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참 예쁘더라. 근데 루카스, 동생은 이 일을 한지얼마나 됐어?" "한 6년? 근데 그 아이 본래 직업은 생물학자야." 엥? 생물학자? 언뜻 들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취미로 참여하는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완성도가 높은 공연이었다. 생물학자와 서커스 단원이란 직업이 잘 어울리지 않기에 놀랍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자기 직업 외에 예술적인 일을 하나씩 더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직업이 두개인 셈이지. 나도 마찬가지고……………." 도대체 이 변죽 좋고 호들갑스러운 남자는 무슨 일을 하는것일까? "난 평소엔 여행사 직원이지만 또 다른 직업은 어릿광대지." - P44
"지금도 가끔 극장에서 공연을 하지만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고 싶어.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거든. 언젠가 여행을 하며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정말 자지러질 정도로 재미난 공연을 해주는 게 내 꿈이지." 예술이 생활의 일부가 된다는 게 어디 생각처럼 쉬운 일인가. 본래의 직업 외에 예술과 관련된 또 하나의 직업을 갖는다는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평생 꿈만 꾸는 일이기 쉬운 것을. 하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현실과 꿈의 다리를 동시에 건너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우리는 할 거 다하고 살 거 다 사고도 남는 시간과 돈이 있어야만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우리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 아닌가. - P45
그때는 여자들의 환심을 사는 일을 무용담이라도 되듯 늘어놓는 친구가 한심하기도 하고, 여자 입장에서 듣자니 불쾌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 다녀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가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세계 최고의 거짓말쟁이로 알려져 있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과 대화를 하더라도그 사람의 말을 100% 믿는 것은 모험과 같은 일이다. 허풍이 심한 말을 하고 듣는 것에 익숙한 아르헨티나인들은 소위 ‘뻥‘이 섞인 말을 자기도 모르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P53
그렇다면 사람들의 말이나 물건에만 가짜가 많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성형외과가 더 성행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아르헨티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처음에는 너무나 고혹적으로 아름다운 아르헨티나여자들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는데 알고 보니 그중에는 자연 미인이 드물다는 사실. 타고난 외모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왜 그러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실제 모습보다 과장을 해서라도 남 앞에서 으스대기 좋아하는 그들의 문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 P55
‘이름도 바꾸고 성(性)도 바꾸고, 종교도 바꾸고 국적도 바꾸고 마누라도 바꿀지언정 내가 지지하는 축구팀만큼은 절대바꿀 수 없다.‘ 아르헨티나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축구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자존심이고 열정의 대명사이며,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마다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준 절대적인존재다. 누구나 어린 시절 공을 발에 달고 살다시피 할 정도로축구는 삶의 일부이고 그러다 보니 세상에 널리 알려진 뛰어난선수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 P58
오브레로에서 저녁을 먹는 중에도 누군가 선창을 하면 식당 안의 사람들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일어나 보카 주니어스의 응원가를 함께 불렸다. 경기장에서의 열기가 그대로 이어지며 마치 밤새도록 경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축구가 아무리 국민을 기만하는 도구로 쓰였다고 할지언정과연 축구 없는 아르헨티나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 P71
Tangoen Buenos Aires 격정적인 몸짓 속에 숨겨진 슬프고도 아름다운 존재, 탱고, 서로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짧은 사랑 속에서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며 ‘너와 나‘의 영혼은 ‘우리‘로 다시 태어난다. 그들은 그렇게 슬픔을 딛고 일어서고 있었다. - P73
탱고는 열정적인 춤,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깊은 사연과 역사, 몇 마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뜨거운 메시지를 담고 있다. 탱고, 스페인어로는 ‘땅고‘라고 발음되는 이 단어는 원래 아프리카 언어로 ‘여러 사람이 모여 춤 추는 장소‘라는 뜻을 지니고있다. 그런가 하면 ‘tango‘의 라틴어 어원인 ‘tangere‘에는 ‘만지다. 가까이 다가서다‘, ‘마음을 움직이다‘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여러 의미를 지닌 어원처럼 탱고는 그 기원도 복잡한 편이다. - P75
노예로 끌려왔던 아프리카인들의 칸돔베와 쿠바 선원들에게서 전해진 아바네라, 아르헨티나 내륙 지방의 목동인 가우초들의 노래 플라야다스가 라 보카 항에 들어와 그곳에 정착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음악과 어우러지고 스페인 플라맹코의 영향이 가미되면서 음악으로서의 탱고가 만들어졌다. 그런가 하면 춤으로서의 탱고의 기원은 항구 주변 창녀촌에서 몸을 팔던 여인들이 추던 춤이다. 가우초들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기들끼리 추던 춤이다. 혹은 남자들이 중세 시대 기사들처럼 힘을 겨루고 서열을 정하기 위해 행하던 의식이다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 P75
"탱고는 아르헨티나,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모두 탱고 가수나 다름없지요. 우리는 탱고 음악을 들으며 태어나고 자랐고,탱고를 통해 사랑을 구하거나 이별의 아픔을 달래고, 탱고를 부르며 인생을 추억하는 사람들이지요. 실은 우리 할아버지께서가르델과 특별한 친분이 있던 분이기에 간혹 내가 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할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가 생기곤 한답니다." - P80
누구보다 뛰어난 가수였기 때문도 아니라고노인은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아름다운 탱고 선율 속에 담긴 노랫말들로 아르헨티나인들의 아픈 상처와 한(恨)을 달래준 사람이었고, 그래서 가르델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나이팅게일이라고도 불린다면서..... - P81
이미 오래전 그는 가고 없지만 그가 불렀던 노래들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며 가슴을 울리는 한, 카를로스 가르델은영원히 불멸의 존재로 남지 않을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조국의 암울한 현실과 인간으로서의 영원한 고뇌들을 끌어안고 그의 노래에 의지하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둘도 없는 벗이 되어주면서 말이다. - P81
"만일 그렇지 않다 해도 괜찮아요. 탱고의 가사와 멜로디속에는 사랑과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지. 그렇기 때문에 가슴으로 느낄 수 있으면 되는 거야. 탱고는 영혼으로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지만 역시 영혼으로 듣는 노래이거든." - P89
그것은 바로 카를로스 가르델이 불러 더욱 유명해진 곡, ‘나의 사랑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
‘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꽃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거리. 내 삶이 있고 내가 죽을 곳, 이것만은 기억하렴. 너를 추억할 때면, 내 마음의 고통은 모두 사라진단다. 사랑하는 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너를 다시 보는 날은 더 이상 가슴 깊은 곳의 슬픔이나 아픔도, 과거의 망각도 존재하지 않으리…………..? - P91
탱고는 그저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거지. 사실 그게다야. 그래서 기본이 더욱 중요해. 누군가와 함께 걷기 위해선 우선 혼자 잘 걸을 수 있어야 하지. 마치 인생이 그런 것처럼. - P-1
뇌쇄적인 여인들이 가슴에 불을 지르듯 정열적으로 춤을 추는모습에 반한 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탱고를 배우기로 결심한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겉으로 볼 때는 그저 화려하게만 보이던 그 춤이 실은 이민자의후손으로서 아르헨티나인들이 느끼는 모국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달래주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노라와의 탱고 수업은 그러한 나의기대는 물론 미처 생각지 못했던 탱고와 사랑, 탱고와 인생에 대한 그녀만의 철학을 함께 배워가며 마치 심리치료를 받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드는 시간이었다. - P99
카페를 나서 길을 걷는데 저녁 내내 씩씩한 표정을 짓고 있던 레인의 얼굴에 쓸쓸함이 살짝 드리워지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밤마다 택시를 타고 찾아다니는 것은 숨겨진 맛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반쪽을 대신해 허전한 마음을 채워줄 그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탱고 슈즈를 늘 가방 안에 넣어 들고 다니는 미국인여기자 레인, 지금 이 순간에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딘가에서탱고에, 20분의 사랑에 영혼을 의지하고 밤을 지새고 있을 그녀는, 그리고 또 나는 과연 숙명적이고 영원한 일생일대의 사랑을언제 어디에서 만나게 될까.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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