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자키 쇼스케, 41세. 오늘 모인 미야가 요타로의 ‘제자‘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인물이다. 중세 유럽을 무대로 삼은 중후한 본격물이 특기인데, 워낙 집필이 느려 편집자들이 피하려는작가다.
돌아보니 스자키는 여전히 안쪽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검은 테 안경을 쓴 신경질적인 얼굴. 갈색 스웨터를 걸친 야윈 체격에 구부정한 등이 특징적이다. 그가 기요무라의 명연기에 크게 놀라는 모습을 떠올려보았지만 아무래도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우타야마는 오늘 모인 다섯 명 중에 성실하게 활동하는 문예비평가인 사메지마 도모오가 미야가키에게 가장 큰 신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둘이서 이 저택에 틀어박혀 미스터리 이야기로 날을 지새우며 여름 한철을 보냈다는 일화도 있다. 사메지마는 스자키보다 세 살 아래인 서른여덟 살이지만 미야가키와 알고 지낸 지는 가장오래되었다.
하지만 약속했던 4시에서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미야가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서인 이노 미쓰오도 나타나지 않았다. "설마 이노 씨가 오지 않았을 리는 없을 텐데.......
"예를 들면 미야가키 선생님이 몸이 좋지 않다거나." 우타야마는 3개월 전 자기 건강을 ‘형편없다‘고 평하던 노작가의 어색한 웃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리고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이를 악문 듯한 말투로 그 사태를 전했다. "미야가키 선생님께서 오늘 아침, 자살하셨습니다."
"십 몇 억 엔이라니, 만약에 그런 엄청난 재산을 둘러싸고 상속 다툼이라도 일어나면 그야말로 살인사건이 나는 건 문제도 아니겠네."
미야가키 상에 관해서는 전부터 우타야마도 들었다. 에도가와 란포가 스스로 자기 이름을 붙인 문학상을 만들었듯이(운영 주체는 당시의 일본탐정작가클럽이었지만기금은 란포가 기부했다) 미야가키 선생 또한 자기 이름을 그런 형태로 남기고 싶다고 거리낌없이 공언했다.
"뜻하지 않은 사태가 일어나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검토하느라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뜻하지 않은 사태?"
마른 체격에 중간 키, 짧게 깎은 머리에 윤곽이 뚜렷한 지적인 얼굴. 젊었을 때 흰 정장이라도 입었다면 ‘미청년‘처럼 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설 연휴 때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그때 느낌으로는 마음이 많이 약해지신 것 같더군요."
"원래는 당연히 바로 경찰에 신고해야겠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말씀하시는 뜻을 잘 모르겠는데요." "그건...... 여기서 설명드리기가 좀 힘든 문제라서."
"그런 문제에 관해서는 절대로 착오가 없을 겁니다. 침실 침대에서 수면제를 많이 드신 모양입니다." 아아...... 하는 긴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우타야마는 이노에게 걸어가며 물었다. "유서는?"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미야가키 선생님은 정말로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이때 초대받은 손님들 각자의 머릿속에는 과연 어떤 생각이 스쳐갔을까.
"만우절 놀이에는 이제 슬슬 식상할 때가 되었다니까요." 그 말에 실내의 긴장이 단숨에 풀어졌다. 기요무라는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뭐 그래도 모처럼 선생님이 꾸미신 계획을 무시하기도 난처하니 여기서 적당히......."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만우절 놀이에는 이제 슬슬 식상할 때가 되었다니까요." 그 말에 실내의 긴장이 단숨에 풀어졌다. 기요무라는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뭐 그래도 모처럼 선생님이 꾸미신 계획을 무시하기도 난처하니 여기서 적당히......."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잠깐만요. 분명히 맞는 말씀입니다. 경찰에 알려야 하죠. 하지만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매우 특수한 상황이라....... 그러니까, 돌아가신 미야가키 선생님께서 당분간경찰에 연락해서는 안 된다는 유언을 남기신 겁니다."
"하하, 하하하......" 이윽고 처음 소리를 낸 사람은 기요무라였다. 그는 문 앞에 선 이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테이블에 한 손을 짚고 일어섰다. "안 속아요, 이노 씨. 그런 수법은 먹히지 않죠." 기요무라가 익살스러운 말투로 내뱉었다.
MINOSS. 새겨진 글자를 눈으로 더듬었다. 미노스. 명장名匠 다이달로스에게 명령을 내려 미궁을 만들게 한 크레타 왕의 이름이 제작자의 실수인지 로마자로 표기한 그 철자에는 S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불쑥 일어선 시마다는 손에 든 검은 물체를 테이블 위에 내던졌다. "이거 접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기로 약속했는데." 두 개의 팔에 두 다리, 뾰족한 두 귀에 창처럼 생긴 꼬리, 등에는 날개 두 개가 달려 있는 그것은 검은 종이로 만든, 우타야마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이접기였다.
아리아드네.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미노스 왕의 딸이면서도 젊은 테세우스에게 반해, 괴물을 쓰러뜨리기 위해 미궁으로 들어가는 그에게 길을 찾을 때 쓸 실꾸리를 건네준 공주.......
가속도가 붙은 어둠이 더욱 짙어지는 미로 모양의 복도를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돌고...... 이윽고 목적지인 미야가키의 서재에 도착했다. "구로에 다쓰오 선생님이십니다. 미야즈에 있는 N** 병원 내과부장님이신데 요 몇 달간 미야가키 선생님이 신세를 지셨습니다."
복도 폭은 1미터도 되지 않는다. 실내나 현관 계단 부분과는 달리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지 않아 적갈색 플라스틱 바닥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높은 천장은 복도 폭을 한 변으로 삼은 정사각형 유닛(철골과 유리로 이루어진 그 납작한 피라미드가 그것이다)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리는 푸른 색이 감도는 두툼한 무늬 유리인데, 그리로 스며드는 자연광은 이미 저녁 어둠에 젖어가고 있었다. 복도는 직선과 직각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복잡하게 얽혀, 저택 중앙부의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복도가 이 저택 명칭의 유래가 된 ‘미로‘를 만들어내는것이다.
이 ‘미궁‘ 주인의 너무도 갑작스러운 ‘자살‘. ‘이제 와서 장수 기록에 도전할 생각은 전혀 없네‘ 석 달 전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던 미야가키....... 그때 이미 그 양반은 오늘 일을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이상하다....... 이노 미쓰오가 보여주는 기묘한 말과 행동은 무엇일까.
"아아...... 선생님." 후나오카가 제대로 소리 지르지도 못하고 중얼거렸다. 동시에 몇 명이 한숨과 가쁜 숨소리를 흘렸다. 어쩜 저렇게 편안한 얼굴로 세상을 떴을까? 하지만 선생님, 도대체 왜.......
이 저택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응접실 이름이 ‘미노타우로스‘이고, 방금 나온 넓은 홀은 ‘아리아드네‘라고 불린다. 이처럼 이 저택에 있는 열 몇 개의 방에는 각각 미노스 궁전의 에피소드와 관련 있는 신화 속 인물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오늘 예정되어 있던 파티 준비를 비롯한 이런저런 일 때문에 저는 그저께 밤부터 이 저택에 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묵을 방을 준비하기도 하고, 식료품이나 다른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나가기도 하느라 어제는 종일 이리저리 뛰어다녔지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과 차분하게 말씀을 나눌 시간도 없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분명히선생님의 태도가 약간 이상했습니다. 안색이 좋지 않고 말씀이 거의 없고...... 몸이 편치 않으신 거 아닌가, 내일 괜찮으실까, 저도 좀 걱정이 들었죠.
그토록 의사를 싫어하던 미야가키 선생이....... 우타야마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야가키의 건강 상태가 우타야마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느끼던 것보다 그토록 좋지 않았던 건가.
그토록 의사를 싫어하던 미야가키 선생이....... 우타야마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야가키의 건강 상태가 우타야마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느끼던 것보다 그토록 좋지 않았던 건가.
"지금이니까 말씀을 드려도 괜찮겠군요. 그러니까, 미야가키 씨는 폐에 심각한 병...... 암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병세가 상당히 진전되어 회복은 매우 어려운 상태였죠. 그런 사실을 본인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봉투 겉에는 ‘이노에게‘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글씨는 미야가키 선생님의 필적이 틀림없습니다. 안에 든 편지는 워드프로세서로 썼지만 끄트머리에 오늘 날짜와 서명이 선생님 필체로 적혀 있습니다."
입구에서 보아 정면 벽 쪽에는 특별 주문한 목제 랙에 설치된 AV 기기와 엄청난 양의 레코드 판과 CD, 비디오테이프 등이 꽂혀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화 마니아, 클래식 음악 마니아이기도 했던 미야가키가 자랑하는 컬렉션이다.
그리고 기상이 배출한 많은 신인작가 가운데 특히 내가 눈여겨보았던 인재가 바로 이번 ‘환갑 축하 모임‘에 초대한 자네들, 스자키, 기요무라, 후나오카, 하야시, 이네 명이지. 다만 이게 중요한 점인데, 내가 자네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에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해선 곤란하네. 그 정도야 자네들도 잘 알고 있을 테고.
"내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걸세. 당황하지 말기 바라네. 결코 바로 경찰에 알려서는 안 되네. 구로에 선생이 오실 테니 그분에게 증인이 되어달라고 하고, 서재 책상위에 있는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내용을 듣도록 하게. 내가 죽은 뒤에 바라는 모든 것이 거기 녹음되어 있네. 반드시 이 지시에 따라주기 바라네. 1987년 4월 1일 미야가키 요타로‘ 자, 여러분께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나라는 인간을 믿고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구로에 선생에게는 면목이 없지만 나는 완치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병과 싸우며 살고 싶지는 않네. 이미 수술하기는 어려운 상태이고, 그래도 수술을 한다면 그 뒤에는 방사선 치료니 항암제 투여니 해서 다소나마 연명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얼마 남지도 않은 삶에 매달리는 건 내 미의식에 어긋나는 일일세. 그래서...... 그래서 나는 예순 살 생일 아침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선택한 걸세. 사람이란 무슨 일이나 깔끔하게 처리해야지."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살인사건으로 하되, 작가 즉 자네들 자신을 그 피해자로 설정해야만 하네.
완성된 네 사람의 작품을 편집자인 우타야마와 평론가인 사메지마, 그리고 ‘마니아 대표‘로서 시마다, 이렇게 세 사람이 읽고 6일 정오까지 우열을 가릴 걸세. 그 결과가장 우수하다고 인정받은 작품을 쓴 작가에게 내 유산 상속권을 주려고 하네.
다섯째, 작품 주제에 관해서. 당연한 소리겠지만 자네들이 써야 하는 건 탐정소설일세. 심사를 맡은 쪽에서도 어디까지나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주기 바라네. 덧붙여, 작품 내용에 관해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겠네.
다섯째, 작품 주제에 관해서. 당연한 소리겠지만 자네들이 써야 하는 건 탐정소설일세. 심사를 맡은 쪽에서도 어디까지나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주기 바라네. 덧붙여, 작품 내용에 관해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겠네.
둘째. 닷새 동안 비서인 이노와 구로에 선생을 제외한 자네들은 원칙적으로 이 저택에서 한 걸음도 밖에 나가서는 안 되네. 자네들 가운데는 이런저런 일정이 잡혀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특히 바쁜 우타야마에게는 미안한데, 이번에는 힘들더라도 이쪽 사정에 따라주면 좋겠네.
셋째. 이 저택에 머무는 닷새 동안 유산 상속자 심사와 선발이 이루어질 것이네. 조금 전에 말한 대로 후보자는 네 명. 자네들 네 명은 이 기간 안에,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4월 5일 오후 10시를 기한으로 삼아 심사 대상이 될 소설을 한 편씩 써야 하네.
내 전 재산 가운데 반을 지금까지 공언한 대로 미야가키 상기금에 충당할 걸세. 그리고 나머지 반을 한 개인에게 물려주려고 하네. 이 개인의 이름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네. 그 주인공을 이제 심사할 작정이야.
"I......상속권을 주려고 하네. 심사를 맡을 사람들에겐 물론 상응하는 액수의 보수를 약속하지.
그런데 자네들도 알다시피 내겐 현재 피붙이가 없네. 결혼도 한 적이 없어. 그래서 나는 진즉부터 내가 죽은 뒤 이 재산을 미야가키 요타로라는 이름을 붙인 문학상제정과 운영을 위한 기금으로 쓰도록 공언해왔지. 그런 내용을 담은 정식 서류도 조만간 작성할 셈이었고. 하지만 지금 나는 이 계획에 약간 변경을 가할 생각이네.
이번에 환갑축하 모임이라고 해서 자네들을 이곳으로 부른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내 유산 상속자를 자네들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기 위해서일세. 상속 후보가 될 사람은 앞에서 내가 걱정거리라고 이야기한, 스자키, 기요무라, 후나오카, 하야시, 바로 이 네 명이네.
우선 작품 무대는 이 집, 미로관으로 설정할 것. 등장인물로는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을 내세울 것. 그 가운데는 물론 나 미야가키 요타로도 포함되겠지.
첫째. 내 자살을 경찰에 알리는 건 앞으로 닷새 뒤, 4월 6일 정오로 하게. 그전에는 결코 외부인을 이 저택에 들여서는 안 되네. 닷새쯤이라면 뭐 내 시체도 그리 심하게 부패하지는 않을 걸세.
넷째. 작품의 규정 매수는 4백자 원고지로 계산해서 1백 매 정도로 하겠네. 사실은 장편을 쓰게 하고 싶지만 이런 연출을 한 이상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겠지. 닷새 동안에 1백 매.
미야가키 요타로를 20대 후반부터 십 년 가까이 성실한 비서로서 모셔온 이 남자는 작가 미야가키의 열렬한 신봉자이자 변호사 자격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성격에맞지 않다는 이유로 변호사 일을 마다하고, 평소에는 도쿄에서 사법시험 준비생들을 위한 학원 강사로 일한다고 한다.
"역시 미야가키 선생님답지 않아? 선생님께서 자살하신 건 물론 충격이지만, 그냥 죽지는 않겠다는 건 이런...... 아, 실언을 했네. 어쨌든 일단 우리는 선생님께서 가능성을 인정해주신 점을 감사하게 생각해야겠지."
일곱 번째. 아니, 여섯 번째인가? 원고 집필은 각자 배정받은 방에서 준비되어 있는 워드프로세서로 할 것. 글씨를 잘 쓰느냐 못 쓰느냐가 작품 평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네. 자네들 네 명 모두 요즘 분명히 워드프로세서로 작업하고 있겠지. 그러니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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