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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ㅣ 창비시선 326
천양희 지음 / 창비 / 2011년 1월
평점 :
물음
세번이나 이혼한 마거릿 미드에게
기자들이 왜 또 이혼했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녀가 되물었다
"당신들은 그것만 기억하나
내가 세번이나 뜨겁게 사랑했다는 것은
묻지 않고"
시 쓰는 어려움을 말한 루이스에게
독자들이 왜 하필 시를 쓰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가 되물었다
"왜 당신들은 그것만 묻나
내가 몇번이나 간절히 무지개가 있는
세상에서 살기를 원했다는 것은
묻지 않고"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76p.
멋지다.
세번이나 뜨겁게 사랑했다는 마거릿 미드, 멋지다.
멋지다.
몇번이나 간절히 무지개가 있는 세상에서 살기를 원했던 루이스, 멋지다.
멋지다.
몇번이고 읽고 또 읽을 수 있는 시를 쓰는 시인 천양희, 멋지다.
멋지다.
자신이 하는 일을 알고 잘 해내는 사람들.
멋지다. 울엄마.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세상 나물을 많이 알고, 아주 멀리서도 알아보고,
산에서 나는 것을 알고, 들에서 나는 것을 알고, 잘 자라게 돕고,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울엄마, 멋지다.
멋지다.
울엄마와 동갑내기 천양희 시인.
그의 시 한편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소쩍새가 울고
얼마나 많은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울었을지
내가 알 길은 없지만,
그의 시 한 편 한 편 모두
울엄마 손끝에서 나온 음식처럼
그렇게 맛있고, 간이 딱 맞고, 많이 먹고 싶고,
또 먹고 싶고, 그래도 질리지 않고,
양념이 너무 강하지도 않고,
MSG를 쓰지도 않았고,
제철음식이고,
그래서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봄이 왔는데, 벌써 저만큼 가고있는데,
나는 왜 쑥만 캐고 있나.
시를 쓰지 않고"
생각은 강력한 마약
생각은 구름처럼 뿌리가 없다
생각하다 흩어진다
생각이 화근이 된 뒤부터
가끔 생각 없이 하루쯤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지나갈 수밖에 없는 것
생각 어딩 고비가 있는 것도 같다
세상에 생각처럼 강력한 마약이 있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생각의 중독
생각하다 사람들 깊이 괴로웠으므로 웃음을 고안했고
깊이 생각했으므로 신은 죽었다고 폭탄선언한 사람도 있다
생각을 껌처럼 씹다 뱉고
생각이 우산처럼 폈다 접힐 때
생각 끝에 나는 겨우
백사장에 생각 짧은 치욕을 썼다 지웠다
한줌 모래가 어찌
하루에도 천년을 사는 생각만 할까
생각해보면
나를 살게 한 건 생각 끝에 나온 생각이다
너를 생각한 것이 나를 살렸다 시여!
생각에 기대 시를 생각해내는 밤
생각은 오늘 나의 다짐이니
생각은 나를 따르고 시를 뒤따른다
바닥까지 생각의 허리 구부리고
이제 막 시 한짐 밀고 갈 시간이다
생각에는 먼 것이 있고
나에게는 생각이 있다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100-101p.