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 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생애와 연보

1900년
6월 29일, 프랑스의 리옹에서 백작인 아버지 장 마리 드 생텍쥐페리와 프로방스 지역 명문가 집안 출신 어머니 마리 브와이에 드 퐁스콜롬브 사이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출생. 위로는 마리-마들렌(1897년 출생), 시몬(1898년 출생)이 태어났으며, 아래로는 프랑수아와 가브리엘이 태어남. 귀족 출신 집안에서 다섯 형제 자매들과 풍족한 생활을 보냄.

1904년
부친인 장 드 생-텍쥐페리, 열차 사고로 사망. 유년시절은 숙모의 저택인 생 모리스 드레망에서 보냄.

1909년(9세)
가족과 함께 르망으로 이사, 10월에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생 크루아 학교에 입학.

1912년(12세)
앙베리외 비행장에서 유명한 베르린과 우연한 기회에 비행기를 처음 타 보게 됨. 키엘뵈프 선생에게 처음으로 바이올린 교습을 받음.

1914년(14세)
동생 프랑수아와 함께 빌프랑슈 쉬르 손 시의 몽그레 중학교 입학. 그러나 첫 학기가 끝나자, 다시 스위스의 프리브루에 있는, 마리아니스트 수도회에서 경영하는 중고등학교로 전학해 이곳에서 1917년까지 수학함.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어머니는 앙베리외 역에서 부상병 간호에 종사함.

1917년(17세)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함. 여름에 동생 프랑수아 사망, 이 사건은 비극적인 결말로 장식된 <어린 왕자>의 모티브가 됨. 10월, 파리의 보쉬에 고등학교로 전학. 후에는 해군사관학교 입학 준비를 위해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에서 공부함.

1919년(19세)
해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서 필기는 합격했으나 구술시험에서 낙방함. 생 루이 고등학교를 거쳐 미술학교 건축과 입학.

1921년(21세)
4월, 군에 입대. 스트라스부르 제2전투기 연대 배속. 6월, 모로코 라바트의 제37비행 연대에 배속. 병역을 마치고 그곳에서 조종사 자격증 취득함.

1922년(22세)
1월, 남프랑스의 이스토르로 견습 조종사로 파견됨 . 육군항공대 조종병이 되고 하사로 진급. 예비사관 후보생으로 아보르에 가서 예비 소위로 임관.

1923년(23세)
부르제의 제33비행 연대에 배속됨. 그러나 비행장에서 최초의 사고를 당하여 두개골 골절. 3월, 예비역 중위로 제대.(공군에 머무르려고 했으나 약혼녀 쪽의 반대로 이루지 못함.) 곧 약혼 취소. 부르통 타일 제조 회사의 제품 검사원으로 일하면서 시와 소설 습작에 몰두함.

1924년(24세)
소렐 자동차 회사에 입사. 2개월 연수 뒤에 몽뤼송 지역의 대표 판매원 됨. 18개월 동안에 판 차는 트럭 한 대가 전부였고, 주로 글 쓰는 일에 전념함.

1925년(25세)
사촌 누이 이본 드 레트랑주의 살롱에서 장 프레보, 지드 등을 알게 됨. 장 프레보는 잡지 <은선(銀船)> 지의 편집장으로 생텍쥐페리가 작품을 발표하는데 많은 도움을 줌.

1926년(26세)
<은선> 지 4월호에 단편소설 <비행사> 발표. 이는 그의 처녀작인 <남방 우편기>의 초고가 됨. 봄에 자동차 회사에 사표를 내고 프랑스 항공 회사에 입사함. 10월, 보쉬에 고등학교의 스승인 쉬두르 신부가 추천해 줌으로써 라테코에르가 설립한 항공 회사의 총지배인 레포 드 마시미를 알게 됨. 함께 일할 것을 권유받음. 그 무렵은 디디에 도라를 중심으로 정기 항공로가 개발되고 있을 때였고, 그는 조종사로 일할 것을 원했지만, 정비사로 채용됨.

1927년(27세)
툴루즈-카사블랑카 간, 다카르-카사블랑카 간 정기 항공기편의 조종사로 우편비행 담당함. 10월, 중간 기착지인 스페인령 사하라 쥐비 곶의 비행장 책임자로 임명되어 파견 근무. 18개월 동안 스페인 및 불귀순 무어인과의 외교적 임무 수행과 동료 비행사들의 비행사고 구조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함. <남방 우편기> 집필.

1929년(29세)
3월에 <남방 우편기> 원고를 가지고 귀국함. 사촌 누이의 살롱에서 알게 된 작가들을 통해 출판사와 연결됨. 이때 인연을 맺은 출판사 사장 가스통 갈리마르와 7편의 소설 계약. <남방 우편기> 출간. 동료 메르모와 기요메에게서 함께 일하자는 요청을 받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감. 여기서 아르헨티나의 아에로포스탈 항공 회사 지배인 직책 맡음. <야간 비행> 집필 시작.

1930년(30세)
6월 13일, 안데스 산맥에서 행방불명된 가장 친한 동료 기요메를 찾기 위해 5일간 수색 비행. 쥐비에서의 공로로 레종 도뇌르 훈장 받음. 11월, 친구 소개로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스페인 여성 콘수엘로 순신과 알게 됨. <야간 비행> 시나리오 썼으나 상연되지는 못함.

1931년(31세)
앙드레 지드의 서문을 붙여 <야간 비행> 출간. 3월, 콘수엘로 순신과 결혼. 5월, 카사블랑카, 포르에티엔 간을 야간 비행하여 프랑스와 남미를 연결하는 항로 개척. 12월,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 문학상 수상. <야간 비행> 영역판으로 출간되는 한편, 미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짐.

1933년(33세)
전 항공사가 통폐합 되면서 <에어 프랑스> 항공 회사 창립. 이 회사에 입사하지 못하고 라테코에르 비행기 제조 회사의 시험 비행사로 근무. 11월, 상 라파엘 만에서 수상 비행기 시험 비행 중 두 번째 사고를 당함.

1934년(34세)
4월, <에어 프랑스>에 입사. 유럽의 여러 나라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 등으로 다니며 연수 및 강연 여행을 함. 7월, 사이공으로 출장 비행을 하다가 메콩 강 하류에 불시착, 부상당함. 이 무렵 에딩턴, 존스 등과 같은 과학자의 저서를 읽음. 착륙 장치를 개발하여 특허를 받는 등 그 후에도 발명을 계속하여 12개의 특허를 받음.

1935년(35세)
4월, <파리 스와르> 지의 특파원으로 모스크바에 파견되어 1개월간 체류하면서 르포 기사 연재함. 후에 <인생의 의미>로 출간됨. 12월, 기관사 프레보와 함께 파리와 사이공 간의 비행 기록 경신 수립을 위해 장거리 비행 시도,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 닷새 동안의 고투 끝에 한 대상(隊商)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됨.(이때의 체험이 <인간의 대지>와 <어머니께 보내는 글>에 기술됨.)

1936년(36세)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온 그는 8월,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기 위해 <랭트랑지장> 지 특파원으로 바르셀로나에 파견. 동료 메르모가 남대서양에서 순직함.

1937년(37세)
<파리 스와르> 지 특파원으로 마드리드에 파견되어 에스파냐 내란 취재. 9월, ‘시문’ 기로 뉴욕에서 아메리카 남단, 태르 드 푸에고 섬 간의 비행 항로 개척. <마리안> 지에 <아르헨티나의 왕녀> 발표함.

1938년(38세)
2월 15일, 뉴욕과 남미 대륙 최남단까지의 장거리 시험 비행 도중 과테말라 공항에서 이륙 중에 속도 상실로 추락, 수일 동안 의식 불명이 될 정도로 중상을 당함. 3월, 귀국 후 스위스와 남프랑스 등지에서 요양. <인간의 대지> 집필. 아내와 별거 시작. 7월, 뉴욕으로 건너가 영문 번역자에게 <인간의 대지> 원고 제1부 넘김.

1939년(39세)
1월, 프랑스 국민훈장 수여. 2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인간의 대지> 출간. 4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소설대상 수상. 미국에서는 <바람과 모래와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고, 뉴욕에서는 ‘이 달의 양서’로 선정됨. 뉴욕에서 다시 귀국,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다시 대위로 소집되어, 오르콩트 2-33 정찰 비행단에 배속. 전투 조종사로 복무하면서 <어린 왕자> 초안 집필.

1940년(40세)
5월 22일, 아라스 지구 정찰 비행. 6월 20일, 보르도에서 알제리까지 기재를 수송하는 임무 수행. 8월 5일, 동원 해제. 마르세유로 돌아와 아게에서 <성채> 집필 시작. 11월 27일, 친구 앙리 기요메가 비행기에서 격추당하여 사망.

1941년(41세)
1월, 뉴욕에 도착해 정착함. 캘리포니아에서 외과수술 받음. 프랑스인의 분열에 대해 고뇌하면서 <전시 조종사> 집필.

1942년(42세)
2월 12일, <전시 조종사>가 <아라스 지구 비행>이라는 제목으로 뉴욕에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됨. 독일 점령 당국에서 판매금지 조치함. 5월, 캐나다로 강연 여행. 11월 6일,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상륙작전 성공으로, 다시 알제리의 2-33 비행단에 단 5회만 출격한다는 조건으로 복귀함. <프랑스인에게 고한다>라는 글을 써서 발표함으로써 프랑스인의 단결 호소. 11월, <전시 조종사> 파리에서 출판됨.

1943년(43세)
2월, <어느 볼모에게 보내는 편지> 뉴욕에서 출간. 4월, <어린 왕자> 출간. 5월, 알제리 우지다 기지에서 미군 사령관 휘하의 2-33 정찰 비행대에 복귀, 라이트닝 P38형기에 배속됨. 6월, 소령으로 승진. 7월, 조국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사진 촬영 정찰 비행으로 출격했다가 아게 상공에서 착륙에 실패하는 등 두 번의 사고 당함. 8월, 이것을 빌미로 미군 당국은 연령 제한을 들어(35세) 그를 예비역으로 편입시킴. 원대 복귀를 기다리며 우울한 나날 속에서 <성채> 집필.

1944년(44세)
5월, 원대 복귀가 실현되어, 제31폭격 비행대대 사령관 샤생 대령이 그의 부대 배속을 승인함. 2-33 정찰대대에 복귀. 6월과 7월 사이에 9차례에 걸친 프랑스 본토를 고공 촬영하기 위해 정찰 비행. 7월 31일 오전 8시 30분, 코르시카 섬 보르고 기지를 휘발유 6시간 분량으로 이륙. 오후 2시 30분, 그가 몰고 떠난 라이트닝 P38형기 행방불명됨. 독일 전투기에 의해 지중해에서 격추된 것으로 추측. 11월 3일, 프랑스 정부 수훈장 추서. 1935년부터 씌어진 작가 수첩 <사색 노트> 출간.

이 외에도 파리의 NRF 출판사에서 펴낸 <성채>와 1923년부터 1931년까지 쓴 서한집 <젊은이에게 보내는 편지>, <어머니에게 보내는 글>이 출판되었는데 <어머니에게 보내는 글>은 생텍쥐페리의 사후에 그의 어머니 J. M. de Saint Exupery가 서문을 달아 출판했음. 1940년부터 1944년까지 집필한 수상집 <인생의 의미>가 유고집으로 출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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