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
마이클 도허티 감독, 밀리 바비 브라운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지구를 구하겠다며 사람을 죽이는 인간들

— 영화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2019)를 보고, 괴물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신념과 희생

영화 소개

* 제목 :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Godzilla: King of the Monsters)
* 감독 : 마이클 도허티
* 개봉 : 2019년 5월 29일
* 장르 : SF, 액션, 모험
* 상영시간 : 132분
* 주요 출연 : 카일 챈들러(마크 러셀), 베라 파미가(엠마 러셀), 밀리 바비 브라운(매디슨 러셀), 와타나베 켄(이시로 세리자와), 찰스 댄스(앨런 조나), 장쯔이(일린 첸), 샐리 호킨스(비비안 그레이엄)
* 제작 특징 : 몬스터버스 세계관의 세 번째 영화이자 《고질라》(2014)의 후속작으로, 고질라와 모스라, 로단, 킹 기도라의 대결을 다룬 작품
* 특이사항 : 엔딩 크레딧에서 고질라와 콩이 대결하는 모습을 그린 고대 벽화가 등장하며, 쿠키 영상에서는 환경 테러리스트 앨런 조나가 킹 기도라의 잘린 머리를 매입해 후속작과의 연결을 암시

1.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다른 사람의 아들들을 죽인다

《콩: 스컬 아일랜드》를 보고 난 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를 봤다.

전편에서는 빌 랜다라는 인간이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겠다고 미지의 섬에 군인들을 끌고 들어가 죽게 만들더니, 이번에는 아예 인류를 희생시켜 지구를 구하겠다는 여자가 등장한다.

베라 파미가가 연기한 엠마 러셀 박사다.

201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고질라와 무토라는 괴수들이 싸우면서 대재앙이 발생한다. 엠마와 남편 마크는 그 과정에서 아들 앤드루를 잃는다. 고질라가 직접 아들을 죽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부부에게는 괴수들의 등장으로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그런데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두 사람의 태도가 전혀 다르다.

마크는 고질라를 증오한다. 괴수들을 연구하던 모나크에서도 떠난다. 반면 엠마는 괴수들을 계속 연구하면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이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타이탄이라 불리는 거대 생명체들은 자연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깨워 인간과 괴수가 공존하던 자연의 질서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 속 설정에서 이 주장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타이탄들이 자연환경을 회복시키는 능력을 지녔다는 설명이 나오고,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실제로 생태계가 복원되는 모습도 소개된다.

문제는 그 주장을 실행하는 방법이다.

엠마는 타이탄들을 깨우는 과정에서 일부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보면서도, 오르카를 이용하면 그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희생을 감수하겠다고 결정한 사람은 엠마 자신이었고, 실제로 희생될 사람들은 그런 결정에 동의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이론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엠마는 환경 테러리스트 앨런 조나와 손잡고, 괴수들과 소통하는 장치인 오르카를 이용해 잠들어 있던 타이탄들을 깨우는 계획에 참여한다. 처음에는 납치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테러리스트들과 협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더구나 딸 매디슨까지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인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문제가 있다.

엠마는 타이탄들을 깨우기 시작할 때 딸을 자기 곁에 두고 있었다. 아들을 잃은 뒤 딸에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쳤다는 대사도 나온다.

적어도 자기 딸은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이는 영화 속 행동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지만, 엠마가 나중에 보여주는 태도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인류 전체가 위험해지는 것은 감수하면서도 자기 자식만큼은 그 위험에서 지키려 했다는 것이다.

아들 하나를 잃은 슬픔이 그렇게 컸던 여자가, 지구를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부모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안겨주려 한다.

그런데 그 희생의 범위는 자신이 정한다.

나는 《스컬 아일랜드》의 랜다가 가장 큰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엠마를 보니 랜다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랜다는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려고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반면 엠마는 대규모 인명 피해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그 희생을 지구 회복의 수단으로 삼았다.

콩보다 랜다가 더 무서웠는데, 이번에는 랜다보다 엠마가 훨씬 더 무섭다.

2. 베라 파미가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엠마 역을 맡은 배우는 베라 파미가다.

《베이츠 모텔》의 노마 베이츠, 《오펀: 천사의 비밀》의 케이트 콜먼, 《컨저링》의 로레인 워런 등을 연기했던 배우다.

그녀가 맡았던 인물들이 모두 같은 성격은 아니다.

《베이츠 모텔》의 노마 베이츠는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집착과 통제로 이어지는 인물이다. 《오펀: 천사의 비밀》에서는 불안과 의심 속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어머니를 연기했고, 《컨저링》에서는 초자연적인 위험에 맞서는 로레인 워런을 연기했다.

선한 인물도 있고, 불안정한 인물도 있다. 그러나 모성애와 불안, 신념과 집착이 복잡하게 얽힌 인물을 연기할 때 보여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엠마 러셀도 그렇다.

그녀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 장면을 보면, 인류가 대규모로 희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태도는 확신에 차 있다. 과학적 근거를 내세우며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세리자와가 수십억 명의 목숨을 걸고 도박하는 일이라고 경고해도 엠마는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계획이 인류를 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이 더 무섭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과, 자신이 옳다고 굳게 믿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위험할까.

나는 후자가 더 두렵다.

베라 파미가는 이런 인물을 연기하는 데 참으로 잘 어울린다.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엠마의 지적인 모습과 그 안에 숨어 있는 무서운 집착이 이만큼 설득력 있게 표현되었을까 싶다.

그런데 결국 딸 매디슨이 엄마의 모순을 알아차린다.

엠마는 타이탄들을 하나씩 깨워 자연의 균형을 회복하려 했다. 그러나 기도라가 새로운 우두머리로 나서 다른 타이탄들을 일제히 불러내면서 계획은 통제를 벗어난다.

세상이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자 매디슨은 엄마에게 괴물이라고 말한다.

엄마는 지구를 구하겠다고 했는데, 정작 엄마가 시작한 일 때문에 사람들이 죽고 세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딸의 눈에도 엄마가 괴물로 보인 것이다.

3. 괴수들의 왕은 누구인가

괴수들의 싸움도 참으로 요란하다.

고질라, 모스라, 로단, 그리고 머리가 세 개 달린 킹 기도라까지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해 보이는 놈은 역시 기도라다.

고질라는 기도라에 상대도 않고, 잘린 머리까지 재생한다. 알고 보니 지구에서 태어난 생명체도 아니다. 우주에서 온 침입자로, 지구의 타이탄들을 지배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지구를 바꾸려는 존재다.

힘으로만 보면 고질라가 상대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기도라는 힘은 세지만 편이 별로 없다.

로단은 처음에는 기도라에게 덤비다가 패하자 곧바로 기도라의 꼬붕으로 들어간다. 나중에는 모스라와 싸우다가 가슴을 찔린다.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남았고, 기도라가 죽자 이번에는 고질라밑으로 첫빠따로 기어들어간다.

이놈은 누가 이기는지 보고 대장을 바꾸는 모양이다.

모스라는 고질라와 각별한 관계다. 영화에서는 둘의 관계를 두고 연인 사이냐는 농담까지 등장하지만, 실제 설정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공생 관계에 가깝다.

그런데 영화에서 가장 황당한 것은 인간의 무기가 괴수들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군이 산소 파괴자라는 신무기를 발사하자 고질라는 치명상을 입고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반면 기도라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는다.

이후 고질라가 회복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자, 세리자와 박사는 핵폭탄을 이용해 고질라를 되살릴 계획을 세운다.

핵폭탄을 맞으면 인간은 죽지만, 고질라는 방사선 에너지를 흡수해 오히려 강해진다는 것이다.

참으로 편리한 설정이다.

나중에는 모스라가 기도라의 공격을 대신 받아 희생되면서 자신의 에너지까지 고질라에게 전달한다.

고질라는 마침내 온몸에서 엄청난 열을 내뿜는 불덩어리 같은 존재가 된다. 그리고 기도라를 압도해 불태워 없애버린다.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인 핵폭탄이 괴수에게는 영양제가 되고, 다른 괴수의 희생까지 더해지자 거의 무적이 된다.

괴수영화니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이렇게 해결하고 나니 마지막 승부가 다소 허무하다.

그런데 그 핵폭탄을 직접 터뜨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 있다.

4. 새 시계를 살 시간이야

와타나베 켄이 연기한 이시로 세리자와 박사.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카츠모토를 연기했던 그 배우다.

그 영화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싸웠던 카츠모토가 떠오른다. 이번에도 와타나베 켄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인물을 연기한다.

하지만 세리자와의 신념은 엠마와 다르다.

그는 괴수들을 무조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해서 반드시 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인간과 괴수가 공존할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질라를 증오하는 마크에게도 그런 생각을 전한다.

고질라를 찾아 잠수함으로 이동하던 중 마크가 세리자와에게 시간을 묻는다.

세리자와가 대답한다.

“새 시계를 살 시간이야.”

마크는 그 말을 듣고 죽은 아들 앤드루가 좋아하던 농담을 떠올린다. 앤드루는 세리자와가 회중시계를 꺼낼 때마다 시간을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시계에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시간이다. 세리자와가 가지고 다니는 것은 그때 멈춘 아버지의 회중시계다. 전편 《고질라》에서 이미 소개된 물건이다.

원자폭탄이 남긴 비극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제는 고질라를 살리기 위해 핵폭탄을 사용하려 한다.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이다.

마크는 자신이 아들을 잃게 만든 존재를 구하러 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 그에게 세리자와가 말한다.

“상처를 준 악마와 화해하는 게 아픔을 잊는 유일한 길이지.”

이 말은 단순히 고질라를 구해야 한다는 설명이 아니다.

세리자와는 마크가 아들의 죽음에 대한 분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망하는 대상을 없애는 것만으로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마크가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고질라를 증오하는 마음만으로는 남아 있는 가족을 지킬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한다.

그리고 세리자와는 자신의 신념을 말로만 주장하지 않는다.

고질라가 회복하고 있는 해저의 은신처에 핵폭탄을 설치해야 하는데, 잠수함의 무기 발사 장치가 고장 나 직접 폭탄을 설치하고 작동시켜야 한다.

그곳의 열기와 방사선량을 생각하면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임무다.

세리자와는 자신이 가겠다고 나선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 알고 직접 선택한다.

핵폭탄을 작동시킨 세리자와는 마지막으로 고질라에게 다가간다.

거대한 몸에 손을 얹고 조용히 작별을 고한다.

“굳바이, 나의 오랜 친구.”

그리고 핵폭탄이 폭발한다.

세리자와는 죽고 고질라는 살아난다.

이 장면만큼은 그저 황당한 괴수영화라고 웃어넘길 수 없었다.

5. 괴수를 깨운 사람과 막아야 하는 사람

이번 영화에서도 군인들이 수없이 죽어 나간다.

하지만 《콩: 스컬 아일랜드》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편의 군인들은 지질조사를 지원한다는 명령을 받고 위험의 실체도 모른 채 섬에 들어갔다. 이번 영화의 군인들은 이미 발생한 재난에 대응하고, 시민들을 대피시키며, 괴수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출동한다.

임무의 성격부터 다르다.

따라서 단순히 군인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을 출동시킨 결정까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따져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실제로 어떤 판단이 내려졌고, 그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산소 파괴자다.

미군 지휘부는 고질라와 기도라를 제거하기 위해 새로운 무기의 사용을 결정한다. 세리자와는 고질라를 믿어야 한다며 반대하지만, 군 지휘부는 이미 미사일이 발사되었다고 통보한다.

결과는 실패다.

기도라는 살아남고, 오히려 기도라와 맞서던 고질라만 치명상을 입는다.

그 때문에 세리자와가 나중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고질라를 회복시켜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물론 당시 군 지휘부가 기도라의 정체와 무기의 효과를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괴수들의 공격으로 도시가 파괴되는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결과적으로 실패한 판단에 대한 검토까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군인들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되는 것과, 지휘부의 판단이 적절했는지는 구분해서 따져야 한다.

보스턴의 마지막 전투에서도 마찬가지다.

딸 매디슨은 엄마의 계획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르카를 가지고 탈출한다. 그리고 야구장에 설치된 음향시설을 이용해 타이탄들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기도라까지 그곳으로 끌어들이고 만다.

그러자 아버지 마크와 모나크 관계자들, 군인들이 매디슨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다.

물론 군인들의 임무는 매디슨 한 사람의 구조만이 아니었다. 괴수들의 공격을 막고, 시민들을 대피시키며, 재난을 수습하는 임무도 수행했다.

그러나 이 모든 사태의 출발점에는 엠마와 테러리스트들의 결정이 있었다.

엠마가 벌인 일을 수습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위험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스컬 아일랜드》에서 랜다의 탐사 때문에 군인들이 죽었듯, 이번에는 엠마가 불러온 재난을 막는 과정에서 군인들이 희생된다.

상황은 다르지만 한 가지는 같다.

위험을 만들어낸 사람과 그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괴수영화에서 군인들이 걸핏하면 죽어 나가는 것은 익숙한 장면이다. 그야말로 군인이 동네북이다.

하지만 군인들의 희생을 그저 전투 장면의 일부로 넘기기보다, 그들이 왜 그 위험 속에 들어가야 했는지를 따져볼 필요는 있다.

6. 생태계는 회복되고, 모나크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영화가 끝나갈 무렵, 고질라는 세리자와의 희생과 모스라의 도움으로 기도라를 물리친다.

살아남은 로단을 비롯한 여러 타이탄들이 고질라에게 복종한다.

이제 고질라가 진정한 괴수들의 왕이 된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타이탄들이 깨어난 뒤의 세상을 뜻밖의 모습으로 설명한다.

괴수들이 활동한 지역에서 생태계가 회복되고 자연환경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기사들을 통해 그런 변화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엠마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는 말인가.

적어도 영화 속 세계관에서는 타이탄들이 지구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엠마의 행동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이 회복된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도 된다는 판단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엠마는 일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오르카로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기도라가 다른 타이탄들을 지배하면서 그 계산은 무너졌다.

자신이 충분히 통제하지 못하는 기술을 이용해 인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여기서 모나크라는 조직의 역할도 생각하게 된다.

오르카는 괴수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이다. 마크와 엠마가 개발에 참여한 이 장치는 괴수들을 진정시키는 데도 사용되지만,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들어가자 거대한 재난을 일으키는 도구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위험한 기술은 누가 관리해야 하는가. 개발자가 조직의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사용하려 할 때, 이를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가.

물론 영화에서 모나크가 어떤 보안조치를 취했고, 실제로 어떤 관리상 잘못이 있었는지는 충분히 확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오르카를 둘러싼 사건은 위험한 기술을 가진 조직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스컬 아일랜드》에서는 랜다가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려고 탐사를 추진했다. 이번에는 엠마가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려고 오르카를 이용했다.

모두 모나크와 관계된 인물들이다.

물론 모나크의 모든 구성원을 이들과 같은 부류로 볼 수는 없다. 세리자와처럼 인류를 구하기 위해 희생한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지키려고 싸우다 죽은 사람들도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행동과 조직의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인의 잘못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그러한 일이 가능했던 과정과 기술의 관리체계를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자 이번에도 다음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엔딩 크레딧에서는 스컬 아일랜드와 콩에 관한 기록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고질라와 콩이 서로 맞서는 모습을 그린 고대 벽화가 나타난다. 두 거대한 괴수 아래에는 두 팔을 들어 올린 작은 인간들의 모습도 보인다.

《스컬 아일랜드》에서는 콩이 아직 성장 중인 존재였고, 이번 영화에서는 고질라가 기도라를 물리치고 괴수들의 왕이 되었다. 그런데 그 둘이 맞서는 그림이라니.

이번에는 괴수들의 왕과 스컬 아일랜드의 왕이 맞붙을 모양이다.

고대 벽화는 과거에도 고질라와 콩의 종족 사이에 대결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앞으로 벌어질 고질라와 콩의 대결 또한 암시한다.

그리고 크레딧이 모두 끝난 뒤의 쿠키 영상에서는 환경 테러리스트 앨런 조나가 멕시코에서 기도라의 잘린 머리를 사들인다.

죽은 줄 알았던 기도라의 머리가 또 다른 사건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이 머리는 후속작 《고질라 VS. 콩》에서 메카고질라와 연결된다.

괴수들의 싸움은 끝났지만, 인간들이 괴수를 이용하려는 시도는 끝나지 않은 셈이다.

7. 결자해지와 대의를 위한 희생

엠마도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오르카를 이용해 기도라를 유인하고 가족과 다른 사람들이 탈출할 시간을 벌어준다.

자신이 벌인 일을 자신이 수습하려 한 것이다. 결자해지다.

딸을 구하려는 마음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겠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마지막에는 행동을 바꾸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미 희생된 사람들의 죽음까지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리자와의 희생은 성격이 다르다. 모나크의 핵심 인물이었지만 엠마의 계획에 가담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일으키지 않은 재난을 막기 위해,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스스로 해저로 향했다.

대의를 위한 희생이다.

여기서 《라스트 사무라이》의 카츠모토가 떠오른다. 와타나베 켄이 연기한 두 인물은 서로 다른 시대와 상황에서 죽음을 맞았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위험을 감수하고 마지막까지 그 선택을 책임졌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에서 괴수들의 왕은 고질라였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진정한 영웅은 핵폭탄을 맞고 더욱 강해진 고질라가 아니다.

그 폭탄을 직접 작동시키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사람.

《라스트 사무라이》의 카츠모토, 와타나베 켄이 연기한 이시로 세리자와 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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