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 신이 감히 아뢰겠사옵니다. 당나라는 중화사관과 춘추필법으로 남의 나라역사를 왜곡하는 못된 습성이 있사옵니다.고구려후손이 세운 발해를 말갈인이 세웠다 기록하고, 당나라와 발해가 주고받은 물선도 받은 것은 조공이고 준 것은 물선이라고우기옵니다. 또한 발해에 보내는 국서에는 ‘황제께 올립니다‘라고 쓰지만, 당나라국서고에 보관하는 문서에는 ‘발해왕에게보내노라’라고 기록하옵니다."
"신이 돌아간 뒤 당나라 사관들은, 밀아고가 입조하여 조공을 받쳤다고 기록할 것이며 발해의 왕 숭린을 책봉했다고 쓸 것이옵니다. 사신 은지첨의 팔뚝에 묵형이 내리고 천자를 논힐한 것은 일언반구도 기록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더구나 폐하의 근신고장무를속죄사신으로 보낸 것을 책봉사라고 기록할 테니 어찌 간계라 하지 않겠사옵니까?"
황제 대숭린은 당제 이괄의 진사를 받아들이고 고장무에게 영원장군을 제수했다.그리고 진사품으로 보낸 한족 미녀 30명중 유난히눈에 띄는 세 명을 궁중에 두고, 나머지는 근신들에게 하사했다.
초여름부터 하루이틀거리로 내리던 비는 한여름이 되자 대엿새씩 그치지 않더니, 급기야 밤낮없이 내렸다. 비는 상경, 동경, 중경, 동모산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이재민들은 관가로 몰려들어 먹고 입을것을 달라고 아우성쳤다. 도성을 수비하는금군들이 창검을 들고 백성들을 쫓으려 했지만, 차라리 죽이라고 악을 썼다. 젖은 봇짐을 인 노파, 등짐 진 초췌한 늙은이, 빈지게를 달랑 걸멘 장정, 올망졸망한 자식들이 핏기 없는어미의 치맛자락을 잡고 비바람 속에서 떨고 있는 모습은 전장보다 나을게 없었다.
북두칠성 북쪽에 있는 별인 자미는 황제의운명을 관장했다. 자미를 객성이나 요성이침범하면 황위를 찬탈하려는 시도가 있거나역적의 무리가 준동한다 했다.
"폐하, 어리석은 백성들의 원망은 물길과 같아서 물꼬를 터주지 않으면 끝내 넘쳐둑을 무너뜨리옵니다."최벽의 말에 대숭린은고개를 끄덕였다."어찌 물꼬를 터주어야 하는고?" "중정대에서 백관을 감찰하면, 관고를열어 백성을 구휼할 때 사욕을 채운 자, 공정하지 않은 자, 눈속임한 자가 드러날 것이옵니다. 폐하를 속인 기군망상일 뿐 아니라 국기를 흔든 것이요, 백성을 수탈한죄인이옵니다. 이런 간신들을 징치한 뒤에 관고를 열어 성덕을 베푸시면 백성들이 흠복하옵니다."
그럭저럭 해를 넘기고 이듬해 봄이 되었다. 복은 쌍으로 아니 오고, 화는 홀로 다니지 않는다고 했던가. 지난 여름에는 물이넘쳐곤궁했고 이젠 봄 가뭄이 들어 차라리지난 장맛비가 그리운 형편이었다. 남쪽의신라에서도 기근이 들고 역질이 퍼져 민심이흉흉하다고 했다.
지난해 홍수에 가뭄까지 겹치니 굶주린백성들의 원성은 자자했다. 세세년년 마를일 없이 넘쳐 흐르던 궁성 밖 용천도 급격히 줄었다. 도성 안팎의 크고 작은 우물이모두 말라 너나없이 용천을 기웃거린 탓이었다. 모두가 그곳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데야 아무리하늘이 낸 용천이라고 한들버틸재간이 없었다.황궁에도 맛좋은 우물이 여러 개 있었지만, 황제의 수라상에 오르거나 황제가음용하는 물은 언제나 용천수였다. 용천을 발견한 이래 그 샘을 지극정성으로 아꼈다.상경을 용천부라 부른 것도 맑은 샘물이하염없이 솟아올라 마르지 않아 이름 지은 것이다.
좌윤 신대방은 고개를 저었으나, 좌상 장두각을 찾아가 전후사정을 늘어놓았다. 장두각은 고심 끝에 남대문 밖 용천 주변에군사를풀어 백성들의 접근을 막았다
목마른 백성들의 분노는 하루가 다르게커졌다. 처음에는 물동이를 들고 떼 지어소리지르다가 차츰 지게 작대기나 몽둥이를 들더니, 끝내는 낫, 삽, 쇠스랑을 들고무리지어 덤볐다.많은 백성들이 잡혀가고 매질을 당했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점점 수효가•불어났다. 백성들의 분노가 치솟을 무렵 아우성치는 무리와 군사들이 뒤엉켜 큰 싸움판이 벌어졌다.
삽시에 벌어진 참변이어서 미처 막을 길이 없었다. 황급히 금군과 시위 군사들이달려들어 분노한 백성들을 마구 베고 찔러겨우사태를 수습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황궁까지 포위한 무리의 주모자는 놀랍게도 지난해 죄 없이 효수당한 오감조의 동생오낙조였다. 조정공론이 분분한 것은 농구를 든 백성들에게 도성이 뚫리고 황궁까지 포위당했기 때문이었다.
"기우하고 기도했는데도 하늘이 감응치않고 귀신이 대답하지 않은 것은 폐하께서무죄한 자를 참하였거나, 억울한 자의 통곡이하늘에 닿았거나 군자를 멀리하고 소인을 가까이 했거나, 신하의 직언을 멀리했거나, 폐하께서 하늘에 순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옵니다. 하늘은 스스로 재변을 일으키지 않사옵니다." 대청윤은 황제의 심기를 아랑곳하지 않고입을 열었다. "폐하, 용천을 철벽으로 수비하는 군사들을 물리치고 백성들에게 물을 나누어•주옵소서. 물과 햇빛과 바람은 천지조화로 이루어졌기에 하늘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
폐하께서 진실로 백성들의 괴로움을 알고 하늘의 뜻을 좇는다면 천지의 기운이 화평해져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오곡이 풍성해질것이옵니다. 백성들의 살림이 넉넉해져 안정되면 널리 교화가 행해져 풍속이 후해지고, 옥에는 죄인이 없고 도둑이 사라지며, 간신과•역신이 발 디딜 곳 없어 태평성대를 누릴 것이옵니다."대숭린은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어탁을내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감히짐을 능멸하다니 용서할 수 없도다. 역심을 품었으니 치죄하겠다."
민심은 점점 더 흉흉해졌다. 배고픈 백성들은 무리지어 다니면서 도적이 되거나 강도질을 했다. 관가에 불을 지르고 관리들의집을습격하는 일도 생겼다. 기찰을 강화하고 도성 안팎의 경계를 엄중히 했지만, 한번 흐트러진 민심을 되돌릴 묘안이 없었다.할 수 없이야간에 통행을 금지하는 인정을앞당겼다. 도성 밖에서는 무장하고 떼 지어다니며 약탈을 일삼는 비적들이 나날이 늘어갔다.
황제의 눈 밖에 난 대청윤이 당분간 천문령에 들어가 근신하겠다는 상소를 아무의심 없이 윤허했는데, 어느 틈에 막힐부의군사를장악하여 충역을 뛰어넘었다는 보고였다. 대숭린은 반역의 싹을 진작 자르지못한 것이 한스러웠지만, 군사를 동원하기도 쉽지않은 정황이었다.
속말수가 마르지 않았고 거란과 말갈이 대청윤에게 복속했으며 막힐부도독 고천경을 따르는 무리가 제법 많았다. 뜬소문에는부여부도독 장국등과 장령부도독 양만신도 역심을 품었다 했다.
무자 백난별은 소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튼 채 고승명을 맞았다. 여든아홉 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흰 머리칼과 흰 수염만아니라면 늙은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눈빛과 살결이 촉촉이 빛났다.
"입을 열면 귀한 집 자손이 목숨을 잃나니......."차마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투였다."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그렇기는 하오만 귀한 집 자손에 남매여야 하고, 인물과 자색이며 학문과 무술이남에게 뒤지면 안 되니 어디서 구한단 말이오?"
"동남동녀도 기껍게 몸을 바쳐야 하지만, 부모 역시 흔쾌히 자식을 내놓지 않고 슬퍼하면 용신이 제물을 거부하오."백난별이힐책하는 투로 말하자, 이내 고승명은 한숨을 길게 토했다. 백만금을 준다고 한들 어느 누가 기꺼이 자식을 내놓으며, 극락왕생한다한들 어느 누가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는가.
지난해 장마도 용신의소행이고 금년 가뭄도 용신의 소행이 분명하니 어찌 두렵지 않으리오. 몇 번이나 황상께 주품해달라 해도 조정중신들이 믿지않았소이다. 그 죄를 어찌 받으려고
그로부터 닷새 만에 고승명을 찾아온 것은 놀랍게도 신사문이었다. 신사문 뒤에는가히 선남선녀라 할 수 있는 남매가 고운모습으로서 있었다. 고승명은 대숭린이 등극하고 신씨 일가를 매몰차게 내쫓았기 때문에 그가 애지중지하는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오자 무척놀랐다.고승명은 자리에 엎드려 예를 갖추었다.황제의 스승이었던 태사 신사랑의 아우요,한때 의부경으로 문무백관의 존경을받던인물이었다. 고승명도 신사문에게 사사 받아 학문을 키웠기에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식을 잃으면 낳을 수 있지만, 만백성을 잃으면 나라가 무슨 소용이겠소. 백 년만의 대가뭄에 온 백성이 굶주림과 역병으로신음하거늘 어찌 내 자식만 귀하다 하리오. 또한 부모가 자식을 바치고 호의호식하면 죄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고승명은 급히 황제에게 고하고, 신사문의 아들 신달진과 딸 신달지를 데리고 홀한해로 달려갔다. 제단을 마련하는 동안 두아이는평평한 바위 위에 올라 기도를 했다
백난별이 곁에 앉아 조용히 물었다. "두렵지 않은가?" 신달진이 곱게 웃었다.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생각하기로는 남보다먼저 죽는 것 같지만, 세상에는 배내옷도 못 입어보고 죽는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래 살아 뜻을 거스르고도를 얻지 못하는 것보다•보람되게 저를바칠 수 있으면 천복이 아니겠습니까." 백난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남매의 손을 맞잡았다.
"나라에서 동남동녀를 구한다는 방을 본아버님께서 아무 말씀하지 않으신 채 저희들에게 방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 길로 어머니와함께 절에 들어가 무명스님의 설법을 듣고 바로 참선에 들었습니다. 어젯밤깨달은 게 있어 저희 남매가 먼저 부모님과스님께 몸을바치기로 맹약했습니다.
소복한 사람들은 하루 종일 그 자리에서달싹하지 않았다. 신사문의 자녀들이 먼저쓰러져 그늘로 실려갔고, 끝내 신사문과 백난별도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쓰러진 사람들은 모두 온몸이 불덩어리 같았다. 입을벌려 물을 먹이고 몸에 끼얹어도 보았지만여전히혼수상태였다.
그날 밤, 휘영청 둥근달이 창공에 높이걸렸다. 정성껏 제사를 드렸건만 하늘은 요지부동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홀연 비를머금은 매지구름이 남쪽으로부터몰려들기 시작했다. 바람결이 심상치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매지구름은 강한 바람을 타고밝은 달을 가렸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더니 금세 굵어졌다.
황제 대숭린은 급히 대신 양광태를 보내 신사문을 개국공에 봉하고 식읍 3백호를내리며 그의 형 신사랑을 다시 태사로 명했다. 그러나 신씨 일가는 벼슬과 식읍을거절한 채 종적을 감추었다.
대청윤에게도 대업의 꿈이 있다는 걸 진작 눈치채지 못한게 한이었다."짐이 군사를 거느리고 친정하여 역적대청윤을 사로잡겠다. 그리하여 발해 강역에서 천추만세토록 모반의 씨를 말리겠노라."
"토평한 뒤에 쌓인 원한을 어찌 하려는고?" "지금은 속전속결해야 하옵니다. 전쟁이길어지면 양초와 군비를 조달하기 벅차옵니다. 말갈 군사가 초전에 무자비하게 도륙하면 반란군이 분열하고 군사들이 도망치게 되옵니다.!"
"개마성과 골태몽을 장수로 삼으면 역신들을 놀라게 할 것이옵니다."대숭린은 대장군 장객명에게 부월을 주어 군사를 거느리게하고, 말갈 출신 개마성과 골태몽을 장수로 삼아 토벌군을 편제했다. 이때 중신 감청학이 진언하고 나섰다.
그들은 따로 정진대를 운용하여 정면공격과 측후방공격을 감행했고, 적을 혼란케 한 뒤 사납게 도륙하여 겁에 질리게했다. 정진대를이끄는 장수 수율림은 본디 말갈 수령이었는데 적진에 뛰어들면, 항복한자뿐만 아니라 어린애부터 늙은이까지 닥치는 대로 죽이는장수였다.
상경 일대에는 대청윤을 따르는 자들이의외로 많았다. 대숭린과 함께 상경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인심을 닦아 두었기 때문이었다.
"문은 정이요, 무는 동이어서 나라가 바르게 서 있으려면 문무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나는 발해 주변에 저 너른 당나라땅과 북방의 땅과 신라가 있는 한 무관으로서 칼을 버릴 수 없습니다."
네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천기를 받들 것이다."대도진경은 아버지 뜻을 끝내 거부했다.진노한 대도무인은 그 길로 몸져누웠다. 군사들이 대도무인의 거처를 급습한 것은 이튿날 새벽이었다. 끌려가 모진 국문을 당했으나 대도무인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대청윤이 이끄는 반란군은 기세를 올리지 못하고 연신 패퇴하여 부여부를버리고 막힐부로 도주했다. 가뭄이 용천부와 현덕부, 용원부 북쪽과 솔빈부, 동평부,철리부까지 번져 민심이 흉흉할 때는 기세좋게 승전고를 울렸으나, 가뭄이 해소되자민심이 점차 등을돌렸기 때문이다. 게다가개마성과 골태몽이 거느린 말갈 군사들이무자비하게 공격하자 더욱 기가 꺾였다.
"천심이 이렇게 변덕스러울 줄 몰랐소이다. 더구나 효왕이 저리도 무능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효왕 대청윤을 부추겨 반란을일으켰던막힐부도독 고천경이 넋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포위당한 아밀지는 저항하지 않았다. 싸우면 몰살당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밀지는재빨리 대청윤의 목을 베어 고천경에게 바쳤다. 간교한 아밀지가 대청윤의 입을 막기위해 먼저 참살해 버린 것이다. 고천경은그 자리에서 아밀지의 목을 쳤다.
장객명은 고천경과 장국등을포박하여 도성으로 압송하고, 대청윤의 수급을 거두어 염장했다. 반역자의 말로를 보여주기 위해 수급을수습하여 소금에 절이라는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성으로 압송된 고천경과 장국등은 황제를 알현조차 하지 못하고 형장의이슬로 사라졌다.
이태 동안 홍수와 가뭄으로 민심이 흉흉한 것을 틈타 반역을 꾀했던 대청윤과 그일당은 참살당했고 반역의 깃대는 무참하게 꺾였다. 이듬해 을유(805)년 정월 열사흘에 이괄이 붕어했다. 며칠 뒤 정월 스무엿새, 중풍으로 거동조차 못하는 이송이 등극했다. 말도제대로 못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사람도못 알아볼 때가 많은 이송이 태극전에서 즉위식을 치렀다.
병술(806)년 윤 6월에는 산동반도 맹주이사고가 14년 동안 통치하던 제나라를 남기고 붕어했다. 아버지 이납과 할아버지 이정기와같은 병력이었다. 이사고에게는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대권은 이복동생 이사도에게 넘어갔다.
사신을 발해로 보내 당나라를 대적하는 군사동맹을 청했다. 발해의 조정공론이 분분했지만 대숭린은 결전을 각오하는 이사도와군사동맹을맺기로 했다. 그리고는 고화용과 고다불을연달아 일본에 보내 해본동맹을 요구했다
발해 황제 대숭린이 대사를 앞두고 급환으로 세상을 뜨니 기축(809)년 초여름이었다. 이에 대숭린의 장자 대원유가 황위를잇고선제의 시호를 강황제로, 묘호를 목종으로 하니 제위 기간은 15년이었다. 대원유는 연호를 영덕으로 선포하고 계위했다.
원유는 즉위할 때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단 위에 오를 만큼 비대했다. 게걸스런 식탐으로 몸무게가 무려 2백 근이나되었다. 일설에는 그의 생모 황태후 오귀담이 궁중 의관에게 처방을 잘못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대원유의 식탐은 끝이 없었다. 태자시절식탐을 저지하기 위해 황명으로 음식을 줄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엄한 아버지를 두려워해서 어머니의 편애에 매달려식탐에 빠지거나 궁녀들 치마 벗기는 일에이골이 났다.
대원유 등극하자마자 정사를 멀리한채 오태후의 섭정을 좇았다. 대원유의 아우대언의와 대명충도 대원유 못지않은 식탐으로 150근이 넘게 비대했다. 황제 대원유는 칙서를 내려 오태후의 섭정을 선포하고오태후의 오라버니 오작분을 만인지상인대내상에 명하고손아래 오라비 오작근에게 백관을 감찰하는 대중정을 제수했다. 또다른 오라비 오작촌은 군권을 장악하는 지부경으로 봉했다. 오태후의 심복들을 대신과 근신으로 삼으니 사직은 대씨로 이어졌으나 조정 대소사는 오씨의 수중에 들었다.
그녀 앞에 꿇어 엎드리기 싫어 사직상소를 낸 신하들 가운데 귀양 가지 않은 자가없었고, 섭정의 부당함을 상소한 사족들은모두참살당했다. 도성은 기찰이 삼엄하고인정이 당겨졌으며, 도성을 지키는 금군과황궁을 지키는 시위는 두 배로 늘어났다.사라졌던 10호연좌제도 되살아났으며 문황제 이래로 대우받던 문관보다 무관이 득세하게 되었다.
미사천은 오태후의 속셈을 꿰뚫어보는 심복이었다. 설사 그렇더라도 어찌 통천하겠느냐?"조정을 한손에 틀어쥐고 있지만 하늘과내통하지 않고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황위였다."마마, 태양의 다른 이름이 바로 오륜이옵니다.""오륜이라.......""고씨도한없이 높다하여 하늘을 뜻하고, 대씨도 한없이 크다 하여 하늘을 뜻하옵니다. 오씨도 곧 하늘을 뜻하옵니다."오태후는 준수한용모와 반듯한 몸매의 미사천을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내가 서궁을 버리고 동궁으로 옮긴 것만 가지고도 공론이 분분한데, 천심은 남자에게만 내리는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 "본디 세상의 주인은 여인이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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