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찬가지로 모든 종류의 의례를 통해 규정과 금기를 만들어서, 사냥과 어획, 식물 채집 등을 결과에 책임져야 하는 무겁고 심각한 활동으로 여기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일을 하는 이들은 항상 신중하고 깊이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여러 보고서에 따르면 농업은 분명 진보합니다.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서 더 많은 먹거리를 마련함으로써, 급속한 인구 팽창이 이루어지고 밀집된 주거 환경이 나타나며 사회는 더욱 부피가 커지는 동시에 늘어납니다.

그러나 퇴행도 있습니다. 첫 강연에서 지적했듯이, 농업은 섭취하는 음식의 질을 떨어뜨렸습니다. 즉 음식이 칼로리는 풍부하지만 영양소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몇 가지 산물로 제한되었다는 겁니다.

16~19세기에 이국적인 지역과 그 지역 주민을 탐욕적으로 착취함으로써 서구 사회는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저개발 사회와 산업문명 간의 수상한 관계는 특히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산업문명은 자신이 파생한 산물을 보면서도 부정적인 측면은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개발 사회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단순성과 수동성은 원래부터 그 사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의 개발에 의해 생겨난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이미 약탈당한 사회의 폐허로부터 다시 개발을 시작하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게 한 건 그 다음 일이라는 겁니다.

문화적 불연속성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지점에서 역사적 틀을 규정하고 나면, 이런 사회들이 왜 개발에 반대하는지 그 본질적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이른바 원시사회는 대부분 내적 갈등보다는 통일성을 선호합니다. 둘째, 그들은 자연의 힘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은 역사적 미래에 속박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중 한쪽의 승리를 추구하기보다는 각 진영의 승리와 패배가 균형을 이룰 때까지 경기를 계속 되풀이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우리처럼 승자가 나오면 경기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패자가 없다는 확신이 들 때 경기를 끝냅니다.

원시사회들 대개가 다수결이라는 발상을 거부한다는 것은 인상적입니다. 원시사회는 혁신에 유리하도록 집단 내의 사회적 응집과 융화를 유지하려 애씁니다. 여기서 분쟁을 초래한 사안은 만장일치1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필요한 만큼의 회수를 거쳐 논의됩니다.

북아메리카의 5대호 지역의 메노미니 인디언은 이웃 원주민인 이로쿼이족의 농업 기술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주식인 쌀을 생산하는 데 그 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경작이 그들의 ‘어머니인 땅에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원시적’이라 부르는 혹은 문자 없는 민족은 문화라고 해봤자 극히 적은 질서 체계만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저개발 민족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들은 아주 적은 엔트로피만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사회들은 대체로 앞서 제가 묘사한 것처럼 만장일치 규칙을 따르고, 열역학이 아닌 역학적 기계의 성격을 가지므로 평등합니다.

반대로 문명사회는 기계나 무수한 과학기술의 응용이 보여주는 것처럼 문화 안에 수많은 질서를 만들어냈지만, 또한 사회 안에 수많은 엔트로피도 만들어냈습니다.

이상적인 것은 아마도 분명 제3의 길에 있을 겁니다. 사회 안에 엔트로피가 늘어나는 데 따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서, 문화 안에 더 많은 질서를 만들어내는 길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코스모스의 역사는 죽게 마련인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위대한 신화가 되었습니다. 그 역사는 유일무이한 사건들의 전개 속에서 진행됩니다. 왜냐하면 단 한 번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코 그 실재를 증명할 수 없지요.

그런데 과학 자체는 생명의 역사, 세계의 역사가 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듯합니다. 오랫동안 여러 갈래 길을 따라오다 보니, 과학적 사고와 신화적 사고가 언젠가는 서로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배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설 속에서 인류학이 신화적 사고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 정당화됩니다. 더욱이 인류학이 정신의 기능에 내재하는, 지금도 항상 현존하는 속박의 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해명을 해준다면, 그것은 더욱 정당화될 것입니다.

첫째, 존재하는 문화들의 수입니다. 특히 지구상에는 2~ 3세기 전부터 존재하던 문화가 지금도 존속되고 있을 만큼 문화의 수는 인종의 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둘째, 문화적 유산은 유전적 유산보다 더 빨리 진보합니다. 우리의 증조부모가 알고 있던 문화와 우리가 아는 문화는 다릅니다.

인류학자와 생물학자는 삶이, 특히나 인간의 삶이 획일적인 방식으로 전개될 수 없을 거라는 데 동의합니다. 항상 그리고 어느 곳에서나 삶은 다양성을 전제하고 또 다양성을 발생시킵니다. 지식적ㆍ사회적ㆍ미학적ㆍ철학적인 이런 다양성은 인과관계로 통일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 머릿속에 인종과 문화는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인종 간의 불평등 문제를 부정적인 방식을 통해서라도 해결하기 위해 문화의 불평등 — 실은 이것을 다양성으로 봐야 하지만 — 을 들여다보게 된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인과 고대 중국인은 자신들의 문화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을 ‘바르바르barbare’ 혹은 ‘오랑캐’라고 규정했습니다. ‘바르바르’라는 말은 어원적으로는 새들의 짹짹거림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의 이면에는 동물적 속성이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어 ‘소바주sauvage’[원시인/야생인/미개인]라는 단어도 ‘야생의 숲’을 의미하므로, 인간이 만든 문화와 대립되는 동물의 자연적 삶을 환기시킵니다. 그러니까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짜 진화론은 전체에서 부분을 취하는 절차를 밟아, (하나는 현존하고, 하나는 사라진) 두 문명에서 서로 닮은 어떤 점들을 근거로 모든 점이 동일하다는 식으로 결론을 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증 방식은 논리적으로 옹호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 사실들에 의해 대부분 반박됩니다.

진보하는 인류는 계단을 하나씩 힘겹게 올라가는 사람이라기보다 주사위 놀이를 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주사위 몇 개를 던질 때마다 탁자 위에 흩어집니다. 한 사람이 이기면, 다른 사람은 집니다. 역사가 누적되어왔다면, 다시 말해 그것이 쌓여오면서 유리한 조합을 형성해왔다면, 그것은 오로지 행운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산수의 기초인 숫자 ‘0’이 있습니다. 인도인이 ‘0’을 발견했고 아랍인을 통해 유럽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야인은 적어도 5백 년 앞서 ‘0’이라는 개념을 알았고 사용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마야의 달력은 같은 시기의 구세계의 달력보다 정확했습니다.

인류학자가 볼 때 사실상 도덕성이라는 기준은 하나의 가정으로서, 그 기준을 채택한 사회의 기능일 뿐입니다.

근본적으로 각 문화는 다른 문화에 대해 있는 그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화입니다. 왜냐하면 문화는 그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평가를 해도 상대주의의 포로가 되며, 이를 벗어날 별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요컨대 우리 다른 서양인들이 일본에 던지는 시선이 우리에게 다시 확언시켜주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각각의 개별적인 문화가 있고 전 인류가 만드는 문화 전체가 있을 때, 흐름에 따라 열 때는 열고 닫을 때는 닫는 기능을 통해 존속하고 번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서로 안 맞을 수 있고, 또 어떤 때는 잘 맞아 공존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문화와 차별성을 가지며 자기 문화의 독창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 문화에만 충실할 필요도 있습니다. 전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다른 가치들에 거의 귀를 막고서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무심히 있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번이 일본 네 번째 방문이지만, 매번 올 때마다 이 점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일본에 올 때마다 점점 더 많은 호기심과 공감과 흥미를 느끼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일본이 독특한 방식으로 현대인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답을 제시해줌으로써 인류학에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는 1908년 11월 28일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1959~1982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인류학과 학과장을 지냈고, 1973년 아카데미프랑세즈의 회원이 됐다. 2009년 10월 30일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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