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모두 떠났다 - P80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 P82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 P82

민들레의 영토
이해인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 P84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 P86

바람의 노래를 들을 것이다
울고 왔다 웃고 갔을 인생과
웃고 왔다 울고 갔을 인생들을 - P89

혜화역 4번 출구
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 P93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서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 P94

서울로 돈 벌러 간 엄마 대신
초등학교 입학식 날 함께 갔던 언니는
시민회관 창틀에 매달려 눈물을 떨구던 내게
가을 운동회 날 꼭 오마고 약속했지만
단풍이 흐드러지고 청군 백군 깃발이 휘날려도
끝내 다녀가지 못하고
인편에 보내준 기차표 운동화만
먼지를 뒤집어쓴 채 토닥토닥
집으로 돌아온 가을 운동회날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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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 있음을 알았습니다 - P74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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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땅 끝까지 가 보았네

물이 있는 곳 끝까지도 가 보았네

나는 하늘 끝까지 가 보았네

산 끝까지도 가 보았네

나와 연결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네

―나바호 족 노래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치페와 족으로도 불리는 오지브웨(혹은 오지브와) 족은 지금의 미국 미네소타 주와 노스다코타 주, 몬태나 주를 포함한 오대호 유역에서 살았다.

여러 설이 있지만 ‘오지브웨’라는 이름은 ‘주름 잡힐 때까지 굽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스스로를 야생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아니시나베’라고 불렀다.

버드나무 가지를 둥글게 구부려 구슬과 깃털을 달고 실로 그물을 엮은 주술 장식 ‘꿈을 잡는 거미줄(드림캐처)’도 이 부족의 전설에 등장하는 아시비카시라는 거미 여인이 부족민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민속학에서 사용하는 ‘토템’이라는 용어도 본래는 오지브웨 어의 ‘도댐’에서 가져온 것으로, 특정한 동식물이 집단의 조상이나 개인과 혈연 관계에 있어서 그것들이 자신을 보호해 준다고 여긴 부족의 믿음과 관계가 있다.

"내 신앙은 사라졌다. 나의 토템이 화가 났다. 다시는 사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비전 퀘스트(인생의 꿈을 찾는 추구 여행)라고 부르는 의식을 오지브웨 족은 실천했다.

이 모든 요소들 중에서도 오지브웨 족이 가장 강하게 가진 생각은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연 속 만물을 관찰함으로써, 그리고 부족 어른들의 가르침을 통해 그 생각을 생활 속에서 실천했다.

얼굴 흰 사람들이 왔을 때 원주민들은 그 사고방식에 따라 그들을 받아들이고 가진 것을 나눠 주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침입자들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너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며, 이 생각이 원주민들 대부분을 말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단순하면서 호소력 강한, 아메리카 원주민 역사에 길이 남은 이 명연설문들은 오만한 백인 문명의 허구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과 정신세계까지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인디언적인 사고관을 가진 사람과 비인디언적인 사고관을 가진 사람 중에서 우리 자신은 어느 쪽에 속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수만 년 전부터 ‘거북이섬’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북미 대륙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수많은 원주민 부족의 삶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며, 총과 병균과 종교를 앞세우고 쳐들어 온 백인들에게 터전을 빼앗기고 물러가면서 그들이 남긴 연설문들을 모은 것이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별을 흔들지 않고서는 꽃을 꺾을 수 없다."

바람이 자유롭게 불고 햇빛을 가로막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드넓은 평원에서 나는 태어났다. 들소 가죽으로 만든 인디언 천막이 나의 집이었다. 첫 숨을 들이쉬는 그 순간부터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우리 인디언은 자연과 하나된 삶을 살았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었다.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 종교는 홀로 있음과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성한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줄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구세주가 필요 없었다. 이 대지 위에서 우리는 언제나 행복했다.

모든 생명을 에워싼 위대한 신비를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과 대지를 사랑하는 데 삶의 근본이 있음을 우리는 배웠다. 삶에서 우리는 다른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물질이나 소유는 우리가 좇는 것이 아니었다.

이 대지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서 잠시 빌린 것임을 우리는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소중히 다뤄 다음 세대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자연을 완성된 아름다움으로 여겼으며, 그것을 파괴하는 것을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필요한 만큼만 땅에서 취하고, 취한 만큼 돌려주었다. 우리가 가진 것,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에 대해 잊지 않고 감사 기도를 올렸다. 어떤 것이든 헛되이 쓰지 않았으며,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남에게 나눠 주었다.

자연에게서 무엇을 취할 때는 반드시 그 주인에게 허락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풍요로웠다. 혼자만의 소유는 죄를 짓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문명인을 자처하는 얼굴 흰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베풀고 농사 지을 땅을 내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땅에 울타리를 치고 그곳을 자신들의 소유라 주장했다. 그리고 언제나 더 내놓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땅은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땅은 우리의 어머니이며, 그 어머니는 자신의 자식들인 동물과 새, 물고기, 인간을 똑같이 먹여 살린다. 하지만 얼굴 흰 사람들은 뭐든지 금을 긋고, 그것들이 오직 자신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연을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세계로 여기고, 우리를 야만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우리에게 야생이란 없었다. 우리에게는 다만 자유가 있었을 뿐이다.

자연은 질서에 순종하지만, 문명은 그 질서를 깨려고 노력한다. 자연은 순하고 부드러우며, 생명력으로 넘치는 곳이다. 자연과 가까이 사는 사람은 결코 공격적이지 않다. 공격적인 것은 지나친 욕망을 자극하는 도시 문명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자연 속에서는 필요 이상의 욕망이란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우리의 혼은 이 대지와 하나가 되어 살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한 생명 가진 모든 것들과 함께 언제나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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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닐 차크라바티의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한 것은 그간의 우정에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결혼식이 동인도 비하르지방에서 열린다는 데도 이유가 있었다. - P23

장장 스무 시간이 넘게 걸린 기차 여행은 구루지가 도중에 갑자기 사라진 것 말고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소똥 묻은 긴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그 사두는 기차가 도중의 한 역에 정차하자 아무 말도 없이 내려 그냥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기차안을 아무리 뒤지고 다녀도 구루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P24

내 생애에 몇 가지 불가사의한 일들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도중에 사라졌던 아산티구루지가 펑하고 등 뒤에 나타난 것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 P25

외곽 지대에 도착했을 때, 운전수는 돈도 제대로 세어 보지않고 나는 듯이 되돌아갔다. 나는 저런 릭샤를 다시 타느니 차라리 강도를 만나는 게 백 배는 낫겠다고. 이마의 혹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시바 신은 당장에 강도들을 내려보냈다. - P26

"당신이 방금 읊어 준 그 시에는 아까말한 제목이 전혀 어울리지가 않소. 제목을 바꾸도록 하시오. 차라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로 하는 게 나을 것이오." - P27

"이런 시간에 걸어다니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소. 앞으로는조심하시오. 이 지역의 인도인들은 모두 날강도나 다를 바 없으니, 절대 믿지 마시오."
강도가 다른 날강도들을 조심하라고 진심 어린 충고를 하고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쑤닐의 시골 마을입구까지 태워다 주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대단히 친절하고, 또한 몹시 불가사의한강도들이었다. 신분이 신분인지라 서로 연락처도 주고받지 못하고 헤어진 것이 못내 아쉬웠다. - P28

훗날 나는 우연히 <인디아 타임스>의 기사를 읽게 되었는데,
비하르 주에서는 여섯 달 동안에 살인사건이 무려 2,600건, 납치가 1,200건, 강력 범죄가 무려 6만 건이 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하루에 14명이 죽고, 4시간마다 1명씩 납치된다는것을 뜻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가를 깨달았다. - P28

어쨌든 우리는 강도를 만난 덕분에 다른날강도들을 신경 쓰지 않고 무사히 결혼식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 P28

내가 저리가라고 아무리 손짓을 해도 아이들은 어린 공작새같은 눈을 뜨고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내가 휴지를 꺼내자, 한 소녀가 작은 물통을 내밀며 말했다.
"사히브, 그 더러운 종이를 쓰지 말고 이 물을 써요." - P29

에크, 도, 틴(하나, 둘, 셋! 하고 플래시가 터지고, 쑤닐의 스승아산티 구루지와 나를 중심으로 둘러선 모든 사람들이 한 장의사진에 박혔다. 신혼부부의 첫 순간이, 그리고 신비로운 내 여행의 한순간이 그렇게 동인도 비하르의 밤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별자리들 속에 영원히 기록되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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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여행자다. - P16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여행을 온 것이다. 더 배우고, 더 경험하고, 더 성장하기 위해……. 이 여행을 마치고 떠나갈 때, 나는신 앞에 서서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다. 나는 여행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노라고. 그래서 늘 길 위에 서 있고자 노력했노라고. 내 배움은 학교가 아니라 길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 P16

인도에선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마셔야만 한다. 그것이 인도여행에서 지켜야 할 수칙 중 하나다. 그렇지 않으면 태양열에몸의 수분을 빼앗겨 탈수증에 걸리거나, 심하면 영혼까지 메말라 버리기 십상이다. - P17

"서둘러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어. 서두르다간 오히려 잃기마련이야." - P18

"서둘러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내가 방금 전에 말했지. 서두르다간 오히려 잃기 십상이야." - P19

"수크리아, 바후트 수크리아!"
그 순간 노인이 손가락으로 허공을 찌르며 영어로 소리쳤지만, 기차가 멀어져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뭐라고소리치는지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대단히 감사하단 말이지? 서두르다간 오히려 잃기 마련이라고, 내가 분명히 말했지. 그것을 절대로 잊지 말라구!" - P21

기차가 여유롭게 북인도 평원을 달리는 동안, 나는 새처럼 쪽쪽거리며 망고주스 다섯 개를 앞좌석 인도인들과 나눠 마셨다.
인도산 과일 주스의 달콤한 맛도 맛이지만, 힌두 노인의 친절함과 속 깊은 지혜가 더 깊이 내 영혼의 갈증을 식혀 주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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