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칼을 든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산티아고

—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고, 한 이름에 담긴 역사의 아이러니

책 소개

* 지은이 :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 브라질의 소설가
* 옮긴이 : 최정수
* 출판사 : 문학동네
* 출간일 : 2001년 12월 1일(한국어판)
* 분량 : 278쪽
* 장르 : 브라질 현대소설, 철학적 우화
* 작품 특징 : 스페인의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가 꿈에서 본 보물을 찾아 이집트 피라미드로 향하는 여정을 통해 꿈과 운명, 사랑과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소설
* 특이사항 : 1988년 포르투갈어로 원작 출간. 원제는 『O Alquimista』.

파울로 코엘료는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연금술사』 주인공의 이름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가져왔다고 밝혔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따온 이름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헤밍웨이 때문이라고 분명히 답했다.

그런데 이 이름에는 또 다른 역사가 있다.

산티아고(Santiago).

스페인의 수호성인 성 야고보의 이름이자, 이베리아반도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이 충돌했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나는 이 이름에 담긴 역사를 생각하며 『연금술사』를 다시 읽었다. 작가가 이름을 가져온 계기는 분명하지만, 소설 속 산티아고가 걸어가는 길에는 그보다 오래된 역사의 아이러니가 숨어 있었다.

1. 무어인을 죽이는 성인

스페인 역사에서 산티아고는 특별한 이름이다.

예수의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성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숭배되었다. 그리고 이베리아반도에서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과 싸우던 레콩키스타 시대에는 전쟁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성 야고보의 모습을 일컫는 별칭이 있다.

산티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ros).

말 그대로 ‘무어인을 죽이는 성 야고보’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844년 클라비호 전투에서 기독교 군대가 이슬람 군대에 밀리고 있을 때, 백마를 탄 성 야고보가 나타나 기독교군의 승리를 이끌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클라비호 전투 자체가 실제로 벌어지지 않은 것으로 본다. 백마를 탄 성 야고보의 출현 역시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이다. 당시 이베리아반도에서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의 관계도 전쟁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서로 동맹을 맺기도 했고, 교역도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이 전설은 오랫동안 스페인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백마를 타고 칼을 휘두르며 무어인들을 짓밟는 성 야고보의 모습은 그림과 조각으로 남았고, 그의 이름은 전쟁터에서 외치는 구호가 되었다.

레콩키스타 역시 기독교 세력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땅을 되찾는 국토회복운동이었지만, 그 땅에서 살아가던 이슬람 세력에게는 자신들의 지배와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기독교 세력에게 성 야고보는 자신들을 지켜주는 성인이었다. 그러나 그 칼끝의 반대편에 서 있던 이슬람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

누군가에게는 수호성인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들을 죽이는 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한쪽의 영웅이 다른 쪽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같은 인물을 두고도 역사의 기억은 이처럼 다르다.

2. 칼끝의 반대편에 선 산티아고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양을 치던 소년이다. 그는 꿈에서 본 보물을 찾아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의 탕헤르로 향한다.

과거에는 무어인을 몰아내는 전쟁의 상징이었던 이름을 가진 소년이, 이제는 그들이 살아가는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코엘료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소설 속에 직접 등장시킨다.

탕헤르의 술집에 들어간 산티아고는 사람들이 커다란 담뱃대를 돌려 피우는 모습을 본다. 낯선 풍습을 ‘이교도들의 풍습’이라고 생각하던 소년은 어린 시절 교회에서 보았던 산티아고 마타모로스의 형상을 떠올린다.

백마를 탄 성인이 칼을 빼 들고 있고, 그 발아래에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다. 소년은 속이 불편하고 몹시 외롭다고 느낀다.

이 장면은 뒤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장면과 연결된다.

사막을 건너 알파이윰 오아시스에 도착한 산티아고는 매의 움직임을 보고 오아시스에 닥칠 공격을 예감한다.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린 뒤, 어느 날 밤 백마를 탄 낯선 기마인과 마주친다.

검은 옷을 입은 기마인은 커다란 칼을 빼 들고 소년을 위협한다.

그 순간 산티아고는 다시 산티아고 마타모로스를 떠올린다.

백마를 타고 칼을 든 모습은 어린 시절 교회에서 보았던 성인의 형상과 닮았다. 다만 이번에는 입장이 뒤바뀌었다.

과거에는 무어인들이 그 칼 아래 있었지만, 지금은 스페인에서 온 산티아고 자신이 칼끝 앞에 서 있다.

칼을 든 자와 칼을 맞는 자.

그 위치가 바뀌자 같은 광경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나는 이 장면이 인상 깊었다. 역사 속에서 칼을 휘두르던 성인의 이름을 가진 소년이, 이제는 그 칼을 맞을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마인은 소년을 죽이지 않는다. 그는 바로 연금술사였고, 소년의 용기를 시험한 뒤 사막을 건너는 길을 이끄는 스승이 된다.

이것이 단순히 이름이 같아서 생긴 우연일까.

코엘료가 처음에 헤밍웨이에게서 이름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마타모로스의 형상을 두 차례나 등장시키고, 칼을 든 자와 칼을 맞는 자의 위치까지 뒤바꿔 놓은 것을 보면 그 역사적 의미를 모르고 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작가가 역사적 화해를 의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이 장면에서 오래된 적대의 역사를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문학적 반전을 읽었다.

3. 같은 바람, 다른 이야기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에는 레반터(Levanter)라는 바람이 등장한다.

지중해를 거쳐 안달루시아로 불어오는 이 바람은 과거 무어인들이 이베리아반도로 건너왔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산티아고에게는 사막의 냄새와 낯선 세계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이기도 하다.

소년은 그 바람을 맞으며 자신도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사막을 지나 이집트의 피라미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정작 보물은 그가 처음 꿈을 꾸었던 스페인의 낡은 교회에 묻혀 있었다.

소년이 찾아낸 금화와 보석, 황금 가면 등은 오래전에 잊힌 정복의 전리품이었다.

보물을 찾아 떠난 여행의 끝에서 다시 과거 정복의 흔적을 만난 셈이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고향으로 돌아온 산티아고에게 레반터가 다시 불어온다. 그런데 이번에 바람이 전하는 것은 정복의 소문도, 무어인의 침공에 대한 위협도 아니다.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파티마의 향기와 입맞춤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산티아고 마타모로스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과거 무어인들이 바다를 건너오던 일은 전쟁과 정복의 기억이었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에 같은 바다를 건너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소식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바람이 전하는 이야기는 달라졌다.

어쩌면 코엘료가 말하는 연금술은 이런 것이 아닐까. 납을 금으로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오랫동안 적대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을 이해와 사랑의 대상으로 바꾸는 일 말이다.

물론 이것은 작가가 직접 밝힌 의도가 아니라, 산티아고라는 이름의 역사를 통해 내가 읽어낸 소설의 또 다른 의미다.

그 역사의 한가운데에는 칼을 든 산티아고가 있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년이 그 땅으로 건너가 사람을 만나고, 지혜를 배우고, 사랑을 얻는다.

나는 『연금술사』를 단순히 꿈을 이루기 위한 자기계발의 이야기로만 읽고 싶지 않다.

칼을 든 산티아고와 길을 걷는 산티아고.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존재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전쟁의 기억을 품은 바람이 사랑하는 사람의 입맞춤을 전한다는 역설.

그것이 내가 이 소설에서 찾아낸 또 하나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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