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말한식
하미현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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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륵 사진만 훑어 봐도 기분이 좋다. 글보다 사진. 사진 보려고 구입. 가까이 두고 보며 기분 좋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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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결론적으로 선생은 속내를 시원스레 털어놓지는 않으시네요.

ㅡ 우리는 언제나 말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어찌나 말들이 많은지... 연필이나 라이카는 말이 없습니다. - P189

ㅡ 앞으로 선생의 회고록을 읽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겠군요.

ㅡ 난 작가가 아닙니다. 그저 엽서에나 글을 쓸 따름이죠. 어쨌든,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ㅡ 종일 무슨 일을 하시나요?

ㅡ 어떨 것 같나요? 나는 그저 쳐다볼 따름이지요.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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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생에서는 나 자신을 지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천천히 말이죠. 사진은 즉각적으로 자신의 구조를 가집니다. 처음부터요. 데생에서는 흐름에 나를 맡깁니다. 그러면서 당장 결과물이 나오길 바라죠. 사진은 다릅니다. 사진을 완벽하게 인정합니다. 데생은 수정을 가할 수 있지만 사진에서는 수정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기껏 다음 사진에나 기대해 봐야 할 테죠. 거기서 쓰레기가 생깁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아직 다음번 데생이 중요합니다. - P149

관찰하고, 바라보고, 파도 꼭대기에 걸터앉아 있어야 하고, 또 뭔가가 벌어질 때 현장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쏘다닌 거죠. 사진애서 중요한 것은 민첩성이고, 뭔가가 임박했음을 느끼고 간파해내는 일입니다. - P156

우리가 매그넘에 있을 때는 사진 얘기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윤리의식이 투철한 모험가인 카파는 오전 열시에 이런 말을 하곤 했지요. "아니, 자넨 지금 이 시각에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지금 어떤 곳에서 이러저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어서 가 보게!" 그럼 우리는 달려갔습니다. 미학적인 면에서는 각자가 알아서 대처했습니다. - P156

ㅡ 이지스 같은 사진가들을 좋아하십니까?

ㅡ 놀라운 사진가죠. 매우 뛰어난 화가이기도 합니다. 브라사이도 그렇고요. 빼어난 이야기꾼입니다.

ㅡ 자크 앙리 라르티그는 어떤가요?

ㅡ 초창기 사진들은 대단합니다! 눈이 부시죠. 기쁨에 넘치고, 순수하고...

ㅡ그런데도 수 년 동안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ㅡ 그럼 내 이름은 어째서 알려지게 된 건가요? 부조리한 질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건 경험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났으며 또 어떤 일이 벌어질 때 그 현장에 있었느냐 하는 겁니다.

ㅡ 예를 들면요?

ㅡ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ㅡ 그런 말 마세요. 다른 생각이 있는 거겠죠!

ㅡ 아닙니다. 내 사진에서도 그런 점이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내 사진을 들여다보는 데 지쳤습니다. 지금 난 수집가들에게 사진을 팔아서 먹고삽니다. 젊을 때는 한 장도 못 팔았는데 말이죠. 터무니없는 일이죠! 내 사진에 서명을 해서 진품이라누걸 입증하는 게 답니다.

ㅡ 실제로 가치가 높은 사진들이 있나요? 회화처럼요.

ㅡ 아니요. 어쨌든 젊을 때도 팔지 못한 사진을 지금은 팔 수 있다는 게 부조리한 일이죠.(157p.)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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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너무 많이 찍지 않으려면 주제가 당신을 사로잡는 순간에만 셔터를 누르면 됩니다. 즉, 미세하게 감이 올 때 말입니다. 그게 전붑니다. - P144

서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예술가입니다. 즉, 느낄 줄 아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 P146

나는 카메라를 손에서 놓아 본 적이 없습니다. 내 시선은 항상 삶을 훑습니다. 그 점에서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대목에서 프루스트와 닮았습니다. 이렇게 말했죠. "삶, 마침내 되찾은 진짜 삶, 그건 문학이다." 나한태는 그게 사진입니다. - P146

당신은 사람들이 나한테 ‘고전적‘이라는 말을 갖다 붙인다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나는 고전이라거나 현대적이라는 식으로 구분하는 분류법에 수긍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모든 순간이 동일합니다. 다만, 현실의 흐름 속에서 모든 순간을 포착하지는 못할 뿐이죠. - P148

데생은 빠르건 느리건 간에 명상입니다. 사진에서는 파도의 정점에 선 서퍼처럼 항상 시간에 맞서야만 합니다. 사진은 지속적으로 공간과 시간의 문제를 재해석 합니다. 영속적으로 말이죠. 이 점에서 나의 성마른 기질이 큰 도움을 주지요. 물론 그런 기질은 내가 데생할 때 선의 생동감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데생할 때는 근본적으로 명상 상태에 젖어 있지요. 시간이 멈춘 상태로 말입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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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그러니까 이론화, 다시 말해 고착화 된 태도를 거부한 거로군요. 이 역시 초현실주의적 선택인 셈입니다. 선생은 줄곧 그런 태도를 견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ㅡ 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문제 삼아야 할 필요성도 함께 말이죠. 조금 전 언급한 격한 기쁨이란 게 바로 그겁니다. 나에게 가장 커다란 열정은 사진을 찍는 그 격발의 순간에 있습니다. 그건 직관과 조형적 질서의 인식으로 이루어진 신속한 데생이고, 그간 미술관과 화랑의 잦은 출입, 또 독서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맺어진 결실입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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