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른이 되어 다시 보게 된 그 기와집은 작아 보였다. 그 기와집에 핀 살구꽃은 지금도 늘 그 마을을 마을답게 해 주고 있다. 지금은 그 기와집을 헐어 버리고 그 기와집보다 더 번듯한 기와집을 지었다. - P70
내가 초등학교 육 학년 때 아버지는 갈담장 가는 길 그 기와집보다 더 큰기와집을 지으셨다. 아버님은 그 집에서 돌아가셨고, 나는 그 집에서오래 살았다. 지은 지 오래된 그 집은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반듯하게 서 있다. - P73
갈담장은 이 근방 사람들의 세상을 향한 출구였다. 갈담장에는 모든 것들이 다 있었다. 외부로부터의 정보가모두 갈담장을 통해 동네마다 퍼져 갔다. 혼담이 오고가고, 무르익어 가는 곳도 그곳이었으며, 농사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도 그곳이었다. 정치에 대한 모든 정보도 그곳에서 밝혀지고여론이 조성되었다. 갈담장은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모든 것들이총체적으로 들끓는 장소였다. - P79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갈담장을 자주 드나들었다. 청년들이 유일하게 이 고을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곳이었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곳이었다. 갈담장은 새로 만난 다른 동네의젊은이들의 싸움판이었다. 갈담에 거주하는 젊은 건달들이산중에서 나온 어수룩한 젊은이들을 봉 잡는 곳이기도 했다. 갈담의 젊은 패들은 그래서 오랫동안이 근방의 모든 젊은이들을 손에 쥐고 흔들었다. - P84
우리들이 갈담을 거쳐 외지로 나갈 때 어깨를 펴고 다닌 지가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우리들은 갈담장이라는 곳 때문에 늘 갈담의 깡패(?)들에게쥐여지내야만 했다. 지금 나는 그때 그 젊은 깡패들 중에나이가 같은 놈들과 갑계를 하고 있다. 곗날이 되어 같이 놀다 보면옛날 갈담 청년들에게 당했던 이야기들을 한다. - P87
시골 장터는 처녀들이 오랜만에 마을을 벗어나 외지 바람을 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 P88
순창으로 중학을 간 나는 이제 갈담장보다 훨씬 큰 장을 보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 일학년 때만 해도 순창장에는그 유명한 ‘베개딱지‘ 장이 섰다. 베개딱지는 베개의 양옆에 대는한쌍의 딱지였는데, 그 딱지에 학을 수놓았다. 불란서 실을 사용한 수는붉고 화려했다. 순창군 일대에 사는 모든 처녀들은 닷새 동안베개딱지에 수를 놓아 장날이면 장으로 모두 가지고 나왔다. 순창군의 모든 처녀들이 장으로 모여들었으므로베개딱지전은 화려하고 시끄러웠다. - P93
어느 장이든 파장 무렵의 싸움판은 늘 삶을 스산하게 했다. 장이 안 서는 날 시장통은 시장통에 사는 건달들의 싸움판이었다. 우리처럼 촌에서 유학 온 아이들은 시장통 아이들을 제일 무서워했다. 장날이 아니면 우리들은 그곳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 P105
고등학교 삼학년 때 나는 영농학생이었다. 영농학생은 학교의 일을 해 주고 다소의 장학금을 받는 학생을 말한다. 영농학생이 되면 학교의 농사를 다 지어야 했다. 학교에서 재배하는채소를 수확해서 장에 나가 팔기도 했다. 우리들도 다른 장꾼들처럼 리어카에 전을 벌리고 호객을 했다. 늘 웃기는 안뽕이라는 친구가 호객을 했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사람들이 많이 꼬여 들었다. - P114
추석이나 설이 돌아오면 아내는 대목장을 보러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을 모시고 꼭 순창장을 간다. 어머님은 시장의 가게마다 들러 우리 큰며느리‘ 하며자기 며느리를 자랑하신다. 평생 동안 순창장을 이용했기 때문에가게 주인들은 어머님을 잘 아신다. - P118
어떤 농부가 만든 한 개의 도리깨나 갈퀴가 상품이 된다는 것은경제 활동의 평등을 의미한다. 제 맘대로 흘러가는 것 같은이러한 시장 질서는 농촌 경제 활동을 늘 활기차게 했다. 이러한 시장의 건강한 기능은 시골 마을의 모든 생활에건강한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었다.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건조한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 상거래 속에 인간관계를 폭넓게 해 주는 기능까지 아울렀던 것이다. - P125
농촌 공동체의 붕괴로 인해 시골장은 이제 ‘재래시장‘이라는이상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갈담장과 순창장에는 5일마다 사람들이 모인다. 나이 든 몸으로 어렵게 주운 알밤을 가지고 나오기도 하고, 고사리, 참깨, 고추도 가지고 나온다. 젊은이들은 없지만 평생을 갈담장을 보아 온 사람들이아직도 장날이면 장에 가서 세상을 배워 온다. - P130
갈담장도 여느 시골장날처럼 아침나절이면거의 파장이 되어 버린다. 장바닥은 줄어들고, 장날이면 만나던 그리운 얼굴들은 하나둘씩 사라져쓸쓸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래도 장은 선다. - P133
지금도 갈담장에 가 보면 국숫집이 하나 있다. 옛날 아버님이 장에 가시면 반드시 들러서 점심을국수로 대신했던 그 집이 지금도 있다. 다른 그 어떤 집의 국수보다나는 이 국숫집 국수를 좋아한다. 눈보라가 치는 겨울, 추운 몸을움츠리고 손을 비비며 한일자 나무판자 의자에 앉으면국수솥에서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따뜻하던 그 길이, 지금도 시골 사람들을 기다리며김을 피워 올리고 있다. - P139
사람들은 살아갈수록 힘이 든다고 한다. - P150
으리으리한 고대광실은 아니지만 비 안 새는 번듯한 집이 있는데도, 삼시 세끼 밥 굶지 않고 한겨울에 상추쌈을 싸먹는 세상인데도살기가 힘들다고 한다. - P152
엄동설한에도 얼어죽지 않을 만큼 따뜻한옷이 옷장 속에 지천으로 걸려 있고, 구멍난 양말을 애써 기워 신지 않아도 되는세상인데도 살기가 힘들다, 벅차다. 심지어는 죽어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 P155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세상 사람들이 힘들고 외로운 이유는신이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 P163
저것 좀 보라. 하늘로 오르고 싶은 대형 할인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자꾸 치솟으며 세력을 넓혀 가지만노점상은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땅이 꺼져라한숨만 쉬고 있지 않은가! - P174
나는 확신한다. 사람들이 장터를 멀리하고, 장터에 가지 않으면서부터, 장터 대신에 대형 할인점이나 백화점으로 향하기 시작한 뒤부터비로소 힘들고 외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도시는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노점상들을 받아들일공간도 여력도 없다. 물건 구매자들에게 편익과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골몰하는 도시에게 장터는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이고비생산적인 장소일 뿐이다. 세련된 도시는 세련되지 않은 장터를 싫어하는 것이다. 장터는 도시에게 버림받았다. - P190
그런 다툼은 멱살잡이 끝에 격해져서 우습지 않게 때로 파출소 같은 데로이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싱겁게 끝나기 마련이다. 이렇게 구경꾼마저 즐겁게 하는 장터에서삶이 힘들다거나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거기서 삶은 들뜨고, 흥청거리고, 질퍽거릴 뿐이다. - P199
장날만 되면 이 세상이 거기 다 있었다. - P225
한때 70년대 초반에 정부는 오일장을 없애거나 축소시키려고무모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새마을 운동에 저해가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당시 정부가 지적한 오일장의 문제점은 불공정 거래가 성행한다는 것, 지나친 소비를 조장한다는 것, 농민들의 관습적인 시장 이용으로 시간을 낭비하고그로 인해 농업 생산성이 저하된다는 것, 농촌에 퇴폐 풍조가 조성된다는 것 등이다. 한마디로 웃음거리밖에 안 되는 농촌 정책이었다. 그것은 전국의 들판에 있던 농민들의 휴식처인 ‘모정‘을그저 낮잠만 자는 곳으로 인식하고 막무가내 폐쇄하라고주문했던 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농촌 죽이기는 과거 지우기를 통해 결국은우리의 유구한 전통마저 지워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시골 장터도 그렇게 스러져 갔다. - P238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시장 한 귀퉁이에 놓인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노인의 측면 사진이다. 시장 골목길의 빛과 어둠,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고층 아파트와시장의 슬레이트 지붕, 노인의 검은 두루마기와 흰신발, 노인이 앉은 의자와 그 옆에 받침이 떨어져 나간 의자가알맞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 P251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빚 얘기 약장수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싯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 P255
신경림 시인의 시 「파장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명구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시다. 이 시가 처음 발표된 해가 1970년이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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