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스컬 아일랜드 (1disc)
조던 보트 로버츠 감독, 존 굿맨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콩보다 더 큰 괴물

— 영화 《콩: 스컬 아일랜드》(2017)를 보고, 애먼 사람들만 죽어 나가는 세상

영화 소개

* 제목 : 콩: 스컬 아일랜드(Kong: Skull Island)
* 감독 : 조던 보트로버츠
* 개봉 : 2017년
* 장르 : 액션, 모험, 판타지
* 상영시간 : 118분
* 주요 출연 : 톰 히들스턴(제임스 콘래드), 브리 라슨(메이슨 위버), 사무엘 L. 잭슨(프레스턴 패커드), 존 굿맨(빌 랜다), 존 C. 라일리(행크 말로)
* 제작 특징 : 몬스터버스 세계관의 두 번째 영화, 1973년을 배경으로 한 킹콩 이야기
* 특이사항 : 쿠키 영상에서 고질라, 모스라, 로단, 킹 기도라의 존재를 암시

1. 누가 이 일을 벌였는가

괴수영화 한 편을 봤다. 《콩: 스컬 아일랜드》. 거대한 고릴라가 등장하고, 헬기가 추락하고, 괴물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볼거리는 충분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콩보다 더 화가 나는 인간이 하나 있었다.

존 굿맨이 연기한 빌 랜다. 비밀 연구기관 모나크의 책임자다.

이 인간이야말로 영화에 등장하는 가장 큰 괴물이다.

1973년,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철수하던 무렵이다.

랜다는 위성으로 발견된 미지의 섬, 스컬 아일랜드에 탐사대를 보내려고 한다. 그곳에 거대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랜다는 상원의원을 찾아가 탐사에 대한 정치적 지원을 얻어내고 군대의 지원까지 요청한다. 소련이 먼저 섬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논리도 동원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어이가 없다. 상원의원 한 사람의 정치적 지원으로 탐사가 추진되고, 군 병력까지 동원되는 과정이 너무도 손쉽게 그려진다. 물론 실제로 군대에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별도의 장군이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 속 의사결정 과정은 참으로 허술하다.

더 큰 문제는 탐사의 진짜 목적이다.

겉으로는 지질조사다. 폭발물을 투하해 지하 구조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조사 목적도 있지만, 랜다가 그토록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거대 생명체의 존재였다.

그는 위험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함께 가는 사람들이 그 위험을 충분히 알고 판단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고 싶은 욕심, 남들이 믿지 않는 것을 자신이 밝혀내겠다는 집착. 그 목적을 위해 군인들과 조사원들이 동원된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정작 다른 사람들이다.

2. 집에 가고 싶었던 군인들

사무엘 L. 잭슨이 연기한 패커드 중령.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철수한다. 전쟁터에서 오랫동안 싸웠던 군인들이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패커드는 철수를 마냥 반기는 지휘관은 아니다. 전쟁이 이런 식으로 끝난다는 사실에 불만도 있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 임무가 주어진다.

미지의 섬에 과학자들을 데려다주라는 것이다.

패커드는 기꺼이 임무를 받아들인다. 전쟁이 끝나가는 마당에 마지막으로 부하들과 함께 비행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부하들의 사정은 다르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전쟁이 끝났으니 가족을 만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군인에게 상부의 명령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결국 패커드는 부하들을 데리고 섬으로 향한다.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평범한 지질조사 따위가 아니었다.

폭발물이 투하되자 거대한 콩이 나타난다. 헬기들이 추락하고 군인들이 죽어 나간다. 조금 전까지 살아 있던 전우들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콩의 입장에서는 자기 영역에 난데없이 침입한 인간들이 폭탄을 터뜨린 것이다. 그러니 침입자들을 공격하는 것이 잘못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죽어 나간 군인들은 무슨 죄인가.

그들에게 이 섬에 오고 싶으냐고 물어보기나 했던가.

3. 패커드의 복수는 비난받아야 하는가

패커드는 분노한다.

자신이 지휘하던 부하들이 죽었다. 함께 전쟁터를 누볐던 전우들이다. 마지막 임무만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거대한 괴물에게 죽임을 당했다.

패커드가 콩을 죽이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나중에는 콩이 섬을 지키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복수를 포기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부하들까지 위험에 빠뜨리며 끝까지 싸우려 한다. 이 대목은 지휘관으로서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다.

그렇다고 해서 패커드를 그저 복수에 눈먼 미치광이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는 애초에 자신들이 어떤 위험에 들어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과학자들을 수송하는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누군가의 거대 생명체 탐사에 동원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패커드가 느꼈을 분노와 배신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패커드가 처음부터 아무런 판단 없이 명령만 수행한 것은 아니다.

섬에 접근하던 중 거대한 폭풍을 마주하자, 랜드샛의 현장 책임자 니에베스는 위험을 이유로 탐사 중단을 주장한다. 하지만 랜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패커드에게 결정을 넘긴다. 결국 패커드는 헬기대를 이끌고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

패커드는 섬에 거대한 괴물이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위험을 감수하고 작전을 강행하는 결정에는 직접 참여했다.

여기서 패커드의 책임도 시작된다.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이라는 사실과 현장에서 부하들의 안전을 판단해야 하는 지휘관이라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분노가 향한 대상은 잘못되었다.

부하들을 그 섬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랜다였지만, 패커드는 눈앞에서 부하들을 죽인 콩을 적으로 삼았다.

최초의 원인을 제공한 인간과 직접적인 죽음을 가져온 괴물 사이에서, 패커드는 결국 괴물에게 복수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도 죽는다.

생각해 보면 랜다와 패커드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랜다는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고, 패커드는 부하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살아남은 부하들까지 위험에 빠뜨렸다. 물론 두 사람의 동기와 책임은 다르다. 패커드는 랜다가 벌인 일에 끌려 들어간 피해자이면서도, 현장에서는 부하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지휘관이었다. 부하들을 잃은 피해자라는 사실이 남은 부하들의 생명까지 걸고 복수할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 결국 패커드도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랜다와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참으로 비극적인 인물이다.

4. 가고 싶었던 사람과 가기 싫었던 사람

이 영화에서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사람들의 운명이다.

톰 히들스턴이 연기한 콘래드는 돈을 받고 탐사에 참가한다. 위험을 예상하고 보수를 다섯 배나 더 요구하고, 살아 돌아왔을 때 보너스까지 추가로 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브리 라슨이 연기한 사진기자 위버도 자신의 취재 목적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섬에 들어간다.

반면 현장 책임자 니에베스는 폭풍을 보고 탐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탐사는 강행된다.

결국 니에베스는 섬을 탈출하기 위해 강을 따라 이동하던 중, 날개 달린 괴생명체 무리에게 붙잡혀 공중에서 목숨을 잃는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군인들도 죽는다. 위험하다고 반대했던 사람도 죽는다.

반면 스스로 탐사를 선택한 콘래드와 위버는 살아남는다.

물론 위험을 감수하고 참가한 사람이 살아남았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들도 목숨을 걸고 살아남기 위해 싸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데 있다.

선택할 수 있었던 사람과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돈을 받고 위험을 감수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섬에 들어갔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저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정작 목숨을 잃은 사람들 가운데는 애초에 그 섬에 가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대목이었다.

5.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랜다도 결국 섬에서 죽는다. 그러니 그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위험을 알고 있었는가. 누가 탐사를 추진했는가. 누가 군대의 지원을 요청했는가. 그리고 그 위험을 함께 감수해야 할 사람들에게 무엇을 알려주었는가.

영화는 이런 질문에 충분히 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패커드는 콩에게 복수하려는 집착적인 군인으로, 콘래드와 위버는 콩을 이해하고 보호하려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는 사이 정작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었던 랜다와 모나크의 책임은 괴수들의 싸움 속에 묻혀버린다.

콩은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싸웠다. 인간들이 먼저 폭발물을 터뜨렸고, 그 소란으로 섬의 위험한 생명체들까지 깨어났다.

반면 랜다는 자신이 믿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험 속으로 데려갔다.

누가 더 괴물다운 행동을 했는가.

나는 콩보다 랜다가 훨씬 무서웠다.

영화 마지막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섬에 불시착해 오랫동안 고립되었던 말로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간다. 아내를 만나고, 그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아들도 만난다.

그 장면은 반갑고 따뜻하다.

그런데 문득 생각한다.

말로는 수십 년 만에 집으로 돌아갔지만, 이제 막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패커드의 부하들 가운데 일부는 영영 돌아가지 못했다.

전쟁터에서도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가는 마당에 누군가의 탐사 욕심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괴수영화에서 이런 것까지 따져야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애먼 군인들이 죽어 나갔는데, 누가 그들을 그 섬으로 보냈는지는 따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에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벌이는 사람이 있고, 그 일을 수습하느라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무 잘못도 없이 희생되는 사람도 있다.

《콩: 스컬 아일랜드》도 결국 그런 이야기로 보였다.

6. 사람은 죽어도 조직은 살아남는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쿠키 영상에서 살아남은 콘래드와 위버는 모나크 관계자들을 만난다. 그들은 다른 거대 생명체들의 존재를 보여준다. 고질라, 모스라, 로단, 킹 기도라. 스컬 아일랜드의 콩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괴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랜다는 죽었다. 패커드도 죽었다. 수많은 군인과 조사원들도 죽었다. 그런데 모나크는 여전히 건재하다.

섬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모나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오히려 새로운 거대 생명체들을 보여주며 다음 이야기를 준비한다.

모나크라는 조직 전체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는 영화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조직의 인물이 위험한 탐사를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조직은 다음 일을 준비한다.

하긴, 모나크까지 책임을 물어 해체해 버리면 다음 영화는 누가 만들겠는가.

영화 제작진 입장에서는 후속작을 위한 장치겠지만, 앞서 희생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참으로 씁쓸한 결말이다.

사람은 죽고 조직은 살아남는다. 일을 벌인 사람은 사라져도 그 조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사업을 준비한다.

어디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겠는가.

결국 이 영화에는 두 종류의 괴물이 등장한다.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괴물과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남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 인간.

영화의 제목은 《콩: 스컬 아일랜드》지만, 내가 본 가장 큰 괴물은 콩이 아니었다.

빌 랜다. 바로 그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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