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에 순경 가족이 나가고 이어서 공무원 가족이 나갈 즈음뭔가 좋지 않은 낌새를 눈치챈 군중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공무원가족에 이어 마지막으로 대동청년단과 국민회 간부 차례가 왔을때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나아가 이장과 청년단 사람들에게 매달렸다. - P66
"잘 들으라요. 우리레 지금 작전 수행 둥에 있소. 여러분의 집은작전명령에 따라 소각되는 거이오. 우리의 다음 임무는 여러분을모두 제주읍으로 소개하는 거니끼니 소개 등 만약 질서를 안 지키는 자가 있으문 아까와 같이 가차 없이 총살할 거이니 명심하라우요." - P68
"영배 각시 총 맞았져." 누군가 이렇게 속삭였다. 흰 적삼에 번진 붉은 선혈이 역력했다. "두살 난 그 아기가 바로 방앳간 허는 장식이여. 후제 외할망이 키웠쥬. 이젠 결혼도 하고 씨멸족할 뻔한 집이서 아들 둘까지 낳아시니 죽은 어멍 복을 입은 것일 거라, 아매도" 작은당숙의 말이었다. - P69
할머니가 달려들어 치마를 벌리고 닭이 병아리 품듯이 우리를 싸서 숨겼다. 뒤를 쫓던 청년단원두명이 우리를 포기한 것은 마침 우리 뒤미처 달려드는 다른 사람들 때문이었으리라. 아이들과 아낙네 열명쯤이 달려들었다가 마구내지르는 대창에 쫓겨갔다. - P71
군인들이 이렇게 돼지 몰듯 사람들을 몰고 우리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나면 얼마 없어 일제사격 총소리가 콩 볶듯이 일어나곤 했다. 통곡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할머니도 큰아버지도 길수 형도나도 울었다. 우익인사 가족들도 넋 놓고 엉엉 울고 있었다. 우는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마을에서 외양간에 매인 채 불에 타죽는 소 울음소리와 말 울음소리도 처절하게 들려왔다. - P71
"그때 혼자 살아난 순이 삼촌 허는 말을 들으난, 군인들이 일주도로변 옴팡진 밭에다가 사람들을 밀어붙였는디, 사름마다 밭이안 들어가젠 밭담 우엔 엎디어젼 이마빡을 쪼사 피를 찰찰 홀리멍살려달렌 하던 모양입니다." "쯧쯧쯧, 운동장에 벗겨져 널려진 임자 없는 고무신을 다 모아놓으민 아매도 가매니로 하나는 실히 되었을 거여. 죽은 사람 몇백명이나 되까?" 하고 작은당숙이 말하자 길수 형은 낯을 모질게 찌푸리며 말을 씹어뱉었다. - P72
"면에서는 이 집에 고구마 몇가마 내고 저 집에 유채 몇가마 소출 냈는지는 알아가도 그날 죽은 사람 수효는 이날 이때 한번도 통계 잡아보지 않으니, 내에 참. 내 생각엔 오백명은 넘은 것 같은디. 한 육백명 안되까 마심? 한번에 오륙십명씩 열한번에 몰아가시니까." 열한번째로 끌려가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운수 대통한 사람들이었다. 때마침 대대장 차가 도착하여 총살 중지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 P72
고모부는 그 당시 토벌군으로 애월면에 가 있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할 터였다. 고모부는 한때 인근 부락인 함덕리에주둔했던 서북청년으로만 구성된 중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마침사건 수개월 전에 애월로 이동해갔던 것이었다. 신혼 초라 고모도따라갔었다. - P73
그런디 인원과 물자를 비워버리라는 대목에서 그만잘못 일이 글러진 거라. 작전지역 내의 인원과 물자를 안전지역으로 후송하라는 뜻이 인원을 전원 총살하고 물자를 전부 소각하라는 것으로 둔갑하고 말아시니 말이여 - P73
"아니, 고모부님도 참, 그 말을 곧이들엄수꽈? 그건 웃대가리들이 책임을 모면해보젠 둘러대는 핑계라 마씸. 우리 부락처럼 떼죽음당한 곳이 한둘이 아니고 이 섬을 뺑 돌아가멍 수없이 많은데 그게 다 작전명령을 잘못 해석해서 일어난 사건이란 말이우꽈? 말도안되는 소리우다. 이 작전명령 자체가 작전지역의 민간인을 전부총살하라는 게 틀림없어 마씸." - P74
그건 한때 무식한 부락민들이 저지른 섣부른 과오 때문이었나보다. 5·10선거 때 부락 출신 몇몇 공산주의 골수분자의 선동에 부화뇌동하여 선거를 보이콧한 사건이 화근이 된 것이었다. 그것이두고두고 군경 측에 부락을 적색시하는 빌미가 될 줄이야. 부락민들이 아무리 개과천선하여 결백을 내보여도 소용이 없었다. 부락민들이 5·10 선거 보이콧을 선동했던 주모자 한라산 입산 공비 김진배의 아내를 부락에서 추방하고, 그의 밭 한가운데를 파헤쳐 비오면 물 차는 못을 만들면서까지 결백을 주장했으나 군경의 오해는 막무가내였다. - P75
밤에는 부락 출신 공비들이 나타나 입산하지 않는 자는 반동이라고 대창으로 찔러 죽이고, 낮에는 함덕리의 순경들이 스리쿼터를 타고 와 도피자 검속을 하니, 결국 마을 남정들은 낮이나 밤이나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순경들이 도피자라고 찾던 폐병쟁이 종철이 형은 공비가 습격해온 밤에 궤 뒤에 숨어 있다가 기침을 몹시 하는 바람에 발각되어 대창에 찔려 죽었고, 헛간 멍석세워둔 틈에 숨어 있다가 역시 공비의 대창 맞고 죽은 완식이 아버지도 순경들이 찾던 도피자였다. 우리 종조부님도 사건 석달 전에부락 출신 공비의 대창에 찔려 돌아가셨다. 당시 1구 구장이던 종조부님은 밤중에 내려온 마을 출신 폭도들로부터 식량을 모아달라는 요구에 고개를 흔들었던 것이다. - P75
한라산 아래의 목장으로 올라가 마른 냇가의 굴속에 피난했다. 행방을 알 길 없는 남편 때문에 모진 고문을 당하던 순이 삼촌도따라 올라갔다. 이 섬은 워낙 화산지대라 곳곳에 동굴이 뚫려 있어서, 우리 부락처럼 폭도에도 쫓기고 군경에도 쫓긴 양민들이 몰래 숨어 있기 안성맞춤이었다. - P76
하여튼 이렇게 남정네들이 마을을 비우자 군경 측에서는 자연히입산한 것으로 오해하게 되고 그러한 오해가 저 섣달 열여드레의끔찍한 사건의 소지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사건은 마을남정들이 그 냇가 동굴에서 혈거생활을 시작한 지 아흐레 만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순이 삼촌은 우리 할머니에게 맡겨두었던 오누이 자식을 데리러 내려와 있다가 그만 화를 당하고만 것이었다. - P77
내 아래 또래의 아이들에게 몰래 양과자를 주어 아버지나 형이숨은 곳을 가르쳐달라고 꾀어내던 서청 출신의 순경들, 철모르는아이들은 대밭에서, 마루 밑에서, 외양간 밑이나 조짚가리 밑을 판굴에서 여러번 제 아버지와 형을 가리켜냈다. 도피자 아들을 찾아내라고 여든살 노인을 닦달하던 어떤 서청 순경은 대답 안한다고어린 손자를 총으로 위협해서 무릎 꿇고 앉은 제 할아버지의 따귀를 때리도록 강요했다. 닭 잡아내라고 공포를 빵빵 쏘아대기도 했다. 그들은 또 여맹(盟)이 뭣 하는지도 모르는 무식한 촌처녀들을 붙잡아다가 공연히 여맹에 가입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발가벗겨놓고 눈요기를 일삼았다. 순이 삼촌도 그런 식으로 당했다. 지서에 붙들어다놓고 남편의 행방을 대라는 닦달 끝에 옷을 벗겼다는 것이었다. 어이없게도 그건 간밤에 남편이 왔다 갔는지 알아본다는 핑계였는데, 남편이 왔다 갔으면 분명 그짓을 했을 것이고, 아직 거기엔 분명 그 흔적이 남아 있을 테니 들여다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날 마당에서 도리깨질하던 순이 삼촌이 남편의 행방을 안 댄다고 빼앗긴 도리깨로 머리가 깨어지도록 얻어맞는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었다. - P79
섬사람에 대해서 아주 나쁜 선입견을 개지구 있댔어. 서청뿐만이가서? 야, 그땐다 기랬어. 후에 교체해개지구 들어온 다른 눅지 향토부대두 매한가지래서 사실 그때 눅지 사람치구 이 섬 사람들을 도매금으로 몰아쳐 뻘갱이루다 보지 않는 사람이 없댔다. 4.3 폭동이 일어나디, 5·10선거를 방해해설라무니 남한에서 유일하게 이 섬만 선거를 못치렀다. 군대는 반란이 일어나다. 하이간 이런 북새통이었으니까4......" 이때 큰아버지가 끙 앓는 소릴 내며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렸다. 눈썹이 발에 밟힌 송충이처럼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몹시 심기가 뒤틀린 모양이었다. 고모부는 그제야 이북 사투리를 쓰고 있는자신을 깨달았던지 흠칫 놀라며 말을 멈췄다. 큰당숙, 작은당숙 어른도 못마땅한 표정으로 담배만 풀썩풀썩 빨아댔다. 잠시 거북살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언제나 반죽 좋은 고모부는 곧 섬사투리로 돌아와 다시 말을 꺼냈다. "성님, 서청이 잘했다는 말이 절대 아니우다. 서청도 참말 욕먹을건 먹어야 헙쥬 - P81
현모 형도 그중에 끼여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6.25가 터져 해병대모병이 있자 이 귀순자들은 너도나도 입대를 자원했다. 그야말로빨갱이 누명을 벗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그들은그대로 눌러 있다간 언제 개죽음당할지도 모르는 이 지긋지긋한고향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현모 형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해병대 3기였다. ‘귀신 잡는 해병‘이라고 용맹을 떨쳤던 초창기 해병대는 이렇게 이 섬 출신 청년 삼만명을 주축으로이룩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용맹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건 따지고보면 결국 반대급부적인 행위가 아니었을까? 빨갱이란 누명을 뒤집어쓰고 몇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그들인지라 한번 여봐란듯이 용맹을 떨쳐 누명을 벗어 보이고 싶었으리라. 아니, 그것만이아니다. 어쩌면 거기엔 보복적인 감정이 짙게 깔려 있지 않았을까? - P83
"바로 그것입쥬. 선무공작은 왜 진작에 쓰지 못했느냐는 말이우다. 처음부터 선무공작을 했으면 인명피해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아실 거라 마씸 폭도도 무섭고 군경도 무서워서 산으로 피난 간양민들을 폭도로 간주해시니…………… " "겔쎄 말이여. 대유격전이란 것이 본디 정치 칠에 군사 삼인데・・・・・・ 이건 정치는 쥐뿔도 없고 무작정 군사행동만 해시니.. 창설 일년도 못된 군대니 오죽할 것고......" 아, 떼죽음당한 마을이 어디 우리 마을뿐이던가.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사람이,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 - P85
도피자 가족들은 함덕국민학교에 수용되어 취조를 받고 닷새 만에 풀려나왔는데 순이 삼촌도 그중에 끼여 있었다. 그 닷새 동안할머니 심부름으로 길수 형과 내가 번갈아가며 차좁쌀 주먹밥을매일 한덩어리씩 차입해주었다. 마지막 날엔 내가 주먹밥을 가지고 가다가 도중에 풀려나오는 순이 삼촌을 만났는데 그 몰골은 차마 끔찍한 것이었다. 비녀가 빠져나가 쪽이 풀리고 진흙으로 뒤발한 검정 몸뻬에다 발은 맨발이었는데, 길가 돌담을 짚고 간신히 발짝을 떼며 허위허위 걸어오고 있었다. 삼촌은 서울 우리 집에 있을 적에 궂은 날이면 허리뼈가 쑤셔 뜨거운 장판에 지져대곤 했는데, 생각하면 그게 다 그때 얻은 골병임에 틀림없었다. - P89
누구는 제 아버지 시신을 찾아놓고 지고 갈 지게를 가지러 간 사이에 다른 사람이 잘못 알고 가져가버린 일도 있었다. 애어머니들은대개 제 자식의 몸 위에 엎어져 죽어 있었는데 그건 죽는 순간에도몸으로 총알을 막아 자식을 보호해보려는 처절한 몸짓이었다. - P90
부락민들은 순경들의 감독을 받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눈팔새 없이 허기진 배를 안고 성을 쌓지 않으면 안되었다. 말하자면전략촌 건설이었다. 불탄 집터의 울담도 허물고 밭담도 허물어다가 성을 쌓았다. 그것도 모자라 묘지를 두른 산담까지 허물어다 날랐다. 순이 삼촌도 임신한 몸으로 돌을 져 날랐다. - P91
어려운 시절에 아기를 가진 삼촌은 먹을 것을 구하느라고 그야말로 눈이 벌게 있었다. 만삭의 몸이라 물질은 못하고 하루 종일땡볕에 갯가를 기어다니며 굴, 성게를 까먹고 게, 보말(갯우렁이) 따위를 잡았다. 밤에 초소막에 나올 때는 보말 삶은 것 한 채롱 가득담아가지고 와서는 우리에게 먹어보라는 말 한마디 없이 밤새도록혼자서 걸귀처럼 까먹어대곤 했다. 여자가 아기를 배면 사정없이먹어댄다는 걸 몰랐던 나는 순이 삼촌이 걸신들려 실성하지 않았나 생각할 지경이었다. 이런 전략촌 생활은 거의 일년 넘게 계속되었지만 그동안 한번도 공비의 습격을 당한 적이 없었다. - P92
결국 해안지방의 축성은 과잉조치라는 게 판명된 셈이었다. 이미 몇십명으로 전력이 크게 줄어든 입산폭도들은 해안지방을 약탈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 P92
그 무렵 내 또래 아이들은 사람 죽은 일주도로변의 옴팡밭에서탄피를 주워다 화약총을 만들기가 유행이었다. 아이들은 이제 옴팡밭의 비극을 까맣게 잊고 사람 죽인 탄피를 주워 모았다. 그렇다. 무럭무럭 자라는 데 도움 안되는 것은 무엇이든 편리하게 잊어버리는 게 아이들의 특성이 아닌가. 그러나 어른들은 도무지 잊을 수없었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팡팡 쏘아대는 화약총 소리에도 매번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그들이었다. 어떤 아이는 어디서 났는지 불에 타서 엿가락처럼 휘어진 총신만 남은 구구식 총을 끌고 다니다가 제 아버지한테 얻어맞고 빼앗겼는데, 총의 그 푸르딩딩한 탄 쇠빛은 꼭 죽은 피빛깔을 연상시켜주었다. - P93
그러나 그 누구도 순이 삼촌만큼 후유증이 깊은 사람은 없었으리라. 삼촌네 그 옴팡진 돌짝밭에는 끝까지 찾아가지 않은 시체가둘 있었는데 큰아버지의 손을 빌려 치운 다음에야 고구마를 갈았다. 그해 고구마농사는 풍작이었다. 송장거름을 먹은 고구마는 목침 덩어리만큼 큼직큼직했다. - P93
그 옴팡밭에 붙박인 인고의 삼십년, 삼십년이라면 그럭저럭 잊고 지낼 만한 세월이건만 순이 삼촌은 그러지를 못했다. 흰 뼈와총알이 출토되는 그 옴팡밭에 발이 묶여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당신이 딸네 모르게 서울 우리 집에 올라온 것도 당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그 옴팡밭을 팽개쳐보려는 마지막 안간힘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오누이가 묻혀 있는 그 옴팡밭은 당신의 숙명이었다. 깊은 소(沼) 물귀신에게 채여가듯 당신은 머리끄덩이를 잡혀 다시 그밭으로 끌리어갔다. 그렇다. - P94
나는 밖으로 나와 마당귀에 있는 조짚가리에 등을 기대고 담배를 피워물었다. 마당에 얇게 깔린 싸락눈이 바람에 이리저리 쏠리고 있었다. 음력 열여드레 달은 구름 속에 가려 있었지만 주위는 희끄무레 밝았다. 고샅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기척이 들려왔다. 아마두어집째 제사를 끝내고 마지막 집으로 옮아가는 사람들이리라. - P95
서호부락 밖, 모래바람 부는 일주도로에 사람들이 작업반별로 무더기무더기 모여 앉아 인원 점호를 받는다. 서호 본고장 부락민들과 이곳에 정처를 둔 노형 피난민들로 된 성담 쌓는 울력꾼들이다. 세찬 갯바람이 굵은 생소금을 낮에다 뿌리는 듯 얼얼하다. 민보단 사람 넷이 죽창을 옆구리에 낀 채 바람에 종잇장 펄럭대는 손때묻은 공책을 들여다보며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또 턱짓으로 대가리 수를 헤아리기도 한다. 까마귀 오(烏) 순경은 저만치 떨어져서길가 밭담 위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대고 앉아 점호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 P98
길가 밭의 푸릿푸릿 싹 난 청보리를 쪼아 먹는 까마귀 한마리가순경이 앉은 밭담 위로 푸릉 날아올라 아그작아그작 방정맞게 걸어다닌다. 저 순경 옷이 어쩌면 저렇게 까마귀 날갯죽지 색을 닮았을까. 게다가 바람에 날아갈세라 턱끈까지 내려 매고 눈썹 위로 푹눌러쓴 모자 차양도 까마귀 부리처럼 뾰족하다. 그러니 서호 본고장사람들이나 노형 피난민들이 저 오(吳) 순경을 까마귀 오가라고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까마귀 오순경이 메고 있는 총대엔 어서 점호를 끝내라고 태극기가 조급하게 펄럭인다. - P99
섬사람들이 뒷전에서 얼마나 쑤군쑤군 욕을 했는데. "물건 아낄 게따로 있지, 발쎄 갈기갈기 찢어발기든가 불태워 없애부려야 마땅헌 일본기를 가지고 대한민국 기를 맹글다니, 저것들은 밸도 소가지도 없는가?" "아이고, 쟈이들이 어떤 것들이라고 속창지를 차릴것고 일본놈 치질 똥고망 핥으며 해먹던 것들인다. 같은 섬 동포갑죽 벗기기를 흉년에 송깃대 벗기듯 하던 것들이 새 나라 경관 노릇을 하고 있으니 오죽헐 거여? 일본기로 태극기를 맹그는 거나 일본 순사출신을 대한민국 경찰로 맹그는 거나 매한가지 마니냔 말이여!" - P99
이북 출신이다. 그것도 "쉿, 육지 순경 오람져온다)?" 하면 울던 젖먹이도 경풍 들리게 화들짝 놀라며 울음을 뚝 끊는 무서운 서청사람이란다. 어찌나 무서운지 같은 순경이면서도 섬것들은 도무지기를 못 편다. 무섭기가 섬 출신 순경 몇곱절 더 무섭다. 저것 봐라. 오 순경이 얼마나 무서우면 저리도 쩔쩔맬까? 민보단 사람들이 점호가 먼저 끝나는 대로 까마귀 오 순경한테 보고하느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어가며 들쭉날쭉하는 꼴이 가련하구나. - P100
오도롱만 남겨놓고 다섯 부락 모두가 한날한시에 불타던 노형리소까이. 저번날 읍내에서 선무공작대가 성담 쌓는 데까지 찾아 올라와서 한시간 동안 말자랑뿐인 시국연설을 늘어놓다 갔는데, 그때 노형 사람들이 제일로 원통해하는 소까이 문제를 놓고 반죽 좋게 너스레 떠는 것을 귀리집은 들은 적이 있다. - P102
산폭도가 양민 가운데 숨어 살기를 머릿니가 걸버시 헌 머리에 서캐슬듯 하니 어느하세월에 챙빗으로 굵은니며 가랑니며 서캐를 훑어내 잡을 것이냐. 아예 석유기름 붓고 머리칼을 홀랑 태워버리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마을을 불태운단다. 생사람 대가리에 석유를부어 불태우다니, 머릿니 잡는다고 생사람 잡는 게 소까이란 말인가. 집과 양식이 불타고, 소개민 중에는 폭도 가족이라고 지목된 여편네들이 여럿 죽고 심지어는 할망, 하르방마저 더러 죽었다. - P102
저 아이들은 심지어 뜨거운 땡볕에 밭일 나가도 밀짚 패랭이 대신에 그 후덥지근한 담요천으로 된 모자를 쓰고 다녔다. 4.3사건이터져 학교 문을 닫은 4월부터 서호부락으로 소까이 내린 10월까지그사이 예닐곱달은 아직 산폭도 토벌도 지금처럼 좁은 골목에 돼지 몰듯 그렇게 다그치지 않던 때라 아이들은 들에 나가 조밭도 매고, 소도 먹이고, 땔감으로 억새도 지어 나를 수 있었다. - P103
그러나 올봄에 저희 상급생인 중학 4, 5학년 중에 몇십명이 집단으로 입산하여 산폭도가 된 불상사가 생긴 다음부터는 중학생이라면 모두 한데 싸잡아 의심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개중에는 벌써코밑이 뜬숯검댕 묻은 것처럼 거뭇거뭇한 숙성한 놈들도 이따금눈에 띄는데 그런 아이를 보면 귀리집은 걱정스러워진다. 저러다가 걸리면 어쩌려고・・・・・・ 카미소리(면도칼)로 슬쩍 밀어버리라고 귀띔해주고 싶어진다. - P105
그때 무심코 모자 속을 들여다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모자 안감에다 헝겊을 대어 몰래담배쌈지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저러다가 담배 피운다고 어른 취급 받으면 어찌하려고…… 나이가 원수인 세상에 어른 되려고 하다니. 이 난세엔 아이는 자라서는 안된다. 나이 먹어서도 안되어. 젊은 나이가 죄요 원수인지라 반드시 총 맞거나 죽창 맞아 죽는 날이 오는 법이다. - P105
그러나 울력은 내일이면 끝난다. 서호로부터 돌성을 쌓기 시작한지 딱 한달 닷새 만인 바로 어제야 비로소 도두·서호·외도리 사람들은 읍내에서 쌓아 올라온 울력꾼들과 도령마루에서 만났던 것이다. 거기 나온 읍내패들 중에서 한동네 살다가 이 난리 전인 작년에 읍내로 이사 간 필주 어멍을 만나 순원의 소식을 들을 줄이야! - P106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일수록 동티가 잘 나는 법이라는데, 너무 턱놓고 좋아하지 말아야지. 그래서 귀리집은 아까부터 조심하라고자꾸 북받치는 아들 생각을 꾹 눌러 참고 있던 터이다. - P107
필주 어멍 말이, 중산간 위쪽 오리 밖부터 통행이 금지되어 삭정이, 섶나무, 억새를 못하게 된 후로는 읍내에서도 땔감난으로 생난리라고 한다. 심지어는 말방앗간 지붕 이엉까지 몰래 벗겨다 불 땐다는 것이다. 그런데 순원이는 나무땔감도 아니고 겨우 이 억새 닷으로 몇끼니나 끓여 먹을까? 아니, 끓여 먹을 것이 있기는 하고? 어린것이 사나끼 꼬아 메고 다니며 밥과 바꿔 먹는 반동냥질을 한다는데, 집에 무슨 불 지펴 끓여 먹을 곡기가 있을 말이고. - P108
이런 난리통엔 귀신도 굶기가 일쑤다. 먹어도 밀기울범벅이나먹는다. 잘해야 낱알이 오글오글 살아 사발 운두 밖으로 도망가려는 조밥이 고작이다. 귀리집은 그끄저께 시아버지 삭제(祭)에 명심해서 여투어두었던 딱 한줌 좁쌀로 밥을 지어 올렸다. (순원이아방이 산폭도에게 잡혀간 것이 삭젯날이었으니 이제 생사를 모른지가 꼭 두달이 되는 셈이다!) - P110
캄캄한 모양이다. 잘됐다. 물때를 맞춰 나가자. 썰물이 어느 때쯤일까? 해변까지 내려온 성담은 밀물이 닿지 않는 언덕바지에서 끝나고, 그 성담 끝에 의지해서 감태눌(보리밭 거름으로 쌓아놓은 해초더미)로 눈가림한 초소막이 있다. 밀물 때면 성담 밑 언덕 허리춤까지물이 덩실 추어올라 초소막 곁으로 들쥐 한마리 얼씬 못하지만, 썰물 때면 물끝이 많이 내려가 험상궂은 바위가 삐죽삐죽 솟은 갯바닥이 드러난다. 그 바위들 뒤로 몸을 숨기고 엉금엉금 기어가면 초소막에서 안 보이겠지. 그런데 문제는 자갈 밟히는 소리다. 물풀 붙은 돌막들이 자꾸 발에 미끄덩거려 부딪칠 텐데 어찌하나? 아무래도 안되겠구나. 이번엔 들키면 용서없겠지. 그 까마귀 오가가 기어코 날 죽이고 말 게다. 저번엔 혼겁 주느라고 닛뽄도 칼등으로 어깨를 후려쳤지만, 이번엔 정말 칼날을 세우고 모가질 내려칠 것이다. 결국 귀리집은 어젯밤은 이렇게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뜬눈으로 밝히고 말았던 것이다. - P113
그날은 오도롱 소까이날이었다. 귀리집이 피난 내린 것은 석달전 너븐드르, 진중이, 다랑굿, 함박이굴 같은 부락이 소각되던 노형 1차 소까이 때이고, 그 두달 후인 그날은 2차 소까이로서 노형리 중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오도롱부락이 불에 탈 때였다. 그 2차소까이날 중낮이 좀 지나서 귀리집은 서호지서 순경들과 청년단이군인을 따라 오도롱 소까이에 몰려간 빈틈을 잡아 다랑굿 집터로올라갔다. 집터에 서 있는 거라곤 화기를 먹어 붉어진 돌담벽과 붉게 녹슨솥 두개가 걸린 부뚜막뿐이었다. 불에 타지 않게 헛간에서 울타리돌담까지 옮겨다 세워놓은 멍석 세닢과 향나무 제상이 온데간데없었다. 서호것들이 지서와 짜고 노형 집터에 들어가 가재도구와 양식을 실어내온다는 소문이 있더니 그게 사실인 모양이었다. 풀썩거리는 재위에는 숯등걸이 된 서까래들과 깨어진 독이 뒹굴고 붉은 못들이 지렁이떼처럼 우글거리고 있었다. 귀리집은 재를 파헤쳐 좁쌀을 찾았다. 그런데 순경과 민보단들이 미처 오도롱에서 돌아오기 전에 후딱내려왔더라면 괜찮았으련만 저물녘까지 지체한 것이 탈이었다. - P114
"아니우다, 아니우다.젖 못 먹어 다 죽게 된 물애기(젖먹이)를 놔두엉 이년이 어디라고 산엘 올라갈 말이우꽈? 먹을 것 가지레 집터에 갔다 오는 길이라 마썸. 어린것 때문에 죄짓는 줄 알멍서도⋯⋯⋯ 다시는 안하며한번만 용서해줍서, 한번만 용서해줍서게." - P116
남편이 산에서 내려와 빨고 간 거이 아니가?" 아기가 젖 빨아 그렇다고 미처 변명하기도 전에 갑자기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오른쪽 젖통에 덮쳐들어 억세게 움켜쥐었다. 아프게 비튼다. 다음 순간까마귀 오는 질겁하면서 손을 놓았다. 젖줄기가 얼굴에 찍 뿜어져나온모양이다. "이년이!" "헛헛헛, 그것 보라우야. 내레 너무 뎀비디 말라구 안 그래?" 까마귀 오는 손등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욕지기난듯 두어번 진저리를 치더니 쌍욕을 고래고래 내지르면서 닛뽄도를휘둘렀다. 그때 그녀는 칼등으로 때리는 걸 칼날로 치는 줄 알고얼마나 혼겁했던가. 귀리집은 그날 다행히 더이상 추궁당하지 않고 놓여났지만 금싸라기 같던 서말 좁쌀은 그만 빼앗기고 말았다. 서말 좁쌀이라면 윽박지르지 않더라도, 귀리집 같은 애기어멍이 아닌 반반한 처녀를데려다가 사타구니에 움집 짓고 살 만하다. - P118
며 젖 만들려고 안달복달하던 때와는 달리 막상 아기가 죽고 보니그냥 덤덤한 심정이었다. 모진 목숨, 살아 더 고생하느니 차라리 잘죽었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아마도 이런 심정은 그게 유독 자기에게만 닥친 불행이 아니고, 노형서 소까이 온 여편네 중에 젖아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대개 당하는 일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귀리집은 이름 석자 지어주지 못한 채 죽은 그 어린것 생각에새삼 가슴이 뭉클해진다. - P119
그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사하게 키워야지. 그런데 당장 오늘 만나는데 먹을 것 한줌 갖다줄 게 없구나. 집터엔 잿더미 속에서 양식이 썩고 있는데 굶어야 하다니, 무슨 이런 놈의 세상이 있는가? 제것 제가 못 먹고 누가 먹는가. 아이고, 먹긴 누가 먹어, 도두, 서호것들이 먹지, 도두, 서호 것들이 지서와 짜고 훔쳐 먹는다지 않는가. 귀리집은 노여움이 불끈 치밀어올랐다. 우리 것을 왜 저들에게빼앗겨? 왜? 계엄령만 해제되면 되를 말로 갚겠다고 그렇게 애걸복걸했건만 저들이 언제 고구마 한 꽁댕이라도 뀌어주던가. - P119
이렇게 개밥에 도토리처럼 괄시받아 처신이 곤란하던 섬 출신들은 이제 육지로 쫓겨나고 새 토벌군이 입도하였단다. 섬 출신이 끼여 있어도 그토록 두렵던 토벌군인데, 섬 출신은 폭도 토벌에 맞지않다고 죄다 육지 병정으로 바꾸었으니 이젠 정말 큰일 났다고 사람마다 걱정이 태산 같다. 그러나 아무리 포악하다 해도 설마 서청만큼이야 않겠지. 서청이 득시글한 경찰은 안 바꾸고 국방군만 바꾸다니. 미친개 눈엔 성한 사람 없다더니, 섬사람이라면 모조리 폭도로 보는 서청의 미친 백정은 왜 안 바꿔주나 바꾸기는커녕 서장자리까지 서청이 차지했고, 섬에 하나 있는 신문사도 빼앗았단다. - P125
아침이 되어 앞집 영순이 아방 등에 업혀나온 그이는 꼬박 열흘을 몸져누웠다. 생각했던 대로 삼우제 끝나는 날 그이를 데리러 산에서 내려왔지만 그 꼴을 보고는 그냥 돌아갔다. 그들은 혹시 꾀병이 아닌가 하고 직접 옷을 들쳐보기까지 했는데 온 데가 푸릿푸릿멍들고 부어 있으니까 제법 호기롭게 경기를 내며 어쩌구 지서를욕했지만, 고양이 쥐 생각해주는 격으로 조금도 달갑지 않았다. 언제 또, 바로 그 이튿날로 데리러 올지 몰라 마음이 불안한 남편은아직 부기도 제대로 빠지지 않은 몸을 자전거에 실었다. 출근하던여느 때처럼 핸들에 흰 보자기에 싼 도시락 둘을 매달고 짐받이에는 책보를 허리에 맨 순원이를 태웠다. - P127
시어머니랑 둘이서 얼마나 신신당부했던가. 상주 된 몸으로 삭망에 자주 빠지는 게 아무리 괴롭다 해도 마을 폭도가 기다리는또 이제 막 계엄령이 내려 길이 차단되고 사람 왕래가 금지된 위험한 곳을 어디라고 기어왔더란 말인가. 밤중에 밭담에 몸을 숨겨기다시피 고생고생해서 왔건만, 그놈들이 어찌 알았는지 아침 삭체를 지내는데 세명이 들이닥쳤다. - P129
얼마 후 연기에 숨 막혀 밖으로 쫓겨나왔을 때는 폭도 두 놈은간곳없고 시어머니가 보릿짚가리 밑에 허옇게 누워 있었다. 오목가슴에 죽창을 맞고서. 흰옷 위에 불티가 까맣게 내려앉아 있었다. 폭도들이 태우고 도망간 것은 안거리(안채)였다. 그놈들은 한달후인 10월 보름날 국방군들이 와서 불태울 몫으로 밖거리(바깥채)와 대문간을 남겨둔 셈이었다. 온 부락이 불타 화광이 충천하던 토벌군의 소까이, 순원이 아방이 그때 살아 있었더라면 이 섬 어딜가 있어도 그 질펀하게 넓은 불바다를 보았으리라.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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