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셀프 트래블 - 2023-2024 최신판 ㅣ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김미정.백진수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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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기

여행 2일차, 2025.12.25.(목요일)
에도성에서 시작한 크리스마스(오후편)

15. 워매, 인자 뱃가죽이 등에 붙겄다

『스즈메의 문단속』 성지를 보고 다시 아키하바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침에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나온 뒤,
에도성을 걷고 도쿄역까지 걸어와 다시 아키하바라까지 넘어왔으니
이제는 슬슬 배고픈 정도가 아니었다.

“워매, 인자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이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30분쯤.

오늘 점심은 아키하바라에서 먹기로 했다.

목적지는 로스트비프 전문점,

ローストビーフ大野 秋葉原店
(로스트비프 오노 아키하바라점).

아키하바라 거리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
오후 1시 40분쯤 식당 앞에 도착했다.


16. 아니, 밥 한 끼 먹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식당을 찾아왔는데
도착했다고 바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줄이 길었다.

바로 옆에는 ‘STEAK HOUSE ステーキロッヂ’라는 커다란 간판이 붙은 스테이크집이 있었고, 우리가 찾아온 로스트비프 오노는 그 옆의 붉은색 출입구였다.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우리도 그 뒤에 자리를 잡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약 30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주문을 넣었다.

그런데 주문했다고 끝이 아니었다.

다시 20분가량을 더 기다린 뒤에야 드디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니
밖에서 보던 것보다도 훨씬 아담한 공간이 나타났다.

주방을 마주 보는 카운터석을 중심으로
손님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크리스마스 장식까지 해놓은 작은 가게 안에서는
직원들이 계속해서 로스트비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가족도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아이구야.

점심 한 끼 먹으려고 거의 50분을 기다렸다.


17. 기다린 보람은 있었던 로스트비프

잠시 뒤 음식이 나왔다.

그릇 위로 얇게 썬 로스트비프가
마치 산처럼 겹겹이 쌓여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노른자가 하나 올라가 있었다.

고기 위로는 하얀 소스가 흘러내리고
옆에는 채소가 곁들여져 있었다.

국물과 작은 양념들도 함께 나왔다.

기다리는 동안 허기가 더 커져서인지
눈앞에 놓인 로스트비프가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이제 말이 필요 없었다.

먹자.

가족 넷이 나란히 앉아
약 30분 동안 제대로 점심을 먹었다.

아침부터 에도성과 도쿄역을 걸어 다녔던 탓인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릇은 깨끗하게 비었다.

계산표를 보니 오후 2시 37분에 생맥주 한 잔 600엔이 추가됐고, 최종 합계는 10,595엔.

잘 먹었다.

밖으로 나왔는데도
로스트비프 오노 앞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이미 배부르게 먹었으니
그 줄도 이제는 여유롭게 보인다.

“룰루랄라.”

기다릴 때와 먹고 난 뒤의 세상은 이렇게 다르다.


18. 밥 먹었으니 아키하바라 구경 한번 해볼까

오후 3시 무렵.

식당에서 나오자 다시 아키하바라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전광판과 간판이 건물 벽을 뒤덮고 있었고,
전자제품과 게임,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あきばお~(akibaoo)’,
‘らしんばん 秋葉原店’ 같은 가게에도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했다.

진열대마다 피규어와 캐릭터 상품들이 빼곡했다.

건담도 있고, 원피스의 나미도 보인다.

밖으로 나오니 또 다른 곳에서는 JRA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 JRA: Japan Racing Association의 약자로, 우리말로 하면 일본중앙경마회 정도 되겠다.

대형 화면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한쪽에는 웬 말 한 마리가 떡하니 서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영락없는 진짜 말이었다.

“어? 여기 말도 데려다 놨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가짜였다. ㅋㅋ

그런데 마님은 바로 앞까지 가서 보고도

“이거 진짜 말 아니야?”

한다.

“아니 여보. 가짜여, 가짜.”

멀리서 속은 나는 그렇다 쳐도
코앞에서 보고도 진짜 말인 줄 아는 마님 때문에 한바탕 웃었다.

역시 아키하바라답다.

거리로 나오면 또 다른 간판,
또 다른 캐릭터,
또 다른 가게가 나타났다.

어딜 쳐다봐도 볼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일정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이제 센소지로 가야 한다.


19. 스에히로초역에서 긴자선을 타고 아사쿠사로

오후 3시 30분을 넘기면서
센소지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末広町駅 스에히로초역.

도쿄메트로 긴자선의 G14번 역이다.

역 안내판에는

「上野・浅草方面」 우에노·아사쿠사 방면

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후 3시 35분쯤 긴자선에 올라탔다.

아키하바라의 복잡한 거리를 빠져나와
이제 도쿄에서도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동네로 간다.

목적지는 아사쿠사.

그리고 센소지.


20. 오후 3시 50분, 아사쿠사에 도착하다

오후 3시 50분 무렵 아사쿠사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와 센소지 쪽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이 심상치 않았다.

“아이구야, 여기도 사람이 바글바글허네.”

어제 크리스마스이브의 시부야에서도 사람에 치였는데
오늘 아사쿠사 역시 만만치 않았다.

센소지로 이어지는 길에는
일본 사람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뒤섞여 있었다.

기념품점과 전통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고,
붉은 제등과 일본식 건물들이 이어졌다.

아키하바라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
전자제품과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보고 있었는데,
지하철 몇 정거장을 이동했을 뿐인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이 풍경을 보면서 교토가 떠올랐다.

오래된 절과 상점가,
전통적인 일본 건축,
그 사이를 가득 메운 관광객들.

“여기는 교토 분위기가 물씬 나는구먼.”

도쿄 한복판인데도 갑자기 다른 도시로 넘어온 듯했다.


21. 나카미세도리, 일본 냄새 물씬 나는 길

센소지로 들어가는 길 양쪽에는
기념품과 전통 과자, 각종 일본 상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빈틈없이 늘어서 있었다.

이 길이 나카미세도리(仲見世通り)다.

센소지로 향하는 참배길을 따라 형성된 오래된 상점가로,
좁고 긴 길 양쪽에 수많은 점포가 줄지어 붙어 있다.

사람은 정말 많았다.

앞사람을 따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가족이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천천히 걸었다.

가게마다 일본다운 물건들이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자주 눈에 띄는 것이
다루마(だるま)와 마네키네코(招き猫)였다.

다루마는 달마대사를 본떠 만든 둥근 모양의 길상물로,
목표를 세울 때 한쪽 눈을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면 나머지 눈을 채워 넣는 풍습으로 잘 알려져 있다.

넘어뜨려도 다시 일어나는 모양 때문에
끈기와 소망 성취를 상징하기도 한다.

한쪽 앞발을 들어 올리고 있는 고양이,
마네키네코도 여기저기 보였다.

우리말로 하면 ‘복을 부르는 고양이’쯤 되는 물건이다.

들고 있는 앞발에 따라
손님이나 재물을 불러들인다는 의미가 붙어
일본의 상점이나 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다루마와 마네키네코,
부채와 전통 장식,
과자와 갖가지 기념품들.

거기에 붉은 제등과 붉고 흰 장식까지 이어지니
걷는 내내 일본 냄새가 물씬 났다.

그렇게 사람들 틈을 따라가다 보니
멀리 거대한 붉은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22. 센소지, 도쿄 한복판에서 만난 오래된 일본

센소지(浅草寺).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알려진 곳이다.

센소지의 역사는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승에 따르면 628년,
스미다강에서 어부 형제가 관음상을 건져 올린 것이
센소지의 시작이 되었고,
645년 승려 쇼카이(勝海)가 관음당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걸어 들어간 곳에는
거대한 붉은 문과 오층탑,
그리고 본당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호조몬(宝蔵門)을 지나면서 올려다본
거대한 제등은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압도적이었다.

그 너머로는 오층탑이 솟아 있었고,
센소지 본당 앞에는 향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본당으로 계속해서 올라갔다.

우리도 그 흐름을 따라 본당으로 향했다.

본당에 올라 뒤를 돌아보니
방금 지나온 호조몬과 나카미세도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사람이 많기는 정말 많다.

그래도 이 풍경은 좋았다.

현대적인 빌딩과 전철,
전자상가와 애니메이션으로 가득했던 아키하바라를 떠나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오래된 일본의 풍경 속에 들어와 있었다.

아키하바라가 현대 일본의 한 얼굴이라면,
아사쿠사와 센소지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일본의 얼굴처럼 느껴졌다.

에도성에서 시작해 도쿄역을 지나고,
『스즈메의 문단속』 성지를 거쳐,
아키하바라에서 배불리 로스트비프를 먹고,
다시 센소지까지.

워매.

오늘 일정 한번 빡세다.

그래도 센소지는 천천히 둘러봤다.

오층탑도 보고, 본당도 둘러보고, 가족들과 사진도 남겼다.

사람에 치이면서도 구경할 것은 제대로 구경했다.

도쿄 한복판에서 만난 조금은 교토 같은 풍경이었다.


23. 도쿄에 왔으니 스미다강은 한번 봐줘야지

센소지를 천천히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오늘 일정도 슬슬 막바지로 접어든다.

하지만 아직 오늘의 가장 큰 일정이 남아 있었다.

도쿄 스카이트리(東京スカイツリー).

그 전에 스미다강(隅田川)으로 향했다.

도쿄에 왔는데 스미다강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강변 쪽으로 걸어나가자
멀리 오늘 저녁 올라갈 도쿄 스카이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 겨울 하늘 아래 높이 솟은 스카이트리의 꼭대기는
낮게 내려앉은 구름과 안개 속으로 살짝 들어가 있었다.

조금 있다 저 꼭대기 가까이까지 올라갈 것이다.

오늘 스카이트리 전망대는 미리 클룩에서 예약해두었다.

일부러 크리스마스에 도쿄까지 온 이유 중 하나도
도쿄의 크리스마스 야경을 제대로 보고 싶어서였다.

그 대가가 만만치는 않았다.

항공권도 비싸고, 호텔도 비싸고.

평소 같으면 훨씬 싸게 왔을 여행인데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로 비용이 확 뛰었다.

“아이고, 허리가 지게 진 것마냥 휘겄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봐야지.

크리스마스의 도쿄 야경을.


24. 스미다강과 스카이트리, 그리고 그 유명한 똥

스미다강변으로 내려섰다.

강 위로 철교가 지나고, 전철 한 대가 강을 가로질렀다.

강 건너에는 도쿄 스카이트리가 우뚝 서 있었다.

아들과 함께 스카이트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나도 혼자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장 남겼다.

아이들은 앞서 걷고
우리는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는 넓은 강과
철교를 건너는 열차,
그 뒤로 솟아 있는 스카이트리.

도쿄다운 풍경이었다.

그리고 스미다강에 오면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아사히맥주 본사 옆 건물 위에 얹혀 있는
거대한 황금색 조형물.

멀리서 보면 뭐랄까……

“저거 아무리 봐도 똥 같은디?”

ㅋㅋㅋ.

정식 명칭은 ‘플람 도르(Flamme d‘Or)’,
황금 불꽃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아사히맥주의 도전하는 정신과 불타는 마음을 표현한 조형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뜻을 알고 봐도
내 눈에는 자꾸 똥처럼 보인다.

스미다강까지 왔으니 스카이트리도 보고,
그 유명한 황금색 ‘똥’도 봤다.

이 정도면 됐다.


25. 가까이 있는 스카이트리 가는데 왜 이렇게 힘들어

이제 스카이트리로 이동할 차례.

멀리서 보면 바로 코앞인데
막상 전철을 타려고 하니 또 일이 꼬였다.

아사쿠사역(浅草駅)은
도쿄메트로와 도에이 지하철, 도부철도 등
여러 노선의 타는 곳이 서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가 타야 할 곳을 찾느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아이구, 또 시작이네.”

시부야역에서 헤매고,
도쿄역에서 헤매고,
이제 아사쿠사에서 또 헤맨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도에이 아사쿠사선(都営浅草線)을 찾아냈다.

안내판에는

「押上・京成線・北総線・成田空港方面」
오시아게·게이세이선·호쿠소선·나리타공항 방면

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사쿠사역(A18)에서 전철을 타고
오시아게역(押上駅)으로 향했다.

가까운 거리라 전철 자체는 금방이었다.

오후 4시 40분 무렵 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역에 도착했다고
스카이트리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복잡한 통로를 따라 다시 한참 이동했다.

결국 스카이트리 타운까지 찾아가는 데
10분 가까이를 또 잡아먹었다.

오늘은 정말 이동할 때마다
미궁 하나씩 통과하는 기분이다.


26. 워매, 여기서 신발을 사자고?

드디어 도쿄 스카이트리 타운(TOKYO SKYTREE TOWN)에 도착했다.

크리스마스라 건물 안팎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커다란 코카콜라 산타 장식도 보이고,
밖으로 나가자 스카이트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솟아 있었다.

해가 지면서 조명도 하나둘 켜졌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하지 못했던 복병이 나타났다.

딸래미였다.

아침부터 요상한 신발을 신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더니
결국 발이 아프다고 한다.

“아빠, 나 신발 하나 사야 될 것 같아.”

“뭐?”

지금?

여기서?

사람은 미어터지고,
전망대 예약시간은 다가오는데
갑자기 신발가게를 찾아야 한다.

워매.

스카이트리 타운 안을 돌아다니며
신발가게 찾느라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여행이라는 게 그렇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놔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꼭 하나씩 튀어나온다.


27. 크리스마스의 스카이트리, 사람이 사람을 덮었다

신발 문제를 해결하며 돌아다니는 사이
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스카이트리 주변의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이
본격적으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캐릭터 조형물,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
수많은 전구로 뒤덮인 나무들.

예쁘긴 정말 예뻤다.

그런데 사람은 더 대단했다.

크리스마스 행사장 주변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비까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면서
우산까지 하나둘 펼쳐졌다.

사람 사이를 뚫고 걸어가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워매, 여태까지 본 사람 중에 여기가 제일 많은 것 같은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다.

며칠 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이보다 훨씬 더한 사람 떼를 보게 될 줄은.

아무튼 오늘만 놓고 보면 최고 기록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사진은 찍어야 했다.

마님도 찍고,
아들도 찍고,
딸도 찍고,
가족 넷이 모여 사진도 남겼다.

사람은 많고 비는 조금씩 내렸지만
크리스마스의 도쿄 한복판에 서 있다는 기분만큼은 제대로 났다.


28. 오후 6시, 드디어 도쿄 스카이트리 전망대로

오후 6시 무렵.

드디어 전망대 입구에 도착했다.

사람이 워낙 많아 입구 주변부터 북적였다.

미리 사둔 입장권을 확인하고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슝.

“어?”

금세 도착했다.

도쿄 스카이트리의 덴보데크(天望デッキ)는
지상 350m에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데는
체감상 정말 1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350m를 이렇게 순식간에 올라오다니.

문이 열리자
금세 도쿄 상공 한가운데에 와 있었다.


29. 350m 위에서 만난 비 내리는 도쿄의 밤

기대했던 것은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도쿄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야경이었다.

그런데 오늘 날씨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낮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밤이 되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안개까지 끼었다.

350m 높이에서 바라보는 도쿄는
맑은 날처럼 깨끗하게 펼쳐지지는 않았다.

유리창 너머로 도시의 불빛들이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번졌다.

“아이고…….”

어제는 비 때문에 시부야 스카이 옥상에 올라가지도 못했는데
오늘은 스카이트리까지 와서 또 비다.

그래도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안개가 잠깐씩 걷힐 때마다
도쿄의 야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로를 따라 자동차 불빛이 길게 이어지고,
스미다강과 다리들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조금 전까지 우리가 걸었던 도시가
350m 아래에서 작은 모형처럼 펼쳐져 있었다.

비와 안개가 아쉽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또 다른 분위기의 도쿄 야경을 만났다.

완벽하게 맑지는 않았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밤,
가족과 함께 도쿄의 350m 상공에 서 있었다.

그걸로 됐다.


30. 호쿠사이를 만나다

야경을 보고 전망대를 천천히 둘러보다가
내 발걸음을 딱 멈추게 한 것이 있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나는 우키요에(浮世絵)를 좋아하고,
그 작가중에서도 호쿠사이를 특히 좋아한다.

우키요에는 에도시대에 크게 유행한 일본의 서민 회화다.

배우와 미인, 명소와 풍경,
당시 사람들의 일상과 유행을 목판화로 찍어 널리 퍼뜨렸다.

한 점뿐인 그림이라기보다
여러 장을 찍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대중미술에 가까웠다.

그 우키요에를 세계적인 풍경화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대표적인 화가가 바로 가쓰시카 호쿠사이다.

호쿠사이는 평생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후가쿠 삼십육경(冨嶽三十六景)』.

후지산을 여러 장소와 계절,
다양한 날씨와 시선으로 그려낸 연작이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거대한 파도가 화면을 집어삼킬 듯 솟아오른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神奈川沖浪裏)』.

그리고 또 하나가

『개풍쾌청(凱風快晴)』,
흔히 ‘붉은 후지(赤富士)’라고 부르는 작품이다.

맑은 날 아침,
햇빛을 받아 붉게 물든 후지산을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려낸 그림이다.

그런데 스카이트리 기념품점에서
바로 이 두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든 스노우볼을 만났다.

하나는 거대한 푸른 파도가 솟구치고
그 뒤로 조그맣게 후지산이 보이는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

다른 하나는 붉게 물든 후지산이 중심에 서 있는
『개풍쾌청』.

워매.

이건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하나만 살까?

두 개를 번갈아 보다가 결국 결론을 내렸다.

“둘 다 주쇼.”

ㅋㅋㅋ.

두 개 합해서 한 30만 원.

아이고 비싸다.

겁나 비싸다.

그런데 어쩌겄는가.

우키요에를 좋아하고,
거기다 호쿠사이를 좋아하는데
눈앞에 내가 좋아하는 두 작품이 스노우볼로 딱 나타나버렸으니.

점원에게 괜히 아는 영어까지 총동원했다.

“I love Hokusai.
Very excellent artist!”

ㅋㅋㅋ.

문법이고 뭐고 필요 없다.

내가 호쿠사이를 좋아한다는 뜻만 전해지면 됐다.

그렇게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와
‘붉은 후지’ 스노우볼 두 개를 품에 안았다.

비싸기는 정말 비쌌지만,
도쿄에서 산 기념품 가운데
아마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물건이 될 것 같다.


31. 내려오니 비는 더 세지고

전망대에서 내려오니
밖에는 비가 더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에도 빗방울이 가득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크리스마스트리와 일루미네이션은
비를 맞으며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사람도 여전히 많았다.

비가 온다고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어디로 사라질 리가 없다.

우산들이 다시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그래도 우리는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언제 또 크리스마스에
도쿄 스카이트리 아래에서 비를 맞고 있겠는가.

사진으로라도 많이 남겨놓자.


32. 오후 6시 43분, 이제 집에 가자

이제 진짜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다.

오시아게역(押上駅)으로 내려갔다.

오후 6시 43분.

전광판에는
Oshiage ‘SKYTREE’ Z14 가 표시되어 있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닌 아이들도 이제 완전히 지쳐 있었다.

전철 좌석에 앉자 아들과 딸은 말없이 쉬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9시 40분쯤 호텔을 나선 뒤
에도성부터 시작해 도쿄역,
『스즈메의 문단속』 성지,
아키하바라, 센소지, 스미다강,
그리고 도쿄 스카이트리까지.

오늘 하루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다.

오후 8시 무렵.

드디어 시부야 숙소로 돌아왔다.


33. 워매, 오늘 다들 고상 많았다

호텔에 들어오니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오늘은 정말 빡센 하루였다.

에도성의 거대한 석축 위에서 시작해
도쿄역의 붉은 벽돌 역사를 보고,
히지리바시에서 『스즈메의 문단속』 속 빨간 전철을 기다렸다.

배가 등에 붙을 만큼 굶다가
아키하바라에서 로스트비프를 배불리 먹고,
사람으로 가득한 센소지를 지나
스미다강까지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크리스마스 인파와 비를 뚫고
350m 높이의 스카이트리에서 도쿄의 밤을 내려다봤다.

워매.

다들 고상 많었다.

오늘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자.

푹 자자.

내일 또 돌아댕겨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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