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비행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8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간 비행』 ― 승리라는 무거운 짐,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을 읽고

(앞서 그림책으로 읽고 남긴 글에 이어, 이번에는 원작을 끝까지 읽은 감상을 적는다.)

1. 그림책에서 원작으로, 달라진 리비에르의 얼굴

처음 『야간 비행』을 접한 것은 그림책을 통해서였다. 밤하늘을 가르는 항공기, 악천후 속에서도 임무를 수행하려는 조종사, 그리고 그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는 책임자 리비에르.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게 다가왔다. 인간의 도전정신을 그린 작품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직의 목표를 위해 사람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지도자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그때 내가 주목했던 것은 리비에르의 냉혹함이었다. 야간 항공우편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조종사들에게 위험한 비행을 요구하는 모습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도전과 발전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사람의 목숨보다 앞설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생명의 가치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리비에르라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림책에서는 쉽게 지나쳤던 그의 고뇌와 외로움, 인간적인 연민,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일의 의미에 대한 깊은 질문들이 원작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는 단순히 성과를 위해 부하를 몰아붙이는 냉혹한 관리자는 아니었다. 자신이 내린 결정 때문에 누군가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계속 걸어가려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의 모든 판단에 동의하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책임자의 결정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2. 늙은 기술자의 자부심, 그리고 리비에르의 냉혹함

리비에르는 나이 든 직원을 해고한다. 그 노인은 아르헨티나 노선 항공기의 최초 조립에 참여했다는 자부심을 지닌 사람이었다. 자신이 몸담은 항공사업의 시작을 함께했고, 오랜 세월 그 일을 해왔다는 사실은 그에게 단순한 경력 이상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잡역부로 일하라는 요구가 내려진다. 노인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이 장면을 조직의 규율을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냉혹한 결정으로 읽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노인이 거부한 것은 단순히 다른 종류의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기술자로서 살아온 세월과 자부심이 있었다. 자신이 평생 바쳐온 일에서 밀려나는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그 일과 무관한 일을 맡으라는 요구가 얼마나 가혹하게 느껴졌을까.

물론 항공기 정비처럼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업무에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안전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경험이 아무리 풍부하더라도 업무를 조정해야 할 수 있다. 다만 이 노인에게 어떤 구체적인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직무 변경과 해고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는지는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능력이 부족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업무를 바꿔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위험한 업무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과 그 사람의 존엄까지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평생 쌓아온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게 하거나, 기술자로서의 자부심을 살릴 다른 역할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당시 조직의 여건에서 그런 선택이 가능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책임자라면 적어도 고민해 볼 만한 문제다.

리비에르에게 연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해고당한 노인의 얼굴과 손을 떠올린다. 해고를 취소한다면 그가 얼마나 기뻐할지 상상하고, 이미 작성한 공문을 찢어버릴까 망설인다. 그 역시 인간적인 온정과 우정 속에서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결국 조직의 규율을 선택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리비에르의 모순을 본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얻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자신이 이룩하려는 항공사업의 역사에 오랜 세월을 바친 노인이 지켜온 자부심 앞에서는 조직의 질서를 우선했다. 그 노인에게도 자신이 지켜온 세계가 있었다. 리비에르가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 했듯, 노인 역시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리비에르 자신도 언젠가는 늙지 않겠는가.

오늘은 자신이 다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고 해고를 결정하지만, 언젠가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누구보다 명석하고 강인하다고 믿어도 세월 앞에서는 예외일 수 없다.

나 역시 어느덧 오십을 넘겼다. 젊었을 때와 똑같은 체력과 판단력을 평생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이 어느 순간 새로운 기술과 시대의 변화 앞에서 충분하지 않게 느껴지는 날도 올지 모른다. 그때 누군가가 내게 이제 예전만큼 일을 잘하지 못하니 다른 일을 하라고 한다면, 나는 어떤 마음이 들까.

리비에르는 과연 자신이 그 노인의 처지가 되었을 때도 같은 판단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조직에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 역시 세월 앞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내린 판단이 내일 자신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신중하고 인간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을 이끄는 지도자가 정말 위대하려면,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드는 능력뿐 아니라 약해져 가는 사람의 존엄을 지켜주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리비에르의 고뇌를 이해한다. 그러나 고뇌했다고 해서 모든 결정이 옳다고 생각되는 것은 아니다.

3. 밤하늘의 조종사와 지상의 책임자

폭풍 속에서 길을 잃은 파비앵은 사방이 막히고 시야가 사라진 상황을 알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다. 이 장면에서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조종사의 용기가 아니라 그의 절박함이었다.

리비에르는 조종사들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믿었다. 미지의 세계에 맞서고, 어둠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신념은 당시 항공 개척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과 위험을 통제하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용감한 조종사라도 보이지 않는 폭풍을 의지만으로 없앨 수는 없다.

그런데 원작을 읽으며 리비에르에 대한 또 하나의 선입견이 깨졌다. 그는 조종사에게 무조건 용감하라고 명령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파비앵의 구조 요청을 놓치지 않도록 2,000km 이내의 모든 무선국에 지시를 내리고, 연락이 잡히면 30초 안에 보고받아 대피할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려 했다.

그 역시 파비앵을 살리려 애쓰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리비에르는 냉혹한 명령권자가 아니라, 자신이 보낸 조종사를 어떻게든 돌아오게 하려는 책임자로 보였다.

그렇지만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처음의 운항 판단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위험이 발생한 뒤 얼마나 열심히 대응했는가와 그 위험을 사전에 얼마나 신중하게 판단했는가는 서로 다른 문제다.

나는 오랫동안 도로와 교량의 설계와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공사에는 언제나 일정과 예산, 품질과 안전이라는 여러 과제가 뒤따른다. 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가볍게 다룰 수 없지만, 사람의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하천을 횡단하는 가교의 복공판 철거 시점을 두고 고민했던 일이 있다. 집중호우가 예보된 상황에서 나는 안전을 위해 철거를 서둘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하루라도 더 작업하기를 원했다. 감리단과 시공사의 의견을 듣고 여러 상황을 고려한 끝에, 하루만 더 작업한 뒤 철거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다행히 비는 예보보다 늦게 내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내 결정이 옳았다는 증거로 삼지 않는다. 운이 따랐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그 결정에는 분명 내 책임이 있었다. 감리단과 시공사의 의견을 반영했지만, 최종적으로 판단한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다. 만약 예보대로 집중호우가 쏟아졌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나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었다는 이유로 내 결정을 정당화할 수 있었을까.

그 경험을 떠올리면 리비에르의 고뇌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책임자는 때로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그 결정이 반드시 옳았던 것도 아니며, 결과가 나빴다고 해서 모든 판단이 잘못이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결정을 내리던 당시 무엇을 알고 있었고, 어떤 위험을 검토했으며,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가이다.

4. 다리 하나가 사람의 목숨보다 값질 수 있는가

작품에는 교량 건설 현장의 엔지니어가 리비에르에게 던지는 질문이 나온다. 다리 하나가 한 사람의 으깨진 얼굴만큼 가치가 있느냐는 물음이다.

도로와 교량을 만들어 온 내게 이 질문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다리는 강을 건너기 위해 놓는다. 도로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기 위해 만든다. 그것이 가져오는 편익은 분명 크다. 수많은 사람이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고, 지역의 삶도 달라진다.

그러나 그 모든 편익을 합친다 해도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한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결론에 이를 수는 없다.

리비에르는 인간의 생명이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그보다 더 값진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다. 실제로 인간은 자유와 정의, 사랑과 신념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걸기도 한다. 생명을 보존하는 것만이 인간이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과,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조종사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위험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지휘자의 안전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발전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이 희생되는 일을 단순히 불가피한 죽음이라고만 부르고 싶지 않다. 위험을 알면서도 충분한 예방 조치 없이 사람을 내보낸 결정이 있었다면, 그 죽음에는 누군가의 선택과 책임이 개입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생각할 때 때로 ‘죽음’보다 ‘죽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물론 비극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가 고의로 사람을 죽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불가피한 희생’이나 ‘발전을 위한 대가’라는 말이 인간의 결정과 책임을 가리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발전은 죽임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이것은 내가 『야간 비행』을 끝까지 읽고도 바꾸지 않은 생각이다.

5. 결혼한 지 6주,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료들

파비앵의 실종이 현실로 다가오자 로비노는 리비에르에게 그가 결혼한 지 겨우 6주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리비에르는 일을 계속하라고 대답한다.

참으로 냉정한 장면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대답을 단순한 무정함으로만 읽지 않는다. 리비에르가 파비앵의 처지를 모르거나 그의 아내를 불쌍히 여기지 않아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슬픔에 압도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의 대답일 수도 있다.

그는 가능한 구조 조치를 취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이제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남아 있는 항공우편 업무가 중단되지 않도록 지시한다.

작품은 죽은 자의 집에서도 질서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이 얼마나 비정하면서도 현실적인가. 누군가에게는 삶 전체가 무너지는 비극이지만, 세상의 일은 계속된다. 비행기는 다시 떠나고, 우편물은 다른 항공기로 옮겨지며,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파비앵의 동료들이 그의 실종을 확인하는 장면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은 많은 말을 나누지 않는다. 깊은 동지애에는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침묵이 오히려 긴 애도보다 더 슬프게 느껴졌다.

사람은 조직에서 하나의 직책을 맡고, 하나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그 직책과 업무가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파비앵은 조종사이면서 누군가의 남편이고, 동료이며, 저마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인간이다.

업무는 다른 사람이 이어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삶까지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조직은 한 사람의 빈자리를 메우며 계속 움직일 수 있지만, 그 사람을 사랑했던 이들의 빈자리까지 메워줄 수는 없다.

6. 1931년의 승리, 그리고 그 무거운 짐

리비에르는 인간이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온 일과 소중한 추억들이 갑자기 의미를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한다. 파비앵이 사라진 뒤, 그가 일궈놓은 세계는 바람 없는 바다에 멈춰 선 고장 난 범선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움직이던 항공기와 무전, 명령과 보고가 어느 순간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에게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사건인 동시에, 삶을 지탱하던 의미와 움직임이 사라지는 경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생각한다. 목적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할 수 있지만, 행위는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고.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생텍쥐페리가 말하려는 바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은 결과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만들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다하는 과정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비에르가 지키려 했던 것은 단순히 항공우편 사업의 성공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이 두려움과 상실 앞에서도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을 지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야간 비행』은 1931년에 발표되었다. 항공기가 오늘날처럼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기 전, 인간이 밤하늘과 악천후에 맞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던 시대의 작품이다. 그 시대의 조종사들에게 비행은 단순한 직업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개척자였고, 위험에 맞서는 용기와 사명감은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졌다. 생텍쥐페리 자신도 항공우편 조종사로서 그 세계를 경험했으니, 리비에르의 신념과 조종사들의 용기를 깊이 이해하고 작품 속에 담아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그 시대를 오늘날의 안전관리 기준만으로 평가한다면 작품의 중요한 의미를 놓칠 수 있다. 그러나 시대를 이해하는 것과 그 시대의 모든 판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다르다. 당시에도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질문은 존재했다. 교량 건설 현장의 엔지니어가 던진 물음이 바로 그 증거다.

그리고 마침내 소설의 마지막에서 생텍쥐페리는 리비에르를 위대한 승리자라고 부른다. 다만 그가 짊어진 승리는 무거운 짐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파비앵은 돌아오지 않았는데, 어째서 리비에르가 승리자란 말인가. 그러나 이제는 그 승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은 알겠다. 그것은 한 번의 비행에 성공했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이 실패와 상실, 두려움과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리비에르는 파비앵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고통을 안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다음 비행을 준비하고, 조직의 움직임을 이어간다. 그에게는 그것이 삶을 지키는 방식이다.

나는 그런 리비에르의 강인함을 존중한다. 그의 고독과 책임감도 이해한다. 그러나 행위가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이 그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희생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인간의 삶에 있다면, 그 일을 계속하는 방식 역시 인간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그가 승리자라는 작가의 선언을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그의 승리에는 파비앵의 실종이라는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가 위대하다면, 그 과정에서 사라진 한 사람의 삶 역시 그만큼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

같은 밤을 두고 누군가는 승리를 말하지만,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리비에르에게 그날 밤은 패배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순간일지 몰라도, 파비앵의 아내에게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밤이다. 한 사람의 승리가 다른 사람의 상실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패배를 딛고 다시 출발하는 용기는 존중할 만하다. 그러나 그 출발이 또 다른 파비앵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책임까지 다할 때, 그 승리는 더욱 온전해질 것이다.

7. 우리가 완수해야 할 진정한 임무

『야간 비행』을 덮고 나니 리비에르에 대한 생각은 달라졌지만, 사람의 생명을 대하는 나의 기준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은 소중하다. 새로운 길을 열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의지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하지만 그 모든 도전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도로와 교량을 만드는 일을 오래 해온 나는 이 소설을 덮으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우리가 길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사람이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긴다면, 우리는 목적과 수단을 뒤바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일을 반드시 지금, 반드시 이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리비에르는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믿는 용기였고, 생텍쥐페리가 그에게 부여한 위대함이었다.

나는 거기에 또 다른 용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멈추지 않는 것만이 용기는 아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것도 용기다.

이것은 도전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더 오래,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사람을 지키자는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어떤 일을 추진할 때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만 묻지 않고,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어떤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지도 함께 묻고 싶다. 현장의 우려가 단순한 나약함으로 취급되지 않도록 귀를 기울이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정과 성과보다 안전을 먼저 판단하는 책임자가 되고 싶다.

또한 지금은 능력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가 오랜 세월 쌓아온 경험과 자부심을 함부로 가볍게 여기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의 배려가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패배 속에서도 다시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위대함을 그렸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읽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와 함께 살아서 돌아오는 일의 중요성을 생각했다.

그 비행을 시작한 사람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까지가 우리가 완수해야 할 임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