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자키 쇼스케, 41세.
오늘 모인 미야가 요타로의 ‘제자‘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인물이다. 중세 유럽을 무대로 삼은 중후한 본격물이 특기인데, 워낙 집필이 느려 편집자들이 피하려는작가다.

돌아보니 스자키는 여전히 안쪽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검은 테 안경을 쓴 신경질적인 얼굴. 갈색 스웨터를 걸친 야윈 체격에 구부정한 등이 특징적이다. 그가 기요무라의 명연기에 크게 놀라는 모습을 떠올려보았지만 아무래도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우타야마는 오늘 모인 다섯 명 중에 성실하게 활동하는 문예비평가인 사메지마 도모오가 미야가키에게 가장 큰 신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둘이서 이 저택에 틀어박혀 미스터리 이야기로 날을 지새우며 여름 한철을 보냈다는 일화도 있다. 사메지마는 스자키보다 세 살 아래인 서른여덟 살이지만 미야가키와 알고 지낸 지는 가장오래되었다.

하지만 약속했던 4시에서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미야가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서인 이노 미쓰오도 나타나지 않았다.
"설마 이노 씨가 오지 않았을 리는 없을 텐데.......

"예를 들면 미야가키 선생님이 몸이 좋지 않다거나."
우타야마는 3개월 전 자기 건강을 ‘형편없다‘고 평하던 노작가의 어색한 웃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리고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이를 악문 듯한 말투로 그 사태를 전했다.
"미야가키 선생님께서 오늘 아침, 자살하셨습니다."

"십 몇 억 엔이라니, 만약에 그런 엄청난 재산을 둘러싸고 상속 다툼이라도 일어나면 그야말로 살인사건이 나는 건 문제도 아니겠네."

미야가키 상에 관해서는 전부터 우타야마도 들었다. 에도가와 란포가 스스로 자기 이름을 붙인 문학상을 만들었듯이(운영 주체는 당시의 일본탐정작가클럽이었지만기금은 란포가 기부했다) 미야가키 선생 또한 자기 이름을 그런 형태로 남기고 싶다고 거리낌없이 공언했다.

"뜻하지 않은 사태가 일어나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검토하느라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뜻하지 않은 사태?"

마른 체격에 중간 키, 짧게 깎은 머리에 윤곽이 뚜렷한 지적인 얼굴. 젊었을 때 흰 정장이라도 입었다면 ‘미청년‘처럼 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설 연휴 때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그때 느낌으로는 마음이 많이 약해지신 것 같더군요."

"원래는 당연히 바로 경찰에 신고해야겠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말씀하시는 뜻을 잘 모르겠는데요."
"그건...... 여기서 설명드리기가 좀 힘든 문제라서."

"그런 문제에 관해서는 절대로 착오가 없을 겁니다. 침실 침대에서 수면제를 많이 드신 모양입니다."
아아...... 하는 긴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우타야마는 이노에게 걸어가며 물었다.
"유서는?"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미야가키 선생님은 정말로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이때 초대받은 손님들 각자의 머릿속에는 과연 어떤 생각이 스쳐갔을까.

"만우절 놀이에는 이제 슬슬 식상할 때가 되었다니까요."
그 말에 실내의 긴장이 단숨에 풀어졌다. 기요무라는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뭐 그래도 모처럼 선생님이 꾸미신 계획을 무시하기도 난처하니 여기서 적당히......."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만우절 놀이에는 이제 슬슬 식상할 때가 되었다니까요."
그 말에 실내의 긴장이 단숨에 풀어졌다. 기요무라는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뭐 그래도 모처럼 선생님이 꾸미신 계획을 무시하기도 난처하니 여기서 적당히......."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잠깐만요. 분명히 맞는 말씀입니다. 경찰에 알려야 하죠. 하지만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매우 특수한 상황이라....... 그러니까, 돌아가신 미야가키 선생님께서 당분간경찰에 연락해서는 안 된다는 유언을 남기신 겁니다."

"하하, 하하하......"
이윽고 처음 소리를 낸 사람은 기요무라였다. 그는 문 앞에 선 이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테이블에 한 손을 짚고 일어섰다.
"안 속아요, 이노 씨. 그런 수법은 먹히지 않죠."
기요무라가 익살스러운 말투로 내뱉었다.

MINOSS.
새겨진 글자를 눈으로 더듬었다.
미노스.
명장名匠 다이달로스에게 명령을 내려 미궁을 만들게 한 크레타 왕의 이름이 제작자의 실수인지 로마자로 표기한 그 철자에는 S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불쑥 일어선 시마다는 손에 든 검은 물체를 테이블 위에 내던졌다.
"이거 접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기로 약속했는데."
두 개의 팔에 두 다리, 뾰족한 두 귀에 창처럼 생긴 꼬리, 등에는 날개 두 개가 달려 있는 그것은 검은 종이로 만든, 우타야마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이접기였다.

아리아드네.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미노스 왕의 딸이면서도 젊은 테세우스에게 반해, 괴물을 쓰러뜨리기 위해 미궁으로 들어가는 그에게 길을 찾을 때 쓸 실꾸리를 건네준 공주.......

가속도가 붙은 어둠이 더욱 짙어지는 미로 모양의 복도를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돌고...... 이윽고 목적지인 미야가키의 서재에 도착했다.
"구로에 다쓰오 선생님이십니다. 미야즈에 있는 N** 병원 내과부장님이신데 요 몇 달간 미야가키 선생님이 신세를 지셨습니다."

복도 폭은 1미터도 되지 않는다. 실내나 현관 계단 부분과는 달리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지 않아 적갈색 플라스틱 바닥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높은 천장은 복도 폭을 한 변으로 삼은 정사각형 유닛(철골과 유리로 이루어진 그 납작한 피라미드가 그것이다)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리는 푸른 색이 감도는 두툼한 무늬 유리인데, 그리로 스며드는 자연광은 이미 저녁 어둠에 젖어가고 있었다.
복도는 직선과 직각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복잡하게 얽혀, 저택 중앙부의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복도가 이 저택 명칭의 유래가 된 ‘미로‘를 만들어내는것이다.

이 ‘미궁‘ 주인의 너무도 갑작스러운 ‘자살‘.
‘이제 와서 장수 기록에 도전할 생각은 전혀 없네‘
석 달 전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던 미야가키.......
그때 이미 그 양반은 오늘 일을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이상하다.......
이노 미쓰오가 보여주는 기묘한 말과 행동은 무엇일까.

"아아...... 선생님."
후나오카가 제대로 소리 지르지도 못하고 중얼거렸다. 동시에 몇 명이 한숨과 가쁜 숨소리를 흘렸다.
어쩜 저렇게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떴을까?
하지만 선생님, 도대체 왜.......

이 저택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응접실 이름이 ‘미노타우로스‘이고, 방금 나온 넓은 홀은 ‘아리아드네‘라고 불린다. 이처럼 이 저택에 있는 열 몇 개의 방에는 각각 미노스 궁전의 에피소드와 관련 있는 신화 속 인물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오늘 예정되어 있던 파티 준비를 비롯한 이런저런 일 때문에 저는 그저께 밤부터 이 저택에 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묵을 방을 준비하기도 하고, 식료품이나 다른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나가기도 하느라 어제는 종일 이리저리 뛰어다녔지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과 차분하게 말씀을 나눌 시간도 없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분명히선생님의 태도가 약간 이상했습니다. 안색이 좋지 않고 말씀이 거의 없고...... 몸이 편치 않으신 거 아닌가, 내일 괜찮으실까, 저도 좀 걱정이 들었죠.

그토록 의사를 싫어하던 미야가키 선생이....... 우타야마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야가키의 건강 상태가 우타야마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느끼던 것보다 그토록 좋지 않았던 건가.

그토록 의사를 싫어하던 미야가키 선생이....... 우타야마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야가키의 건강 상태가 우타야마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느끼던 것보다 그토록 좋지 않았던 건가.

"지금이니까 말씀을 드려도 괜찮겠군요. 그러니까, 미야가키 씨는 폐에 심각한 병...... 암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병세가 상당히 진전되어 회복은 매우 어려운 상태였죠. 그런 사실을 본인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봉투 겉에는 ‘이노에게‘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글씨는 미야가키 선생님의 필적이 틀림없습니다. 안에 든 편지는 워드프로세서로 썼지만 끄트머리에 오늘 날짜와 서명이 선생님 필체로 적혀 있습니다."

입구에서 보아 정면 벽 쪽에는 특별 주문한 목제 랙에 설치된 AV 기기와 엄청난 양의 레코드 판과 CD, 비디오테이프 등이 꽂혀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화 마니아, 클래식 음악 마니아이기도 했던 미야가키가 자랑하는 컬렉션이다.

그리고 기상이 배출한 많은 신인작가 가운데 특히 내가 눈여겨보았던 인재가 바로 이번 ‘환갑 축하 모임‘에 초대한 자네들, 스자키, 기요무라, 후나오카, 하야시, 이네 명이지. 다만 이게 중요한 점인데, 내가 자네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에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해선 곤란하네. 그 정도야 자네들도 잘 알고 있을 테고.

"내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걸세. 당황하지 말기 바라네. 결코 바로 경찰에 알려서는 안 되네. 구로에 선생이 오실 테니 그분에게 증인이 되어달라고 하고, 서재 책상위에 있는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내용을 듣도록 하게. 내가 죽은 뒤에 바라는 모든 것이 거기 녹음되어 있네. 반드시 이 지시에 따라주기 바라네. 1987년 4월 1일 미야가키 요타로‘ 자, 여러분께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나라는 인간을 믿고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구로에 선생에게는 면목이 없지만 나는 완치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병과 싸우며 살고 싶지는 않네. 이미 수술하기는 어려운 상태이고, 그래도 수술을 한다면 그 뒤에는 방사선 치료니 항암제 투여니 해서 다소나마 연명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얼마 남지도 않은 삶에 매달리는 건 내 미의식에 어긋나는 일일세. 그래서...... 그래서 나는 예순 살 생일 아침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선택한 걸세. 사람이란 무슨 일이나 깔끔하게 처리해야지."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살인사건으로 하되, 작가 즉 자네들 자신을 그 피해자로 설정해야만 하네.

완성된 네 사람의 작품을 편집자인 우타야마와 평론가인 사메지마, 그리고 ‘마니아 대표‘로서 시마다, 이렇게 세 사람이 읽고 6일 정오까지 우열을 가릴 걸세. 그 결과가장 우수하다고 인정받은 작품을 쓴 작가에게 내 유산 상속권을 주려고 하네.

다섯째, 작품 주제에 관해서. 당연한 소리겠지만 자네들이 써야 하는 건 탐정소설일세. 심사를 맡은 쪽에서도 어디까지나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주기 바라네. 덧붙여, 작품 내용에 관해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겠네.

다섯째, 작품 주제에 관해서. 당연한 소리겠지만 자네들이 써야 하는 건 탐정소설일세. 심사를 맡은 쪽에서도 어디까지나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주기 바라네. 덧붙여, 작품 내용에 관해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겠네.

둘째. 닷새 동안 비서인 이노와 구로에 선생을 제외한 자네들은 원칙적으로 이 저택에서 한 걸음도 밖에 나가서는 안 되네. 자네들 가운데는 이런저런 일정이 잡혀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특히 바쁜 우타야마에게는 미안한데, 이번에는 힘들더라도 이쪽 사정에 따라주면 좋겠네.

셋째. 이 저택에 머무는 닷새 동안 유산 상속자 심사와 선발이 이루어질 것이네. 조금 전에 말한 대로 후보자는 네 명. 자네들 네 명은 이 기간 안에,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4월 5일 오후 10시를 기한으로 삼아 심사 대상이 될 소설을 한 편씩 써야 하네.

내 전 재산 가운데 반을 지금까지 공언한 대로 미야가키 상기금에 충당할 걸세. 그리고 나머지 반을 한 개인에게 물려주려고 하네.
이 개인의 이름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네. 그 주인공을 이제 심사할 작정이야.

"I......상속권을 주려고 하네. 심사를 맡을 사람들에겐 물론 상응하는 액수의 보수를 약속하지.

그런데 자네들도 알다시피 내겐 현재 피붙이가 없네. 결혼도 한 적이 없어. 그래서 나는 진즉부터 내가 죽은 뒤 이 재산을 미야가키 요타로라는 이름을 붙인 문학상제정과 운영을 위한 기금으로 쓰도록 공언해왔지. 그런 내용을 담은 정식 서류도 조만간 작성할 셈이었고. 하지만 지금 나는 이 계획에 약간 변경을 가할 생각이네.

이번에 환갑축하 모임이라고 해서 자네들을 이곳으로 부른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내 유산 상속자를 자네들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기 위해서일세. 상속 후보가 될 사람은 앞에서 내가 걱정거리라고 이야기한, 스자키, 기요무라, 후나오카, 하야시, 바로 이 네 명이네.

우선 작품 무대는 이 집, 미로관으로 설정할 것. 등장인물로는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을 내세울 것. 그 가운데는 물론 나 미야가키 요타로도 포함되겠지.

첫째. 내 자살을 경찰에 알리는 건 앞으로 닷새 뒤, 4월 6일 정오로 하게. 그전에는 결코 외부인을 이 저택에 들여서는 안 되네. 닷새쯤이라면 뭐 내 시체도 그리 심하게 부패하지는 않을 걸세.

넷째. 작품의 규정 매수는 4백자 원고지로 계산해서 1백 매 정도로 하겠네. 사실은 장편을 쓰게 하고 싶지만 이런 연출을 한 이상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겠지. 닷새 동안에 1백 매.

미야가키 요타로를 20대 후반부터 십 년 가까이 성실한 비서로서 모셔온 이 남자는 작가 미야가키의 열렬한 신봉자이자 변호사 자격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성격에맞지 않다는 이유로 변호사 일을 마다하고, 평소에는 도쿄에서 사법시험 준비생들을 위한 학원 강사로 일한다고 한다.

"역시 미야가키 선생님답지 않아? 선생님께서 자살하신 건 물론 충격이지만, 그냥 죽지는 않겠다는 건 이런...... 아, 실언을 했네. 어쨌든 일단 우리는 선생님께서 가능성을 인정해주신 점을 감사하게 생각해야겠지."

일곱 번째. 아니, 여섯 번째인가? 원고 집필은 각자 배정받은 방에서 준비되어 있는 워드프로세서로 할 것. 글씨를 잘 쓰느냐 못 쓰느냐가 작품 평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네. 자네들 네 명 모두 요즘 분명히 워드프로세서로 작업하고 있겠지. 그러니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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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
김선재.임재근.정성일 지음 / 문화의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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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5] 대전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친구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나와 인연이 닿았던 두 사람이 잠들어 있다. 한 사람은 중학교 동창인 ㅎㅇㅇ 상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ㅅ대학교 ROTC 동기였던 ㅂㅁㅁ 중위다.

두 사람과 맺었던 인연의 깊이는 서로 달랐다.

ㅎㅇㅇ 상사는 나와 같은 중학교를 다녔지만, 솔직히 말하면 학창 시절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같은 학교를 다녔어도 특별히 가까이 지낸 사이는 아니었고, 내 기억 속에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조용한 친구였다.

그가 나와 같은 중학교를 다닌 동창이었다는 사실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뒤에야 알았다. 텔레비전과 신문에 그의 이름과 얼굴이 나오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로소 오래전 같은 학교를 다녔던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 조용한 친구였다. 학교에서는 기억에 뚜렷하게 남지 않을 만큼 조용했던 한 사람이 훗날 서해 바다에서 나라를 지키다 전사했고, 나라가 기억하는 영웅이 되었다. 나는 살아 있을 때 제대로 알지 못했던 동창을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

ㅎㅇㅇ 상사는 우리 마님과도 같은 중학교 동창이다. 마님 역시 그와 특별히 가까이 지낸 것은 아니지만, 우리 부부에게 그는 같은 시절, 같은 학교를 다녔던 동창이다.

반면 ㅂㅁㅁ 중위는 전혀 다른 인연이다.

그는 ㅅ대학교 ROTC 동기 가운데서도 나와 가까웠던 친구 중 하나였다. 함께 장교가 되기 위한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대학 시절을 보냈고, 서로의 성격과 사람됨도 잘 알고 지냈다.

군 복무 중 나는 연천 전곡에 있는 공병대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저탐시설, 즉 레이더 관련 시설공사의 감독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굴삭기 기사가 내게 물었다.

“ROTC 출신입니까?”

그렇다고 대답하자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고 다시 물었다.

“ㅅ대학교입니다.”

그러자 그분은 곧바로 물었다.

“ㅂㅁㅁ을 아십니까?”

“잘 압니다. 친했던 동기입니다.”

내 대답이 끝나자 그분은 청천벽력 같은 말을 꺼냈다.

“죽었습니다. 자살했다고 합니다.”

순간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친했던 동기가 죽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자살했다는 말은 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 친구는 절대로 자살할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내가 알고 있던 ㅂㅁㅁ 중위의 성격과 모습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그분이 말했다.

“제가 그 아이 외삼촌입니다.”

그분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ㅂㅁㅁ 중위의 외삼촌이라고 밝혔다.

친했던 동기의 죽음을 공식적인 연락이나 다른 동기의 전언이 아니라, 군부대 공사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그의 외삼촌에게서 처음 들었다. 굴삭기 소리와 공사장의 먼지 속에서 들었던 그 말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 뒤로 세월이 흘렀다.

텔레비전에서는 ㅂㅁㅁ 중위의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ㅅ대학교 학군단 뒤편에는 그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오랜 노력 끝에 ㅂㅁㅁ 중위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가 현충원으로 들어오던 날 여러 ROTC 동기들이 함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가지 못했다.

친했던 동기의 마지막 길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후에 나는 대전에 사는 ㅅ대학교 ROTC 동기 한 사람과 함께 ㅂㅁㅁ 중위의 묘소를 찾았다. 그 친구는 나와도 가까웠고, ㅂㅁㅁ 중위와도 친하게 지냈던 동기였다. 젊은 시절에는 우리 세 사람이 모두 가까이 지냈다.

세 사람이 함께했던 대학과 학군단 시절은 이미 먼 과거가 되어 있었다. 이제는 살아남은 두 사람이 먼저 떠난 한 친구를 찾아 현충원의 묘소 앞에 서 있었다.

그가 현충원으로 들어오던 날 함께하지 못했던 미안함을 뒤늦게나마 전하고 싶었다.

우리 부부는 평소에도 가끔 국립대전현충원을 찾는다.

현충원에서는 구암사에서 나온 분들이 연중무휴로 무료 국수 보시를 하고 있다. 우리는 작은 금액이나마 시주를 하고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돌아오곤 한다.

ㅎㅇㅇ 상사는 나뿐 아니라 마님에게도 중학교 동창이다. 그래서 마님과 함께 그의 묘소를 직접 찾아가 본 적도 있다.

학창 시절에는 기억조차 희미했던 친구였지만, 묘소 앞에 서니 같은 시절,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인연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살아 있을 때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친구를, 마님과 함께 현충원에서 뒤늦게 찾아간 셈이었다.

오늘도 마님과 함께 현충원에 가서 국수를 먹고 돌아왔다.

하지만 오늘은 ㅎㅇㅇ 상사도, ㅂㅁㅁ 중위도 찾아보지 못했다.

한 사람은 학창 시절의 기억조차 희미한 중학교 동창이고, 다른 한 사람은 대학과 학군단 시절을 함께 보낸 가까운 ROTC 동기다.

살아 있을 때 두 사람은 서로 아무런 인연도 없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나와 인연을 맺었고, 서로 다른 사연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은 모두 국립대전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현충원에 갈 때마다 반드시 두 사람을 찾는 것은 아니다. 국수를 먹고 산책을 하다 그냥 돌아오는 날도 있다. 오늘도 그랬다.

그래도 그곳 어딘가에 두 사람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늘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다음에 현충원을 찾을 때는 국수만 먹고 돌아오지 말아야겠다.

ㅎㅇㅇ 상사에게는 마님과 함께 다시 찾아가 같은 중학교를 다녔던 동창으로서 인사를 건네고 싶다.

ㅂㅁㅁ 중위에게는 함께 묘소를 찾았던 그 동기와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현충원에 들어오던 날 함께하지 못해 미안했다는 말을 다시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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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
김선재.임재근.정성일 지음 / 문화의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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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안장자들의 삶을 발굴하고, 국가폭력과 군 의문사,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들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다.

그러나 대전현충원의 전체 역사를 다루는 듯한 제목과 달리, 실제 인물 선정은 저자들의 시민운동, 진보적 문제의식에 상당 부분 치우쳐 있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세월호 순직교사와 여러 군 의문사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도, 북한의 무력도발에 맞서 전사한 제2연평해전 장병들을 언급하지 않은 점은 선정 기준의 대표성과 균형성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국가의 잘못을 기록하는 일과 국가를 지키다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두 가지 모두 대한민국 현대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역사이며, 함께 조명될 때 비로소 국립현충원의 의미도 온전히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미 있는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인물 선정과 역사 서술의 균형성에서는 일정부분 한계를 보인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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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멸의 칼날 1~23 박스 세트 - 전23권 (완결)
고토게 코요하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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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3] 우부야시키 카가야와 키부츠지 무잔
― 같은 혈통에서 갈라진 두 지도자

1. 검토 개요

가. 검토 목적

1) 혈연관계 및 리더십 분석

ㅇ(혈연관계 규명) 귀살대 당주 우부야시키 카가야와 혈귀의 시조 키부츠지 무잔 사이의 혈통적 관계 및 우부야시키 일족이 대대로 무잔 토벌에 매달려 온 배경 검토

ㅇ(리더십 비교) 같은 혈통에서 갈라진 두 인물이 죽음과 조직, 구성원과 후계자를 대하는 방식에서 보인 차이 분석

ㅇ(조직 역량 분석) 카가야가 내부 구성원의 결속뿐 아니라 외부 전문역량까지 받아들이고,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조직 전체의 연계로 극복한 과정 분석

나. 핵심 분석 결과

1) 두 지도자의 근본적 차이

ㅇ(같은 혈통) 카가야와 무잔은 천 년의 세월로 혈연관계가 멀어졌으나, 본래 같은 일족에서 갈라진 인물들임

ㅇ(상반된 선택) 무잔은 타인의 생명을 희생시켜 자신의 육체적 불멸을 추구한 반면, 카가야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공동의 뜻과 조직이 자신보다 오래 이어지도록 준비함

ㅇ(조직의 개방성) 카가야는 혈귀인 타마요와 유시로까지 무잔 토벌이라는 공동목표 아래 받아들여, 귀살대 내부에 없던 의학적·혈귀술적 전문역량을 확보함

ㅇ(대립의 본질) 두 사람의 대립은 귀살대 당주와 혈귀 우두머리 사이의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같은 혈통에서 시작된 ‘개인의 영생’과 ‘뜻의 계승’ 사이의 대립임

2. 같은 혈통과 천 년의 악연

가. 무잔과 우부야시키 일족의 관계

1) 같은 일족에서 갈라진 혈통

ㅇ(혈통적 관계) 카가야가 자신을 찾아온 무잔에게 두 사람이 같은 혈통임을 직접 밝힘. 다만 무잔이 천 년 전에 태어난 인물이므로 두 사람의 혈연은 이미 매우 멀어진 상태임

ㅇ(악연의 시작) 우부야시키 일족과 무잔의 관계는 가까운 친족 사이의 개인적 원한이 아니라, 같은 일족에서 최초의 혈귀가 태어난 뒤 천 년 동안 이어진 혈통적·숙명적 관계임

2) 일족에 내려진 단명의 저주

ㅇ(저주의 내용) 우부야시키 일족은 같은 혈통에서 무잔이라는 혈귀를 배출한 뒤, 태어나는 아이들이 병약하고 일찍 죽는 저주를 받음. 특히 남자 후손은 서른 살을 넘기기 어려운 단명의 운명을 지님

ㅇ(혈통 유지) 일족은 신직을 맡은 집안의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면 아이들이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조언에 따라 혼인과 계승을 이어 옴

ㅇ(카가야의 단명) 이러한 노력에도 저주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카가야 역시 병이 악화되어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함

나. 귀살대에 부여된 일족의 책무

1) 무잔 토벌과 저주의 종결

ㅇ(일족의 책임) 우부야시키 일족은 같은 혈통에서 혈귀의 시조가 나왔다는 사실을 단순한 불운으로 여기지 않고, 무잔을 쓰러뜨리는 일을 일족이 대대로 감당해야 할 책임으로 받아들임

ㅇ(세대 간 과업) 귀살대의 운영은 어느 한 당주의 개인적 복수가 아니라, 무잔이 소멸할 때까지 후손들이 이어받아야 하는 장기적 과업임

ㅇ(조직의 계승) 당주가 죽더라도 다음 당주가 지휘권과 공동목표를 이어받는 세습적 계승체계 구축

ㅇ(귀살대의 뿌리) 사람을 지킨다는 공동목표와 함께, 무잔을 배출한 일족이 그 책임을 끝까지 감당한다는 우부야시키 가문의 결의가 귀살대 조직의 근본적 토대로 작용함

3. 평범한 인간과 달랐던 카가야

가. 전투력이 없는 최고지도자

1) 칼을 들지 않는 당주

ㅇ(비전투 지도자) 카가야는 혈귀술이나 검술을 사용하지 못하고 병이 깊어 직접 전투에도 참여할 수 없는 인물임

ㅇ(조직 운영) 직접 칼을 들지 않는 대신 사람과 정보, 재산과 전력을 하나의 목표 아래 결집하고 운용하는 최고지휘관의 역할 수행

ㅇ(지도력의 근원) 무력이나 처벌권이 아닌, 대원들의 성품과 사연을 기억하고 그들의 희생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형성된 권위와 신뢰

나. 우부야시키 일족의 비범한 능력

1) 앞일을 내다보는 직감

ㅇ(선견지명) 카가야는 사건의 흐름과 위험을 미리 짚어 내는 뛰어난 직감을 지닌 인물임

ㅇ(최종결전 예측) 무잔과의 최종결전이 가까워졌다는 사실과 무잔이 자신의 저택을 직접 찾아올 가능성까지 예상하고 함정을 준비함

ㅇ(전략적 활용) 일족의 직감을 개인의 생존이나 재산 증식에만 사용하지 않고, 귀살대의 재정과 정보망 구축 및 무잔 토벌을 위한 장기 전략에 활용함

2) 사람을 이끄는 통솔력

ㅇ(특유의 목소리) 상대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하는 특별한 목소리와 분위기 보유

ㅇ(인물 파악) 개성이 강하고 자존심 높은 柱들의 성품과 사연, 장점과 약점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설득함

ㅇ(신뢰 형성) 당주라는 지위나 명령이 아니라, 구성원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통해 대원들의 자발적 충성과 헌신을 이끌어 냄

ㅇ(강인한 정신력) 어린 나이에 당주가 되어 수많은 대원의 죽음과 일족의 저주를 감당하고, 육체가 병으로 무너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판단과 감정을 유지함

다. 조직의 경계를 넘어선 전략적 협력

1) 타마요와 유시로의 전문역량 수용

ㅇ(출신보다 목적 중시) 카가야는 타마요와 유시로가 혈귀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하지 않고, 무잔을 쓰러뜨린다는 공동목표와 두 사람의 능력을 기준으로 협력을 요청함

ㅇ(외부 전문역량 확보) 귀살대 내부에 존재하지 않던 타마요의 혈귀 연구와 의학적 지식, 유시로의 혈귀술을 조직의 전력으로 받아들임

ㅇ(연구역량 결합) 타마요의 연구성과와 코쵸우 시노부의 등나무꽃 독 연구를 결합하여 무잔의 재생과 전투능력을 약화시킬 결정적 수단 마련

ㅇ(전략적 유연성) 인간과 혈귀라는 기존의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공동목표 달성에 필요한 외부 역량을 받아들이는 실용적·유연한 판단

2) 전략적 협력의 성과

ㅇ(무잔 약화) 타마요가 무잔에게 투여한 약이 인간화 작용과 노화 촉진, 분열 방해 및 세포 파괴로 이어져 무잔의 압도적인 재생력과 전투력을 크게 약화함

ㅇ(유시로의 지원) 유시로가 나키메의 시야와 무한성의 지배권에 개입하고, 꺾쇠까마귀를 통한 정보공유를 지원하여 귀살대의 지휘와 전투 지속에 기여함

ㅇ(협력의 결정성) 타마요와 유시로의 참여가 없었다면 귀살대의 전투력만으로 무잔을 해가 뜰 때까지 붙잡아 두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큼

ㅇ(리더십의 확장) 카가야의 리더십이 내부 구성원의 결속에 머물지 않고, 조직 외부의 인물과 전문역량까지 공동목표 아래 연결하는 수준으로 확장됨

4. 같은 혈통에서 나온 상반된 지도자

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

1) 무잔의 육체적 불멸

ㅇ(죽음의 공포) 무잔은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하여 혈귀가 된 이후에도 햇빛을 극복하고 완전한 불멸을 얻는 일에 집착함

ㅇ(타인의 희생) 자신의 생존과 완성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혈귀로 만들고, 실패하거나 쓸모가 없어진 혈귀를 가차 없이 제거함

ㅇ(개인의 영속) 무잔이 추구한 영속은 자신의 육체가 영원히 살아남는 것이며, 조직과 부하는 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함

2) 카가야의 죽음 수용

ㅇ(단명의 수용) 카가야는 자신이 오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죽음을 피하기보다 남은 생명을 무잔 토벌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판단함

ㅇ(자기희생) 자신과 가족이 머물던 저택을 폭파하여 무잔의 움직임을 묶고, 타마요와 귀살대가 공격할 기회를 마련함

ㅇ(공동목표 우선) 자신의 생존보다 무잔 토벌이라는 일족과 귀살대의 공동목표를 우선하는 선택

ㅇ(뜻의 영속) 카가야가 추구한 영속은 자신의 육체가 아니라, 자신이 죽은 뒤에도 귀살대의 목적과 지휘체계가 계속 이어지는 것임

나. 구성원을 대하는 태도

1) 무잔의 공포와 소모

ㅇ(도구적 관계) 무잔은 혈귀를 동료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명령과 목적을 수행하는 도구로 취급함

ㅇ(일방적 희생) 자신은 생존을 우선하면서 부하들에게 죽음을 명령하고, 실패의 책임도 구성원에게 전가함

ㅇ(숙청과 통제) 임무에 실패하거나 자신의 의도에서 벗어난 혈귀를 즉시 제거하는 방식으로 공포와 복종 유지

ㅇ(신뢰 부재) 혈귀들은 무잔의 명령에 복종하지만, 공동의 가치나 무잔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발적 희생을 선택하지 못함

2) 카가야의 신뢰와 위임

ㅇ(구성원 존중) 귀살대원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죽은 대원들의 이름과 뜻을 기억하며 그 책임을 함께 짊어짐

ㅇ(자발적 헌신) 귀살대원들은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카가야가 제시한 목적과 진심을 믿어 스스로 목숨을 거는 구조임

ㅇ(역할 위임) 전투는 柱와 대원들에게, 연구는 시노부와 타마요에게, 정보 전달과 후방지원은 각 담당 조직에 맡기는 분권적 운영

ㅇ(구성원 연결) 서로 다른 성격과 능력을 지닌 대원들을 하나의 공동목표 아래 연결하고 각자의 역할이 최종승리로 이어지게 하는 통솔 방식

다. 후계체계의 차이

1) 무잔의 1인 집중 구조

ㅇ(권력 집중) 혈귀 조직의 힘과 판단, 지위와 생존권이 모두 무잔 한 사람에게 집중된 구조

ㅇ(후계자 부재) 자신의 뒤를 이을 지도자나 독립적인 지휘체계, 공동의 가치와 목표를 남기지 않음

ㅇ(조직의 소멸) 무잔이 소멸하자 혈귀 조직 전체도 함께 끝날 수밖에 없는 1인 종속형 조직의 한계

2) 카가야의 계승 구조

ㅇ(후계자 준비) 자신이 죽은 뒤 아들 키리야가 당주와 지휘권을 이어받도록 사전 준비

ㅇ(지휘체계 유지) 카가야의 사망 직후에도 키리야와 두 누이가 전황을 파악하고 대원들을 지휘하며 정보 전달과 후방지원 지속

ㅇ(역할의 연속성) 당주가 사라진 뒤에도 전투, 연구, 정보 전달, 치료와 후방지원 등 귀살대의 각 기능이 중단되지 않는 구조

ㅇ(시스템적 지속성) 카가야의 죽음이 조직의 붕괴가 아니라 최종작전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계승형 조직체계

5. 카가야의 자기희생에 대한 평가

가. 온화함과 냉혹함을 함께 지닌 지도자

1) 단순한 성인군자가 아닌 인물

ㅇ(냉정한 결단) 대원들을 따뜻하게 대하면서도 무잔을 쓰러뜨리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자신과 가족의 죽음까지 작전에 포함시키는 냉정한 전략가의 면모

ㅇ(목적의 절대성) 무잔 토벌을 개인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일족의 숙명이자 귀살대의 최종목표로 인식함

ㅇ(숙명 의식) 평범한 사람이라면 내리기 어려운 결정을 실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 년 동안 이어진 일족의 책임과 단명의 운명 존재

ㅇ(평가의 양면성) 가족까지 작전에 포함한 선택은 현대적 관점에서 극단적이고 논쟁적인 결정이며, 카가야를 단순히 온화하고 선한 지도자로만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임

나. 위기관리와 전략적 위험 감수

1) 최대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유인작전

ㅇ(최대 위협 식별) 카가야는 귀살대가 맞닥뜨린 모든 위험의 근원이 무잔이며, 무잔을 직접 붙잡지 못하는 한 상현과 일반 혈귀를 아무리 쓰러뜨려도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고 판단함

ㅇ(유인장소 선정) 무잔이 자신을 직접 찾아오도록 유도하고, 귀살대가 미리 준비한 장소와 시점에서 공격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전장을 선택함

ㅇ(전략적 위험 감수) 조직의 최대 위협인 무잔을 특정 장소에 붙잡아 두기 위해 최고지도자인 자신의 생명과 당주 저택을 작전의 핵심수단으로 투입함

ㅇ(결정적 기회 확보) 저택 폭발로 무잔의 움직임과 판단을 일시적으로 흔들고, 타마요가 약을 주입하며 히메지마 교메이와 귀살대가 공격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 마련

2) 최고지도자가 감당한 위험

ㅇ(책임의 선행) 부하들에게 희생을 명령하기 전에 최고지도자인 자신이 먼저 가장 위험한 위치에 들어감

ㅇ(조직 존속 우선) 당주 개인과 저택의 보존보다 무잔 토벌과 귀살대 전체의 존속을 우선하는 판단

ㅇ(위기관리의 양면성) 무잔을 직접 유인한 작전은 성공 시 최종결전의 기회를 만들 수 있으나, 실패 시 당주와 지휘부 일부를 동시에 잃을 수 있는 극단적인 고위험 결정임

ㅇ(리더십의 입체성) 카가야의 리더십이 온화한 말과 신뢰 형성에만 머물지 않고, 위기 상황에서 냉정한 계산과 자기희생을 실행하는 결단력까지 포함함

다. 무잔의 희생과 다른 점

1) 자신이 먼저 감당한 희생

ㅇ(희생의 주체) 무잔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자신만 살아남으려 했으나, 카가야는 자신이 먼저 죽음의 자리에 들어감

ㅇ(공동의 목적) 무잔의 부하들은 공포에 의해 희생되었으나, 카가야의 가족과 귀살대원들은 무잔을 끝낸다는 공동목표 아래 각자의 역할을 받아들임

ㅇ(책임의 자세) 무잔은 실패와 죽음을 타인에게 떠넘긴 반면, 카가야는 일족과 귀살대의 희생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생명으로 감당함

ㅇ(희생의 차이) 타인을 자신의 생존을 위해 소모하는 희생과 자신을 공동목표를 위해 내놓는 희생 사이의 근본적 차이

6. 조직 및 리더십 측면의 의미

가. 압도적인 비대칭 전력의 극복

1) 상현 혈귀와 귀살대의 전력 차이

ㅇ(전술핵 수준의 상현) 상현 혈귀 한 명 한 명은 柱 한 명이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이른바 ‘전술핵 수준’의 압도적인 비대칭 전력임

ㅇ(개인전의 한계) 귀살대가 상현과 일대일 대결만을 반복할 경우 柱와 핵심 대원들의 지속적인 손실이 불가피한 구조임

ㅇ(혈귀의 우위) 상현은 강력한 혈귀술과 재생력, 오랜 전투경험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개별 전투력에서 인간을 압도함

2) 조직 전체의 연계에 의한 극복

ㅇ(전투력 결합) 柱와 일반 대원들이 역할을 나누고, 먼저 쓰러진 대원이 만든 기회와 공격을 다음 대원이 이어받는 릴레이식 협공 수행

ㅇ(정보 전달) 꺾쇠까마귀가 전황과 명령, 혈귀의 능력과 위치를 전달하는 정보통신망의 역할 수행

ㅇ(후방지원) 카쿠시가 부상자 이송, 치료, 장비와 인력 운반 및 전투현장 수습을 담당하여 전투원의 지속적인 작전 수행 지원

ㅇ(연구와 기술) 시노부와 타마요가 독과 약을 연구하고, 유시로가 혈귀술을 통해 무한성과 전황 파악을 지원하는 전문역량 결합

ㅇ(지휘체계) 카가야와 키리야를 중심으로 전투·정보·연구·후방지원 조직이 하나의 목표 아래 연결된 유기적 작전체계 구축

ㅇ(비대칭 전력 극복) 상현의 압도적인 개별 전력을 더 강한 개인으로 상대하지 않고, 조직 전체의 정보·전투·연구·지원 능력을 결합하여 극복함

나. 개인의 불멸과 가치의 계승

1) 무잔과 카가야의 상반된 선택

ㅇ(무잔의 선택) 자신이 영원히 살아남으려 했으나, 자신이 사라진 뒤에도 남을 가치나 조직을 만들지 못함

ㅇ(카가야의 선택) 짧은 생을 살았지만, 자신이 죽은 뒤에도 공동목표와 지휘체계, 구성원들의 신뢰가 이어지도록 함

ㅇ(대립의 핵심) 무잔은 ‘육체의 불멸’을 추구하고, 카가야는 ‘뜻과 조직의 지속’을 이룬 구조

다. 지도자의 진정한 역할

1) 조직을 자신보다 오래 남기는 지도력

ㅇ(목표 제시) 지도자의 역할은 모든 능력을 혼자 갖추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함께 지켜야 할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임

ㅇ(역할 연결) 뛰어난 조직은 각 구성원의 능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누군가 쓰러지더라도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이어받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임

ㅇ(외부역량 활용) 조직 내부의 능력만 고집하지 않고, 공동목표 달성에 필요한 외부 인재와 전문역량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판단 필요

ㅇ(후계체계 구축) 지도자의 성과는 조직을 얼마나 오래 지배했는지가 아니라, 자신이 사라진 뒤에도 조직의 목적과 기능이 유지되는가에 따라 평가할 수 있음

ㅇ(가치의 계승) 지도자가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유산은 개인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스스로 이어 갈 수 있는 공동목표와 가치임

7. 종합 결론

가. 혈통과 선택이 만든 두 지도자의 차이

1) 무잔과 카가야에 대한 최종 평가

ㅇ(혈통적 숙명) 우부야시키 카가야와 키부츠지 무잔은 같은 혈통에서 갈라졌으나, 죽음과 타인, 조직을 대하는 태도에서 정반대의 길을 선택함

ㅇ(두 지도자의 대비) 무잔은 다른 생명을 소모하여 자신의 육체를 영원히 유지하려 했고, 카가야는 자신의 짧은 생을 바쳐 공동의 뜻과 조직을 다음 세대에 남김

ㅇ(조직의 폐쇄와 개방) 무잔은 모든 힘과 판단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다른 존재를 믿지 않았으나, 카가야는 타마요와 유시로까지 공동목표 아래 받아들여 조직의 역량을 확장함

ㅇ(전력 차이의 극복) 상현 한 명 한 명이 ‘전술핵 수준’의 압도적인 전력을 지녔으나, 귀살대는 전투원과 지휘부, 연구진과 정보전달·후방지원 조직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이를 극복함

ㅇ(승패의 근본 원인) 무잔은 누구도 믿지 않아 자신이 무너지자 모든 것이 끝났으나, 카가야는 사람을 믿고 역할을 맡겨 자신이 죽은 뒤에도 싸움이 계속되는 조직을 구축함

ㅇ(최종 평가) 두 사람의 차이는 강한 지도자와 약한 지도자의 차이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지도자와 자신의 뜻과 책임을 조직 전체에 나누어 남긴 지도자의 차이임

ㅇ(핵심 결론) 무잔은 천 년을 살고도 아무것도 계승하지 못했으나, 카가야는 스물세 살의 짧은 생을 살고도 자신보다 오래 지속되는 조직과 뜻을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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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입니다! - 만년필 사용자를 위한 입문서
박종진 지음 / 엘빅미디어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만년필 에세이 1] 내 책상 위의 만년필

사람들은 만년필을 어떻게 보관하는지 모르겠다.

전용 보관함에 한 자루씩 가지런히 넣어 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용한 뒤에는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 제자리에 돌려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책상 위의 만년필은 늘 그런 모습과 거리가 멀다.

검은색, 갈색, 파란색, 붉은색, 보라색 만년필 여러 자루가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다. 서로 겹쳐 누워 있기도 하고, 다른 펜 아래에 반쯤 깔려 있기도 한다. 글을 쓰려고 특별히 꺼내 놓은 것이 아니다. 평소 내 책상이 늘 이렇다.

책상에 앉는다고 해서 오늘은 어느 만년필을 써야겠다고 미리 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손에 잡히는 것을 집어 든다. 종이 한쪽에 선을 그어 보고 잉크가 잘 나오면 그대로 쓴다.

검은 잉크가 나올 줄 알았는데 남색이 나오기도 하고, 파란색인 줄 알았던 만년필에서 청록색이나 보라색 잉크가 나오기도 한다. 어느 만년필에 무슨 잉크를 넣어 두었는지 가끔은 나도 잊어버린다.

그래도 상관없다.

잉크 색을 맞추어야 할 만큼 거창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내가 하는 일은 대개 소소하다. 종이에 한자를 몇 자 끄적여 보기도 하고,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시나 구절을 옮겨 적기도 한다. 읽던 책에서 눈에 들어온 문장을 써 놓을 때도 있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짧게 메모할 때도 있다.

글씨를 잘 쓰려는 것은 아니다. 꼭 남겨야 할 기록이 있어서 쓰는 것도 아니다. 만년필을 쥐고 종이 위에 획을 하나씩 긋다 보면 마음이 잠잠해진다. 펜촉이 종이를 스치는 감촉과 잉크가 종이에 스며드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책상 앞의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만년필은 손이 많이 가는 필기구다.

오래 쓰지 않은 펜은 처음에 잉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종이 한쪽에 줄을 여러 번 긋고, 휴지에 펜촉을 대 보기도 한다. 그래도 나오지 않으면 만년필을 가볍게 흔들거나 털어 보기도 한다.

문제는 그럴 때 생긴다.

잉크는 손가락에만 묻는 것이 아니다. 잉크를 채우다가 손끝에 묻고, 펜촉을 닦다가 손바닥에 묻는다. 마르지 않은 글씨를 무심코 짚었다가 손에 번질 때도 있다. 책상 위에 떨어진 잉크를 보지 못한 채 팔꿈치를 댔다가 나중에야 잉크가 묻은 것을 발견한 적도 있다.

오늘도 손가락 끝과 손바닥 세 군데에 잉크가 묻어 있다. 휴지로 닦고 손을 씻어도 손톱 가장자리와 피부 주름 사이에는 색이 남는다. 며칠 지나야 완전히 없어지는 자국이다.

손에 묻은 잉크야 씻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한 번은 정말 기겁할 일이 있었다.

잉크가 잘 나오지 않는 만년필을 미련하게도 리클라이너 위쪽에서 털었다. 그러자 보라색 잉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한두 방울이 아니었다. 작은 보라색 점들이 스트레스리스 리클라이너 밑의 카펫에 떨어졌고, 비싼 리클라이너 가죽에도 묻었다.

그 순간에는 만년필의 멋도, 잉크 색의 아름다움도, 글을 쓰는 낭만도 모두 사라졌다.

“아이고, 내가 왜 하필 여기서 털었을까.”

물티슈를 들고 정신없이 닦아냈다. 빨리 닦지 않으면 카펫과 가죽에 그대로 스며들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다행히 서둘러 닦아냈지만, 그때의 놀란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다시는 만년필을 아무 데서나 털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또 잊어버리고 책상 위에서 펜을 흔들 때가 있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하는데, 만년필 앞에서는 나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글을 다 쓰고 나서도 만년필을 보관함에 넣지는 않는다. 방금 쓰던 자리에 그대로 내려놓는다. 다음에는 또 다른 만년필이 손에 잡히고, 그 펜도 책상 위 어딘가에 놓인다.

그러다 보면 만년필들은 다시 서로 뒤섞인다.

누군가는 정리가 안 된 책상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가지런히 진열된 만년필보다, 쓰다 만 종이와 책 사이에 아무렇게나 놓인 만년필이 더 익숙하다.

내 책상 위의 만년필은 감상하기 위해 늘어놓은 수집품이 아니다.

한자를 몇 자 쓰고, 시를 옮겨 적고, 생각나는 말을 끄적이는 동안 매일 손에 잡히는 생활 도구다. 잉크를 흘리고, 손을 더럽히고, 가끔은 카펫과 리클라이너까지 위협하지만, 그래도 책상에 앉으면 나는 다시 만년필 한 자루를 집어 든다.

무슨 잉크가 들어 있는지는 종이에 첫 획을 그어 보아야 안다.

어쩌면 내 하루도 그 첫 획을 그어 보기 전에는 어떤 색으로 흘러갈지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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