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순간의
기억들 - P-1

국수 한 그릇 먹다 보면 말없이 앞서 걷던 무뚝뚝한 아버지가 떠오르고,
신발 한 켤레 고르다 보면 내 손을 잡고 물건값 흥정하던 어머니가 생각나는 그곳.
장날만 되면 온 세상이 거기에 다 있었다. - P-1

순창 동계장의 한 할아버지는나를 만날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 이 선생, 담배 한 대도 마음이 없으면 안 권하는 것이여!"
그 마음을 렌즈에 붙잡아 두려고 나는 오늘도 장터로 간다.
이흥재 - P5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순창으로 다니며 순창 읍내에서 자취를 했다.
중학교 때였다.
회비를 낼 기한을 넘기고도 한참을 더 넘겨드디어 교문 게시판에 회비를 내지 않은 학생 명단이 공개되었다.
물론 내 이름도 올라 있었다.
주말이 아닌데도 나는 그날 집으로 보내졌다. 나는 걸어서 집으로 갔다.
길은 굽이굽이 사십 리 신작로 길이었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
보리를 베는 철이었다.
땀이 비 오듯 했다. 차들이 지나가며일으킨 먼지를 뒤집어쓴 얼굴은 땀범벅이 되었다.
순창에서 아홉시쯤 출발해서 복실리, 인계, 팔학동,
쌍암 마을을 지나 갈재를 넘어 다시 재 하나를 더 넘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열두 시가 넘었다. - P10

어머님 아버님은 강 건너 밭에서 보리를 베고 계셨다.
어머님은 보리밭가에 서 있는 나를 보고 놀랐다.
나는 말도 못하고 보리밭가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어머님도 아버님도 내가 회비 때문에 온 줄 알고 있었다.
보리 베는 어머님 아버님 옷은 땀으로 다 젖어 있었다.
어머님 아버님은 낫을 놓고 감나무 그늘에서 잠깐 쉬며강물을 바라보고 계셨다.
막막한 얼굴에 근심만 가득했다. - P17

한참을 그렇게 계시던 어머님이 머릿수건을 벗어 옷을 탈탈 털더니,
"가자 집으로" 하시며 징검다리를 건넜다.
집으로 돌아온 어머님은 마당을 벗어나모이를 찾던 우리 집 닭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닭들이 어머니가 뿌린 모이를 따라집으로 달려왔다.
이제 막 날개에 털이 나기 시작하는 영계들이었다. - P20

닭들은 어머님 뜻대로 닭장으로 다 들어갔다.
어머님은 닭장의 닭들을 한 마리씩 잡아두 날개와 발을 묶었다.
그리고 망태에 담더니,
"가자." 나는 어머님의 뒤를 따라갔다. - P23

한 시간 반쯤 걸어 삼십 분쯤 다시 신작로 길을 걸어 갈담장이다.
오후였는데도 장은 북적대고 있었다.
어머님은 가축으로 가더니, 흥정을 하고 닭을 팔았다.
그때 돈으로 1,600원이었다.
어머님은 내 손에 순창 가는 차표와 차표 끊고 남은 돈을 쥐어 주며,
어머님은 빈손이었다.
"나는 걸어갈란다." 점심도 굶은 어머님은집에까지 다시 걸어간다며 길을 나섰다. - P24

어머님이 저만큼 먼지 나는 신작로 길을 걸어가셨다.
어머님께서 차에서 내려 다부진 몸으로 닭을 흥정하시던 모습과나를 보내고 신작로 길을 부산하게 걸어가시던 어머님의 모습을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머님이 가야할 길이 정말 너무 먼 길로 느껴져 나는 힘이 팽겼다.
눈물이 퉁퉁 마른 발밑 땅에 떨어져 먼지들을 적셨다. - P29

우리 집에서 갈담장까지는 시오리쯤 된다.
내가 어렸을 때는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아장에 가려면 갈담까지 걸어가야 했다.
장날 아침이면 온 동네가 장에 내다팔닭을 잡으려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 P32

토끼 가죽, 노루 가죽도장으로 가지고 나갔고,
아버지들은 달걀을 열 개씩 짚으로 곱게 쌌다.
짐을 다 꾸리고 밥을 먹은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장으로 갔다.
닭을 보자기에 싸서 이고, 거기에 달걀 싼 것까지 머리에 인 모습이옛날장에 가는 모습이었다.
머리 위에 머리만 내놓은 닭들은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눈알을 띠룩거렸다. - P37

닷새 만에 만나기도 하고 열흘 만에 만나기도 한 장꾼들은반갑기만 하다. 신작로는 사람들의 무리로 가득하였다.
갈담까지 가는 장꾼들의 행렬은 마치 실꾸리에서실이 풀어지는 것처럼 한없이 길어지고 늘어났다.
무엇인가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짊어지고,
손에 든 사람들의 발걸음은 활달하고거침이 없었다. - P40

그런 행렬 중에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고 그냥 장에 가는 사람들도있었다. 아무 볼일도 없이 장에 가는 사람을 사람들은 ‘남이 장에가니까 씨나락 갖고 장에 간다‘ 또는 ‘남이 갓 쓰고 장에 가니,
투가리 쓰고 장에 간다‘라고 했다. - P45

몇 개의 마을을 지나면 갈담장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었다.
그 길에는 강물을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있었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장꾼들의 모습은 강물과 함께 생동감이 넘쳤다.
강물이 많이 불어나, 작은 징검다리가 떠내려가 버리면 사람들은신을 벗고 강물을 건너기도 했다. 갈담장은 덕치면, 강진면, 운암면,
청웅면을 아우르는 큰 장이었다.
소전은 없어도 개나 염소들은 얼마든지 사고팔았다.
거긴 없는 것이 없었다. - P48

내가 최초로 장에 갈 때는 초등학교 일학년 때였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장에 갔다.
장은 크고,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흥분된 흥정 소리,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반가운 목소리,
어디선가 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들은 사람들을 들뜨게 했다. - P52

나는 눈길을 어디다 둘지를 몰랐다.
아버지는 아는 사람도, 반가운 사람도 많았다.
끊임없이 인사하고 반가워하고 무슨 이야긴가를 했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나는 아버지 손을 꼭 잡고 있어야 했다. - P53

점심때가 되자 아버지는 나를 김이 뭉게뭉게 솟아나는 국숫집으로데리고 들어갔다.
우리 아버지 별명은 ‘국수 아홉 그릇이었다.
어느 결혼 잔치에 가서 국수를 아홉 그릇이나 잡숫는 바람에모든 사람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기도 했단다. - P61

아버지는 여동생들에게도 늘 장난삼아 "나 죽으면 제사 지낼 때술 받아 오지 말고 국수사 오거라"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하셨다.
아무튼 나는 이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외식(?)으로 국수를 먹은 셈이었다.
국수는 정말 맛이 있었다. - P63

어머님은 장에 가시면 한 번도 장에서 국수나 다른 음식을사드시고 오시질 않았다.
"내가 국수 한 그릇 먹을 돈으로 국수를 사면 식구가 다 먹을 수 있다"며점심을 굶고 국수 한 그릇 값으로 국수를 사 오셔서 우리들에게국수를 먹였다. - P64

처음 장에가 많은 사람들 틈에서 국수를 먹는 맛은 기가 막혔다.
점심을 먹고 아버지와 나는 집에까지의 시오리가 넘는 길을 걸어집으로 왔다. 갈담을 조금 지나면,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그 마을 가운데에 커다란 기와집이 한 채 있었다. 아버지는그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보며, "용택아. 우리도 언젠가는 저 기와집 같은 집을 짓고 살 것이다." 나는 그때 기와집을 바라보시던 아버지의모습을 잊을 수 없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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