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두 번째 기록 ㅣ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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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가 아니라 슬픔이었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두 번째 기록』 — 세스지

책 소개

* 지은이 : 세스지(背筋), 일본의 공포소설 작가
* 옮긴이 : 전선영
* 출판사 : 반타
* 출간일 : 2026년 6월 22일
* 분량 : 364쪽
* 장르 : 일본 공포소설, 모큐멘터리 호러
* 작품 특징 : 잡지 기사, 인터뷰, 인터넷 게시글, 목격담 등 다양한 기록을 엮어 긴키 지방의 특정 장소에서 발생한 괴이한 사건들을 추적하는 작품
* 특이사항 : 2025년 국내 출간된 동명 소설을 일부 개작한 작품. 기본 줄거리는 유지하면서 인물 설정과 주제, 결말 등을 변경한 일본 문고판을 『두 번째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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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무섭지 않았다.

산속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목소리,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 기괴한 행동을 하는 여자, 수상한 종교 집단과 저주를 부르는 스티커까지. 실제로 이런 일을 겪는다면 공포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활자로 읽는 이야기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산만했다.

1984년 소녀 실종사건에서 시작해 수련회 집단 히스테리, 인터넷 괴담, 아파트 투신사건, 미확인 생물, 기괴한 사진과 신흥 종교까지. 사건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하나의 이야기에 몰입할 만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끼어든다. 작가는 이 모든 사건에서 공통점을 찾아 하나의 장소로 연결하려는 것 같은데, 내게는 서로 다른 괴담을 이것저것 가져다 붙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반복되는 단서들이 조금씩 연결된다. 산과 댐, 신사와 도리이, 감과 신부, 그리고 마시라사마.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던 말들이 뒤에 가서 설명된다. 하지만 단서들이 연결된다고 해서 읽는 동안 끊겼던 몰입까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연결 관계를 이해하는 것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후반부에 이르러 그동안 괴담 속에 가려져 있던 한 가족의 비극이 드러났다.

사람들을 두렵게 했던 빨간 여자는 한때 남편과 두 자녀를 둔 어머니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종교에 빠져들었고, 그 과정에서 가족의 삶은 무너져 내렸다. 아키라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으며, 홀로 남은 세노는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들의 사연을 알고 나니 귀신의 정체나 괴담의 진상보다 그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 더 마음에 남았다. 그때까지 무섭지 않게만 읽었던 이야기에서 비로소 슬픔을 느꼈다.

결국, 가족인가.

가족을 갖고 싶었던 사람, 가족을 잃은 사람, 그리고 잃어버린 가족을 끝내 놓아주지 못하는 사람.

특히 빨간 여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었다. 열 살 때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3남 1녀, 네 남매를 홀로 책임지셨다. 어린 자식 넷을 키우며 살아오신 세월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럼에도 어머니는 힘을 잃지 않으셨고, 우리 네 남매를 끝까지 지켜주셨다.

그래서 빨간 여자의 이야기가 더욱 안타까웠다. 남편을 잃은 슬픔과 혼자 자식을 키워야 하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종교에 빠져들고, 결국 자식들마저 비극으로 몰아넣은 삶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만약 우리 어머니도 그랬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꽂이에 꽂혀 있던 최인호의 『가족』 두 권을 찾아 꺼냈다.

1권의 표지에는 아버지가 어린아이를 목말 태우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탄 아이도 함께 웃고 있다. 아이를 목말 태운 아버지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하다.

2권의 표지는 더욱 따뜻하다. 아버지가 아들의 뒤에서 두 팔로 가슴을 감싸 안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해맑게 웃고, 아버지는 그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다. 아이의 웃음이 아버지에게 전해진 것인지, 아버지의 행복이 아이에게 전해진 것인지 모를 만큼 두 사람의 표정이 밝다.

그래, 이게 가족의 모습이어야지.

아이를 어깨에 태워주고, 품에 꼭 안아주고, 함께 웃으며 살아가는 것. 자식에게 아버지의 어깨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고, 아버지의 품은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키라와 세노의 아버지도, 나의 아버지도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저 사진 속 아버지와 아이처럼 함께 웃고 살아갈 시간이 우리에게는 너무 짧았다. 아키라와 세노도 아버지의 빈자리를 안고 자라야 했고, 나 역시 열 살 이후로는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탈 수도,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도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떠난 뒤 남겨진 가족의 삶은 너무나 달랐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모두 채울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우리 네 남매가 살아갈 울타리는 끝까지 지켜주셨다. 반면 소설 속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뒤 종교에 의지했고, 가족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았다.

그 여자도 처음부터 그런 삶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키라와 세노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책 표지 속 아버지와 아들의 웃는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런 가족의 모습이었다면, 그 여자와 아키라, 세노도……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다.

결국 책을 덮고 내 마음에 남은 것은 귀신도, 저주도 아니었다. 열 살에 아버지를 잃은 우리 네 남매의 곁을 끝까지 지켜주신 어머니였다. 그 세월의 무게를 이제야 조금 헤아려 본다.

어머니의 은혜는 하늘같다.

식상하고 상투적인 말이지만, 지금 내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내게 이 책은 공포가 아니라 슬픔의 이야기였고,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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