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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8월
평점 :
『시계관의 살인』 독서감상보고서
― 조작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의 ‘악몽’이 만든 시계관
1. 작품 개요
가. 작가
ㅇ 아야츠지 유키토(綾辻行人): 1960년 일본 교토시 출생. 1987년 『십각관의 살인』으로 데뷔하며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 잡음
나. 작품 성격
ㅇ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기괴한 저택을 무대로 하는 ‘관 시리즈’의 대표작
ㅇ 외부와 단절된 구관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과 구관 밖에서 사건의 과거와 시계관의 비밀을 추적하는 시마다의 이야기가 병행되는 본격 미스터리
ㅇ 비밀통로를 이용한 공간 트릭과 구관의 시계가 실제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간 트릭을 결합하여 알리바이를 만들어낸 작품
2. 줄거리 ― 9년 만에 되살아난 복수와 시계관의 연쇄살인
가. 유령 취재를 위해 다시 찾은 시계관
기담사에서 발행하는 오컬트 잡지 『CHAOS』는 소녀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는 시계관을 취재하기 위해 특별기획을 마련한다.
가와미나미와 부편집장 고바야카와, 카메라맨 우츠미, W대학 초상현상연구회 학생들, 영매 미코토 등이 취재팀을 이루어 시계관 구관에서 며칠 동안 머물며 교령회를 열기로 한다.
그런데 초상현상연구회 학생들 가운데 사키코·가와라자키·우류·후쿠니시는 약 9년 전에도 이곳을 찾았던 인물들이었다. 당시 이들은 숲에서 장난삼아 함정을 팠고, 그 함정은 훗날 시계관을 둘러싼 비극의 출발점이 된다.
나. 9년 전의 비극과 다시 살아난 사요코의 원한
그 함정에 실제로 빠진 사람은 도와가 아니라 사요코의 딸 교코였다. 교코는 결국 죽음에 이르고, 이후 사요코는 남편까지 잃으면서 가족을 잃는 비극을 겪는다.
그러나 사요코는 당시 학생들에게 곧바로 복수하지 않는다. 사건은 세월 속에 묻히는 듯했다.
그로부터 9년 뒤, 당시의 학생들이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시계관을 찾아와 유령을 조사하고 구관에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사요코에게는 잊으려 했던 딸과 남편의 죽음, 그리고 그 비극의 출발점이었던 과거가 다시 눈앞에 나타난 셈이었다.
이 재회가 묻어두었던 원한을 되살리고 결국 복수를 실행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사요코는 미코토와 고바야카와, 잡지사의 취재기획을 이용하여 학생들과 관련자들이 자연스럽게 구관에 들어가도록 판을 마련한다.
다. ‘도와의 복수’로 위장된 과거
사요코는 자신의 딸 교코가 함정에 빠졌다는 진실을 그대로 밝히지 않는다.
대신 학생들에게 도와가 그들이 만든 함정에 빠져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고, 아름다움에 집착하던 도와가 그 충격으로 결국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함정이라는 사건 자체는 실제였지만 함정의 피해자를 교코에서 도와로 바꾸어 과거를 날조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구관에서 살인이 시작되고 현장에 ‘너희들이 죽였다’라는 문구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현재의 연쇄살인을 ‘도와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실제 복수의 출발점은 도와가 아니라 사요코가 잃은 딸 교코와 가족의 비극에 있었다.
라. 구관에서 시작된 연쇄살인
첫날 밤 교령회가 열린 뒤 영매 미코토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검은 영의와 가면을 쓴 살인자에 의한 연쇄살인이 시작된다.
외부와 차단된 구관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살인자가 나타났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처음에는 내부 사람 가운데 범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사건이 이어지면서 각 방의 대형 시계 가운데 일부가 숨겨진 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진자의 방에는 외부로 이어지는 비밀통로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따라서 범인은 구관 내부를 자유롭게 이동할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몰래 드나들 수 있었다.
살인 역시 모두 같은 이유로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9년 전 사건 관계자들은 본래의 복수 대상이었지만, 후쿠니시를 잘못 알아보고 와타나베가 살해되는 오인살해가 발생하고, 우츠미·고즈에·고바야카와 등 복수와 직접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희생되면서 사건은 애초의 복수 범위를 훨씬 넘어선 참극으로 확대된다.
마. 「침묵의 여신」으로 시마다를 끌어들이다
한편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에 관심을 가진 시시야 가도미, 즉 시마다 기요시도 시계관을 찾아온다.
처음에는 구관 출입을 거절당하지만, 사요코는 이후 고가 미치노리가 남긴 「침묵의 여신」이라는 시의 수수께끼를 풀어달라며 시마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시에는 1992년 8월 5일, ‘시간의 끝’, ‘침묵의 여신의 단 한 번의 노랫소리’ 등이 암시되어 있었고, 시마다는 이를 풀기 위해 고가 미치노리와 도와의 과거, 9년 동안 울리지 않는 종, 시계탑의 구조 등을 조사한다.
그러나 「침묵의 여신」 자체는 사요코의 살인동기와 직접 관계가 없다.
사요코에게 이 시는 시마다를 자기 주변에 붙잡아두기 위한 미끼이기도 했다. 사건이 벌어졌다고 알려진 시각에 시마다와 함께 행동함으로써, 시마다 자신을 자신의 알리바이 증인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바. 탐정을 알리바이 증인으로 이용한 시간 트릭
사요코가 범행에 이용한 결정적인 장치는 원래부터 시계관에 존재하던 1.2배 빠른 시간이었다.
구관의 모든 시계는 외부의 정상적인 시간보다 빠르게 움직였고, 외부에서 50분이 흐르면 구관에서는 60분이 흐른다. 구관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시각을 실제 시간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범행시각 자체를 잘못 인식한다.
사요코는 이 시간차와 외부 비밀통로를 이용해 실제로는 다른 시각에 구관에 들어가 살인을 저지르고 다시 밖으로 빠져나온다. 그리고 구관 사람들이 ‘살인이 벌어진 시각’이라고 생각하는 외부의 같은 시각에는 시마다와 함께 행동한다.
그 결과 시마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요코의 가장 강력한 알리바이 증인이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요코가 알리바이를 굳히기 위해 끌어들인 바로 그 시마다가 「침묵의 여신」과 고가 미치노리의 과거, 시계관의 구조를 추적하면서 구관과 외부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결국 범행의 핵심인 시간 트릭을 간파한다.
결국 사요코가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이용한 고가의 시와 시마다의 존재가 역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출발점이 된다.
3. 시계관 ―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속이는 건축
가. 시계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닌 건축 장치
시계관에는 곳곳에 수많은 시계가 설치되어 있다. 처음에는 저택의 이름에 걸맞은 기괴한 장식처럼 보이지만 사건이 진행되면서 시계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건축 구조 자체를 구성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각 방 벽면에 설치된 대형 시계 가운데 일부는 숨겨진 문의 일부로 만들어져 있었다. 문짝의 경계를 타일의 이음새와 정확히 겹쳐놓아 평소에는 벽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며, 이를 통해 방과 방 사이를 들키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특히 가와미나미가 벽면의 대형 시계 바늘 위치가 이전과 조금 달라졌다는 사실을 눈치채면서 비밀문의 존재에 접근하는 과정은 나카무라 세이지의 공간 트릭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나. 진자의 방과 외부 연결통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것으로 보였던 구관에는 진자의 방을 통해 밖으로 이어지는 비밀통로가 존재하였다.
따라서 처음부터 ‘구관 안에 있는 사람 가운데 살인자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는 구조였다. 외부의 인물 역시 통로의 존재만 알고 있다면 구관을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외부통로의 존재는 사요코가 초반부터 진자의 방에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경고했던 장면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4. 작품의 핵심 트릭 ― 구관의 시간을 조작하다
『시계관의 살인』의 가장 중요한 트릭은 구관 내부의 시계가 실제 시간보다 빠르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50분이 흐르는 동안 구관에서는 60분이 흐르도록 모든 시계를 조정해 놓았다. 즉 구관의 시계는 약 1.2배 빠르게 움직인다.
따라서 이것은 분명한 시간 조작이다.
실제 세계의 시간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구관 사람들이 시간을 확인하는 유일한 수단인 시계를 조작함으로써 구관 안에서는 외부와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구관에 들어간 사람들은 자신의 손목시계 등을 반입하지 않았고 외부의 자연광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수많은 시계가 모두 같은 시간을 보여주면 그것을 실제 시간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요코는 이 시간차와 외부통로를 결합하여 실제 범행시각과 구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범행시각을 다르게 만들고, 외부에서는 시마다와 함께 행동하면서 알리바이를 만들어낸다.
이 작품의 핵심은 단순히 시계를 몇 시간 앞당겨 놓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속도 자체를 다르게 설정했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부와 구관의 시간차가 계속 벌어지기 때문에 범행이 이어질수록 사요코의 알리바이는 더욱 강해진다.
5. 반복되는 졸림과 수면제 가설
구관에 들어간 사람들은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졸려하거나 정신이 몽롱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는 수많은 시계가 내는 반복적인 소리나 폐쇄된 공간이 사람들의 정신상태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처음 가지고 들어온 식수에 수면제를 섞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을 세웠다.
범인 또는 협력자가 물통에 미리 약물을 넣어두었다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다시 약을 넣으러 다닐 필요가 없고,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물을 마시면서 졸림과 판단력 저하가 반복되는 것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는 구관의 시간이 실제보다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
6. 피해자들의 죽음과 범행 목적을 추적하다
가. 도와 사건과 복수설
사건 초반 ‘너희들이 죽였다’라는 문구와 9년 전 사건이 드러나면서 당시 도와의 죽음에 관련된 학생들을 향한 복수라는 가설을 세웠다.
실제로 당시 사건과 관계된 사키코·가와라자키·우류·후쿠니시 등이 현재의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가설은 상당 부분 힘을 얻었다.
그러나 와타나베·우츠미·고즈에·고바야카와 등 과거 사건과 직접 관계없는 사람들이 계속 죽으면서 단순한 ‘도와의 복수’만으로는 전체 살인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나. 와타나베의 오인살해
처음에는 와타나베가 왜 살해되었는지가 큰 의문이었다.
이후 후쿠니시 료타의 원래 성이 와타나베였고, 범인이 ‘와타나베 료타’를 죽이려다가 와타나베 료스케를 잘못 죽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와타나베의 죽음은 오인살해로 설명된다.
이 사실은 한때 흔들렸던 ‘과거 사건 관계자들이 본래의 표적’이라는 가설을 다시 강화하였다.
다. 우츠미 살해에 대한 추리의 변화
카메라맨 우츠미가 살해되었을 때 처음 떠올린 것은 카메라에 촬영시각이 기록되기 때문에 범인의 시간 트릭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이었다.
그러나 작품의 배경이 1989년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필름카메라가 오늘날의 디지털카메라처럼 촬영시각을 자동으로 기록하고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처음 세웠던 시간기록 가설에 의문을 품고, 다음으로 우츠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인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장면을 사진에 담은 것이 아닌가 하는 쪽으로 추리를 옮겨갔다.
그러나 진상이 밝혀진 뒤에는 우츠미의 카메라가 실제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결국 처음에 의심했던 ‘카메라와 시간 트릭의 관계’가 그의 죽음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음이 드러난다.
라. 복수에서 무차별적인 살인으로
사요코의 범행은 딸의 죽음에 대한 복수에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범위를 넘어선다.
원래 복수 대상이 아닌 사람들이 오인살해를 당하거나, 범행 과정에서 정체와 트릭을 감추기 위해 제거되는 일이 계속되면서 결국 시계관은 복수의 장소가 아니라 수많은 무관한 사람까지 희생되는 참극의 무대가 된다.
사요코에게 어떤 비극적인 과거가 있었더라도 이 지점에서 그녀의 범행에는 어떠한 정당성도 부여하기 어렵다.
마. 살해순서와 살해동기
1) 고묘지 미코토
ㅇ 사요코가 복수의 판을 만들면서 영매로 이용한 인물
ㅇ 교령회를 성립시키고 취재팀이 구관에 들어가도록 하는 과정에 이용된 뒤, 계획의 일부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제거됨
2) 가타기 사키코
ㅇ 9년 전 시계관을 찾았던 네 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복수 대상이 됨
ㅇ 실제 함정을 직접 판 사람은 아니었지만 사요코는 당시의 네 사람을 하나의 집단으로 보아 책임을 물음
3) 와타나베 료스케
ㅇ 본래 복수 대상이 아니었던 인물
ㅇ 후쿠니시 료타의 옛 성이 ‘와타나베’였고 이름까지 비슷하여, 사요코가 그를 후쿠니시로 잘못 알고 살해한 오인살해의 희생자
4) 우츠미 아쓰시
ㅇ 카메라맨으로서 사용하던 카메라의 시각기록 기능 때문에 구관의 시간과 실제 시간이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날 위험이 있었음
ㅇ 시간 트릭이 발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살해되고 카메라와 필름까지 파괴됨
5) 가와라자키 준이치
ㅇ 가타기 사키코와 마찬가지로 9년 전 시계관을 찾았던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복수 대상이 됨
ㅇ 살해 직전 범인의 가면을 벗겨 사요코의 얼굴까지 확인함
6) 니이미 고즈에
ㅇ 진자의 방을 통해 외부로 빠져나가 비밀통로의 존재를 알아냄
ㅇ 구관에서는 한밤중이어야 할 시각에 밖이 대낮이라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면서 구관과 외부의 시간차를 알아차렸기 때문에 제거됨
7) 우류 미사오
ㅇ 후쿠니시 료타와 함께 실제로 함정을 팠던 인물로, 교코의 죽음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 복수 대상 가운데 한 사람
ㅇ 사요코의 본래 복수 목적에 가장 직접적으로 해당하는 희생자
8) 고바야카와 시게오
ㅇ 본래 9년 전 사건과는 관계가 없는 인물
ㅇ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구관 내부에 설치된 도청장치를 발견하는 등 사요코의 범행 수법에 접근하면서 제거됨
9) 노노미야 야스나리
ㅇ 9년 전 사건의 복수 대상과는 전혀 관계없는 인물
ㅇ 사요코가 비밀통로를 이용해 이동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면서 정체와 통로의 비밀이 드러날 위험이 생겨 살해됨
결국 희생자들을 순서대로 살펴보면 사요코의 범행이 어떻게 변해가는지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처음에는 9년 전 교코의 죽음에 대한 복수에서 시작하지만, 오인살해가 발생하고 시간 트릭이나 비밀통로를 알아차린 사람, 범인의 정체를 확인한 사람까지 차례로 제거하면서 복수는 점차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살인으로 확대된다.
7. 유키야 ― 끝까지 1순위로 의심한 인물
가. 가장 강력해 보였던 동기
유키야는 어릴 때부터 도와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한다.
도와가 죽은 이후에도 그녀가 자신의 곁에서 말을 건다고 믿는 모습을 보이고, 9년 전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알고 있는 듯한 반응까지 나타낸다.
따라서 도와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복수할 동기를 가진 인물로 가장 강하게 의심하였다.
나. ‘료타’라는 이름에 대한 반응
시마다가 후쿠니시를 소개하면서 ‘후쿠니시 료타’라고 말하자 유키야는 ‘료타’라는 이름에 순간적으로 불안한 반응을 보인다.
이 장면을 통해 유키야가 과거 사건 관계자들의 이름이나 얼굴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더욱 강해졌다.
다. 너무 쉽게 범인을 알려주는 것은 아닌가
그럼에도 유키야를 그대로 범인이라고 확정하기에는 오히려 너무 많은 단서가 유키야를 가리킨다는 점이 걸렸다.
도와에 대한 집착, 복수동기, 과거 사람들과의 관계, 행방이 묘연해지는 행동까지 차례로 제시되면서 오히려
“아야츠지 유키토가 이렇게 쉽게 범인을 알려줄 리가 있는가.”
라는 의심이 계속 따라다녔다.
따라서 유키야를 가장 유력한 1순위 후보로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작가가 의도적으로 독자의 시선을 유키야에게 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경계심 역시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8. 사요코 ― 비밀통로가 밝혀지기 전부터 시작된 의심
사요코에 대한 의심은 비밀통로의 실체가 밝혀지고 난 뒤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다.
초반부터 사요코가 진자의 방에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유독 강하게 경고하는 장면이 눈에 걸렸다.
아직 그 방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왜 저 방만 저렇게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겼고, 사요코가 시계관 내부의 어떤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이후 진자의 방과 외부를 연결하는 통로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그 의심은
‘사요코가 통로를 알고 있으며 범인을 도와주는 공범이 아닌가.’
라는 가설로 구체화되었다.
당시에는 사요코를 직접 살인범이라기보다 시계관의 비밀을 알고 범인을 돕는 공범 쪽으로 보았다.
9. 고가 미치노리의 ‘악몽’을 사요코가 살인의 도구로 이용하다
고가 미치노리와 「침묵의 여신」은 사요코의 복수동기를 직접 설명하는 장치는 아니다.
그러나 왜 시계관에 외부와 다른 시간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사요코가 어떻게 그 시간을 범행에 이용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가 미치노리는 딸 도와에게 강하게 집착하였고, 도와와 시간에 대한 자신의 강박을 시계관이라는 건축물 속에 구현하였다.
나카무라 세이지는 이러한 미치노리의 환상과 집착을 수많은 시계와 종, 시계탑이 결합된 하나의 거대한 건축장치로 만들어낸다.
시계관 내부의 시계가 실제보다 1.2배 빠르게 움직이는 것 역시 사요코가 살인을 위해 새로 만든 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애초에 고가 미치노리의 계획에 따라 시계관에 존재하던 구조였다.
고가는 자신이 설정한 시계관의 독자적인 시간 속에서 특정한 순간이 오면 시계탑이 최후를 맞도록 설계하였다.
사요코는 바로 고가 미치노리가 자신의 ‘악몽’ 속에서 만들어 놓은 비정상적인 시간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복수에 이용한 것이다.
여기에서 시마다가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을 설명하며 사용한 ‘악몽’이라는 말도 비로소 작품의 사건과 연결된다.
시마다의 해석에 따르면 나카무라 세이지는 의뢰인이 품고 있던 고독한 환상과 악몽을 건축이라는 현실의 공간으로 증폭시키는 인물이다.
시계관은 고가 미치노리의 도와에 대한 집착과 시간에 대한 광기가 건물로 현실화된 공간이며, 사요코는 고가가 만들어놓은 그 악몽의 공간을 자신의 복수극을 실행하는 무대로 이용한 것이다.
또한 「침묵의 여신」은 사요코의 살인과 직접 관계가 없지만 사건에서 역설적인 역할을 한다.
사요코는 이 시의 수수께끼를 풀어달라며 시마다를 끌어들여 자신의 곁에 붙잡아 두고, 그를 알리바이 증인으로 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시의 수수께끼를 추적하던 시마다가 오히려 고가가 시계관에 만들어놓은 시간의 비밀을 발견하고, 결국 사요코가 이용한 1.2배 시간 트릭을 간파한다.
사요코가 완전범죄를 위해 끌어들인 탐정이 결국 자신의 범행을 무너뜨린 것이다.
10. 가장 큰 문제점 ― “너, 너는……” : 미스리드가 아니라 독자를 사기친 단서
가. 문제의 장면
가와라자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면 쓴 살인자와 목숨을 건 몸싸움을 벌인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상대방의 가면을 벗기고 그 아래 나타난 얼굴을 처음 확인한다. 그리고
“너, 너는…….”
“왜…….”
라고 말한다.
진범이 사요코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보면 이 장면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나는 이것을 단순한 미스리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격 미스터리의 미스리드는 사실에 부합하는 단서를 제시하되 독자가 그것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장면은 실제 그 상황에서 하기 어려운 말을 하게 함으로써 독자에게 잘못된 관계정보를 제공한다. 말 그대로 독자를 사기친 것이나 다름없다.
나. ‘가면을 벗긴 순간’이라는 상황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와라자키가 처음부터 사요코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면을 벗기기 전까지 가와라자키는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사요코와 얼굴을 마주한 상태에서 언쟁을 벌이고 거친 말을 주고받다가 흥분하여 상대를 ‘너’라고 낮춰 부른 상황도 아니다.
정체를 모르는 살인자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가면을 벗긴 바로 그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안면이 있는 사요코의 얼굴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너’라는 반응은 더욱 부자연스럽다.
다. 사요코를 보고 ‘너’라고 할 수 있는가
가와라자키와 사요코는 2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며 특별히 친밀한 관계도 아니다.
그런 인물이 살인자의 가면 아래에서 갑자기 나타났다면
“당신이…… 왜…….”
“사요코 씨가…… 왜…….”
“왜 아줌마가…….”
같은 반응이 훨씬 자연스럽다.
반대로 우류·후쿠니시·고즈에처럼 가와라자키와 비슷한 또래이거나 가까운 관계의 인물이 나타났다면
“너…… 왜 네가…….”
라는 말은 매우 자연스럽다.
유키야 역시 가와라자키가 시계관에 온 그날 이미 만나 일면식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표현이다.
라. 독자의 오독이 아니라 정상적인 추리
실제로 나는 이 ‘너’라는 한마디를 중요한 단서로 받아들였다.
가와라자키가 ‘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추려 고즈에·우류·후쿠니시 등을 검토했고, 유키야 역시 가와라자키와 일면식이 있다는 점에서 범인 후보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것은 독자가 제멋대로 상상한 것이 아니다.
작가가 직접 제시한 호칭이라는 관계정보를 이용한 정상적인 추리였다.
마. 차라리 이 장면을 넣지 않았어야 함
가와라자키가 범인의 얼굴을 확인하고 경악한 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쓰러졌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또는 마지막 말을 단순히
“왜…….”
에서 끝냈어도 충분했다.
그랬다면 ‘가와라자키는 범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만 독자에게 제공하면서 범인의 연령이나 친밀관계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작가는 굳이 ‘너’라는 관계정보를 넣었다.
바. 미스리드가 아니라 사기성 단서
잘 만든 미스리드는 진상이 밝혀진 뒤 독자가
“작가는 사실을 보여줬는데 내가 잘못 읽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장면은 진상을 알고 다시 읽어도
“저 상황에서 사요코를 보고 누가 ‘너’라고 하겠는가.”
라는 의문이 먼저 든다.
독자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니다. 작가가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세워놓은 것이다.
따라서 가와라자키의 마지막 대사는 영리한 미스리드가 아니라, 범인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독자에게 거짓 관계정보를 제공한 ‘사기성 단서’이며, 이 부분만큼은 작가가 독자를 사기쳤다고 평가한다.
11. 옥에 티 ― 수면제가 섞인 물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문제
범인이 구관 사람들이 마실 물에 수면제를 섞어놓았다는 설정은 시간 트릭을 보조하는 장치로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의문은 남는다.
여러 사람이 며칠 동안 반복해서 마시는 물에 약물이 들어 있었다면 어느 한 사람이라도
“물맛이 조금 이상하다.”
“평소 물하고 다르다.”
“냄새가 묘하다.”
같은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물 자체는 맛과 향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성분이 섞이면 미세한 변화가 오히려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누구도 물 자체에 이상을 느끼지 않는다.
약물의 종류와 농도, 물에 섞였을 때 맛과 냄새가 어느 정도 변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다면 이 부분은 작품의 정교한 시간 트릭과 비교해 현실성이 떨어지는 ‘옥에 티’로 볼 수 있다.
12. 독서 중 주요 추리의 흐름
가. 초반
ㅇ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건물인 만큼 어딘가에 비밀통로가 있을 것으로 예상
ㅇ 밀실처럼 보이는 평면도 자체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
나. 시계
ㅇ 작품에서 시계와 시간이 지나치게 반복되는 점을 의심
ㅇ 구관 안에서 사람들이 보고 있는 시간이 실제 시간과 다를 가능성 제기
다. 수면제
ㅇ 사람들이 계속 졸리고 몽롱해하는 점을 통해 처음에는 시계소리 등의 영향을 의심
ㅇ 이후 처음 반입한 식수에 수면제가 섞여 있을 가능성으로 추리 전환
라. 우츠미의 카메라
ㅇ 처음에는 카메라에 남은 촬영시각이 시간 트릭을 깨뜨릴 가능성을 의심
ㅇ 작품의 배경이 1989년이라는 점에서 당시 필름카메라로 촬영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지 의문 제기
ㅇ 이후 우츠미가 범인에게 불리한 장면을 촬영했을 가능성으로 추리 전환
ㅇ 최종적으로는 카메라의 시각기록 기능이 실제 시간과 구관 시간의 차이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 살해 이유와 연결됨
마. 범인 추리
ㅇ 가와라자키의 “너”라는 마지막 말을 근거로 또래나 가까운 인물을 우선 검토
ㅇ 고즈에·우류·후쿠니시 등을 후보에 올리고 소거
ㅇ 유키야는 도와에 대한 강한 집착과 동기, ‘료타’라는 이름에 대한 반응 등을 근거로 끝까지 1순위 후보로 유지
ㅇ 동시에 “아야츠지 유키토가 이렇게 쉽게 범인을 알려줄 리가 있는가”라는 의심도 계속 유지
ㅇ 사요코는 비밀통로가 밝혀지기 전부터 진자의 방 출입을 유독 강하게 금지한 점 때문에 시계관의 비밀을 알고 있을 가능성을 의심
ㅇ 이후 비밀통로가 발견되면서 사요코 공범설까지 제기
13. 종합 평가
지금까지 『기면관의 살인』·『십각관의 살인』·『미로관의 살인』·『인형관의 살인』·『시계관의 살인』을 읽었지만, 매번 느끼는 것은 아야츠지 유키토가 설계한 트릭을 독자의 입장에서 제대로 추리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읽으면서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관’이라는 사실 때문에 막연히 건물 자체와 비밀통로를 의심하고, 특정 인물이 지나치게 수상하게 묘사되면 “이렇게 쉽게 범인을 알려줄 리가 있는가” 정도까지는 생각할 수 있다.
『시계관의 살인』에서도 어딘가에 비밀통로가 있을 것이라는 점, 시계와 시간이 범행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 등장인물들의 계속되는 졸림이 수면제와 관계된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까지는 추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관의 모든 시계를 1.2배 빠르게 움직이게 하고, 그 시간차와 외부 비밀통로를 결합하여 실제 범행시각과 사람들이 알고 있는 범행시각을 완전히 갈라놓은 뒤, 탐정인 시마다까지 자신의 알리바이 증인으로 이용한다는 전체 구조까지 미리 추리해내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사요코는 자신이 알리바이를 굳히기 위해 고가 미치노리의 「침묵의 여신」을 미끼로 시마다를 끌어들였지만, 결국 바로 그 시마다가 고가의 ‘악몽’이 만들어놓은 1.2배의 시간을 해독하면서 범행을 간파한다. 범인이 자신의 완전범죄를 위해 이용한 탐정이 결국 그 완전범죄를 무너뜨린다는 구조도 인상적이다.
물론 가와라자키의 “너, 너는…….”이라는 말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것은 영리한 미스리드가 아니라 독자에게 잘못된 관계정보를 제시한 사기성 단서라고 생각한다. 수면제가 섞인 물을 아무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다는 설정 역시 현실성에서 의문이 남는다.
그럼에도 이러한 불만 때문에 작품 전체의 성취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진상을 알고 나면
“와, 이런 트릭을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라는 감탄이 먼저 든다.
작가에게 ‘너’라는 말로 한 번 제대로 사기당했다는 불쾌감이 있으면서도, 결국 그 상상력과 대형 트릭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금까지 읽은 관 시리즈 가운데 『시계관의 살인』이 남긴 가장 강한 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