의 사건 이후 심하게 무너짐.
ㅇ (상실의 방식) 남편이 딸을 계속 붙잡으려 할 때, 던은 그 기억에서 벗어나 새 삶을 만들려는 쪽으로 움직임.
ㅇ (현실적 선택) 던의 태도는 차갑게 보일 수 있지만, 끝없이 무너지는 삶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기도 함.
ㅇ (인물의 의미) 던은 가족의 비극을 한 사람의 신념이나 사랑만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주는 인물이다.

다. 메리
ㅇ (문제의 딸) 메리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만, 그 사랑 안에서 안정되기보다 점점 더 불안하고 날카롭게 변해 감.
ㅇ (시대의 아이) 베트남전과 사회문제에 대한 분노는 메리 안에서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짐.
ㅇ (가정 파괴의 사건) 메리가 연루된 마을 우체국 폭파 사건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한 가정과 한 남자의 삶을 회복하기 어렵게 무너뜨린 사건임.
ㅇ (인물의 의미) 메리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시대의 분노와 개인의 불안이 위험하게 뒤섞인 인물이다.

라. 리타
ㅇ (불온한 연결자) 리타는 사라진 메리와 스위드 사이에 끼어들며, 스위드의 불안과 죄책감을 건드림.
ㅇ (혼란의 상징) 그녀는 메리의 행방을 알려줄 듯하면서도 스위드를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음.
ㅇ (인물의 의미) 리타는 스위드가 믿어온 질서 바깥의 세계, 곧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급진적이고 불안한 시대의 얼굴을 보여 주는 인물이다.

4. 핵심 주제 및 메시지

가. 미국식 성공의 붕괴
ㅇ (완벽한 외피) 스위드는 좋은 집안, 아름다운 아내, 성공한 사업, 사랑하는 딸을 가진 인물임.
ㅇ (깨진 환상) 그러나 그 모든 조건은 딸의 선택과 시대적 폭력 앞에서 아무런 방패가 되지 못함.
ㅇ (제목의 반어) ‘목가’라는 말은 평온하고 아름다운 삶을 떠올리게 하지만, 영화는 그 평온함이 사실 얼마나 얇은 껍질이었는지를 보여 줌.

나. 부모와 자식의 단절
ㅇ (사랑과 이해의 차이) 스위드는 딸을 사랑하지만, 딸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는 끝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
ㅇ (부모의 한계) 부모가 아무리 애써도 자식의 생각과 선택을 모두 붙잡을 수는 없음.
ㅇ (가장 큰 비극) 이 영화의 고통은 자식이 잘못했다는 사실보다, 부모가 그 잘못을 막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 평생 끌려간다는 데 있음.

다. 시대가 가정에 남긴 상처
ㅇ (사회 혼란의 침투) 베트남전, 반전운동, 급진주의, 폭력의 분위기는 거리와 정치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한 가정의 식탁까지 들어옴.
ㅇ (가정의 붕괴) 스위드의 집은 개인적 불행 때문에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 전체의 균열 속에서 함께 무너짐.
ㅇ (남겨진 질문) 영화는 한 개인이 시대의 혼란을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묻게 함.

5. 인상 깊은 장면과 기억에 남는 요소

가. 평온한 가정의 초반부
ㅇ (겉보기의 안정) 영화 초반 스위드의 가정은 미국식 성공의 완성처럼 보임.
ㅇ (불안의 씨앗) 그러나 메리의 말더듬과 불안한 표정, 부모와의 어긋남은 이미 그 평온함 안에 균열이 있음을 보여 줌.

나. 우체국 폭파 사건 이후
ㅇ (한순간의 붕괴) 우체국 폭파 사건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스위드 가족의 삶을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는 사건임.
ㅇ (아버지의 집착) 스위드는 딸을 찾는 일을 멈추지 못하고, 그 집착은 사랑이면서 동시에 자기 삶을 계속 무너뜨리는 힘으로 작용함.

다. 메리를 다시 만나는 장면
ㅇ (돌아오지 않는 딸) 스위드가 다시 만난 메리는 더 이상 그가 기억하던 딸이 아님.
ㅇ (구원의 실패) 아버지는 딸을 집으로 데려오고 싶어 하지만, 딸은 이미 가정의 품으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음.
ㅇ (가장 아픈 대목) 이 장면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도, 자식의 삶을 대신 돌려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줌.

6. 인상 깊은 부분과 생각

가. 제목이 주는 씁쓸함
ㅇ (목가의 의미) ‘Pastoral’은 전원의 한가롭고 목가적인 삶을 떠올리게 하는 말임.
ㅇ (영화 속 반전) 그러나 영화 속 미국의 목가는 평온한 전원이 아니라, 겉만 번듯하고 속은 무너져 가는 미국 중산층의 풍경임.
ㅇ (감상의 핵심) 그래서 이 제목은 아름다운 삶의 노래가 아니라, 이미 깨져버린 삶에 붙은 씁쓸한 이름처럼 다가옴.

나. 자녀의 일탈과 부모의 무력함
ㅇ (부모의 한계) 스위드는 딸을 사랑하지만, 딸의 분노와 선택을 끝내 통제하지 못함.
ㅇ (폐가망신의 비극) 한 사람의 극단적 선택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부모와 가족 전체를 무너뜨림.
ㅇ (인물의 비극성) 스위드가 악한 아버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의 몰락은 더 큰 씁쓸함을 남김.

다. 영화의 아쉬움
ㅇ (원작의 무게) 필립 로스 원작은 인물의 내면과 시대적 맥락이 두터운 작품이지만, 영화는 그 무게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함.
ㅇ (전개의 압축) 가족의 붕괴와 시대의 혼란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일부 장면은 설명을 충분히 쌓지 못함.
ㅇ (그래도 남는 점) 그럼에도 영화는 스위드라는 인물이 겪는 상실과 무력감을 분명하게 남김.

7. 종합 평가 및 결론

가. 종합 평가
ㅇ (작품의 성격) 「미국의 목가」는 완벽해 보였던 한 남자의 삶이 딸의 선택과 시대의 혼란 속에서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임.
ㅇ (작품의 강점) 영화는 미국식 성공의 겉모습과 그 안쪽의 균열을 한 가족의 비극으로 보여 줌.
ㅇ (작품의 한계) 다만 영화는 원작의 깊이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전개도 다소 압축적으로 진행함.

나. 결론, 소회
ㅇ (핵심 인상) 이 영화는 겉으로는 자식을 잘못 둔 아버지의 비극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모의 사랑과 중산층의 안정, 미국의 꿈이 모두 흔들리는 이야기임.
ㅇ (남겨진 생각) 성실하게 살고, 가정을 지키고, 자식을 사랑해도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영화는 꽤 씁쓸함을 남김.
ㅇ (제목의 의미) ‘미국의 목가’라는 제목은 평온한 삶의 노래가 아니라, 평온하다고 믿었던 삶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드러내는 반어적 제목임.
ㅇ (한줄 정리) 「미국의 목가」는 좋은 아버지의 성실한 삶도 자식의 극단적 선택과 시대의 혼란 앞에서는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씁쓸한 가족 비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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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송옥은 오수지에게 제니를 받아 치마속에 감추었다가 생즙을 내어 몰래 대화여에게 먹였다. 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으나대화의 광증이 나을 기미가 없는데다 내란으로 궁성 안팎이 어지러워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이용했다. 대화여의 사수증세는 많이나아지고 있었다.

"전하, 사직이 흔들렸으나 도처에서 충신들이 들고 일어나 천지가 호응하고 있사옵니다. 머지않아 전하께서 사직을 바로잡고 천하를다스릴 것이옵니다. 지금 고통을견디지 못하면 만백성은 통곡하옵니다."나송옥이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애원했다.

대화여는 배고픈 아이가 어미 품을 더듬듯 나송옥의 저고리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몽실한 젖가슴을 쥐고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나송옥은 고름을 풀어 대화여의 입에젖꼭지를 물려주었다. 대화여는 허기 들린어린애처럼 허겁지겁 빨았다. 그때 밖에서인기척이들렸다. 나송옥은 재빠르게 저고리를 여몄다.

그러나 무명선사와 신사랑이 반대했다."중경 백성도 우리 백성이요, 도성 백성도 우리 백성이옵니다. 싸워 이기려면 백성을 죽여야하지만, 싸우지 않고 이기면 백성을 아낄 수 있사옵니다. 전하께서 첩을내려 대상의를 설득하옵소서."

"전하, 예부터 진정한 승자는 화적위우라 하여, 적을 감동시켜 동무로 만든다고했사옵니다. 대상의도 천심이 변하는걸 알것이옵니다."

7월초나흘, 대숭린의 군사가 동경성 백리 지경까지 육박하여 행영을 세우고 군진을 펼쳤다. 상경성을 지키던 고기경도 동경성북쪽에 진을 치고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원한에 쌓인 장수들과 유배지에서 필사의 탈출을 한 신하들은, 도성을 공격하여역적대원의를 주살하고 사직을 되찾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장군은 들으시오. 우리가 한을 품고공격하면, 도성에 있는 10만 백성이 크게다칩니다. 조금 더 기다리면서 현책을 찾는게 좋겠소.
그러나 북방의 흑수군이 우리지경을 범했으니 백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정벌하는 것이 무릇 장수의 도리가 아니겠소."대숭린은분분한 의견을 다스리고 상경용천부도독 고기경에게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진병하라 명했다.

선덕조는 이내 뜻을 알아듣고 스승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의붓아비를 살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지만, 의붓아비가 깨어나서 죄없는 백성들을 죽일 게 뻔하면 어찌 살리겠나이까. 차라리 죄 없는 자식을 살리겠습니다."난석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손에 천하의운명이 걸렸다. 때가 되면 너도 목숨을 바쳐 대륜을 지킨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소리는 바람이 들어도 아니 된다. 알겠느냐?"
"하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소첩도 반신반의했사옵니다. 그런데 좌우를 둘러보니 사태가 심상찮음을 알았사옵니다. 황궁과 조정을 살펴보면 모두 고잉의심복들이 둘러싸고 있사옵니다. 시위든금군이든 칼을 쥔 장수들은 거개가 고씨들이옵니다. 내시감 장국선이 병들어 눕고 고잉의일가 고맹극이 폐하를 보필하는 것도유심히 살펴보시옵소서."

그러나 고잉을 잡으러 갔던 대수간은 머리 없는 귀신이 되어, 고잉이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도성을 탈출했다는 급보와 함께돌아왔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대원의는 충격에 휩싸였다.그때 황궁을 포위한 반란군의 함성이 밤하늘에 울려 퍼지면서 무수한횃불이 타올라 대낮처럼 밝아졌다. 시위장수 대한무가피를 흘리며 침궁 앞에 쓰러졌다. 대원의는칼을 뽑아 들고 뒷문으로 도망쳤다.
그러나기다렸다는 듯 앞쪽에서 일시에 횃불이 올랐다. 불빛 속에서 여태껏 미친 줄 알았던대화여가 장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성큼나섰다. 그는 어느새 색깔 고운 용포를 입고있었다.

대원의는 두 눈이 금세 충혈되어 좌우를훑어보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혼자였다.대원의를 하늘처럼 섬기던 신하들은 모두도망가고달랑 혼자서 칼을 치켜들고 있었다. 활을 든 군사들이 그를 에워쌌고, 창검을 든 군사들도 겹겹이 대열을 지어 대원의를 노려보았다.
"역적 대원의는 칼을 내려놓고 꿇어 엎드려라!"

대사루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대원의가 그 경황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는 하늘의 자손이니 오직 하늘에게만 무릎을꿇어야 하옵니다."대원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천손은 함부로 승하할 수 없사옵니다.더구나 역도들 손에 용체를 손상해서는 아니되옵니다. 첩에게 천명을 맡기소서. 폐하께서는 거룩하고 당당히 극락에 오르셔야 하옵니다."대원의가 칼을 내렸다. 근엄한 지존의낯빛이 아니었다. 겁에 질린 얼굴도 아니었다. 모든 걸 체념한 사람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너에게 짐의 천명을 맡기노라."대사루가대원의 앞에 절을 올렸다."후생에서는 천추만세까지 섬기겠사옵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옵소서."

대사루는 칼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한순간에 허공을 갈랐다. 황제 대원의가 무너지듯 쓰러졌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대사루는 온몸에 튀긴 피를 바라보더니 보검을던지고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제가슴을깊게 찔렀다.

대화여는 세 황자 대숭린, 대청윤, 대성진이 옹립하여 용상에 올랐다. 때는 계유(793) 년 칠월 열사흘이었다. 연호를 중흥으로 하니이는 선제 광성문황제 때 연호인대흥을 이어받겠다는 뜻이었다.

"폐하, 역적 대원의가 사직을 흔들고 정사를 망쳐 조정의 체통이 무너졌사옵니다.반복무상한 흑수가 지경을 범해 외환을 수습하지못했사옵니다. 조정의 체통을 바로잡고 국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상벌이분명해야 하옵니다. 그래야만 충신은 번성하고 역신은준동하지 못하옵니다. 삼족을멸하여 후세에 규범을 삼으시옵소서."공신 박사성이 국기를 바로잡기 위해 대원의에게 충성했던역신들을 모두 징치하자고 주품했다.

"자고로 해불양수라 하여, 바다는 물을 뿌리치지 않는다 했사옵니다. 간난신고를 겪으셨으나 천위에 오르셨으니 바다처럼 모두 끌어안으셔야 하옵니다. 지금은 우리 지경을 범한 흑수를 정벌하는게 급하고 죄 지은 자를 널리 사면하여 폐하의 어짊이 천하를 적셔야 하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신사랑은 박사성의 의견과는 달리 널리 해량할 것을 간했다.

"폐하, 감히 아뢰옵니다. 대원의 같은 역적이 준동한 것은 대흥지치를 이루셨던 선제께옵서 말년에 이르러 정사를 그르치고,충신을 멀리하고 간신을 중용했으며, 황음무치하여 천심을 거슬렸던 후과였사옵니다. 역적과 간신에게만 죄를 묻는다면 과연 하늘의 견책이라고 할 수 있겠사옵니까? 폐하께서는 하늘처럼 높은 용좌에 계시어 낮은 자리에 있는 자들이 감히 바른 말을 아뢰기 어렵사옵니다. 대신으로부터 초야의 백성에게까지 구언하옵소서."
신사랑은 갓 제위에 오른 황제 대화여에게 겸손하게 구언을 청하라고 직간했다

"그러나 대원의를 따랐던 심복과 간신들은 부화방탕했사오니 백성의 고혈을 착취한 죄까지 사해주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온당치 않게 챙긴 재물을 적몰하여 관고를 채우시옵소서."
"경이 짐의 마음을 편안케 하도다. 선제들께서 신씨 가문을 스승으로 모신 까닭을비로소 알았도다."

"자고로 둔천배정이라 하여 자연의 도리를 벗어날 수 없으며 사람으로 태어나면 천명을 따라야 하옵니다. 우연히 세상에 태어난 것은 마침 태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고, 필연으로 세상을 뜨는 것은 하직할 차례가 되었기 때문이옵니다. 때를 조용히 받아들여 차례를 따르는 것은 군자의 도리이옵니다. 성불하신 석가모니도 열반에 드시지않았사옵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정녕 아니었다.병이 깊어 결코 오래 살 수 없음을 알려주니 어찌 침통하지 않겠는가. 하늘이 내린생사의 끄나풀에 매달리지 말라는 충언이었다.

정사가 밝아진 탓인지, 상경용천부도독고기경과 대장군 사마달, 진태평이 거느린군사들이 연합하여 회원부를 회복하고 흑수를 토평했다는 기쁜 소식이 도성으로 날아들었다. 대원의에게 굴종했던 회원부, 동평부, 철리부의 도독을 비롯한 장졸들이 새황제에게 충성을 맹약하고, 죄를 면하기 위해 용감하게 흑수 말갈을 공격한 덕이었다.
흑수 토벌군은 흑수 대수령 낙진몽의 동생 낙개몽과 수령 골타를 포함하여 포로 천명을 도성으로 압송하는 전과를 올렸다. 올가와 낙개몽은 매년 조공을 바치고, 아들을질자로 보내기로 맹약했다.

흔들리는 수레에 누워 먼 길을 이동하는것은 간난신고였다. 황제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는 태사 신사랑과 태의 난숙공의 지극정성이 아니었으면, 어가행렬은 벌써 여러 번 멈추었을 것이다. 대소신료와 황실은먼저 상경에 입궁하여 황제를 기다렸기에시위하는 장졸들과 내시, 궁녀, 근신들만어가를 따랐다.

모질고도 질긴 장마가 걷히고 따가운 햇살이 산하를 휘감아 언제 그랬냐 싶게 무덥던 날, 황제 대화여는 숨을 거두었다. 갑술(794)년 7월 초여드레 새벽녘이니 재위 일년도 채우지 못했다. 대화여는 만조백관이 간곡히 간언하고 진신소를 올려 태자 책봉을 간했지만 끝내 책봉하지 않더니, 몸소닦아 쓴 신한 한 통을 남기고 붕어했다. 유조이자 계위를 선포한 신한에서 대화여는뜻밖에 후사를 숙부이자 선제 대흠무의 작은아들 대숭린에게 맡겼다.

발해 제6대 황제로 등극한 대숭린은, 연호를 정력으로 하고 선제 대화여의 시호를성황제로, 묘호를 인종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한번 모질게 흔들린 사직은 쉽게 안돈되지 못했다. 당연히 황위를 물려받을 줄 알았던 대화여의 장자 대선해는 칭병한 채 즉위식에도 나오지 않았다.

이 깊지 않았으면 장자에게 계위했겠지만, 등극 초기를 빼곤 줄곧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바람에 대숭린이 섭정을 했다.
황제 대숭린은 나라의 중추인 대내상 고건을 파직하여 태위를 제수하고, 선제가 스승으로 섬겼던 태사 신사랑이 황제 앞에서거침없이 논힐한다 하여 직을 파했다. 국사무명선사는 지나치게 정사에 개입한다 하여 아예 국사의 관작을 없앴다. 무명선사를비롯한 신사랑 형제와 난씨 일가, 고원을비롯한 옛 고구려 왕족들이 아예 도성을 떠나자 민심은 또 한번 출렁거렸다.

황제의 칙지가 지엄해서 관작을 내리면감히 거역할 자가 없으리라 여겼으나, 강직한 선비들은 관작을 지푸라기처럼 여기고사직상소를 올린 뒤 하나둘 도성을 빠져나갔다.

"폐하, 신이 듣건대 산장호수의 노들섬에 천하 현승 운문선사가 있어 신통력이 대단하다 하옵니다. 이번 사냥에는 뱃놀이를겸하여 노들섬으로 행차하옵소서."

운문선사는 대숭린이 반역괴수로낙인 찍혀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끝내 천하를 다스릴 거라고 귀띔했다. 그때만 해도믿기지 않는 얘기였다. 손자인 대화여를 태자로 책봉했을 뿐만 아니라 한왕 대원의가섭정하다시피 할 때였다.

대숭린이 국사였던 무명을 배척한 것은그가 육통했기 때문이었다. 육통이란, 상대의 속마음을 한눈에 읽어내는 타심통, 사람의 전생을 알고 현생을 맞추는 숙명통, 앉은 자리에서 9만리 밖을 훤히 볼 수 있는천안통, 천계 소리를 알아듣는 천이통, 천리 길을 한나절이면 걸어간다는 축지술인신족통, 사람의 몸 밖으로 무엇이든 새어나가지 않는 경지를 이루어 땀조차 흘리지 않는다는 누진통을 말했다.

대숭린이 대선해에게 황위를 빼앗기지않으려고 섭정을 하며 천심이 모아지기를기다릴 때, 무명은 모질게 그를 꾸짖었다.황위에 오른 것이 겉으로는 순리였으나 속으로는 순리가 아니라는 걸 지금은 세상이다 알고 있었다. 자손이 있는 대화여가 숙부에게 황위를 물려준 것 때문에 아직도 민심이 흉흉했다.

운문선사는 대숭린이 반역괴수로낙인 찍혀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끝내 천하를 다스릴 거라고 귀띔했다. 그때만 해도믿기지 않는얘기였다. 손자인 대화여를 태자로 책봉했을 뿐만 아니라 한왕 대원의가섭정하다시피 할 때였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문이 열리고 백발이 성성한 노승이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와황제 앞에 합장했다. "폐하께서 어찌 이리 누추한곳을 찾으셨나이까?" "태평성대를 이룰 현책을 구하고자 먼길을 마다하지 않았소."고승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은 발해 황실의법도였다.

"늘 이렇게 드시오?"대숭린이 궁금한 듯 물었다."좁쌀 한 알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늘과땅과 구름의 수고가 있어야 하며,
농부가봄부터 가을까지 모질게 고생해야 하나이다. 그런 수고를 생각하고 삼키면 천하를삼키는 것이니, 어찌 배가 부르지않겠나이까? 먹고 입고 자는 것으로 존귀한 척하는 사람은 결코 군자가 아니고 지존은 더더욱 아니옵니다."

"황자들께서 갇혀 산 세월이 오래되어식탐이 생겨 너무 많이 먹어 살이 찌고 몸이 무거우니 무예를 게을리 하고 책을 멀리하나이다.
장차 황위를 이어야 할 황사로손색이 많나이다. 군왕이 주지육림에 빠지면 스스로 천명을 어긴 것이고, 백성은 유리걸식하는 고통을겪게 되나이다."황제와 자손들까지 싸잡아 나무라는 운문의 눈초리는 의외로 따뜻했다.

"신사랑 같은 스승을 내쫓았으니 누가황자들을 매섭게 가르쳐 지존을 만들겠나이까? 무명선사 같은 스승을 버린 폐하께서는 어찌 저너른 천하를 살피겠나이까? 고건과 고원 같은 인재를 내친 조정에서 감히 바른 말로 논힐할 대소신료가 있겠나이까? 난숙공이나 난강같은 인물을 버렸으니 병든 백성은 누가 살리고 천지를 두드릴 양마를 어찌 기를 수 있겠나이까? "대숭린은 가시가 하나씩 몸에박히는 것같았다.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없었다. 운문에게 꼭 얻어가야 할 현책이있었다.

"훌륭한 황제가 용상에 있으면 백성들은황제가 있는 것만 아나이다. 그보다 못한황제면 백성들은 친근하게 여기고 따르나이다.
그보다 못한 황제면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그보다 더 못한 황제면 백성들이 업신여기나이다. 백성들이 폐하를 어찌생각하겠나이까?"

이정기와 이납이 죽었지만, 제나라의 3대 왕 이사고는 여전히 치청을 지배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유민들이 세운 제나라는 당나라의턱 밑에서 당나라의 목을 죄고 있었다.제왕 이사고를 도와 당조와 맞겨루게해야 하나이다. 제나라가 강성해지는 것만큼 발해는안전하나이다. 산동 땅은 당나라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침공할 때 군사를 집결시켜 비사성과 평양성을 공격한요충지였나이다. 선조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양마와 병장기와 곡식을 주고 체주 합타성에서 나는 소금과 철,금, 은, 비단을받아오면 되옵니다."

환궁한 대숭린은 조서를 내려 운문의 뜻을 좇아 각종 제도를 고치고 농경과 수렵장려하며 군적을 정비하고 둔전과 군사 초모를재결했다. 여병을 널리 초모하고 폐황대원의를 주살하려 했던 장효채를 여군 장수로 임명했다.

그러나 대숭린은 끝내 무명, 신사랑 형제, 난씨 일가, 고씨 일가는 중용하지 않았다.세상에 두려울 게 없지만 내심 황제에게할 말을거침없이 간하는 자들이 두려웠다.하늘은 입이 없어 두렵지 않았으나, 그들은당장에 목청을 높이고 글을 닦으니 그 소리는 천둥 같고우레 같았다.

은지첨의 왼쪽 팔뚝에새겨진 글자는 이러했다.짐이 천추만세를 다하면 당제 이괄을 함께 순장하겠으니 몸을 정결히 하고기다려라. 그리고는 뱃심 좋은 밀아고를 책문사신으로 삼아 은지첨을 앞세워 당나라로 보냈다.사신 밀아고는 부러 바다를 건너등주를경유하여 제왕 이사고를 알현하고 당나라가 보낸 국서 사본을 전했다. 전후사정을들은 이사고는 발해가 당나라를공격하면 기꺼이 해제동맹을 맺겠다고 약조했다.

발해 황제는 밀아고를 책문사신 겸 책봉사로 삼아 당나라 황제 이괄에게 아속을 내려 중원왕으로 봉했다. 천하 지존이요, 하늘의자손이라 하여 천자로 불리는 이괄을한낱 중원왕으로 책봉했으니 어찌 놀라지않았겠는가."기필코 요절을 내리라!"이괄의 분노는대전을 뒤흔들었다.

"폐하, 수나라와 당나라가 백만 대군을 일으켰지만, 고구려에 패해 수나라는 망했고, 당 태종은 그 후과로 천수를누리지못했사옵니다. 발해는 고구려보다 강역이네 배나 넓고 정예한 군사들도 두 배나 되옵니다. 무황제 때 많지 않은 군사로산동반도를 삼키고 장성 지경까지 정복한 것을벌써 잊으셨사옵니까? 더구나 지금은 산동반도의 맹주와 발해가 동맹을 맺었사옵니다.
신을 죽이고 당나라 사직이 무너지는걸 보시겠사옵니까?"

이괄은 서둘러 각 번진에 선유사를 보내잘못을 시인하고, 모든 번진들을 훈구로서대하고 작위를 복작시킬 테니 지난날을 잊어달라는조서를 공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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