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의 어머니
김용택 지음, 황헌만 사진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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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 내 기억 속의 아버지...

나는 늘 지갑 속에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을 넣고 다닌다.

아부지 사진이다.

사진 속 아부지는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채, 늘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상반신만 담긴 작은 사진이다.

아부지는 1983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나는 열 살이었다. 함께 지낸 날들을 떠올리면 서로 이어지지 않는 몇 장면만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기억보다 사진 속에서 아부지를 더 자주 만난다.

가장 오래된 기억 가운데 하나는 국민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크레파스를 사 달라고 아부지에게 졸랐다가 작대기로 맞았다. 왜 그렇게까지 졸랐는지, 아부지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크레파스를 갖고 싶었던 마음과 맞아서 서러웠던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것이 아부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다.

하지만 따뜻한 기억도 하나 있다.

아부지와 함께 웅천 시내의 백마루라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던 날이다.

어디를 다녀오던 길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백마루는 훗날 유명 개그맨이 된 이의 집안에서 운영하던 중국집으로, 웅천에서는 짜장면이 맛있기로 이름난 곳이었다.

어린 내게도 그 집 짜장면은 기막히게 맛있었다. 아부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아부지와 마주 앉아 짜장면을 먹었던 모습은 희미하게나마 떠오른다.

백마루는 훗날 사라졌다. 그래도 그날 아부지와 함께 먹었던 짜장면 한 그릇만은 잊히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가다 보면 농사꾼으로 살아가던 아부지의 모습도 하나씩 떠오른다.

아부지는 농사꾼이셨다. 우리 집 논 가운데에는 바닥이 깊고 질어 농기계가 들어가지 못하는 수렁논이 있었다. 그 논만큼은 늘 소가 들어가 갈아야 했다. 아부지는 함께 농사를 짓던 그 소를 무척 아끼셨다.

어느 날 아부지가 소를 팔고 돌아와 우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왜 소를 팔게 되었는지, 어디에 팔았는지, 얼마를 받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오랫동안 함께 농사를 지은 소를 떠나보내고 눈물을 흘리시던 아부지의 모습은 지금도 남아 있다.

아부지에게 그 소는 값을 받고 넘기는 가축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농기계도 들어가지 못하는 수렁논에 함께 들어가 한 해 농사를 지어 온 일꾼이었고, 어쩌면 한 식구와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밭에 거름을 뿌리던 모습도 떠오른다.

그 시절에는 집에서 나온 인분도 그냥 버리지 않았다. 똥차에 퍼 담아 밭으로 가져가 거름으로 썼다. 지금 생각하면 냄새부터 견디기 어려웠을 텐데, 당시 농촌에서는 농사를 짓는 데 꼭 필요한 귀한 거름이었다.

아부지는 그 인분을 밭에 뿌리셨다. 소를 부려 수렁논을 갈고, 인분을 거름 삼아 밭을 일구며 한 해 농사를 준비하셨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농사꾼 아부지의 모습이다.

농사일이 없는 날이라고 아부지의 손이 쉬는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에는 마을 상수도를 놓거나 마을길을 콘크리트로 포장하는 일도 동네 사람들이 함께했다. 지금처럼 공사업체가 장비와 사람을 데리고 와서 모두 해 주던 때가 아니었다. 마을에 필요한 일이 생기면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땅을 파고, 자재를 나르고, 콘크리트를 쳤다.

아부지도 성동리 사람들과 어울려 그런 일을 하셨다. 농사를 짓고 집안을 돌보며,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길과 시설을 함께 만들어 가던 시절이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아부지가 몹시 우셨던 기억도 있다.

어린 나는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부지가 왜 그렇게 슬피 우시는지도 몰랐다. 그날 어디에서 소식을 들으셨는지, 주위에 누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부지가 많이 우셨다는 것만은 기억한다.

소를 팔고 돌아오신 날에도 우셨고, 박정희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우셨다. 아부지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아부지의 눈물은 두 장면이나 남아 있다.

내 기억에 남은 장면보다 사진 속에 남아 있는 아부지의 모습이 더 많다.

추석 무렵, 주산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하러 갔다가 찍은 사진이 있다.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가을 들길에서 아부지와 형, 사촌이 함께 서 있다.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고, 아부지 형제분들과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여 찍은 가족사진도 있다.

아부지는 일곱 남매의 맏이였다.

아부지 아래로 큰고모와 작은아버지들, 둘째고모, 막내아버지와 막내고모가 있었다. 그 가족사진에는 나도 있고, 아직 아기였던 여동생도 있다. 막내동생은 아직 태어나기 전이라 사진에 없다. 분명 나도 함께 있었던 날이지만, 그날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사진 속에는 한 집안의 맏이였던 아부지와 형제분들, 그리고 그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이제는 그 사진 속 사람들 가운데 여러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 아부지 형제분 가운데 살아 계신 분은 큰고모와 둘째 작은아버지, 막내아버지 세 분뿐이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지도 이제 얼추 스무 해가 되어 간다.

아부지가 포병으로 군 복무를 했다는 것도 사진으로 남아 있다.

사진에는 ‘장하다 우리의 포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군복을 입은 젊은 아부지는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병든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젊고 건강했던 한 사람의 시간이 그 사진 속에 멈춰 있다.

향토예비군복을 입고 동네 친구분들과 학고방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 아부지는 농사꾼이었고, 군 복무를 마친 예비군이었으며, 성동리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던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형과 아부지가 커다란 비행기 바퀴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김포공항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진 속에는 아부지와 형이 나란히 서 있고, 곁에는 사람보다 훨씬 커 보이는 비행기 바퀴가 있었다.

어린 나는 그 사진을 보면서 형이 엄청나게 부러웠다. 왜 형만 아부지와 그곳에 갔는지, 나는 왜 함께하지 못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아부지 곁에 서 있는 형과 커다란 비행기 바퀴가 그렇게 부러웠다.

이제 와 생각하면 비행기를 가까이에서 보지 못한 것보다 아부지와 함께 그 자리에 있지 못했다는 것이 더 아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부지가 병들고 나서는 부모님이 함께 기도원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 모습은 내가 직접 기억하는 장면이라기보다 사진 속에 남아 있는 기억이다. 사진 속 어머니의 품에는 아직 젖먹이였던 막내동생이 안겨 있었다. 병든 남편과 함께 길을 나서면서도 어린아이를 품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 사진에 남아 있다.

그 무렵 우리 가족에게는 아부지의 병을 고칠 만한 마땅한 방도가 없었다. 부모님은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고 싶으셨을 것이다.

집에서 굿을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머니는 아부지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붙잡고 싶으셨을 것이다. 남편을 살리고 어린 네 남매의 아버지를 지켜 내고 싶은 마음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부지는 끝내 병을 이겨 내지 못하셨다.

돌아가시던 날, 아부지는 사랑방에서 계속 토하셨다. 곁에서 어머니는 “혼자서 어떻게 새끼들과 살라고 먼저 가느냐”며 통곡하셨다.

내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아부지의 마지막 모습은 그것이다.

그때 나는 그날이 무엇을 뜻하는지 온전히 알지 못했다. 아부지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도, 그날 이후 어머니와 할머니가 어린 네 남매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만 사랑방에서 고통스러워하시던 아부지와, 무너져 내리듯 통곡하시던 어머니의 모습만 어린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둘째 작은아버지도 지금으로부터 스물여섯 해 전 위암에 걸리셨다. 그러나 다행히 치료를 받으셨고, 지금까지 우리 곁에 살아 계신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문득 아부지를 생각한다.

아부지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절에 아프셨더라면 어땠을까. 아부지도 병을 이겨 내고 지금까지 우리 곁에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아들인 나는 자꾸만 그런 생각을 한다.

사진을 오래 바라본다고 잊힌 시간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가끔 지갑 속 사진을 꺼내 아부지를 오래 바라본다.

사진 속 아부지는 오늘도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채,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함께한 기억이 너무 적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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